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Wow! 이래서 도스토옙스키를 대문호라고 하고, 고전이라고 하는군요.
동시대인도 아닌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독자의 반응까지 간파해 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4부 읽고 '소냐는 라스꼴리니꼬프와 같지 않다' 라는 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에게
"우리는 전혀 다른 인간이니까......"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네요. 대박...
그리고 라스꼴리니꼬프가 자신의 범죄동기에 대해서도 스스로 가짜동기와 진짜동기가 뭔지 점점 파들어가면서 자기 진심을 파헤치려고 하는 것도 마치 제가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냥 돈이 필요했던 거겠죠.'라고 하는 걸 읽어본 것같아서 놀라워요. 물론 실제로 라스꼴리니꼬프의 동기는 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것이었지만요.
그리고 까쩨리나의 속물적인 모습과 열정적으로 소냐를 옹호해주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인간의 추한 모습과 아름다운 모습이 뒤얽혀있는 입체적인 묘사가 놀라웠습니다.
[제5부] 1.
소냐가 착해서였다는 고쿠라님의 답변과 직업상 만만해서라는 후시딘님의 답변 모두 동의합니다.
책에서는 충동적으로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이 소냐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무의식적인 행동이 인간의 가장 계산적인 욕망을 반영하기도 하고,
'라스꼴리니꼬프가 만약 계산적으로 행동했다면?' 이라고 생각해봤어요. 그랬더니 너무 슬픈 결론에 도달했는데,
1)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 집에 처음 찾아갔을 때, 소냐에게 소냐를 때린 까쩨리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소냐는 까쩨리나가 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까쩨리나가 좋은 사람이라고 오히려 까쩨리나를 옹호해주는 모습을 보여줘요. 이 것을 보고 '내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듣더라도 나를 경멸하지는 않을 사람' 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리 간을 봤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했어요.
2) 소냐가 도둑으로 몰릴 때 레베쟈뜨니꼬프(3번 퀴즈의 답입니다!)의 증언에 이어서 뾰뜨르가 얼마나 본인의 가족에게도 잘못했는지 이야기함으로써 소냐의 누명을 벗기는데 약간의 공을 세웁니다. 이로써 '내가 나쁜사람이 아니라는 면모도 충분히 보여줬으니까 까쩨리나에게 했듯이 나를 완전히 나쁜사람 취급하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3) 후시딘님의 소냐의 직업상 이유 때문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직업상 이유 때문에 소냐의 말을 사람들이 잘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무의식중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나중에 소냐가 신고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더 믿어줄테니까요. (이 생각하고 제 생각에 제가 소름끼침 ㅠㅠ)
물론 1), 2), 3)은 모두 소설에서는 나와있지 않은 저의 추측입니다. 저의 인간관을 반영한거 같네요 ㅠㅠ
[제5부] 2.
우선 우리의 수사관 뽀르피리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저라면
1) '모든것에 감사' 님을 비롯한 다른 몇 분들도 지적하셨듯이, 나폴레옹이 역사책에 씌여있고 그의 업적을 많은 사람들이 칭송한다고 해서 그가 다른 인간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거나 훌륭한 인간은 아니고,
2) 단지 출세를 위해서 어떤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도 나폴레옹 같은 사람을 영웅시하는 것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고
3) '그 밖의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라고 대답해주고
4) mayplay님도 비슷한 언급을 하셨지만, 저의 인간관에 따라 좀 더 이기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나폴레옹은 그렇게 했다가 만에 하나 밝혀질 경우 자신의 평판이 추락하고 정치적인 입지가 사라질 것을 계산해서 노파를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대답해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5)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과외 일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고, 네가 10년 넘게 공부나 일을 하더라도 나폴레옹처럼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칭송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서 네 능력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네 자신한테 성과가 있는 일이라면 네 자신이라도 그걸 인정해줘야 해.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말이야. 그래... 느꼈겠지만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말이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나름 힘과 즐거움, 원동력이 됐어. 너도 나처럼 우울해보이니까 한 번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줄 것 같습니다!
[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
D-29
호기심연옥
후시딘
@호기심연옥 님 답글은 깊이에 재미를 겸비해서 여러번 정독했어요. '인터넷에서 들 은말..'에서 저는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ㅋㅋㅋ 오프에서 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다음 책 <악령>에서 뵙겠습니다.
빈다
점점 바빠지니 오늘 완독해야 할 것을 아직 못한게 아쉽지만, 더 늦기 전에 5부 질문에 답을 해야겠습니다.
1. 사실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하는데, 라스꼴리니코프가 이야기했듯 소냐의 매춘을 주변 환경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죽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냐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발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를 짊어진 소냐를 신적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또 한편으로는 매춘부라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을 가진 소냐였기 때문에 죄를 회개했던 것 같습니다.
2. 자네는 진정 나폴 레옹을 그렇게 찬양하는가? 나폴레옹은 지금도, 그 자네가 말한 성공의 길, 그 멋지고 기념비적인 것을 얻어냈을지라도 그를 그저 한낱 전쟁광에 평가하는 사람이 많네. 그래, 어쩌면 본질적으로 자네와 나폴레옹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 헌데 그건 자네가 노파를 죽이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네. 나폴레옹이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힌 탓에 스스로의 명성을 깎아내렸고, 자네도 결국 피를 묻힘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비범인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더 줄어들기만 했을 뿐이네.
3. 레베쟈뜨니코프입니다. 정말 고구마같은 전개에 고통받는 소냐를 보며 답답하다고 느낄 때 레베쟈뜨니코프가 속시원하게 진상을 파헤쳐 주었습니다.
스마일씨
5-1. 소냐에게 고백한 건, 자신과 가장 친밀도가 낮 은 거의 남이었다는 것, 자신보다 하등 나을 게 없는 신분, 그리고 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해 온 사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때 자신을 조금은 다잡아 줄 수 있는 인격이라고 생각한게 아닐까요.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자신에게 소냐가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가끔 속마음을 일면식도 없는 제3자에게 터놓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5-2 아니 하지 않았을거야! 나폴레옹과 비교하다니 뻔뻔하군. 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냥, 네 행동이 대단한 이유에서 나온 것으로 포장하지 말라구. 넌 사람을 죽었어! 어떤 이유든 정당화될 수 없어.
3. 레베쟈트니코프
김새섬
4부에서 인상적인 문구들 계속 공유합니다.
44쪽(문학동네)
다름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이 미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가난한 처자와 결혼하는 것이 유복하게 자란 처자와 하는 것보다 도덕적인 면에서 더 유익하게 때문에 결혼관계에도 더 이롭다고 했던 그 말 말입니다.
더 도덕적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네요. 낭만적 사랑의 완성보다는 '부의 재분배'야 말로 진정한 결혼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두냐의 약혼자 루진의 주장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루진은 그보다는 빈궁하고 의지할 데 없는 두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나쁜 마음을 속으로 품고 있습니다만...
결혼을 통한 부의 재분배에 관해 저 역시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계층간 사다리가 끊어졌다고들 하지요.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이러한 세상 속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결혼은 정말 어쩜 도덕적으로 우월한 결정 아닌걸까? 하지만 이 글을 쓰다 생각해 보니 결과로는 '부의 재분배' 모습을 띈 결혼이라 하더라도 그 결정의 원천에는 '낭만적 사랑'이 있을 수 밖엔 없는 것 같네요.
작은기적
상권에서 하권으로 넘어갈 때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이틀동안 바쁜 일정으로 몇 줄 읽지 못했더니 감흥이 가라앉았어요. 덕분에 독서의 연속성의 중요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와 뽀르피리의 대화 장면 중 평소와 다른 모습을 느껴 인상적이었던 장면입니다. 즉흥적인 성격이라고 느꼈는데 말실수하지 않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그는 마음을 다잡아 먹으며 알 수 없는 무서운 재앙에 대비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는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뽀르피리의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이곳으로 들어올 때부터 이런 자신의 적개심을 경계했다. 그는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쑤시며, 입 안에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입을 다물고 때가 될 때까지 한마디도 내뱉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진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말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침묵으로 적을 자극하여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실수를 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그는 이것을 기대했다. p499
호기심연옥
[제4부] 1.
뽀르피리에 대한 평가가 나뉘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바르미 님 처럼 똑똑하고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부 마지막에 '목격자'행세를 했던 사람이 어떻게 뽀르피리가 정보를 얻게되었는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들으니, 정황증거만 가지고 너무 피의자를 몰아세운 것 같아서 그 점만 조금 아쉬웠어요.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수사 기술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뽀르피리가 신체적인 고문을 하거나 피의자를 강제로 잡아두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뽀르피리보다 라스꼴리니꼬프를 응원하게 되었다는 의견에는 솔직히 동의를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밝혀진 행동으로만 봤을 때는 살인이 훨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악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동기마저도 전쟁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와 같은 정당화 할 수 있는 동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라스꼴리니꼬프가 괴로워하고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것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싸이코패스처럼 타고나기를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태어났거나, 너무 타인에게 고통을 끼치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 무감각해진 정도의 악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마일씨 와 @빈다 님이 가능성을 제시하신 것 처럼, 저는 니꼴라이가 자신 대신에 수사,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죄책감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 같아요.
도스토옙스키가 기독교 옹호적이라고 알고 있어서, 아마 예수님의 사랑이 죄인을 변화시키는 과정 같은 것을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제4부] 2.
혼자서 읽을 때는 '왜 라스꼴리니꼬프가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성경구절을 읽어달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번 @후시딘 님 질문을 보고 중요한 암시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도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아요.
저도 라스꼴리니꼬프가 죽음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라자로의 부활'부분을 읽어달라고 요청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질문과는 상관 없는 의견이지만,
요즘말로 하면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를 '고백으로 혼내주기' 하는거 아닌가요? ㅠㅠ
4부의 이 부분 너무 불편했어요.
늦은 밤에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찾아가서 일장 연설...
소냐가 착해서 망정이지, 저였으면 '뭐야 지금... 지가 돈 줬다고 무례하게 행동할 권리라도 샀다고 생각하는건가?, 까쩨리나 이바노브나가 이 인간한테 의존을 하고 있으니 쫓아낼 수도 없고.' 라고 생각하면서 마치 부장님의 2차에 끌려가는 신입사원의 마음이었을 것 같네요.
그러더니 갑자기 발에 입맞춤. 요즘 기준으로 명백한 성추행입니다.
그리고 소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태도도 너무 자아 도취된 것 같아요. '내가 성매매업 종사자인 널 자랑스럽게 소개했잖아, 너랑 나는 잘 어울려. 이렇게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은 나의 사랑이 너무 존경스럽지 않니?' 라는 듯한 태도.
그런데 '소냐와 나는 같다'라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인식 자체가 너무 잘못된게,
소냐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성매매가 범죄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고,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국가도 있을 뿐 아니라, 설령 범죄라고 하더라도 가족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한 거잖아요.
그런데 라스꼴리니꼬프의 살해는 지금 기준으로도 명백한 범죄에요. 무슨 숭고한 자기희생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에게 늘어놓는 말을 보면 본인도 무슨 인류의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 인류의 짐을 본인이 진 것 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코웃음이 납니다. 아니 그러려면 무슨 동네에 있는 아무 육체적인 힘도 없는 노파를 죽일게 아니라 신분제의 상징, 부의 상징정도 되는 왕족이나 귀족 정도 살해했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그래도 그 행위가 정당화 되기가 어려운데.
라스꼴리니꼬프 정말 읽으면 읽을 수록 저한테는 비호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때 읽겠다고 해놓고 벌써 5부 시작했는데 이제 4부에 관한 댓글을 올렸네요 ㅠㅠㅠ 분발하겠습니다!
후시딘
@호기심연옥 연옥님!!!! 댓글을 안달 수가 없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소설보다 재밌는 댓 글이에요!
소냐와 라스꼴리니꼬프의 관계에 대해 완전 공감했고요! 소냐의 집에 찾아간 건 그녀가 매춘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가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저도 그녀와 자신을 대등한 선상에 놓는거, 어이없었거든요. 아마 1800년대 '남자작가지식인'의 자아가 반영된 듯 싶어요.
솔직하고 재밌는 의견 많이 올려주세요.
너무 재밌어요!!
호기심연옥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개그 욕심이 있기도 하고 지난 번 댓글에서 너무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저돌적으로 표현했나 싶어서 이번에는 부드럽게 제 생각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아무 반응도 없어가지고 마음속으로 뿌애애애애앵ㅠㅠ 하고 있었거든요 .. 후시딘님이 댓글을 달아주신 덕분에 저의 개그코드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소냐에 대한 라스꼴리니꼬프의 태도도 댓글이 없을 때는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건가...?' 생각했는데,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로서는 외롭지 않고 정말 다행이예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후시딘
하권 제6부와 에필로그
<죄와 벌>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다들 즐거운 독서 되셨는지요.
[제6부] 1.
바로 제가 그때 고리대금업자 노파와 그의 여동생 리자베따를 도끼로 살해하고 돈을 훔친 사람입니다. (p783)
자수를 택하는 라스꼴리니꼬프, 그의 뒤를 소냐가 따릅니다. 경찰서에 들어 간 후에도 다시 나왔다가 기다리는 소냐를 본 후에야 들어가서 자백을 하는데요.
결말에 대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6부] 2.
형이 집행되고 주인공은 시베리아로 수감되는데요. 에필로그 형식으로 라스꼴리니꼬프와 소냐의 생활을 간략하게 그려내죠. 주인공은 벌을 받고 갱생하게 될까요? 8년형이, 과연 합당한 ‘벌’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6부] 3.
문제적 인물 스비드리가일로프,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인물이지만 조연인 만큼 소설 안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었을 듯싶습니다. 이 인물에 대한 역할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제6부] 4.
이 소설에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소냐’를 비롯하여 주인공의 가족인 ‘두냐’와 ‘뿔해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마르멜라도프의 아내인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1장에서 사라지는 ‘알료나’, ‘리자베따’ 자매, 그리고 더 궁금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아내 ‘마르파 빼뜨로브나’ 등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사람도, 살인자를 구원한 것도 모두 여성인데요. 여성 인물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든가, 마음에 드는 인물, 그 반대의 경우도 좋고, 눈에 띄는 사실 등,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소냐가 많이 답답했고, 왠지 감정이 입된 건 하녀인 ‘나스따시야’ 였습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지저분하고 작은 라스꼴리니꼬프의 노란방을 드나드는 인물들이 얼마나 흥미로왔을까 싶어서요^^
[제6부] 5.
기억에 남는 문장, 혹은 좀 더 긴 문단을 남겨주세요. 간단한 이유를 함께 써 주시면 더욱 좋고요. 이유는 책 내용과 관련이 없어도 좋습니다^^
저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등장할 때마다 나온 문장과 묘사가 좋아서 필사해 두었답니다.
[제6부] 6.
소설에 대한 여러분의 한줄 평이 듣고 싶습니다.
진지하거나 유쾌하거나, 어떤 문장이든 환영합니다.
[제6부] 7
그 외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남겨주세요.^^
참고로 저는 이번 책으로 러시아 소설에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을 조금은 감당할 수 있게 돼서- 앞으로 러시아 문학들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된 독서였답니다.
메이플레이
[제6부] 1.
마지막까지 라스꼴리니꼬프가 자신의 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현실이 아닌 이론 속에서 살아가는 머리만 큰 지식인 같았어요. 말도 안되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한 이유라 말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죠. 노파를 죽여 노파의 돈이 많은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상의 실천을 하기도 전에 연약한 정신에 겁먹고, 또한 스스로 자백하는 단호함도 보여주지 못했죠. 정신적으로 연약하기에 내면이 강한 소냐에게 스스로 약함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비범한 자임을 증명해보고 욕망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6부] 2.
두 명의 살인을 한 인물인데 8년 형이라는 것은 너무 약해요. 주변인들의 라스꼴리꼬프에 대한 증언이 벌을 감형되는 것을 보니 라스꼴니꼬프가 대학생, 지식인이라는 계급의 작용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재판하는 과정에서도 노파와 여동생의 죽음이 라스꼴니꼬프생각처럼 불필요한 존재의 죽음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싶어요.
[제6부] 3.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등장은 무척 인상적이에요. 외모나 언변으로 주변의 여자들을 현혹시켰던 같아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분방하면서 쾌락을 쫓았던 거겠죠. 하지만 왜 두냐에게만 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을까요? 그래서 더 듀냐에게 집착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듀냐의 거절 이후 자살을 선택하게 되면서 쾌락적인 사람의 최후를 보여준 것 같아요.
[제6부] 4.
마르렐라도프의 아내 '까젤리나 이바노브나'가 나오는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까워요. 과거 자신의 출신만이 자신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유일한 것. 그것으로 가난한 삶을 스스로 위로 받는 것 같았죠. 하지만 이 유일한 위로가 돌아보면 현실을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을 거예요. 이 자존심으로 그의 남편 마르렐라도프가 아내를 어렵게 느끼고 술주정꾼으로 회피하는 삶을 살아게게 만든 것 같아요. 작가는 '까젤리나 이바노브나'를 통해 과거의 잘난 계급이 가난 앞에서는 허영일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같아요.
[제6부] 5.
여기에는 가난한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이 개입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자존심 때문에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직<남에게 뒤지지 않기>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든 남들의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겠다는>일념 하에,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의무적으로 행하는 몇몇 사회적인 의식에 마지막 힘을 모아 여태껏 모아 두었던 마지막 한 닢까지도 다 탕진해 버리는 것이다. 556쪽
마르렐라도프의 추도식을 준비하는 까젤리나 이바노브나의 마음을 보여줘요.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도 똑같은 것 같아요. <남에게 뒤지지 않기>위해,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겠다는>일념 하에, 좋은 대학에 목메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등등 물질에 목메는 것이 아닐까요. 겉으로 화려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내면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특유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네요.
[제6부] 6.
가난이 죄를 짓게 하여 벌을 받게 하지만 가난한 마음에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제6부]7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려 이름표를 옆에 두고 읽어야 했네요.
상상 속 인물이건만 도스또예프스끼 소설 속 인물들이 내가 살아가는 지금 현실에서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시대를 변해도 오늘의 일처럼 읽히는 것을 보니 이래서 고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후시딘
@mayplay 발제해 주신 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는데요! 러시아식 이름, 너무 어렵죠. 이번 소설을 통해 적응이 많이 되었어요. 아마 다음 소설에서는 좀 더 익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북별85
6-1
세상의 나폴레옹이 되고 싶은 지식인 라스꼴리니꼬프, 하지만 그는 의도와 상관없이 그는 전당포 노파의 살해범이 되고 맙니다. 그는 계속 노파를 이로 지칭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 하는데요. 하지만 또 착하고 불쌍한 리바베따를 우발적으로 도끼로 살해함으로서 그가 정당한 행동으로 말하고 싶던 행동들은 그냥 살인으로 스스로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한 그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매춘부 소냐에 의해서입니다.
뽀르피리 예비판사의 추리력과 설득에도 약간 흔들렸지만 소냐에 의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회적 지위가 아닌 우리의 연민이 사랑이 누군가를 또는 그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북별85
6-2 라스꼴리니꼬프의 8년형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한 형기에는 뽀르피리 예비판사, 소냐의 보살핌, 라주미힌의 여러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뒷부분을 읽으며 겹쳐 생각나던 것은 카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살해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불성실한 태도, 이웃들과 친분없는 고립된 삶등으로 인해 평판이 나쁜 편인 것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나고 이로 인해 그는 가볍게 받을 수 있는 형량을 '사형'이 라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요. 음 이부분에서 전 세상의 평판, 주위 사람들의 신망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신기했습니다.
소냐는 자신의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하던 부모도 그의 동생들에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도우려 애를 쓰는 데요. 그러한 그녀가 다시 구원할 사람은 라스꼴리니꼬프인가 봅니다.
거북별85
6-3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이 소설에서 뾰뜨르 빼뜨로비치 루쥔과 함께 최악의 인물인 듯 합니다.
그가 저질렀던 범죄들을 그는 자기 합리화 시키는 능력이 아주 출중했고 이러한 그를 보면 전당포 노파 살인을 합리화 시키려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우스운 행동과도 비견되네요.
그러한 그가 마지막에는 초라한 방에서 죽어갑니다. 그의 악몽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요? 그가 라스꼴리니꼬프를 찾아와서 두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피력하는데요. 정말 사랑일까요? 아닐까요?
라스꼴리니꼬프가 자신이 영웅인 듯 말하지만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하기 힘듭니다. 그러한 그가 가장 최악의 사람으로 보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살했다는 것은 가장 우습게 보았던 그마저 자신보다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 마지막 자존심마저 흠집을 내게 한 인물이라 여겨집니다.
거북별85
6-4
우선 전 답답하긴 해도 가장 눈에 띈 인물은 '소냐'였습니다. 그녀가 무책임한 부모에 밀려 거리에 나가 노란 딱지를 받는 모습에서는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엄마 까쩨리나 이바노브나를 두둔하는 모습에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단지 사회적 지위만 매춘부일뿐 성녀의 내면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평범하게 와닿은 인물은 두냐였습니다. 어느정도 지식인이면서 아름답고 하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당시 신여성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역할 때문인지 라스꼴리니꼬프의 엄마,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도 뒤로 갈수록 공감이 가더라구
요. 대학생인 아들이 소냐와 만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아들이 큰죄를 지은 것을 눈치챘음에도 계속 아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고 결국은 현실을 이겨내기 힘들어 정신을 놓아가는 모습이 어머니이기에 어리석어보이는 모습이 안타깝더라구요.
까째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 계속 잘살았던 옛날이야기만 하고 가여운 소냐를 괴롭혀서 싫었지만 자기 능력이상의 고난 속에서 정신을 놓아버리는 약한 사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북별85
6-5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두냐에 관해 말하는 장면이 좀 나쁜남자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해서 적어봅니다.
699쪽 내가 계속 음울하고 역겨운 태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누이는 마침내 나를 가엾이 여기게 된 것입니다. 타락할대로 타락한 사람이 가여워진 거지요. 아가씨의 마음에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위험한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구원해 주고>싶어지니까요. 이성을 되찾게 해주고, 재기시키고, 더 고귀한 목적을 이루라고 이끌어 주고 새로운 삶과 활동을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겁니다. 이런 종류의 일을 꿈꾸게 된다는 건 뻔한 일이지요. 나는 곧 작은 새가 스스로 내 그물에 걸려들리라는 것을 깨닫고 내쪽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거북별85
6-5 이 작품속 최악의 인물인 뾰도르 빼뜨로비치의 한 줄
<가구 때문에 일부러 결혼을 할 수는 없잖아!>
김새섬
저도 여기에 밑줄 쫘악!
거북별85
6-6
<공기를 바꿔야 해요. 신선한 공기로!><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합니다. 공기가, 공기가요. 그 무엇보다도 말이지요!>
<죄와 벌>을 읽는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전 라스꼴리니꼬프의 집에 대한 묘사나 이 안에서 똑똑한 그가 음울하고 예민하게 바뀌는 과정에 주목하게 되네요.
전 라스꼴리니꼬프를 보며 요즘 젊은이들이 떠오르더라구요. 똑똑하고 나름 동정심도 있지만 생계나 주거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무참하게 깔아뭉개는 현실. 그 속에서 그들도 라스꼴리니꼬프처럼 바뀌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더아구요.
그리고 우리의 소냐는 뽀르삐리는 라주미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들이라도 있어야지 관속 같은 현실에서 구원의 빛이라도 꿈꿀 수 있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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