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미케네와 마찬가지로 슐리만의 추측은 한번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성문과 탑 등과 함께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층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붉은 잿더미에 파묻힌 트로이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조수 빌헬름 되르프펠트는 나중에 호메로스의 트로이가 기원전 1300년경에 파괴된 트로이 6번 층이라는 의견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고, 신시내티의 고고학자 칼 블레겐은 기원전 1200년이 조금 지나서 종말을 고한 트로이 7a번 층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1988년에서 2003년 사이에 만프레트 코르프만의 지휘하에 이루어진 독일 발굴단의 대규모 발굴 작업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그것이 지금은 보편적으로 합의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영국 고고학자 도널드 이스턴이 썼듯이, 그 유적들에서 나온 ‘물리적 증거물들은 세 개의 묶음으로 서로 나뉨에도 모두 하나의 특성을 지녔으며 하나의 사건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호메로스를 트로이에 있는 어떤 고고학적인 유물들과도 연계시킬 만한 근거는 없다. ]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혼자 읽기
D-29
장맥주
장맥주
[ 기원전 1200년경이라는 시간만이 유일한 기준이지만, 그것은 헤로도토스가 역사서를 쓰면서 추측한 시기일 뿐이다. 그런데 그의 추측과 다른 고전기 그리스인들의 추측은 사실상 근거가 거의 없는 억측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시대에는 먼 과거의 시기를 어림짐작하는 제대로 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호메로스를 기원전 1200년경의 트로이와 연계시키는 게 그보다 1,000년 전의 트로이와 연계시키는 것보다 더 타당한 근거는 전혀 없다. 만약 유물이 판단 근거가 된다면, 보다 늦은 시기의 트로이가 슐리만이 ‘프리아모스의 트로이’라고 명명한 도시보다 근거가 더 빈약해 보인다. 미케네에서 발굴된 수갱식 분묘의 전사들이 호메로스에 나오는 영웅들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 그 영웅들의 아들들과 손자들이라고 상상하는 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2000년경의 트로이인들이 그리스인들이 포위 공격한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는 슐리만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할 만한 내적 근거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장맥주
[ 트로이의 나중 시기로 추정되는 층들에서 발굴된 것들은 슐리만이 여기서 발견한 것과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다. 슐리만이 발굴해낸 것은 한 무더기의 금과 은으로 된 물건들로 금으로 된 팔찌 여섯 개와 머리띠 두 개, 역시 금으로 된 왕관 한 개와 바구니 모양의 귀고리, 조개 모양의 귀고리 56개, 금으로 된 구슬과 스팽글과 단추 8,750개 등이었다. 이 장신구들은 아마도 트로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트로이에서 제련과 주물을 한 증거가 적지 않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물들은 트로이가 북쪽과 남쪽 모두와 어떤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슐리만이 발굴해낸 아름다운 바구니 모양의 금귀고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발견된 다른 귀고리들과 똑같고, 스칸디나비아산 호박보석은 물론 청동기시대의 시칠리아 섬에 있는 카스텔루치오라는 지역에 서 발견된 뼈에 돋을새김을 한 명판까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
장맥주
[ 호메로스를 거꾸로 보는 것도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그리스인들이 지중해에 이르렀던 이야기를 호메로스에서처럼 그리스인들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가 아니라, 글자를 사용하고 관료적이며 중앙집권적인 지중해 연안 지역의 문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이야기한 대로 들어보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에 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내용은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정확히 호메로스의 그리스인들이 살았던 문화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관습을 다루고 있는 이집트나 히타이트나 히브리어의 기록들은 한 움큼 전해진다. 자신들이 속하지 않은 세계에 도착한 북방의 인도-유럽 전사들, 그곳에서 적절하게 처신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즉 미개인처럼 보이는 이들에 관한 기록들이 있는 것이다. 호메로스 이야기의 좀 더 냉정한 판본들은 이상할 정도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갑자기 그의 적들에게 목격된 건지도 모를 아킬레우스가, 그리고 똑똑하고 부유하고 자기만족적인 도시민이 묘사했을 것 같은 오디세우스가 보인다. 여기서 그리스의 영웅주의는 갱단의 무법자 행태에 다름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 호메로스 전사들의 아름답고 유려한 말들도 그저 잘난 척 허세를 부리는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만 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관점에서는 ‘호메로스’가―시의 품격과 이해와 비극적인 아름다움이―벗겨져나간 호메로스 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
장맥주
[ 『시누헤 이야기The Tale of Sinuhe』는 이집트의 어느 공무원이 시의 형식으로 쓴 짧은 자서전인데, 이런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것은 재생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쓰인 글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기원전 1800년경 나일 강의 서쪽 기슭에 있는 이집트 도시 테베에 살았던 한 관리의 무덤에 묻혀 있었다. 애초에 무덤에서 도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843년에 런던의 한 경매장에 나와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이 파피루스 조각들은 현재 대영박물관과 베를린에 나뉘어 보존되고 있다. 기원전 1000년경까지는 이집트에서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이집트 연구자들이 그 내용을 해독해내기 전까지 3,000여 년이 라는 세월 동안은 아무도 이것을 읽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이 지중해에 도래한 순간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시기에 쓰였다. 해적질을 일삼고, 폭력적이며, 조만간 몸을 원 없이 치장하고 미케네의 무덤에 충분히 나타나게 될 금에 굶주린 사람들. 이들은 그들과 완벽히 반대되는 정신적 틀을 가진 이들이었다. 고대 세계의 가장 풍요로운 문화권에서 나온 우아하고 음울한 이 운문소설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첫 버전들과 같은 시대에 창작된 작품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시에 담긴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
장맥주
[ 시누헤의 이집트는 거대한 국가조직이다. 그는 신神-파라오의 편의를 돕는 거대한 용역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 말하자면 궁정관리―이집트에서 ‘서기’라고 부르는 사람―이자 관료였다. 아마도 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었을 것이다. ‘필경사가 되어라.’ 동시대의 파피루스에는 젊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유하는 말이 들어 있다.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손은 점점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당신은 하얀 옷을 입고 다닐 것이고 존경받을 것이며 궁정 조신들이 당신에게 깍듯이 인사할 것이다.’
고통과 갈등이 존재의 중심에 있다는,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것이라는 호메로스적인 가정은 시누헤의 세계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
장맥주
[ 가난한 이집트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서른다섯이면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수천 명이 노역장에 살면서 파 라오 체제와 기념비를 남기려는 체제의 야심을 위해 강제노동에 동원되어 일생을 땀에 절어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위로 관료계층인 중간계층, 즉 시누헤가 속한 계급은―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인구가 1퍼센트도 안 됐을 것이다―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품위 있게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었고, 호메로스 세계의 가장 깊은 수준들을 뒤덮고 있는 압도적인 위험과 파괴에 대한 느낌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는 지속성이란 것이 존재했다. 영웅이 될 필요도 없었고, 영광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그리스인들의 갈망은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고대의 이집트인들에게 선함이란 파라오의 권위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파라오의 권위와 우주의 지배력 사이에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승의 삶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대기실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하고 변화가 없는 삶일수록 더 나은 삶이라 여겼다. ]
장맥주
[ 시누헤는 자신이 매일 입고 다니는 하얀 아마옷을 사랑하고, 자신이 일하는 주거지에 있는 모든 질서를 사랑한다. 그는 오로지 독자적으로 삶을 영위해나가는 영웅이 아니다. 그에게는 개인의 정체성이나 운명에 관한 어떤 존재론적인 위기나 고민도 따라다닌 적이 없다. 시누헤는 파라오의 ‘추종자’이자 ‘진정한 친구’다. 그의 삶의 영역은 그가 봉사하는 권위자에 의해 규정된다. 그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파라오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인데, 바로 그때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한결같고 아름답게 정돈된 삶이 공포의 섬광에 파괴되고 만 것이다. 그는 궁전에서 늙은 파라오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처럼 권위주의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던 그는 그 소식을 못 들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그 파급효과가 미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책임을 추궁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로 근심에 빠진다. ]
장맥주
[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집트를 떠나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쪽으로 도망친 그는 들판 이 구석 저 구석에 숨어가며 밤에 몰래 국경을 빠져나가 마침내 어퍼 레테누Upper Retjenu라 불리는 세계의 한 귀퉁이에 도착하게 된다.
어퍼 레테누는 레바논의 이집트식 이름으로, 레바논 위쪽까지 포괄하는 지역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테누라는 말은 셈족의 언어 형식이 아니다. 근동 지역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도유럽 계열의 언어인 그것은 아마 리키아어에서 온 말일 것이다. 아나톨리아 남서부 지역에 살았던 전사들인 리키아인들은 호메로스에게는 트로이인들의 동맹부족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말하자면 시누헤는 북쪽의 전사문화로 둘러싸인 저 멀리 광야까지 간 것이었다. 그는 호메로스가 그렸던 땅에 도착했다. 그 땅은 그에게 익숙한 그런 곳이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무화과와 포도가 열리고, 물보다 포도주가 더 흔하고, 꿀과 기름이 있으며,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과실이 열리는 좋은 곳이다. 보리도 있고 에머 밀도 있고 ‘온갖 종류의 가축이 셀 수 없이 많다.’ ‘이아Iaa’라 불리는 그곳은 ‘골풀이 흔한 곳’이며, 습기가 많고 땅이 비옥하고 초지가 풍부하며 그가 태어난 이집트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
장맥주
[ 그 경험은 처음에는 끔찍하다. “이것은 죽음의 냄새다.” 자신을 둘러싼 무질서에 경악한 시누헤는 이렇게 말한다. 이집트의 모든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곧 시누헤는 한 족장과 만나게 된다. 전사이자 왕자인 그는 디오메데스나 사르페돈쯤 되는 인물이다. 족장은 이런 상황에서 영웅들이 으레 하는 대로, 그에게 익힌 고기와 포도주와 맛있는 구운 새고기를 충분히 대접한다. 그들은 같이 사냥을 나가고 엄청난 규모로 기르고 있는 가축에게서 짠 ‘어떤 음식과도 늘 곁들여 먹는 우유’를 그에게 대접한다. 그런 규모의 가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인도유럽의 족장들이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소고기를 하얀 우유소스에 찍어 먹는 것, 그것은 호메 로스 문명의 징표이기도 하다. ]
장맥주
[ 그렇게 시누헤는 원주민과 닮아간다. 그는 하얀 아마옷을 벗고 갑옷을 입는다. 전사로 변신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들은 모두 영웅이 되고, ‘각기 자신의 부족을 지배한다.’ 이집트 관료의 삶에는 없었던 전투가 이곳 변방의 거친 삶에서는 주된 일이었고, 이집트 중심부에서는 평온하기 짝이 없던 삶이었으나 이제는 전투가 일상이 되었다. 그는 가축을 약탈하고 남자와 여자를 노예로 삼기 위해 끌고 가며, 쉴 새 없이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인도유럽 영웅의 임무였으며, 그 충실한 수행 덕에 그는 지배자와 족장으로부터 ‘깊은 존중’과 사랑을 받게 된다. 그가 용맹스럽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
장맥주
[ 명예, 경쟁심, 엄숙함, 공격적일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자아, 폭력의 요구, 공동체에 대한 경멸―갑자기 트로이 바깥의 그리스인들의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이집트인이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 기원전 1850년의 어느 훈훈한 저녁, 해는 서쪽 사막 위로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나일 강 위로 뻗은 그림자들이 점점 더 길어지는 동안 테베 강가에서 열린 어느 연회에서 청중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에 몸을 떠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곳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행동한단 말인가요? ]
장맥주
[ 시누헤는 그 도전들을 받아들이고, 이름 없는 영웅의 목을 활로 쏜 뒤 그가 가지고 있던 도끼로 그를 죽여 승리를 거두며, 승리감에 도취한 채 쓰러진 영웅의 등에다 대고 고함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이집트인이다. 인간 역사의 이런 순간에 더없이 큰 울림을 주는 이런 질문을 했으니 말이다. “대체 이토록 거친 산에서 어떻게 파피루스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위대한 호메로스의 질문이기도 하다. 폭력과 지배의 이 잔혹한 지질학적 사실들이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과연 문명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파피루스 섬유조각들이 영웅 세계의 거센 물리적 힘과 부딪히게 될 때 그것은 얼마나 힘없이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존재의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
장맥주
[ 시누헤는 인도유럽의 전사로 너무나 크게 성공하여 결국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많은 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집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이 그의 마음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어난 땅에서 묻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
장맥주
[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새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 이가 시누헤의 소원을 듣게 되고, 머지않아 시누헤에게 이집트로 돌아오라는 그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이집트로 돌아오면 그는 명예롭게 대접받고 용서받을 것이었다. 시누헤는 레테누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장자에게 넘겨주고 이집트로 돌아와 ‘두 스핑크스 사이에 있는 땅을 만진 뒤’ 그가 경외하는 신과 같은 왕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더 이상 너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지 말라.” 파라오는 그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시누헤는 자신이 이집트 사회의 잘 짜인 구조 속으로 다시 흡수됨을 느낀다. 왕의 말대로 ‘이제 그는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시누헤는 다시 궁정 신하가 되었다. 그는 왕의 자비가 베푸는 행복에 자기 자신을 유기해버리고 파라오의 발치에 엎드린다. 여기 ‘국가가 마련해준 항구적인 안전함’ 속에 그가 마침내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받은 아름다운 질서의 세계가 있다. 그는 호메로스적인 세계로 떠나 있던 그 모든 세월 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보상받는다. ]
장맥주
[ ‘여정이 끝나는 그날’은 죽음의 순간, 즉 인간이 마침내 완벽한 삶이라는 목표를 성취한 때를 이집트식으로 표현한 말이고, 시누헤가 이집트로 돌아간 것은 천국으로 돌아간 것과 같다. 그는 온갖 모험을 겪었지만, 이집트는 애초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해주었다. 그곳에서만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고, 이집트의 권력에 굴복함으로써만 그의 여정이 끝나는 그날이 좋을 수 있었다. ]
장맥주
[ 그러나 우리의 오디세우스적인 사고틀은 시누헤가 그의 고향으로 재흡수되는 이 장면을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쪼그라든 순간으로 본다. 고뇌에 찼던 자아가 깔끔하게 목욕과 면도를 하고 아마로 만든 옷을 입은 ‘추종자’의 무기력한 확실성으로 변모했다면, 그는 생의 활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인도유럽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수염을, 그 자기 확신 가득함을, 행복한 ‘여정의 끝’이라는 단조로운 위안용 수프와 맞바꿀 가치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호메로스의 계승자인 우리가 그저 위기에 중독된 것일 뿐인 건 아닐까? 왜 시누헤를, 이집트 문명이 실로 엄청난 기간 동안 번영했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하얀 아마포와 파라오의 전제적 통치의 세계가, 불편한 레테누와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영웅들’의 세계보다 더 나은 곳이라고 어째서 흔쾌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그 영웅들은 결국, 이집트인들이 본 대로 끊임없이 자기네 패거리의 성적이고 본능적인 지배를 실현시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하이에나보다 나을 게 없는 것 아닌가? 분명, 인간의 삶에는 호메로스에서 말하는 필연적인 비극 이상 의 것이 있지 않은가? 시누헤 식으로 이야기해서, 그 필연성이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겸허함이라는 미덕과 현실의 권력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인가? ]
장맥주
[ 호메로스의 인물이라면 시누헤처럼 행동했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자신의 운명이 그처럼 파라오와 그의 궁전이 내려줄 수 있는 축복에 포박되어 살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터다. 시누헤는 분명한 한 가지 대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바로 집에 얌전히 있는 게 낫다는 것, 복종하고 권력이 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전체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세계를 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정신적 외상의 징후를 보이며 복합적이라 모든 게 서로 맞서고 있다. 권력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지 순순히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작 신들도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자연은 아름다운 배경으로 거기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투쟁과 고통에 젖어 있다. 개인의 승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공동체적인 사랑과 사회를 우선시하는 것과 화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두 원칙, ‘티메Timē’와 ‘아레테Aretē’, 명예와 덕성, 자아와 타자 사이의 끝을 모르는 거대한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451 아킬레우스는 전쟁이 인간 비극의 근원이라고 보고, 오디세우스는 자기 발전의 기회로 본다. 그리고 그 너머에 호메로스가 서 있다. 호메로스의 위대한 목소리는 우리 모두를 이해하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으며, 우리를 대신해서 결론을 내려주기를 거부한다. ]
장맥주
[ 『시누헤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거울상이다. 도시와 전사 세계의 대립을 정반대 방향에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유사한 점들도 있다. 시누헤는 이집트의 오디세우스로 볼 수도 있다. 광야로 내던져진 영웅이 그곳에서 지혜를 얻고, 고향을 떠나서도 모든 것을 잘 해나가며, 마침내 풍부한 이해에 도달해서 그간 집이라고 부르기를 간절히 원해온 곳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놀랍게도 세부적인 부분에서 그 두 이야기는 분명, 같은 생각을 가진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바로, 집에 도착했을 때 두 주인공 모두 목욕을 함으로써 다시 자기 자신이 된다. ]
장맥주
[ 오디세우스의 유명한 수완 아래에는 해적―왕과 다를 바 없는 불확실한 위상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키클롭스의 손에서 고난을 겪는다.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가 누군지 궁금해하고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이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고 대답한다. 그리스어로는 ‘우티스outis’ 또는 ‘메티스mētis’인데, 전자는 술에 취하거나 턱이 처진 거인이 발음한다면 ‘오디세우스’와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고, 후자 역시 똑똑함, 교활함, 재주 혹은 책략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비슷하게 들린다. 폴리페모스가 다른 키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은 그의 눈을 찌른 자가 누군지 묻는다. 그는 “아무도 아니야!” 또는 “똑똑함이야!”라고 대답한다. 그런 대답을 듣고 난 그의 친구들은―그리고 청중들은―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참으로 멋진 속임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오디세우스는 정말로 아무도 아닌 자이기 때문이다. 닿을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떠 있는 이타카라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본적으로 집 없는 떠돌이다. 스스로가 아무도 아닌 자라고 자임하는 것은 정확히 페니키아인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마치 꿈꾸듯 에둘러서 반영한 것이다. 그가 이타카의 왕, 혹은 그 명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던 라에르테스Laertes의 아들일지언정 『오디세이아』의 세계는 그를 전혀 그런 식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그는 이름 없는 존재다.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조차도 그는 왕이라기보다는 거지에 가까워 보인 탓에 아내와 아들, 신하와 그의 충복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이중적인 지위가 『오디세우스』의 중심에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자신들에게는 영웅인 사람들이 바깥에서는 주변적인 입지에 놓여 있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인간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