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처음 <죄와 벌>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접하며 큰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한단계 올라간거 같습니다. <악령>이 이보다도 벽돌책이라는 사실에 또다시 두려움이 업습해오지만 그냥 이순간 한고비 넘긴 것에 잠깐이나마 안도하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죄와 벌>이 쓰여질 때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러시아가 이당시에 저널리즘 많아지고 있었다고 했는데 요즘 유투브라 숏츠등 영상의 범람으로 거짓과 진실을 가르기 힘든 현실이 비슷하게 겹쳐지더라구요. 그리고 이당시 상황이 어땠길래 이렇게 라스꼴리니꼬프와 같은 대학생들이 나타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이당시 사람들을 범인과 비범인으로 나누며 전당포 주인같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이를 죽이는 것에 비유하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의 존재를 이렇게 가볍게 나누고 허무주의가 팽배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요즘의 현실과 무척 비슷한 거 같아 이 당시를 그려낸 도스토옙스키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내용이나 글의 중요부분들이 희미하게 겨우 읽어나갔지만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위대한 작가들의 지혜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
D-29
거북별85
스마일씨
6-1. 역시 가장 강한 여자 소냐. 그녀의 눈빛에 다시금 자백하러 들어가는 라스콜니코프. 소냐가 저는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6-2
지금도 이용해먹는 정신미약. 그 당시도 그랬군요. 저는 사형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1일으로 8년형은 어이없습니다. 리자베타까지 죽였는데 말이죠.
6-3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좀 더 활약해주었으면 했는데 조금 아쉬웠어요 . 자신 뜻대로 세상을 살아왔던 사기꾼이 두냐 앞에서는 무너지는군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겠죠.
6-4
소냐가 저에게는 이 책의 주인공이었어요. ㅜ
바르미
다 읽은지 좀 되어서 6장부터 다시 읽어 봤습니다. 후시딘님의 질문에 다 답을 하긴 저의 독서력이 너무 부족한 듯 해 그냥 짧게만 적어볼게요.
3.
저는 <죄와 벌>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이 ‘스비트리가일로프’ 였습니다. 그가 자살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두번 읽어도 모르겠습니다. 두냐에게 청혼했는데 거절당해서? 잘 모르겠네요.
4.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중 가장 입체감있게 다가온 인물은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였습니다. 귀족가문 출신이라는 자부심, 혹은 자존심은 있으나 현실은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알콜중독자인 남편으로 인해 날마다 무너지는 삶을 사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전부인의 딸인 소냐를 거리로 내몰았지만, 그 마음에 소냐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냐가 처음 성매매를 하고 30루블을 말없이 탁자앞에 내려 놓고 침대에서 누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냐의 발치에 무릎 꿇고 앉아 소냐의 발에 키스하는 까쩨리나 이바노브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두 여자 다 너무 불쌍해서요.
5. p798
심하게 상처를 입은 것은 그의 자존심이었고, 그는 상처 받은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난것이었다. 오, 만일 그가 스스로 자신의 유죄를 인정할 부만 있었더라면,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그렇게만 되었다면 그는 모든 것, 즉 수치와 모욕마저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준엄하게 판단해 보았지만, 그의 굳은 양심은 자신이 저지른 지난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이외에는 다른 어떤 특별히 무서운 범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 즉 라스꼴리니꼬프라는 사람이 맹복적인 운명의 판결에 의해서 이렇게 맹복적으로 희망도 없이, 소리도 없이, 어리석게 파멸당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평안을 얻기 원한다면, 그 판결의 <무의미함> 앞에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굴복해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끝없이 자기합리화와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외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에 질려버렸어요. ㅎㅎ
7.
<까마라조프 씨네 형제들>을 구입해 놓은지 10년은 되어 갑니다. 종이가 조금 누렇게 되었네요. 볼 때마다 읽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믐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이렇게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아요. <죄와 벌>은 스토리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읽기 힘들진 않았는데, 다음 작품인 <악령>은 어떨지…그래도 읽어야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쭉~~
빈다
1. 소냐는 라스꼴리니코프에 있어 신에 가까운, 초월적 인간과도 같은 존재로 인지되어 왔고, 결국 본성을 못 이기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소냐를 보고 '미소 지으며' 자백을 했던 부분은 굉장히 인상깊습니다. 저는 항상 자백하는 이 장면마다 좀 울고 합니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살인만큼의 중죄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때때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잘못들을 저지르곤 하는데, 그것을 자백하기란 쉽지 않죠. 저 역시 제 인생을 떳떳하지 못하게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라스꼴리니코프의 행적을 따라가고, 이 대목에서 항상 울곤 합니다.
2. 만약 한국에서 뉴스가 떴다면 형량이 짧다고 판단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품으로만 본다면 라스꼴리니코프의 자백까지의 과정이 더 유의미하다고 봐서 형량의 길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3.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라스꼴리니코프는 저는 꽤 유사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본래 성품이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자신의 천부적인 성질(욕정이라든가 비범함이라고 여긴 살인충동) 때문에 그것을 흐리는 사람 둘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 서로 그것을 알았는지 서로가 서로를 관찰을 하는 장면까지도 나오죠. 소냐는 라스꼴리니코프에게 하여금 자백을, 두냐는 스비드리가일로프로 하여금 자살을 하게 했는데, 각자 나름의 죄를 짓고 벌을 받는 명확한 인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4. 당시 척박한 러시아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가난한' 여성이 미래를 위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두냐는 좋은 성품과 지성을 지녔음에도 스비드리가일로프랑 엮여 고생하고 루쥔과 결혼할 뻔했고, 소냐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을 위해 몸을 팔아야 했으며, 까째리아 이바노브나는 가난해져 간 탓에 미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소냐와 두냐같이 흔들리지 않는 영혼이 있다면 그 끝은 자신을 포함한 다른 누군가까지도 구원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것이 여성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5. 자본주의가 격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마르멜도프의 대사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저 가난하다면 타고난 고결한 성품을 그래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빈 상태에 이르면, 어느 누구도 결단코 그럴 수 없지요. 아예 빗자루로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쓸어내 버리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모욕을 느끼라고 말입니다. 잘 하는 일입니다. 극빈 상태에 이르면 자기가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드니까요."
6. 당신, 돈도 정신력도 바닥나 살인을 저질렀나요? 걱정 마세요! 당신이 그럼에도 선행을 해왔다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위 여자들을 잘 살피세요.
7. 2년? 3년만에 다시 읽은 죄와 벌 대목에서 여전히 자백 장면에서 울음을 터뜨리는데 언제쯤 안 울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잘 완독했습니다.
호기심연옥
[제6부] 1, 4.
@수은등 님 처럼 저도 결말을 보면서 『파우스트』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1831년 출간되었고 『죄와벌』은 1866년에 연재를 시작한 점, 『죄와벌』에서도 괴테의 절친인 실러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보면 도스토옙스키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알고 깊은 공감에서 나오는 오마쥬 혹은 『파우스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러시아의 현실을 가미하여 더 보여주기 위해 『죄와벌』을 썼다는 생각도 들어요.
수은등님은 치기 어린 생각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왜 구원은 여성만 해야하는가?'라는 수은등님의 그 질문이야말로 현대적인 관점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은혜를 갚을 줄 안다.' 라는 말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서술적(descriptive)인 설명인 것과 같은 형식을 띄고 있지만 위 문장과 논리적으로 대우관계에 있는 문장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면 인간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라는 규범적인(prescriptive)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여성은 끊임없이 남성을 용서함으로써 남성을 구원하고 변화시킨다.' . '여성은 자신의 아들(뿔헤리야), 남자 형제(두냐), 남자 친구(소냐), 남편(까쩨리나)를 위해 희생한다.' 라고 요약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을 마치 윤리적인 규범을 어긴 사람처럼 비난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태양 노래 중에 '나만 바라봐' 생각나더라고요. 이 노래 알면 아재인가요..?
'내가 바람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베이베~'
『죄와벌』버전으로 부르면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죄지어도 너는 절대 용서해~ 베이베~'
수북강녕
@호기심연옥 오프모임에서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돌아와서 기록해 두었는데요 고등 학문을 배울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통찰력과 소신과 교양과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춘 미모의 두냐, 를 보며 도대체 현실적으로 가능한 캐릭터인가, 누군가(그들)가 꿈꾸는 대상이 아니겠는가, 라는 내용을 적었다지요 연약하고 겁많은 소냐가 '구원' 분야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뚜렷한 방향성과 과감한 실천력을 갖춘 특급 구원투수인 점도 그렇고요
저는 한때 그래서, 전문 구원투수로 세이브를 올려봤자, (패가 많아도) 승수가 많은 선발 대비 연봉협상이 밀리느니, 무조건 선발로 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 맞을 때 맞더라도 4박 5일 쉬는 패턴 등 챙길 걸 챙기는 선발투수 메인 등판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팔 나갈 때까지 등판도 했었고(과연 제 팔과 스피드, 제구력이 선발용에 최적인지 세이브 투수에 최적인지 고민해 보기도 전에 무조건 다짜고짜), 심지어는 구원투수가 멋지게 막아준 이닝 직후 경솔한 도루를 시도하다 죽어버리더라도, 어그로 끌며 다음날 스포츠면 1면 장식해 네임드 되는 6번 타자가 낫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이런 생각과 행위에 너무 심취해서, 독후 사례조차 '야구'로 들고 있네요 하하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구원을 강요받은 바람에 포용과 사랑의 잠재력을 무한히 계발시킬 수 있었던 여성으로서의 기회를 날려 버릴 필요까지 있는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돌봄의 가치에 대해 나누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계속 나누었고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악령>과 <카라마조프...>에서 더 나눌 수 있길 기대해요 많은 얘기 들려 주세요 ^^
호기심연옥
[제6부] 2.
저도 8년 형은 다른 분들 말씀처럼 너무 적은 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죄와벌』인 것에 비해 라스꼴리니꼬프가 받는 형벌은 너무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아마도 도스토엡스키는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 후 느끼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불안과 혼란스러움, 공포,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것 같은 고립감 등을 진정한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본다면 싸이코패스 또는 싸이코패스 정도는 아니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벌'을 적게 받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이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 때 당시에는 '싸이코패스'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호기심연옥
[제6부] 3, 5.
"어떻게 당신 내면에는 그런 치욕과 저급함이 그와는 정반대인 성스러운 다른 감정들과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는거지?" (p.471)
『죄와벌』 읽는 내내 이 문장이 생각났어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에필로그 바로 뒤에 있는 역자 해설 제목에도 '인간 본성의 이중성' 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이중성도 『죄와벌』의 주제 중에 하나 인 것 같아요. 저 문장도 출판사의 책 소개란 혹은 도박사 댓글들 중에서 보고 더 제 머릿속에 '주제문장'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출처를 찾을 수가 없네요. ㅠㅠ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었어요. 마르파가 몸종에게 손대는 것을 허락했다고 하니까, 책에서 일일이 열거된 범죄 외에도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성범죄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리고 마르파는 독살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스비드리가일로프도 두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랑을 느꼈다고 도스토옙스키는 표현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제6부] 6.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리석은 면 타인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면, 복합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제6부] 7.
저는 한 10년 전에 『까라마조프』를 읽고 이번에 다시 10년만에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죄와벌』은 처음입니다.), 10년 전의 제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감동 받았던 부분과 지금 감동 받는 부분이 완전히 달라서 그 부분도 재미있었고, 10년 후에 읽었는데도 저에게 다른 면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 왜 고전으로 칭송받는지 알게 되어 보람있고 알찬 독서 였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면 추하고 악한 모습도 많은데, 그 면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면을 찾아내는 도스토옙스키의 미학과 문학적인 표현방식에도 감탄했어요.
수북강녕
[ 3월 12,13,14일 ] 하권 - 5부
예전에 읽었던 내용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새롭게 읽으면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5부' 발제에 대한 답변입니다
1. 다른 분들의 답변을 읽으며, 라스콜니코프가 그렇게 (잠재적으로라도) 계산적이었을까, 갸우뚱 합니다 매춘부라서, 만만해서 소냐를 찾아갔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어요 잘못을 잔뜩 저질러 놓고 '내 말 들어줄 사람 너뿐이야!'라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얄밉다거나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심판받기보다 이해받고 싶어서, 용서받고 구원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논리와 주장도 가지고 있지만 죄책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논리에 대해서는 라주미힌이나 뽀르피리와 설전을 벌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게서는 소냐와 같은 지지와 애정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작고 여린 여자, 매춘부라서 '나폴레옹 이론'을 토의할 대등한 상대로는 보지 않고 무조건 보듬어주길 바란 것도 아닌 듯합니다 다치고 아픈 영혼을 기댈 곳을 찾았을 것이고, 찾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2. 소냐와 똑같은 말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왜 해서는 안될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내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지요? 누구는 살아야 하고, 누구는 죽어야 한다고 심판할 권리를 누가 내게 주었나요?" p.599-600
"죽이는 권리요? 죽이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요?" "그런 고통을 짊어지고 가겠다니! 그걸 평생토록, 평생토록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무엇에 의지해서 살려고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떠나서 살겠다는 거지요!" p.616-617
3. 안드레이 세묘노비치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 레베쟈뜨니코프지요 선량하지만 다소 어리석은 공산주의자로 소개되지만, 5부에서 그 누구보다 정의롭고 소신있게 악을 처단한 인물이라 대단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뾰뜨르 빼뜨로비치 루쥔의 어이없는 소냐 음해 공작을 안드레이 세묘노비치 레베쟈뜨니코프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의 협공으로 이겨내는 장면이 <죄와 벌>에서 최고의 사이다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내용이 꽤 복잡한데, 그 정황과 의도를 알아채고 밝혀내고 설명하는 이 두 청년에게도 감탄하고, 그걸 또 알아듣는 추모식 참석자들에게도 놀랐습니다 ㅎㅎ
"유익한 목적을 위해 하는 행동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들의 발전과 우리의 선동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계발시키고 선동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어쩌면 더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좋은 건지도 몰라요. 저는 사상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겁니다. 그들에게 모욕이 될 게 뭐가 있다는 거죠? 처음에는 기분 나빠하겠지만, 나중에는 자기들도 내가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요. 우리 동지인 쩨레비예바는 가정을 뛰쳐나와서... 어떤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는, 편견 속에 사는 것이 싫어 자유 결혼을 한다고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 행동은 아버지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라고, 부모님들을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겨서 좀 더 부드럽게 쓸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건 다 쓸데없는 생각이에요. 전혀 부드럽게 쓸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유 결혼에서는 오히려 그런 짓이라고는 전혀 없을 겁니다! 간통, 이것은 모든 합법적인 결혼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합법적인 결혼의 수정이요, 반항이므로, 이런 점에서 간통은 결단코 치욕적인 것이 아닌 게 됩니다. 제기랄, 저도 합법적인 결혼에서 속임수를 당하면 불쾌하다는 것쯤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건 서로가 굴욕적인 비열한 사실의 비열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p.539
작은기적
5부 막바지를 읽는 중인데 속도를 맞추기로 결심한 '하'권에서도 답글 일정을 놓쳤어요.
지난 몇 주 프로젝트가 너무 바빠지만 틈틈히 <죄와 벌>을 읽어나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
4부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강한 부분이었어요.
[4부]
1. 니꼴라이의 등장은 라스롤리니꼬프의 숨을 연장해주죠. 그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이 어렵지만 대가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을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니꼴라이가 자백을 하는 장면을 위해 칠쟁이 니꼴라이이가 존재하는 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진술과 그 진술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상기시켜봅니다.
2. 성서 속의 '나사로의 부활'은 예수님의 7가지 기적 중 마지막 기적으로 병들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알들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하실 것을 상징하는 부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읽어달라고 요구할 때 소냐가 찾은 부분이 나사로의 이야기이 였죠.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던 말인가'라고 믿지 않는 자들의 의심과 비방을 전하는 소냐는 라스꼴리니코프가 믿게 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은 후 라스꼴리니코프가 회심할 거라는 예측을 해 보았습니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왜 소냐가 그에게 읽어 주기를 주저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욱 거칠고 신경질적으로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는 그녀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보이고 누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이언 감정들리 어쩌면 현재 그녀의 <비밀>을 형성해 주고 있으리라는 점을 그는 꺠달았다. <중략> 지금 성서를 읽기 시작하는 그녀가 몹시 괴로워하며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고통스러울 정도의 온갖 번민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에게> 반드시 <지금> 이 책을 읽어 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p478
그리고 <이 사람> 마찬가지로 눈이 멀어서 믿지 않는 <이 사람> 역시도 이제 듣게 될 것이고 그 역시 이제 믿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이제 곧! p479
김새섬
[제6부] 1.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띄엄띄엄 읽은건지 라스꼴리니코프가 경찰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고? 하다가 다시 찾아봤습니다. 헐...
6부보다도 전 에필로그가 여운이 강하네요. 에필로그에 나온 문장들도 아름답고 끝마무리도 좋네요.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 것 같습니다.
결국엔 '죄'란 무엇인가를 계속 묻게 되네요. 주인공은 살인을 해서 괴로운 게 아니고 살인이 왜 잘못인지를 납득할 수 없어서 그토록 괴로워했네요.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예: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살인은 범죄다.)이 과연 언제부터 당연했고 앞으로 얼마 동안 당연한 것으로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수북강녕
@고쿠라29 살인한 것을 가족이 알게 되면, 특히 어머니가 얼마나 심려가 깊으실까에 대해 걱정하느라 괴롭기도 했지요 비범인이라기보다는 부조리하고 연약한 어린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죄를 짓고도 그런 걱정 따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죠
"그럼, 어떻게,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무엇에 의지해서 살려고요? 당신은 벌써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떠나서 살겠다는 거지요!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될까요!"
수인으로서 사람들과 단절된 채 1년을 살았던 라스콜니코프지만, '갱생'의 터널을 지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소냐가 제대로 봤어요...
김새섬
라스꼴니코프가 얄미울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는 23살이라는 걸. 23살 때 제 모습이 생각나서 이 주인공이 더욱 보기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자신의 궁핍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악에 받쳐서' 위악을 떨곤 하는데, 그 나이답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살인까지 간 것은 용서하기 어려우나 그 과정이나 준비조차 덜 떨어진 걸 보면 그냥 어리석고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로 느껴질 때가 있어 가여워요.
수북강녕
[ 3월 15,16,17,18일 ] 하권 - 6부
1. 결말이 대단히 좋았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어요
2. 이 모임 방을 시작할 때 법에 의한 범죄의 심사 기준에 대한 견해를 썼었는데, 완독한 상태에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게 됩니다 8년형이 합당한가, 라는 질문에 답할 이성적인 근거를 말하지 못하겠어요
3. 제가 대형 서점에 방문해 다양한 출판사 버전을 비교해본 후 '열린책들' 버전을 택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하권 마지막에 역자 해설로 '인간 본성의 이중성과 도덕적 니힐리즘'이라는 멋들어진 제목 아래 소논문 형식으로 <죄와 벌> 해석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감상'은 참고할 수 없으되, '시대적 배경과 문학적 해석'은 전문가의 견해를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이 해석에 따르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살짝 다른 측면에서지만) 라스콜니코프가 '비범인'으로서 추구했던 <모든 것이 허용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세에서 벌어지는, 돈으로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 돈을 기반으로 하는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그렇습니다 하인을 학대해 자살에 이르게 하였고, 소녀를 능욕해 자살에 이르게 하였고, 돈많은 연상의 부인에게 일정 부분 외도도 허락받은 상태에서, 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다시 더욱 어린 소녀와 정혼합니다 어떤 도덕이나 종교, 법이나 형사 처벌도 그를 제어하지 못하며 그 스스로도 제멋대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요 그러나 결국 그의 최후는 (라스콜니코프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두냐의 순결성을 모함하고 제멋대로 해석하였고("당신의 누이동생이 갈망하고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누구를 위해서도, 무엇을 위해서도 좋으니 속히 고통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 대체 뭐라는 거야!!! 외치고 싶으면서도 한편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두냐를 함정으로 몰아넣고 완력으로 안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치밀한 계획과는 달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했던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최후는, 오만한 비범인 논리를 펼치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그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는 무능력을 한탄했던 라스콜니코프가, 실제로는 고통받는 주변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휴머니스트이자, 살인 사실을 안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걱정하는 연약한 청년일 뿐이므로 마찬가지로 창백하고 여윈, 순결한 영혼 소냐의 사랑을 얻은 것과 대비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살을 감행했고, 라스콜니코프는 감행하지 못했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야말로 비범인일 수 있으나, 그의 최후에는 라스콜니코프와 같은 '타인과 함께 한 갱생'이 결여되었습니다
4.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와 뿔해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마르파 빼뜨로브나가 모두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대개는 남편이나 아들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아쉽네요
소냐는, 사랑입니다 머리로는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요 시베리아 형무소의 모든 수인들이 소냐를 좋아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아요 인정합니다 자칫했으면 소냐도 위 3명의 ~브나들처럼 라스콜니코프 때문에 생을 마감할 뻔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습니다 이 작고 마른 열여덟 살짜리 선한 소녀를요
5. 중간중간 필사를 올린 많은 문장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완독 후 감동이 가시지 않았을 때 마지막 부분을 올려 봅니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들의 눈앞을 가렸다. 두 사람 모두 창백하고 여위어 있었다. 그러나 이 병들어 창백한 얼굴에서는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노을,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이었고,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는 부활했다. 그는 이것을 알았다. 그는 갱생한 자신의 온 존재로 그것을 완전히 느끼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완결되었다. "
쓰고 보니 로맨스 소설입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부조리' 정도가 아니라 '미성숙한 아이' 같다는 생각을 한 문장을 덧붙여 봅니다
"어머니, 제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저에 대해서 무슨 말씀을 들으셔도, 저를 지금처럼 사랑하실 거지요?" 그는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서 물었다. "제가 어머니를 언제나 사랑했다는 걸 확신시켜 드리려고 왔어요. 설사 어머니께서 불행하게 되셔도, 당신의 아들은 자기 자신보다도 어머니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요. 제가 잔인한 사람이라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전 어머니를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고 사랑할 거예요."
6. 죄와 벌, 아니고 죄와 벌과 구원
7. 어릴 적 읽었을 때는 뽀르피리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뽀르피리만을 대형 빌런으로 기억하고 있었어요 루쥔이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안중에도 없었는데요 그들이 역할을 톡톡히 하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와 벌>을 다시 읽자, 톨스토이의 <부활>도 재독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칩니다 이 작품에서 네플류도프와 카츄샤는 서로를 구원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냐와 로쟈의 구원과 견주어 읽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악령> 3권의 압박이... 첫 판에서 이미 판돈을 다 들킨 느낌입니다 일단 너무 많이 울었네요 ♥
김새섬
[제6부] 2. 두 사람을 죽였지만 정신착란 상태라는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쳐 8년형이 선고되었다고 나오네요. 빼앗은 목숨에 비하면 짧은 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얼른 형기를 마치고 "미래의 위대한 업적으로 거기 보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제6부] 3.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너무 기분 나쁜 인물입니다. 뱀 같은 느낌. 등장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요. 하지만 소설 속에서 제일 저와 비슷한 사람을 찾으라면 이 자입니다. 아래 같은 대사들은 엄청 공감이 되네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소. 뭐, 지주가 된다거나 아버지가 된다거나, 뭐, 군인이나 사진사나 기자라도...... 아 -아무것도, 어떤 직업도 없으니! 가끔 너무 무료하구려."
"이게 아니면 그냥 권총 자살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맞아요, 점잖은 사람이라면 권태로워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겠지요."
"각자 자기 식대로 사는 거고, 자신을 가장 잘 속일 줄 아는 사람이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법이오. 하하! 대체 왜 그렇게 도덕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거요? 용서하시오, 친구, 내가 죄 많은 사람이 돼놔서요. 하하하!"
후시딘
@고쿠라29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책의 어둠이 발을 적셔오는 기분때문에 좀 힘들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스비드리가일로프였어요. 책을 훑어보며 이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다시보고, 자살하는 장면에선 그 심연이 저를 덮쳐오는 기분이 꽤 오래 가더라고요.
김새섬
23세의 라스꼴니코프를 보면 저의 대학생 시절이 생각나고 50세의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보면 저의 현재가 생각납니다. 제 나이가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비슷하니 자연스러운 걸까요?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보고 생각나는 또 다른 사람은 영화 '버닝'의 벤(극중 스티븐 연) 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두 지독한 권태와 삶의 무의미에 시달리며 쾌락을 끝까지 추구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는 방식으로 자신을 또 세상을 시험해보려 하는 것 같아요.
수북강녕
@고쿠라29 『버닝』의 벤! 유아인 배우보다 강렬한 인물이었지요 하루키의 원작 엽편 『헛간을 태우다』에는 없었던 인물(맞죠?!)이었는데 이창동 감독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악행이 그의 빚을 갚고 계약관계를 유지했던 연상의 아내, 마르파 빼뜨로브나와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이었지요 벤의 최후도 그랬고요
사실 스비드리가일로프나 벤 씩이나 되는 인물은 우리 주 변에 흔치 않은 듯 싶지만, 『재수사』에서 소환한 '제시 한' 같은 인물 정도로 희석해 보면 여전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적 쾌락과 유흥, 마약을 즐기며 법망을 피하는 인물들이지요 『재수사』에 등장한, 비둘기를 좋아하고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즐기는 사나이 같은 경우는, 위 인물들보다는 덜한 무기력, 덜 자극적인 편의 정도를 추구하며 선을 넘지는 않지만, 인생의 가치나 의미를 자기주도적으로 부여하기 어려운 삶을 영위하되 공동체의 고통에 무감각한, 현실에서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안드레이 세묘노비치나 라주미힌이 봤으면 대노하여 각성시키고자 했을 인물들인데요 ^^
김새섬
[제6부] 4. 정말 다양한 여성 인물이 나오네요. 까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너무 딱했습니다. 그녀가 겪는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잖아요. 소설이 1866년에 나왔고 러시아 혁명이 그로부터 60년 정도 뒤인 1917년에 일어났는데 당시 러시아 시대상을 소설로만 미루어 짐작컨데도 사회의 어떤 긴장감과 위태로움이 부글부글 끓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새섬
[제6부] 5. 2권 329페이지
교육받은 젊은이는 하는 일 없이 실현 불가능한 꿈과 몽상으로 소진된 채 이론에 취한 불구가 되지요.
=> 소련의 탄생과 종료를 찾아보니 1922∼1991년 이네요. 70년 정도는 '꿈과 몽상' 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결국엔 체제 경쟁에서 지고 말았네요.
2권 396페이지
그는 센나야 광장으로 들어갔다. 사람들과 이리저리 부딪쳐 불쾌했지만, 몹시 불쾌했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는 곳으로만 걸어갔다. 혼자 남을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걸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어떻게 사람을 떠나서 살려고 하냐고 소냐가 이야기하기도 하고 당신은 우리 없이는 못 산다는 요지의 말을 뽀르삐리가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같은 내용을 나타내는 문구로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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