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혼자 읽기

D-29
[ 그 경험은 처음에는 끔찍하다. “이것은 죽음의 냄새다.” 자신을 둘러싼 무질서에 경악한 시누헤는 이렇게 말한다. 이집트의 모든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곧 시누헤는 한 족장과 만나게 된다. 전사이자 왕자인 그는 디오메데스나 사르페돈쯤 되는 인물이다. 족장은 이런 상황에서 영웅들이 으레 하는 대로, 그에게 익힌 고기와 포도주와 맛있는 구운 새고기를 충분히 대접한다. 그들은 같이 사냥을 나가고 엄청난 규모로 기르고 있는 가축에게서 짠 ‘어떤 음식과도 늘 곁들여 먹는 우유’를 그에게 대접한다. 그런 규모의 가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인도유럽의 족장들이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소고기를 하얀 우유소스에 찍어 먹는 것, 그것은 호메로스 문명의 징표이기도 하다. ]
[ 그렇게 시누헤는 원주민과 닮아간다. 그는 하얀 아마옷을 벗고 갑옷을 입는다. 전사로 변신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들은 모두 영웅이 되고, ‘각기 자신의 부족을 지배한다.’ 이집트 관료의 삶에는 없었던 전투가 이곳 변방의 거친 삶에서는 주된 일이었고, 이집트 중심부에서는 평온하기 짝이 없던 삶이었으나 이제는 전투가 일상이 되었다. 그는 가축을 약탈하고 남자와 여자를 노예로 삼기 위해 끌고 가며, 쉴 새 없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인도유럽 영웅의 임무였으며, 그 충실한 수행 덕에 그는 지배자와 족장으로부터 ‘깊은 존중’과 사랑을 받게 된다. 그가 용맹스럽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
[ 명예, 경쟁심, 엄숙함, 공격적일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자아, 폭력의 요구, 공동체에 대한 경멸―갑자기 트로이 바깥의 그리스인들의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이집트인이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 기원전 1850년의 어느 훈훈한 저녁, 해는 서쪽 사막 위로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나일 강 위로 뻗은 그림자들이 점점 더 길어지는 동안 테베 강가에서 열린 어느 연회에서 청중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에 몸을 떠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곳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행동한단 말인가요? ]
[ 시누헤는 그 도전들을 받아들이고, 이름 없는 영웅의 목을 활로 쏜 뒤 그가 가지고 있던 도끼로 그를 죽여 승리를 거두며, 승리감에 도취한 채 쓰러진 영웅의 등에다 대고 고함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이집트인이다. 인간 역사의 이런 순간에 더없이 큰 울림을 주는 이런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대체 이토록 거친 산에서 어떻게 파피루스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위대한 호메로스의 질문이기도 하다. 폭력과 지배의 이 잔혹한 지질학적 사실들이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과연 문명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파피루스 섬유조각들이 영웅 세계의 거센 물리적 힘과 부딪히게 될 때 그것은 얼마나 힘없이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존재의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
[ 시누헤는 인도유럽의 전사로 너무나 크게 성공하여 결국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집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이 그의 마음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어난 땅에서 묻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
[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새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 이가 시누헤의 소원을 듣게 되고, 머지않아 시누헤에게 이집트로 돌아오라는 그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이집트로 돌아오면 그는 명예롭게 대접받고 용서받을 것이었다. 시누헤는 레테누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장자에게 넘겨주고 이집트로 돌아와 ‘두 스핑크스 사이에 있는 땅을 만진 뒤’ 그가 경외하는 신과 같은 왕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더 이상 너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지 말라.” 파라오는 그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시누헤는 자신이 이집트 사회의 잘 짜인 구조 속으로 다시 흡수됨을 느낀다. 왕의 말대로 ‘이제 그는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시누헤는 다시 궁정 신하가 되었다. 그는 왕의 자비가 베푸는 행복에 자기 자신을 유기해버리고 파라오의 발치에 엎드린다. 여기 ‘국가가 마련해준 항구적인 안전함’ 속에 그가 마침내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받은 아름다운 질서의 세계가 있다. 그는 호메로스적인 세계로 떠나 있던 그 모든 세월 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보상받는다. ]
[ ‘여정이 끝나는 그날’은 죽음의 순간, 즉 인간이 마침내 완벽한 삶이라는 목표를 성취한 때를 이집트식으로 표현한 말이고, 시누헤가 이집트로 돌아간 것은 천국으로 돌아간 것과 같다. 그는 온갖 모험을 겪었지만, 이집트는 애초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해주었다. 그곳에서만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고, 이집트의 권력에 굴복함으로써만 그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이 좋을 수 있었다. ]
[ 그러나 우리의 오디세우스적인 사고틀은 시누헤가 그의 고향으로 재흡수되는 이 장면을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쪼그라든 순간으로 본다. 고뇌에 찼던 자아가 깔끔하게 목욕과 면도를 하고 아마로 만든 옷을 입은 ‘추종자’의 무기력한 확실성으로 변모했다면, 그는 생의 활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인도유럽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수염을, 그 자기 확신 가득함을, 행복한 ‘여정의 끝’이라는 단조로운 위안용 수프와 맞바꿀 가치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호메로스의 계승자인 우리가 그저 위기에 중독된 것일 뿐인 건 아닐까? 왜 시누헤를, 이집트 문명이 실로 엄청난 기간 동안 번영했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하얀 아마포와 파라오의 전제적 통치의 세계가, 불편한 레테누와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영웅들’의 세계보다 더 나은 곳이라고 어째서 흔쾌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그 영웅들은 결국, 이집트인들이 본 대로 끊임없이 자기네 패거리의 성적이고 본능적인 지배를 실현시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하이에나보다 나을 게 없는 것 아닌가? 분명, 인간의 삶에는 호메로스에서 말하는 필연적인 비극 이상의 것이 있지 않은가? 시누헤 식으로 이야기해서, 그 필연성이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겸허함이라는 미덕과 현실의 권력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인가? ]
[ 호메로스의 인물이라면 시누헤처럼 행동했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자신의 운명이 그처럼 파라오와 그의 궁전이 내려줄 수 있는 축복에 포박되어 살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터다. 시누헤는 분명한 한 가지 대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바로 집에 얌전히 있는 게 낫다는 것, 복종하고 권력이 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전체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세계를 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정신적 외상의 징후를 보이며 복합적이라 모든 게 서로 맞서고 있다. 권력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지 순순히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작 신들도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자연은 아름다운 배경으로 거기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투쟁과 고통에 젖어 있다. 개인의 승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공동체적인 사랑과 사회를 우선시하는 것과 화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두 원칙, ‘티메Timē’와 ‘아레테Aretē’, 명예와 덕성, 자아와 타자 사이의 끝을 모르는 거대한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451 아킬레우스는 전쟁이 인간 비극의 근원이라고 보고, 오디세우스는 자기 발전의 기회로 본다. 그리고 그 너머에 호메로스가 서 있다. 호메로스의 위대한 목소리는 우리 모두를 이해하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으며, 우리를 대신해서 결론을 내려주기를 거부한다. ]
[ 『시누헤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거울상이다. 도시와 전사 세계의 대립을 정반대 방향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유사한 점들도 있다. 시누헤는 이집트의 오디세우스로 볼 수도 있다. 광야로 내던져진 영웅이 그곳에서 지혜를 얻고, 고향을 떠나서도 모든 것을 잘 해나가며, 마침내 풍부한 이해에 도달해서 그간 집이라고 부르기를 간절히 원해온 곳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놀랍게도 세부적인 부분에서 그 두 이야기는 분명, 같은 생각을 가진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바로, 집에 도착했을 때 두 주인공 모두 목욕을 함으로써 다시 자기 자신이 된다. ]
[ 오디세우스의 유명한 수완 아래에는 해적―왕과 다를 바 없는 불확실한 위상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키클롭스의 손에서 고난을 겪는다.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가 누군지 궁금해하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고 대답한다. 그리스어로는 ‘우티스outis’ 또는 ‘메티스mētis’인데, 전자는 술에 취하거나 턱이 처진 거인이 발음한다면 ‘오디세우스’와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고, 후자 역시 똑똑함, 교활함, 재주 혹은 책략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비슷하게 들린다. 폴리페모스가 다른 키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은 그의 눈을 찌른 자가 누군지 묻는다. 그는 “아무도 아니야!” 또는 “똑똑함이야!”라고 대답한다. 그런 대답을 듣고 난 그의 친구들은―그리고 청중들은―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참으로 멋진 속임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오디세우스는 정말로 아무도 아닌 자이기 때문이다. 닿을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떠 있는 이타카라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본적으로 집 없는 떠돌이다. 스스로가 아무도 아닌 자라고 자임하는 것은 정확히 페니키아인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마치 꿈꾸듯 에둘러서 반영한 것이다. 그가 이타카의 왕, 혹은 그 명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던 라에르테스Laertes의 아들일지언정 『오디세이아』의 세계는 그를 전혀 그런 식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그는 이름 없는 존재다.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조차도 그는 왕이라기보다는 거지에 가까워 보인 탓에 아내와 아들, 신하와 그의 충복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이중적인 지위가 『오디세우스』의 중심에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자신들에게는 영웅인 사람들이 바깥에서는 주변적인 입지에 놓여 있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인간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세이렌을 만난 이후 오디세우스는 사지를 지치게 만드는 스킬라와 그녀의 친구이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삼키는 카리브디스를 만나게 된다. 머리가 여섯 개 달린 암초 모습의 스킬라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개의 머리들로 만들어진 내장을 가졌고 사람을 집어 들어 먹는다. 카리브디스는 입이 엄청나게 크고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바다의 지옥 같은 소용돌이 괴물로 사람을 아래로 잡아당겨 빠져죽게 만든다. 스킬라를 벗어나려 방향을 틀면 카리브디스가 그를 삼킬 것이고, 카리브디스에서 멀리 떨어져 도망가려 하면 스킬라가 그의 선원들을 집어먹을 것이다. 이쪽으로 갈 것인가, 저쪽으로 갈 것인가, 어떤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두 괴물 모두 악몽 같은 여성적 위협이다. 위에서 집어 들고 목숨을 앗아가든지, 제 안에 빠져 죽게 하든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하데스에서 오디세우스가 여성들에 대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여기서는 정반대로 바뀐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 스킬라에게 당할 각오를 한 것이다. 카리브디스는 선원들과 자신을 통째로 삼킬 것이지만, 스킬라는 한두 사람을 집어먹을 것이고 배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장점이다. 인생에서 불가능한 선택에 직면했을 때에도, 그는 소용돌이와 바위 사이를 항해하는 용기를 발휘한다. 그런 지혜로움이 발현되는 것은 그의 내적 자아 덕분이다. 다른 영웅들과 달리 오디세우스는 한 가지 면만을 지닌 인물이 아니다. 그의 정신 세계는 폭풍우가 몰아쳐서 만신창이가 되었고 사실 이 외부의 풍경들은 그 부서진 내면이 투영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난파하는 곳마다 거기에는 교훈이 있다. “그는 많은 곳을 가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정신을 배웠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의 맨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귀향과 자신의 여인’을 갈망할지 모르지만 시의 핵심은 이 우발성, 즉 어떤 지배적인 영속성도 부재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
[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의 맨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귀향과 자신의 여인’을 갈망할지 모르지만 시의 핵심은 이 우발성, 즉 어떤 지배적인 영속성도 부재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오디세이아』의 훌륭한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소설에 대해서, 그것은 우리가 ‘매혹적인 상상의 영역’을 최초로 그린 것이고, “그 영역에서는 아무도 진리를 소유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이해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추상적인 확실성은 적용되지 않는다. 당신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어떤 것도 틀렸을 수 있고, 선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나쁠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의 종착지인 섬, 꿈의 이타카만 해도 그렇다. 그보다 더 진정한 곳은 없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을 집이라고, “남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곳”이라고 불렀지만, ―『오디세이아』의 24권 중간 지점에서―막상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이타카가 이런 모습이라는 사실은 시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곳은 그리스 세계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북부 그리스의 한 부분으로, 그리스 세계의 심장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호메로스가 가장 친숙하게 느꼈던 그리스 세계의 심장부는 에게 해 동부로, 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문화적으로 한층 세련된 곳이었다. 이 과장된 주변성은 저 멀리 바깥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변방 소국의 해적왕 오디세우스와 꼭 어울린다. 그러나 그곳은 그가 사랑하는 나라다. 파이아케스인들이 그를 바다 건너 이곳까지 데려다주었다. 고향땅에 도착했을 때 오디세우스는 잠이 들어 있었고, 그들은 잠든 그를 해안에 데려다놓았다.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타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테나가 언질을 주고 나서야 그는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본 뒤, ‘허리를 구부려 생명을 주는 대지 위에 입을 맞춘다.’ ]
[ 『오디세이아』는 궁전의 안락함과 화려함이라는 심상을 수시로 등장시킴으로써 청자를 은근히 조롱해왔다. 파이아케스인들은 부유하고 성공적인 근동 지역 왕국의 전형이다. 그들의 궁전과 정원과 과수원은 모두 아시리아의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읽힌다.511 이집트는 그리스인들의 꿈이었던 물질적 부, 즉 황금의 보고로, 중심 무대에서 살짝 벗어나서 어른거린다. 필로스와 스파르타의 왕과 왕비는 위엄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키르케조차도 아름답게 장식된 궁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런 궁전을 보지는 못한다. 그의 왕국은 혼돈 상태이며, 그가 그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아늑하고 달콤하고 평화로운 초록 오아시스가 아니다. 왕국은 그간의 시련으로 분열되어 있고―욕망과 현실 사이, 아름다운 이타카와 실제의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그 긴장이 이 위대한 시를 매서운 결론을 향해 이끈다. 시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장소와 쉽게 또는 감상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런 궁전을 보지는 못한다. 그의 왕국은 혼돈 상태이며, 그가 그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아늑하고 달콤하고 평화로운 초록 오아시스가 아니다. 왕국은 그간의 시련으로 분열되어 있고―욕망과 현실 사이, 아름다운 이타카와 실제의 이타카 사이에 놓여 있는―그 긴장이 이 위대한 시를 매서운 결론을 향해 이끈다. 시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장소와 쉽게 또는 감상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말한다. “인간에게 제 고향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다.”라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타카에서 시는 정반대의 모습을 제시한다. 즉, 인간에게 자신의 고향보다 더 고통을 주는 것은 없으며, 설령 안락함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곳에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
[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지중해 세계에서 완전히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북부의 빈곤한 떠돌이로 등장해왔다. 이제 그는 실패한 왕으로, 동지가 거의 없는 국외자의 신분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지닌 유일한 무기는 속임수와 은폐의 기술이고, 아테나는 그에게서 일말의 고결함도 남겨두지 않는다. ]
[ 호메로스의 교훈은 폭력의 쓸모, 혹은 한 점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여자들을 노예로 삼고 팔며, 도시를 정복하여 그곳의 사람들을 절멸시키고, 정의는 개인적인 보복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사실, 갱들이 활보하는 지옥을 만들어내는 호메로스의 그 모든 요소들이 현대의 문명인들에게는 늘 불편하게 다가왔다. 포프는 ‘『일리아스』에서 지나치게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잔혹한 정신’에 충격을 받았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호메로스가 유럽을 전쟁으로 황량하게 만들었다며 그를 비난했다. 토머스 페인의 미국인 친구이자 계몽주의를 옹호했던 조엘 발로우는 어떻게 호메로스가 시인으로서 성공적으로 유럽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자신의 주된 강의 주제로 삼았다. ]
[ 하지만 그는 군인의 삶에 남자들이 저항하기 힘든 매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처참한 대량학살의 광경을 영광의 구름으로 잘 덮어서 장엄하게 보이도록,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그 광경이 눈부시게 빛나 보이도록 만들었다. 아킬레우스를 제 이상으로 삼아 인간괴물이 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군대의 명성에 있어 앞선 예보다 우월하고 싶다는 욕망 하나 때문에 인구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나라가 페르시아나 이집트만도 아니었다. ]
[ 사실 이 시들에서 가치 있고 근본적인 것은 그 반대의 것이다. 삶의 모든 측면들을 명료하고 차분하고 동정어린 시선으로, 즉 사랑을 담은 심장과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호메로스는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안다. 그는 트로이 해안의 그리스 전사들보다도, 그리고 트로이의 시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가 아무리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처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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