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함께 읽기

D-29
군함 마치 휘파람 소리가 바로 제목이 말하는 마술피리겠죠? 그런데 그 휘파람을 아버지가 불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딱히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소설 내 상징요소가 아닐까 여겨 봅니다.
<아, 가을> 가을 뿐일까요. 우리의 봄과 꿀벌과 제주도와 고장난 시계와 이사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한 가지도 누구의 그것과 같지, 아니 닮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오오~ 작은 감탄이 나옵니다. <축견담>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결말이 너무 뻔한 소설입니다만 조금 과장하면, 자동차 수리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크게 소리내어 웃을 뻔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자꾸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떠올랐습니다. 웃음 코드가 다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뜬금없이 '아이쿠야' 내뱉게 만듭니다. 고양이와 개라는 우리에게는 친근한 동물을 소재로 쓰여진 소설이고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그와는 반대로 화자가 개를 관찰하고 나름 연구(?)하는 구성이 비슷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 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가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달려라 메로스> 정의와 신의에 관한 이야기군요. 폭군을 죽이기 위해 모든 일을 접고 성으로 달려가고 누이의 결혼을 위해 친구를 볼모로 잡아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또는 기필코 돌아가 죽어야 한다고 불어난 강물을 앞에 두고 울부짖는 메로스의 행위를 '아직 세상 모르는 젊은이의 호기'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친구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디오니스 왕과 그를 지켜보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에 대한 본보기가 되어준 그는 영웅입니다. 사실 누군가를 신뢰하는 행위는 위험이 따릅니다. 그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갖지만 과연 그가 내 기대에 부응할 지는 확실치 않은 까닭입니다. 그의 언행을 통해 축적된 그에 대한 나의 평가가 정확하다는 확신에서 시작되는 행위가 신뢰입니다. 그 점에서 메로스와 세리눈티우스간의 신뢰는 그 단단함이 바위에 가깝습니다. 한 번은 믿음이 흔들렸다고 고백하지만 행여 메로스가 해가 진 후에 도착해 죽임을 당하더라도 메로스에 대한 세리눈티우스의 신뢰는 여전했을 것 같아 부럽습니다.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친구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싶군요.
@두부 그 당시의 소설들 대부분은 표현들이 제법 낭만적이지만 상징성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무뚝뚝한 아버지라도 죽어가는 자식에게 그 정도의 눈속임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마법이 아닌 마술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도 그렇게 이해되었습니다. 마법과 달리 마술은 사람의 눈과 귀를 속이는 행위이니까요. 동생의 죽음 후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믿었던 화자의 '나이가 들면서 신앙이 옅어진다'는 표현도 그 생각을 짙게 만들더군요.
설득력 있는 말씀이십니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적게 느껴져서 저는 그를 계속 밀어내려 한 것 같습니다.
<여치> 다자이 오사무는 예술인이라면 세상에 물들지 말고 물질주의에 빠지지 말고 그저 꼿꼿하게 밥을 굶더라도 예술의 길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생각은, 이 소설의 화자는 평강공주 컴플렉스다.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고 전율을 느낀 화자는 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가난한 화가라는 걸 깨닫고 가족의 반대에도 기를 쓰고 결혼에 성공한다. 이 년만에 어찌 어찌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고 살림은 풍족해진데다 상대가 누구든 몹시도 거만해진 그에게서 화자는 진절미를 느끼고 이혼을 결심한다. 세상을 모르는 이는 어쩌면 그가 아니라 화자가 아닐까. 사람이 변함없고 꾸준하고 성실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내가 <여치>의 화자를 평강공주 컴플렉스로 정의한 이유는 이러하다. 다른 사람과의 맞선을 거절하며, '다들 말하는 대로 그런 더할 나위 없는 분이라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훌륭한 신부를 얼마든지 찾을 테고, 어쩐지 보람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된 사람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이 그림은 내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한 후, '가난해지면 가난해질수록 저는 두근두근 설레고 묘하게 기쁘고, 전당포에도 고서점에도 머나먼 추억의 고향 같은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돈이 정말로 깡그리 없어졌을 때는 제 힘을 한껏 시험해 볼 수 있어서 아주 보람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전시회를 하고 세상의 이목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는 사이, '저는 바보였던 걸까요? 그래도 한 사람쯤은 이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있겠지, 하고 저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 사람 이마의 월계관은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틀림없이 바보 취급을 당할 테고, 아무도 시집을 가서 돌봐 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가서 평생 섬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 여유로 화자의 남편이 사회적 모임을 많이 참석하게 되었을 때, '좋은 그림만 그리다 보면, 생활은 저절로 어떻게든 꾸려지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채로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습니다. 저는 돈이고 뭐고 원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멀고도 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그머니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도 돈을 갖고 싶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무얼 사고 싶다, 무얼 먹고 싶다, 무얼 보고 싶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가재도구도 대개 폐품을 이용하면 아쉬운대로 쓸 만하고, 기모노도 다시 염색하고 다시 꿰매 입으니까 한 벌도 사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든지, 저는 꾸려 나갑니다. 수건걸이 하나도, 저는 새로 사는 건 싫습니다. 낭비인걸요.' 화자의 아버지는 회사를 운영하고 골동품 상인 다지마씨가 들러 그림을 팔곤 한다. 화자와 혼담이 오가는 사람은 제국 대학 법과를 졸업해 외교관을 지망하는 남자와 큰 집안의 맏아들로 화자 아버지 회사에 근무하는 기술자라고 씌여있다. 이런 대목들은 화자가 결혼할 때까지 경제적 곤란함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결혼 후에도 절약은 할지라도 부업을 하는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화자는 다만 덜 쓰고 안 쓸 뿐이다. 하지만, 만약 '다시 염색하고 꿰매 입'을 기모노 한 벌조차 없다면, 수건 걸이가 아예 없다면, 서랍장도 없고 선반도 없다면 그녀는 과연 가난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 내 아버지는 늘 사업에 실패했고 어머니는 그 빚을 갚느라 예민하고 바빴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그들 몫이었고 나는 그저 학교를 다니고 필요한 돈이 조금 부족하고 쓰고 싶은 돈은 자주 미뤄졌을 뿐이다. 나 또한 화자처럼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겪은 경제적 불편함 중 가장 컸던 시절이다. 화자의 부모는 화자의 어려움을 그대로 두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쌀독이 쌀이 떨어질 때면 채워줬을 것이고 기모노가 너무 낡으면 새로 보내줬을 것이라 나는 추측한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화자가 실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아닌, 경제적 괴로움은 겪어보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는 거다. 그런 그녀의 자신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언짢게 했다. 내가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예술가들의 가난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화자의 남편이 겪은 고통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사람 또한 화자가 아니라 골동품상 다자무 씨다. 그의 그림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팔아주고 또 그의 혼담 자리까지 찾아다닌 사람이 다자무 씨다. 살림이 풍족해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화자의 남편이 물질주의에 빠진 상황을 이해한다. 그의 결정이 옳았다는 건 아니지만 이해한다. 화자는 평강공주 컴플렉스일 뿐 평강공주는 아니었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모임에 불려가 사회적 명성을 얻게 될 즈음, 집에 돌아온 그가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신나할 때 화자가 무심해 하지 않고 좋은 말과 행동으로 그가 나아갈 방향을 일러 주었다면, 나는 그가 그녀가 혐오할 만큼의 물질주의에 빠져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를 믿어주고 아무 보잘 것 없는 나와 결혼을 해준 여자가 나의 성공에 기뻐하지 않는 모습을 본 남자가 시선을 돌릴 곳은 어디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의도는 이해한다. 예술가는 예술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순수한 예술은 물질주의에 물들지 않아야 하고 경제적 문제에 얽히지 말고 초월해야 한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2023년 현재의 상황에서는 화자에 시선이 간다. 화자는.... 좀 더 지혜로워야 했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집중한 나머지 한 예술가의 일생을 망가뜨린 원인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반말 모드 죄송합니다. 위의 내용은 제 개인 SNS에 올린 내용을 그대로 퍼온 까닭입니다.
화자에게서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을 봅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고생없이 부를 누렸지만 그걸 병적으로 부끄러워 했던 그... 전체 내용이나 의미와 별개로 '헤어지겠습니다'라는 첫 문장이 매력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첫 문장이 저렇게 매혹적이면 절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습니다. 하하하 ^^
첫 문장이 매력있으면 그 작품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더라고요.
이런, 다시 들어와 보니 제가 도배를 했군요. 이렇게 긴 걸 모르고 복사+붙이기를 했습니다. 그저 읽은 내용을 적어둔다는 생각으로 주절주절 끄적인 탓에 산만한데.... 이곳에서 삭제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소설 한 편에 대한 회고가 다섯 문장이 넘지 않게 유념하겠습니다. (죄송한 꾸벅)
도배하셔도, 길게 작성해주셔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쿄 팔경> '나머지 칠경을 결정하려고, 나는 내 가슴속 앨범을 차례로 넘겨 보았다. 그로나, 이 경우, 예술이 되는 것은 도쿄의 풍경이 아니었다. 풍경 속 나였다. 예술이 나를 속였나? 내가 예술을 속였나? 결론. 예술은, 나다.' 도쿄 팔경이라는 것도 개개인의 삶과 추억으로 그 장소와 때가 정해진다는 소재는 앞의 소설 <아, 가을>과 비슷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너무도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몸과 마음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화자의 도쿄 생활을 읽는 내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두부 님 말씀대로,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결국 누릴 건 아낌없이 누리는 그의 내면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는 게 부끄러워 자살을 하려고..... 유서를 쓰다가 유명 작가가 되다니요! 개인적으로, 글쟁이는 배운다고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설령 대단한 능력을 타고난들 스스로를 부수고 깍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나는 오직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는 그의 유서 <만년晩年>을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기다리다> 운명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그게 사람이든 작품이든 기회든 무엇이든, 나의 운명일 수 밖에 없는 무언가를 기다린 적이.... 흠, 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기회일까?' 마음으로 따져본 적은 좀 있었습니다만 선천적 귀차니즘과 가벼운 염세주의자인 저는 늘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지 않았지 싶습니다. 이 소설을 쓸 무렵, 반딧불이처럼 스스로 불을 밝힐 수 있는 어느 순간을 다자이 오사무는 기다리고 있었을까 싶습니다. 문득, 홍대 어느 골목에 있던 노란 네온사인의 [기다리다]라는 이름의 카페가 떠올라 살짝 반가웠습니다. 콜드브루가 참 맛있는 집이었는데 다음 해에 찾아가 보니 사라졌더군요. 책 읽기를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아직 반도 읽지 못했는데.... 조금 더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옛이야기> '이 아빠는 옷차림도 초라하고 용모도 어리숙하게 생겼으나, 원래 허투루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지어낼 줄 아는, 참으로 기이한 재주를 타고난 남자다' 작가 본인을 설명한 문장이겠죠? ^^ <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씨> 다자이 오사무가 이야기꾼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아아, 다자이 오사무가 새로 지어내는 이 소설들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침이면 집중은 필요하지 않지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을 해야하는 저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침 드라마나 역사 프로그램등을 찾아 듣습니다. 요즘 프로그램들은 화면을 보지 않으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라디오로 듣던 일일드라마 생각이 납니다. 문 여는 소리, 복도를 걷는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연식이 드러나나요) 그 모든 소리를 통해 마음껏 상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두들 같은 드라마를 들으며 개인적으로는 서로 다른 인물과 사건이 일어나던 집의 구조와 등장 인물들이 걷던 거리를 꾸미던.... 티비가 만들어내던 화려한 화면은 너무 많은 것을 순식간에 빼앗아갔습니다. 무엇을 빼앗기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다만 멍하니 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때의 상상 속 나라에 초대된 기분입니다. 마음껏 상상하도록 적당히 하지만 세세히 알려주는 설명들. 다자이 오사무의 용궁은 이제껏 알아온(상상하거나 그림책으로 보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고 환상적입니다. 이웃집 혹부리 영감은 정말 다만 혹만 떼고 싶었던 걸까요? 혹을 떼고 보물을 얻어오고 싶었던 게 아닌가요? 어릴 적, 신데렐라 동화를 읽고나서 '과연 신데렐라가 궁전 생활에 적응을 했을까? 과연 왕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과연 새엄마와 새언니들에게 받은 멸시와 천대를 까맣게 잊고 즐겁게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카치카치산> "남자는, 더욱이 우둔한 남자일수록 이런 위험한 여성에게 홀딱 반하기 쉬운 법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뻔하다." "너구리는 그런 아르테미스 타입의 토끼 소녀에게 전부터 은근히 사모의 정을 키워 왔다." 옛 이야기에 이런 필터를 씌워 살짝 비튼 다자이가 참 앙큼합니다. 토끼는 그럼 팜므파탈이었던 걸까요?
음....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토끼의 행동이 무척이나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다 읽자마자 구글을 열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검색했습니다. ^^ 그리고 두부님의 말씀과 비교하려고 '팜므파탈의 특징'도 검색했는데요. 제가 내린 결론은 카치카치산의 토끼는 팜므파탈보다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토끼의 행동 중 두드러진 사이코패스적 특징은 거짓말, 통제 욕구, 출중한 연기력, 동정심 부족입니다. 팜므파탈과는 다르게 사이코패스의 행위는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거나 나아지게 하려는 목적은 아니라는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토끼는 열여섯 살 처녀야. 아직은 뭐 성적 매력은 없지만, 그래도 미인이다. 그리고 인간 가운데 가장 잔혹한 것은, 흔히 이런 기질의 여성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너무도 정확하게 어린 소녀에 대해 묘사합니다. 열여섯 살 소녀의 몸은 곧 피어날 듯 봉긋한 꽃망울이 맞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활짝 핀 장미보다 꽃봉우리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만 특히나 열여섯 살 소녀의 몸은 그렇습니다. 또한, '성적 매력은 없지만' 그런 이유로 남자들의 눈에 들어온 열여섯 살 소녀는 순수하고 왠지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요? 하지만 몸에 비해 머리(생각)가 더 빨리 자란 소녀들은 그 기대를 저버립니다. 아마도 그래서 '인간 가운데 가장 잔혹한' 여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녀의 분노는 신랄하다. 특별히 추악하고 우둔한 것에 대해선 용서가 없다.' 토끼가 사이코패스일 것이라는 제 추측을 뒷받침하는 문장을 찾아 보았습니다. 토끼는 '경멸스럽기 짝이 없다는 듯, 새치름히 딴 데를 바라보고' '되게 상냥하다' '태연히 혹독한 선언을 내리고는' '무슨 비밀스런 생각에 잠겼는지, 여느 때처럼 너구리에게 모욕적인 말도 내뱉지 않고, 아까부터 말없이 그저 기교적인 미소를 입가에 띈 채 바지런히 잡목을 베고 있을 뿐, 우쭐해진 너구리의 온갖 미친 짓도 모른 척 눈감아 주고 있다.' '여전히 상냥하게' '냉정하게' 등이 있군요. 소설 속에서 토끼의 감정이 제대로 드러나는 문장을 찾기 힘들었습니다만 어렵게 한 문장을 고른다면, '"어머머" 토끼는 아주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다. 뭐야, 당신이야? 하는 느낌. 아니, 이보다 더 심하다. 어째서 또 찾아왔어? 뻔뻔스럽게! 하는 느낌. 아니, 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아아, 못 참겠어! 역귀가 왔어! 하는 느낌. 아니, 이보다 더욱 심하다. 더러워! 냄새 나! 죽어 버려! 같은 극도의 혐오감이 그때 토끼 얼굴에 생생히 보이건만,' 입니다. 토끼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족만큼 사랑했다 한들, 아니 토끼는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 친구예요'라고 말하고 있으니 깊은 유대가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너구리를 그렇게까지 학대하고 죽음으로 몰고간 이유가 없지 싶은데 그렇게까지 한 토끼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흥!" 토끼는 경멸하며, "자업자득이잖아요?" 와 "시끄러워요. 진흙배잖아요! 어차피 가라앉아요. 몰랐어요?"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에 가라앉으며 토끼를 저주하는 너구리를 곁에 두고도 토끼는 '얼굴을 닦으며, "어머, 이 땀 좀 봐" 라고 말합니다. 가장 사이코패스라는 느낌을 준 문장은 이것입니다. '"야아, 멋진 풍경이네!" 하고 중얼거린다. 이건 너무나 기괴하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곧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산수의 아름다움을 황홀히 바라볼 정도의 여유 따윈 없을 듯한데, 이 열여섯 살 아름다운 처녀는 흐뭇하게 웃음 지으며 섬의 저녁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시대에 사이코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대한 정의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소설로 유추해보면, 분명 그의 주변에 그런 부류가 있지 않았나 싶군요. 저도 다자이 오사무 아니 토끼처럼, "아아! 시간이 없다구요. 그런데 생각을 키우느라 자꾸 소설을 두 번씩 읽게 된다구요!" 즐거운 한탄을 해 봅니다. ^^
소수지만 일정 비율의 싸이코패쓰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옛 이야기를 뼈대 삼고 주변에 있던 싸이코패쓰를 덧입혔던 걸까요?
옛 이야기의 원래 줄거리에도 토끼가 참 잔인하더군요. 다자이 오사무는 토끼의 잔인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요즘 시대의 시선으로 보면..... 역시 사이코패스 같습니다. ^^
<혀 잘린 참새> 다자이 오사무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행여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 소설마다 고백을 합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직접 실제로 경험한 게 아니면, 한 줄도 한 글자도 못 쓰는 참으로 공상이 빈약한 작가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일 테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내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도 있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올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때가 오면, 나도 힘껏 일하지. 그때까지는,뭐, 침묵이요 독서다.' 이 이야기의 중심 문장은 이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집에 있으면서도 남의 집에 있는 듯 씨무룩하던 사람이, 문득 자신에게 가장 마음 편한 성격을 만나, 이것을 갈구한다. 사랑, 이라 말해 버리면 그뿐이지만, 일반적으로 담박하게 일컫는 마음, 사랑, 이라는 말로써 표현되는 심리보다, 이 할아버지의 기분은 훨씬 쓸쓸한 건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참새의 관계를 저는 플라토닉 러브 즉 '정신적 사랑'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나를 빼고도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고 느끼는 상황에 익숙한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나요. 괜찮나요?' 누군가 물어봐주는 바로 그 순간. 문득, 이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은인이 아닐까요. 이 문장은 그 둘의 관계가 결코 일반적 애정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출세도 그가 지난날 참새에게 보여 준 애정의 결실이라는 식으로 쑤군거렸으나, 할아버지는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희미하게 쓴웃음 지으며, "아니, 마누라 덕분입니다. 그 사람을, 고생시켰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멋지고 내 전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일지라도 아내로서 혹은 남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남녀간에는 스킨십 없는, 정신적 교감만의 친구 관계가 성립한다'는 말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인지 이 문장에서 할아버지의 심정을 (물론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심히 이해합니다.
<비용의 아내> 음.... 먼저 감탄사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헐~ '오타니 씨 옷차림을 딱히 칠칠하지 못하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천천히 네 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만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구글을 찾아보았지요. [칠칠맞다, 칠칠하지 못하다의 뜻] 제가 예상하고 짐작하던 의미가 아니라서 놀랐습니다. '칠칠맞다'는 말은 그 자체가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어휘구였습니다. '칠칠하다'가 깨끗하고 단정하다는 의미라니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ㅠㅠ 이 소설은 일본의 사회 문화를 많이 반영한 내용이라 저는 좀 심드렁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도덕적 해이로 느껴질만한 일본의 솔직하고 대담한 성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은 입장이니 화자가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켜야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만. 게다가 남편이라는 자도 굳이 둘의 관계를 얽매거나 얽매일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저는, 일본의 역사와 자유로운 성문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일본은 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세월 동안 전쟁을 일으켰으며 또한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도 한국인을 모두 멸살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는가. 저는 일본의 지진과 화산 폭발, 그리고 태풍을 그 원인으로 짚었습니다. 첨단 기기로 태풍과 지진과 화산 폭발까지 예상하고 측정하는 현대에도 이토록 불안한데 눈 뜨면 땅이 꺼지고 갈라지고 불화산이 터지고 쓰나미가 몰려오던 과거의 일본인들은 매일을 불안과 공포로 살았을 것입니다. 언제 땅이 바다로 침몰할지 또 언제 태풍이 불어 모든 걸 싹 쓸어버릴지 모르는, 피를 말리는 불안이 그들을 샤머니즘과 문란한 성문화로 이끌지 않았나 싶더군요.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 땅을 벗어나 지진이 없다는 아시아로 이주하려는 욕망은 가장 가까운 한국을 발판으로 삼았을 것이다 라는....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게 났었습니다. 물론 일본인들이 전세계와 한국에 저지른 악행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불안과 공포가 쌓여 생성된 그들의 광기가 그들 전부를 삼키며 벌인 잔혹한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이든 나를 삼키도록 내버려두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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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됩니다_글쓰기를 돕는 책 3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를 읽고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요글쓰기 책의 고전, 함께 읽어요-이태준, 문장 강화[책증정] 스티븐 핑커 신간, 『글쓰기의 감각』 읽어 봐요!
2025년을 위해 그믐이 고른 고전 12권!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1. 수상한 한의원 [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
[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그믐북클럽] 1. <빅 히스토리> 읽고 답해요
혼자 읽기 어려운 보르헤스, russist 님과 함께라면?
(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1) [보르헤스 읽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같이 읽어요(2)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같이 읽어요
🏆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덕후, 박산호 번역가가 고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3!
[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① <위대한 유산>[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② <올리버 트위스트>[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③ <두 도시 이야기>
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내셔널 갤러리 VS 메트로폴리탄
[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
🎬영상과 독서를 함께 해요.
[NETFLIX와 백년의 고독 읽기]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IMF외환위기 다시 보기1]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요.영화 <로기완>을 기다리며 <로기완을 만났다> 함께 읽기"사랑의 이해" / 책 vs 드라마 / 다 좋습니다, 함께 이야기 해요 ^^
모집중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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