<평론가의 인생책> 임정균 평론가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함께 읽기

D-29
안녕하세요. 저는 다음주 금요일 즈음부터 참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북클럽을 끝내고 평론가님이 언급하신 조너선 사프란모어의 책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스케줄을 보니 벌써부터 두근두근합니다. :)
반갑습니다 호디에님! 금요일부터 소설에 대해 많은 이야기 나눠 보아요! 편안한 한주 되시고요!
전자책으로 258페이지, 오케이, 내용이 무거울까 조금 걱정되지만, 살살 도전해보겠습니다. 모신 하미드, 영국계 파키스탄 소설가. 음.. 생각이 엄청 많은 소설일까, 궁금해집니다.
언더우드샘슨에서 면접보는 내용을 읽고 있습니다.
모신 하미드, 이 작가는 이 책, "본격소설"을 읽어봤을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본격소설 상제5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미즈무라 미나에의 작품『본격소설』상권. 영국에서 최고의 러브스토리로 꼽히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큰 틀을 빌려와, 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장대한 구성과 낭만적인 품격으로 계급과 시대에 휩쓸린 남녀의 사랑을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패전 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친구의 초대로 고급 별장지 가루이자와에서 휴가를 보내던 유스케는 밤중에 길을 헤매다 한 낡은 별장에 신세를
글쎄요. 모신 하미드가 그 책을 읽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민자 출신 작가인 미즈무라 미나에의 작품에 분명 흥미를 느꼈을 것 같네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주말 동안 즐거운 독서하셨나요.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은 늘 힘드네요ㅜㅜ 하지만 봄이 한결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서 기분이 들뜨기도 합니다. 다들 따뜻한 봄 맞이하고 계시지요. 오늘은 2장까지 읽고 말씀 나누기로 하였지요. 아마 다들 소설의 시작과 함께 화자의 눈앞에 있는 ‘당신’의 정체가 궁금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어느 오후 파키스탄의 라호르라는 도시의 한 야외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먼저 파키스탄에 관해 조금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파키스탄은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의 국가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나라지요. 영국 식민지 시기에는 인도의 서북쪽 지방이었는데,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달리 파키스탄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문화와 언어도 인도와는 달랐다고 해요.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떨어져 나와 자치령이 되었고요. 이후 20세기 내내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수차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인도가 파키스탄의 일부였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도우면서 인도-파키스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기도 했고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전쟁을 치렀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조직되고 정권을 장악하는 데에도 파키스탄이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저는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관해서 영국 런던 출신이자 지금의 방글라데시인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축복받은 집』에서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1971년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던 해를 배경으로 한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라는 줌파 라히리의 단편 소설은 종교와 영토분쟁으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이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럼 다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로 돌아와서, 1~2장의 대강의 줄거리는 화자인 찬게즈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 재정을 평가하는 ‘언더우드샘슨’이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된 뒤 대학 졸업 여행에서 에리카라는 미국인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 첫 페이지에서 찬게즈가 ‘당신’이 미국인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는 장면입니다. 처음 만난 사이인 것 같은데 말이죠. 찬게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미국인이란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요?(중략) 당신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우람한 가슴은 미국인의 특징이죠.(중략) 하지만(중략) 내가 당신을 알아본 건 당신 태도 때문이었어요.”(7쪽) 찬게즈는 ‘당신’의 외모와 태도로 그가 미국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가 격식을 차리듯 외투를 벗지 않는 것을 보며 미국인답지 않다고도 말해요. 찬게즈는 한 나라의 ‘전형’적인 ‘국민성’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인 것 같네요. 사실 소설에서 3인칭 전지적 시점을 취하는 화자가 아닌 이상, 소설의 화자는 현실의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살아온 환경과 언어, 문화, 지적 수준, 나이와 성별 등이 주어져 있고, 그런 만큼 편견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 편견들이 사실은 소설의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소설의 의미를 다채롭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소설 속 화자의 편견은 조금 다른 주목을 요하는 것 같아요. 가령 그는 파키스탄의 엘리트로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해 미국인처럼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하니, 실상 그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은 찬게즈가 욕망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그는 이슬람 국가 출신으로 미국에서 생활하며 자신을 향한 편견을 겪기도 합니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는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여러 미국인 친구들로부터 호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지금’ 눈앞의 미국인인 ‘당신’에게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지적하는 대목은 다소 반어적으로 읽힙니다.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언더우드샘슨에 취직하기까지 외국인으로서 미국인들에게 받았던 호의가 이후 어떤 사건으로 인해 지금에 와서는 모종의 변화를 겪었다고 짐작하게 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당신’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할 만한 힌트들이 여럿 눈에 띄기도 했어요. 가령 “당신은 무슨 임무를 띠고 있는 것 같았어요”(7쪽)라거나, ‘당신’이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보고 “인공위성으로 연락할 수 있는 모델”(31쪽)이라고 말하는 대목 같은 거요. ‘당신’은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추리소설처럼 ‘당신’의 정체를 추측해가며 읽는 것도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아서 기대가 되네요.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각자 눈여겨 본 대목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눠보아요.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이거 어마어마하게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이 든 이유가.. 작가가 가진 인종적 배경과 교육적 배경에 제가 가진 개인적 경험이 딱 들어맞아서였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주류에 속하지 못하지만, 주류에 속한 듯이 보이는 사람들의 관찰자적 시선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결국은 느낄 수 밖에 없는 "진입하지못함"에 관한 느낌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구요. 이러한 저의 모든 호기심이 집약되어있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팍! 와서 이거 흥미롭겠는걸? 이라는 생각을 책을 펼쳐든 초반부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개인적인 경험인지 궁금하네요. 말씀처럼 이 소설의 배면에는 작가나 화자의 배경에서도 드러나듯 한 사회에 편입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적인 편견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호의처럼 보이지만, 그 시선의 주체는 시선의 대상을 분명한 차별과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민자 문제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비단 국적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가족, 학교, 직장, 또래집단 등 이미 형성된 집단에 적을 두고 속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있지요. 모든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 같은 게 필요해 보이고, 더 나은 곳에 속하기 위해 청춘과 평생을 소진해야할 때도 있고요. 더구나 그런 자격이 경제력과 등치되고, 계층 이동이 더 어려워지면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옥'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십년정도의 시간을 한국밖에서 보냈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때의 경험들 덕분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는 책을 펼쳤을때, 책이 저에게 탁!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보다 어릴때라 정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었거든요. 찬게즈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짐작이 됩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임정균님이 말씀하신 이동이 없는 삶에서도 존재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겪고있어요. 운이 좋게 지금의 직장에 들어와 경제활동을 하고 되었지만, 제 스스로 느끼는 어떤 조마조마함이 있답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곳에서 살다보니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구요. 이 책은, 꼭 저처럼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나 서울에 사는 경험이 있는게 아니더라도, 어쩌면 누구나 읽어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작게는, 어떤 집단에 대한 동경 이라든지 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어떤 선입견, 그런것과도 일맥상통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이 얇다는 것에서 저같은 사람이 부담느끼지 않고 펼칠수 있었던것도 나름 신의 한수? 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무거움을 살짝 피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아서 뭐랄까요.. 아주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것 같아요.
개인적 경험을 말씀해 주시니 더 와닿네요. 대구에 거주하며 가끔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는 저로써는 지방격차로 인해 진공상태5님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기 때문에 지역간 불균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문제는 국가의 불균형 해소 정책이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여러 통계를 보면 문화예술분야의 불균형은 인구 비례를 초과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분명 물적 인프라와 인적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더 좋은 환경을 찾아 가고 싶어질 테고, 그런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지요. 지방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여건들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일 텐데, 해법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것도 정치의 영역이고, 정치적 역량이란 결국에는 인구수에 비례하기 마련이어서 지방은 더 힘든 정치적 싸움을 할 수밖에 없죠. 저의 경우에는 서울에서 살게 될 때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어서 대구에서 사는 것에서 자기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늘 서울을 동경하고 있답니다 ㅠㅠ 얇은 책을 선택한 건 정확히 말씀하신 그런 의도였는데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으니 얇다고 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배우는 시간인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세번째 읽는거에요. 짧고 강렬한 소설을 처음 읽고, 앉은자리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두번째는 좀더 빠르게 한번 더 읽었더랬어요. 그래서 당신의 정체도 알고, 에리카와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뉴욕(언더우드샘슨) 에 있어야 할 주인공이 왜 여기(라호르 파키스탄 펀자브주의 주도라고 합니다)있는지 알고 읽는 중이에요. p.23 연장자에게 전통적인 존경심을 품고 있는 찬게즈가 부유한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현지인(그리스인) 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장면. p.26 에리카카 찬게즈에게 정중한 예의바름이라고 평하는 장면 등이 눈에 들어왔어요.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부장적이고 가족중심적인 그지방의 문화와 우리 문화가 교집합을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입장에 훨씬 쉽게 서게 되더라구요. p.29 찬게즈와 에리카가 고향얘기를 하는 장면. "나도 고향이 그리워요.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던 그 친구가 나의 고향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사람이 고향인데 고향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상상하고 있어요. 별로 그립지도 않고, 가볼생각도 없는 고향도 있을테지만, 사람이 고향이라면...반드시 그리워질것 같아서요.
어느 책이든 세 번 읽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분량이 짧아도 말이죠. 이 책의 어떤 점이 바나나님으로 하여금 재독을 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짚어주신 대목 중 '사람이 고향'이라는 바나나님의 인식에 깊이 공감하고, 큰 인상을 받았네요. 흔히 '고향'은 향수의 대상이죠. 그리고 대체로 향수는 고향을 떠나왔거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느끼고요. 말씀하신 대로 그립지도 않고 가볼 생각도 없는 고향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그립지 않았던 고향이 더는 갈 수 없는 상태, 완벽한 상실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마 누구라도 향수를 느끼지 않을까요. 이 '향수'와 동일한 매커니즘을 가진 감정이 '동경'입니다. 동경은 동경의 대상을 결핍할 때 발생하지요. 어떤 사람에 대한 동경은 그가 가진 무언가를 내가 결핍할 때 느낀다고 해요. 에리카가 자신의 첫사랑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러한 동경이고, 찬게즈가 에리카에게 느끼는 감정도 일종의 동경인 듯해요. 물론 에리카는 대상의 상실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면, 찬게즈의 경우 에리카가 상징하는 미국적인 것들을 자신이 결핍하고 있기 때문에 에리카를 동경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찬게즈가 미국인에게 아무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묻지도 않은 본인의 이야기를 줄줄 하는 게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습니다.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미국인도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다면 계속 듣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 듣고 있고요. 물론 작가분의 의도가 다분하지만요. ^^ 저도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스포가 될 수 있지만 '에리카'를 두고 온 연인으로 계속 생각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p13 : "우리 집에서 대학에 간 건 내가 처음이었어요. 나는 빚을 지지 않으려고 밤에 트렌턴 시에서 일했어요.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캠퍼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이죠. 그래서 찬게즈, 나는 당신이 어떤 곳에서 왔는지 알죠. 당신을 굶주렸어요. 내 생각엔, 좋은 거죠." 15p : 다행히도 내가 수치라고 생각한 것을 그는 기회로 생각했어요. -> 이 부분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고, 저도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20대까지 여유롭게 엄빠카드 쓰면서 대학원 다닐 때 '나이도 있는데 학비 정도는 내가 벌까?'하며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상황에서 일하던 자세와 30대 초반에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일하던 제 자세는 완전히 달랐거든요....벌써 15년 전 라떼는 얘기네요. 하하(제가 찬게즈 같네요) 23p : 그들은 자기들보다 두 배나 나이 많은 그리스인들한테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그러고는 자기들 식으로 일 처리를 하려고 했죠. 돈이 떨어져 가는 상황인 데다 연장자에 대해 전통적인 존경심을 품고 있던 나는 인간 역사의 어떤 반전이 그들을 지배 계급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위치에 두었는지 궁금하더군요. -> 자본주의가 문제일까요...그래도 공산주의는 제 취향이 아니라....자본주의도 별로고... 역시 가정교육?
말씀하신 대로 에리카에 대한 찬게즈의 '지금' 마음이 흥미롭네요. 어떤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에리카에 대한 찬게즈의 감정은 이 소설의 두드러진 의도에 따라 읽어보면 에리카가 상징하는 것에 대한 찬게즈의 욕망으로 풀이될 테지만, 지금보니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여지도 많은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 독서를 마치고 후반부에 다시 이야기해봐도 좋겠어요. 그리고 뒤에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서 언급해주신 대로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속성에 관한 알레고리가 분명하지만, '예절' 혹은 '규범'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어볼 수 있을 듯해요. 한때 영화 <킹스맨> 때문에 "manners maketh man"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잖아요. manner는 사회적 관계에 이익이 되는 여러 우연적 행동 양태들이 하나의 양식(manner)이 되어 굳어진 것일 텐데요. 처음에는 그렇게 체계화된 행동 양식들이 곧장 사회에 이익(공공선)이 된다는 관념과 이어졌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최초의 연결관계가 느슨해지는 시기에는 특정 양식이 곧 선이라는 식으로 수단과 목적의 전도가 일어나곤 하죠. 그때에는 무엇이 선인가, 라는 본질적 물음은 없고, 오로지 전통적인 행동 양식이 선이라는 식의 본말 전도가 생겨버리고요. 문제는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라는 체계보다는 그러한 체계들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정지된 상태, 즉 사유의 상실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건 이미 만들어진 게임 속에 편입되길 욕망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더 쉽게 발생하는 것 같고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게임의 룰을 경쟁자보다 빨리 익히고, 위로 올라가야만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인데, 룰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나 조금이라도 '주저'했다가는 도태되고 말테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욕망하면서도, 거기에 어떤 의문을 가지고 있는 찬게즈라는 인물의 복잡함이 한층 흥미롭네요. 흥미로운 부분들을 지적해주셔서 저도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은 3, 4장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3장에서는 언더우드샘슨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능력주의”(35쪽), “체계적인 실용주의”, “효율성”(36쪽)에 바탕을 둔 신입교육과 업무평가를 받는 이야기가 나오고, 4장에서는 호화로운 뉴욕 상류층의 모습, 그리고 에리카의 집에 초대받아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와요. 여러 중요한 장면들이 많은데요. 제목이 주는 수수께끼에 대한 첫 번째 힌트가 나오기도 하네요.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다들 그 부분을 눈여겨보셨을 테지만) 찬게즈가 에리카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에리카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에요. 대체로 화기애애했던 저녁 식사 분위기는 에리카의 아버지가 파키스탄의 상황에 대해 질문하면서 어색해지고 말죠. “나는 파키스탄인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엘리트 계층이 그곳을 제대로 능욕한 건 사실 아닌가요? 그리고 근본주의도 그렇고요. 당신네들은 근본주의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잖아요.”(52쪽) 이 대목에서 독자는 제목의 ‘근본주의’가 가리키는 첫 번째 의미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니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란 화자인 찬게즈를 가리킨다고 여기게 되고요. 물론 이 소설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반어적 분위기는 제목의 이러한 의미가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전복될 거라고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이 현실의 알레고리로 읽히는 만큼, 이제 작가가 내는 수수께끼는 ‘주저하다’의 의미가 어떻게 이해되는지로 넘어가는 듯도 하네요. 찬게즈와의 대화에서 에리카의 아버지가 ‘근본주의’를 문제삼은 것은 찬게즈의 전통복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날 찬게즈는 에리카의 집에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것이 TPO에 맞는 복장 예절인지 고민합니다. 뉴욕 상류층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것이니 양복을 입을까 하다가, 너무 예의를 차린 것 같아 블레이저를 입을까 생각하기도 하죠. 그러다가 파키스탄의 전통 복장인 ‘쿠르타’를 입고 가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뉴욕은 그런 복장을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코스모폴리턴적인”(47쪽) 도시였기 때문이죠. 문화적 상대주의의 분위기가 흐르는 세계적인 도시에서 조국의 전통복을 입는 것이 오히려 가장 격식있는 태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간단한 블레이저나, 캐주얼한 복장이었다면 파키스탄의 종교적 근본주의가 화제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찬게즈가 에리카처럼 미국적 히어로의 상징이라 할 ‘마이티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훗날 찬게즈는 뉴욕에 흐르는 코스모폴리턴적 분위기가 이슬람 국가를 배경으로 한 무수한 “영화들 때문”(47쪽)이라고 생각하죠.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상대주의나, 관용적인 태도가 아니라 단지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요. 그럼에도 찬게즈는 그날 에리카를 따라 뉴욕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참석하며 “인사이더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53쪽)고 깨닫기도 하죠. 사실 제가 찬게즈와 에리카의 아버지가 나눈 대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기 때문이에요. 이따금 TV에서 외국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주 시청자가 한국인인 우리나라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을 모아 놓고, 한국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상찬을 늘어놓는 장면들, 혹은 분쟁지역 혹은 침략 전쟁이나 대량 학살처럼 명확한 피해-가해의 구도가 있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각국의 평범한 외국인들을 불러놓고 반성을 강요하는 듯한 장면들이 떠올랐거든요. 아마 이런 장면이 떠오른 것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근본주의’가 단지 이슬람 근본주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태도, 그런 잣대로 타자를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에리카의 아버지도 어떤 점에서는 무례하고, 근본주의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와 비슷한 경험이나, 다른 사례들에 대해 좀더 이야기 나눠봐도 좋고, 다른 인상 깊었던 장면들도 공유하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셔요!
내가 근본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임정균님이 쓰신 글을 보고, 이건 이래야지! 라고 내 스스로 생각한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찬게즈가 전통복장을 입고 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찬게즈가 "코즈모폴리탄"이 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뉴욕에서의 "코즈모폴리탄"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여기에서는 찬게즈가 파키스탄 사람이라 이슬람 근본주의에만 집중하게 되는 점이 있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에서는 기독교(프로테스탄트로 추정/카톨릭 아님) 근본주의자들이 미국 내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독립하는 설정이잖아요. 항상 근본주의자들은 성경과 코란을 기본으로 하나님께서....알라신께서....라고 하며 '본인들의 해석'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절대진리인양...그래서 항상 '인간적인' 다양한 관점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요.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버릇부터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있지만, 어떠한 근거도 없이 '그들'은 나쁘고 '우리'는 선하다라고 하는 것이 근본주의적인 세뇌교육을 받으면서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siouxsie님이 쓰신 글을 읽다보니, "상황윤리" 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상황윤리 - 정해진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형편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것을 상황윤리라고 하는데, 상황윤리에서는 윤리적 규범의 상대적 타당성만을 인정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범법행위도 정당화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근본주의도 상황윤리도 어떤것만을 맞다 틀리다 말할 수 없겠지만, 인간은 아주 복잡한 존재이고 흑백으로만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운게 세상과 세상일이라는 것을 저도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책증정] 연소민 장편소설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함께 읽기[📕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동물"을 읽습니다 🐋🐕🦍
[현암사/책증정]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를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14.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읽고 실천해요[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하루키'라는 장르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오늘의 문장 - 은화
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7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1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3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0월 31일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