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혼자 읽기

D-29
[ 『오디세이아』는 궁전의 안락함과 화려함이라는 심상을 수시로 등장시킴으로써 청자를 은근히 조롱해왔다. 파이아케스인들은 부유하고 성공적인 근동 지역 왕국의 전형이다. 그들의 궁전과 정원과 과수원은 모두 아시리아의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읽힌다.511 이집트는 그리스인들의 꿈이었던 물질적 부, 즉 황금의 보고로, 중심 무대에서 살짝 벗어나서 어른거린다. 필로스와 스파르타의 왕과 왕비는 위엄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키르케조차도 아름답게 장식된 궁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런 궁전을 보지는 못한다. 그의 왕국은 혼돈 상태이며, 그가 그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아늑하고 달콤하고 평화로운 초록 오아시스가 아니다. 왕국은 그간의 시련으로 분열되어 있고―욕망과 현실 사이, 아름다운 이타카와 실제의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그 긴장이 이 위대한 시를 매서운 결론을 향해 이끈다. 시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장소와 쉽게 또는 감상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런 궁전을 보지는 못한다. 그의 왕국은 혼돈 상태이며, 그가 그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아늑하고 달콤하고 평화로운 초록 오아시스가 아니다. 왕국은 그간의 시련으로 분열되어 있고―욕망과 현실 사이, 아름다운 이타카와 실제의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그 긴장이 이 위대한 시를 매서운 결론을 향해 이끈다. 시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장소와 쉽게 또는 감상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말한다. “인간에게 제 고향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다.”라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타카에서 시는 정반대의 모습을 제시한다. 즉, 인간에게 자신의 고향보다 더 고통을 주는 것은 없으며, 설령 안락함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곳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
[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지중해 세계에서 완전히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북부의 빈곤한 떠돌이로 등장해왔다. 이제 그는 실패한 왕으로, 동지가 거의 없는 국외자의 신분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지닌 유일한 무기는 속임수와 은폐의 기술이고, 아테나는 그에게서 일말의 고결함도 남겨두지 않는다. ]
[ 호메로스의 교훈은 폭력의 쓸모, 혹은 한 점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여자들을 노예로 삼고 팔며, 도시를 정복하여 그곳의 사람들을 절멸시키고, 정의는 개인적인 보복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사실, 갱들이 활보하는 지옥을 만들어내는 호메로스의 그 모든 요소들이 현대의 문명인들에게는 늘 불편하게 다가왔다. 포프는 ‘『일리아스』에서 지나치게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잔혹한 정신’에 충격을 받았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호메로스가 유럽을 전쟁으로 황량하게 만들었다며 그를 비난했다. 토머스 페인의 미국인 친구이자 계몽주의를 옹호했던 조엘 발로우는 어떻게 호메로스가 시인으로서 성공적으로 유럽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자신의 주된 강의 주제로 삼았다. ]
[ 하지만 그는 군인의 삶에 남자들이 저항하기 힘든 매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처참한 대량학살의 광경을 영광의 구름으로 잘 덮어서 장엄하게 보이도록,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그 광경이 눈부시게 빛나 보이도록 만들었다. 아킬레우스를 제 이상으로 삼아 인간괴물이 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군대의 명성에 있어 앞선 예보다 우월하고 싶다는 욕망 하나 때문에 인구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나라가 페르시아나 이집트만도 아니었다. ]
[ 사실 이 시들에서 가치 있고 근본적인 것은 그 반대의 것이다. 삶의 모든 측면들을 명료하고 차분하고 동정어린 시선으로, 즉 사랑을 담은 심장과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호메로스는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안다. 그는 트로이 해안의 그리스 전사들보다도, 그리고 트로이의 시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가 아무리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처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다. ]
[ 호메로스는 심지어 그리스의 신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신들은 시에서 간혹 끔찍하고 신뢰할 수 없으며 무절제하고 결국은 어리석은 존재로 나타난다. 이 절대적 권위가 없는 세계의 비애와 소란 너머에 있는 이해의 저수지, 그것이 그가 지닌 가치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21세기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고 있다. 호메로스가 형이상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갱과 도시 모두에 마음으로부터 공감하는 다문화주의자라고, 오디세우스에게서 두 세계의 미덕을 아우를 수 있는 인간을 보는 융합주의자라고, 심지어 여성의 위엄과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그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라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는 감상적으로 바라본 세계가 아니라 진짜 세계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묘사하는 것이 시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수전 손택은 시몬 베유의 가혹하고 극단적인 비평을 논평하며, 어째서 호메로스의 암울함이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서 고찰한 바 있다. ]
[ 진실보다는 현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상상력을 넓히는 일이 더 필요한 시대가 있다. 우선, 현실 세계를 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진실에 부합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늘 진실만을 원하는가? 우리에게는 진실 외에도 꼭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정지의 순간이다. 진실은 균형 상태지만, 진실의 반대는 불균형 상태일지언정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
[ 호메로스가 잘못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는 점이, 미덕을 향해서 제 식대로 삐뚜름하게 서 있는 특정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의 핵심이다. 그는 우리에게 한 묶음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시들은 설교가 아니다. 우리는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조차도 우리가 전형으로 삼아야 할 남자로 보기를 원치 않고, 여자일 경우엔 페넬로페나 헬레네도 마찬가지다. 청동기시대 폭력행위의 성지를 참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
[ 호메로스의 위대함은 감춰진 생생함을 폭로함에, 삶의 정수를 분명하게 드러냈음에 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인이 아니다. 그는 세계 속에서 반짝거리는 빛이다. 그는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권위에 굴복해야만 하는 걸까? 스스로를 낮추는 게 옳은 일일까? 자아에 몰입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일은? 폭력을 장려해야 하는 걸까? 꼭 사랑해야 하나? 호메로스는 그런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현실을 극화해서 우리에게 들려준 뿐이다. 그는 바다에 떠 있는 배의 끓어오르는 활력과도 같이 생기 있고 복잡한 삶의 공기 속에서, 그리고 그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당신의 등 뒤에서 활기를 찾아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찬란한 자취 속에서 숨 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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