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혼자 읽기

D-29
[ 예컨대, 엠포리오와 피테쿠사이(기원전 750~550년에 번성했던 그리스 식민지로 이탈리아 반도에 있었음 _옮긴이) 시대까지 철은 농사짓는 도구를 만드는 재료였는데, 호메로스는 철을 가장 값지고 진귀한 금속으로 취급했기에 금이나 청동196, 색다른 짙은 색깔의 보석과 같은 급의 전리품으로 집으로 가져온다. 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강철과도 같은 기질에 대해 언급하면서, 열을 가하면 신비롭게도 강렬한 붉은 불꽃이 생긴다고 말한다.197 이것은 정확히 기원전 1200년 이전의 청동기시대에 철이 차지하고 있었던 위상을 말해준다. 호메로스의 전사는 ‘은못을 박은 칼’을 들고 다니는데, 그런 칼은 기원전 16세기 미케네의 무덤에서 발견되지만 그 이후에는 거의 발굴되지 않는다. 방패는 커다란 8자 모양이거나 커다란 탑처럼 생긴 것으로 그 뒤에 사람이 성벽 뒤에 숨듯이 숨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기원전 14세기 이후의 환경에서는 고고학자들에게 전혀 발견된 적이 없는 장비들이다. ]
[ 이런 작은 단서 덕에, 호메로스의 그리스어가 여러 면에서 선형 B 문자가 쓰이던 시기보다 이른 시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좀 더 분명해진다. 호메로스에 나오는 어떤 문구들은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호메로스 학자들은 오랫동안 당혹스러워했었다. 하지만 어떤 단어는 글자 하나가 더 들어가면 의미가 제대로 읽힌다. 예컨대 ‘digamma’ 혹은 ‘wau’는 영어로 ‘w’ 소리로 발음되는데 이것이 선형 B 문자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라졌고, 호메로스 본문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본문에서는 아가멤논이 ‘아낙스 안드론anax andrōn(인간의 우두머리)’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 말이 원래는 ‘와낙스 안드론wanax andrōn’이었다고 가정하면 뜻이 통한다. 포도주wine를 뜻하는 그리스어는 ‘oinos’인데, 원래 형태는 영어에 더 친숙하게 들리는 ‘woinos’이다. 초기 형태로 썼을 때만 제대로 읽히는 이런 단어들은 아이아스가 전투에 나갈 때 가지고 갔던, 거인까지도 완전히 감싸는 방패를 묘사할 때도 쓰였다. 그런 방패는 기원전 14세기에 이미 약간 둥그스름한 방패로 대체되었지만, 이런 무기들을 묘사할 때 원래 사용되었던 단어들 가운데 일부는 서사시 안에서 살아남았다. 결국 전투 장비와 단어의 형태, 그리고 시의 형태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호메로스의 기초는 궁전시대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다시 말해 최소한 기원전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 인간의 어떤 유전자군(하플로그룹 E3bIa2)은 알바니아의 구리광산 지역이 중심지로,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발견되며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두 곳만이 예외다. 한 곳은 스페인 서북 지역에 있는 갈리시아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곳은 웨일스 서북 지역의 사람들인데, 두 곳 모두 청동기시대 초기에 주요 구리 광산지였던 곳이다. 결국, 이 유전자군은 마법 같은 금속을 채취하러 대륙을 횡단해온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살아 있는 기억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청동은 근동 지역을 바꿔놓기 시작했고, 중국과 인더스 계곡 지역과 에게 해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도시 벨트의 가장 북쪽 끝에 있었던 트로이는 북쪽으로 가는 길을 장악한 무역도시가 되었다. 글, 관료제, 상인계층과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갖춘 도시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프카스Caucasus 산맥(흑해와 카스피 해를 잇는 산맥 _옮긴이)을 넘어 직물을 팔고 그 대가로 갈수록 많아지던 광산에서 채굴된 구리를 얻었다. ]
[ 아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뻗은 도시들 가운데 오디세우스가 가본 트로이와 아름다운 도시들은 막 탄생된 도시문명의 상징이자 전형이었다. 같은 시기에, 하지만 훨씬 더 북쪽에서도 그 새로운 금속이 인간 역사에 비슷하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다른 비도시 지역에서도 청동기를 기반으로 한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심리적 변화가 모두 한꺼번에 카스피 해 근방의 초원지대에서 발칸 지역을 지나 북유럽으로까지 광범위하게 뻗어나갔다. 이런 변화는 아킬레우스가 그 상징이 된 문명을 창조했다. 그것은 도시 세계가 아니라 전사 특권층과 공격적인 남성성을 중심으로 한 세계, 남성적인 신을 찬미하고 폭력이 중심이 되는 세계, 거주지나 공공건물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무기류와 속도와 폭력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다. 이 전사 세계의 영웅들은 훨씬 남쪽에 있는 도시의 관료, 혹은 성벽 축조 기술자나 성문지기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커다란 무덤에 묻히게 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덤은 가축을 없앤 목초지 한가운데에 봉분을 우뚝 쌓아올린 무덤이어야 했다. 이런 세계에서는 고기가 중요했는데, 도살하지 않은 상태로 끌고 다니는 고기용 가축은 하나의 이동식 부의 상징이자 나중에 도살해서 음식을 만들어 향연을 여는 데 필요한 물자였다. ]
[ 이 반半목가적인 경제정치 구조는 나중에 유라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될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전사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하고 특수한 문화가 존재했고 연대도 복잡하게 중첩되어서 시간 지체현상도 많이 보이지만, 그것은 동일한 문화적 단계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청동기시대의 족장문화라는 단일 세계는 대서양에서 아시아의 초원지대까지 유라시아 대륙 북부 전체를 가로질러 뻗어나갔다. 영웅이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한 이 세계는 지중해 동부의 발달된 문자문화 세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수갱식 분묘의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1700년경에 출현한 곳이 바로 이런 세계였다. 호메로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리스 영웅을 통해서 북방 전사 세계의 목소리를 전달했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북쪽 초원지대의 청동기시대 전사들이 말하고 꿈꾸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당시 아일랜드나 독일의 숲에서 말해지고 노래로 불렸던 것의 반향은 오늘날의 민족지학자들이 수집한 이야기와 시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연결고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오직 호메로스뿐이다. 그 관계는 양방향적이다. 호메로스는 청동기시대의 유럽을 비추고, 그 시대의 유럽은 호메로스의 세계를 조명하게 해준다. ]
[ 나는 광활한 사막 끝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다마스쿠스에서 이곳까지 우리가 거쳐온 길은 거칠고 황량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별로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그저 장화를 신은 발끝으로 길 위의 흙만 연신 차올리고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잠시 후 나는 숙소인 제노비아 호텔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텔은 유명한 유적지 반대쪽으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곳은 길이 반듯하게 나 있는 현대적인 마을이었다. 나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오면서 만든 발자국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갈라졌고,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바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한 젊은 남자가 자전거를 끌면서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보다 약간 나이는 더 들어 보이지만 키는 나보다 작고, 다소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제노비아 호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노비아 호텔?” 나는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고, 그는 웃으며 자전거를 돌려 자신이 방금 왔던 길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별 내용 없는 평범한 소통,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밖에 없는 종류의 소통 아닌 소통을 나누며 걸었다. 몇 분 뒤에 우리는 다른 갈림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약간 헷갈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생각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를 맞춰보려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는 자기 자전거에서 손을 떼고 내 팔목을 붙들고 나를 자기 발밑으로 눌렀다. 그러나 그가 나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나는 그를 붙들고 그의 팔을 내게서 떼어냈다. 그는 나를 넘어뜨리려고 소년들이 싸울 때 하듯 내 발 뒤로 자기 발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쯤은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길에서 두 남자가 마구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라니. ]
[ 돌아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왜 그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냥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때리고 그를 쓰러뜨린 다음에 발로 차지 않았을까? 호메로스의 전사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칼로 자신을 겁박한 상대라면 두개골을 부수고 죽여버리지 않았을까? 그거야말로 자신의 위엄을 지키는 유일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일리아스』의 ‘어리석은 아이’처럼 행동했다. 칼에 굴복했고, 상대와 싸우는 위험을 무릅쓰기에는 칼날이 내 얼굴과 몸에 가할지 모르는 것에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 호메로스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언제나 어리석은 존재로 불린다. 적에 맞서서 죽음을 무릅쓰지 않는 탓이다. 그들은 양치기 개한테 몰이를 당하는 양처럼 굴복하고 참는다. 나는 그가 나를 강간하는 동안 흙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 뒤에서는 꼭 발정난 개 같은 그의 가련하고 신속한 몸짓이 이루어졌다. 그가 미친 듯이 움직이는 동안 칼끝은 내 목 옆에서 마구 흔들리고 있었고, 내 정신은 멀리 떨어져서 이 꼴을 바라보다가 문득, 진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나에 대한 볼일을 끝내고 나면 내가 경찰에 알리고 그의 얼굴을 지목하게 될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도 증오와 회한과 수치심 같은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차올라 그 때문에 결국 그가 나를 죽일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 허벅지와 둔부에 자신의 몸을 밀착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순간을 준비했다. 그 모든 게 완전히 평범해 보였다. 공포를 자각하지도 않고 극적인 긴장감도 없었다. 맥박을 더 빨리 뛰게 할 만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이 죽음의 일상성에 대한 내 경험이었다. 그 순간까지 나를 만들었던 모든 것들―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집에 대한 나의 애착, 『일리아스』의 전사들이 늘 그리워했던 과수원과 밀밭, 그리고 영국에 있는 내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한 일도 불가해한 일도 아니었다. ]
[ 내 몸 속에서 맥박이 멈추지 않고 뛰는 한 그저 계속해서 존재했던 내 삶이 그동안 내내 품고 있었던, 존재와 비존재가 지니는 단순하고 핵심적인 한 가지 사실일 뿐이었다. 나는 완전히 짐승이 된 느낌이었고, 나와 내 몸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느껴졌다. 나에 관한 모든 것이 그 칼날에 달려 있었다. 칼은 단순히 내 몸만 찌르는 게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시리아의 흙바닥으로 쏟아버릴 것이었다. ]
[ 그 몇 분 안에, 나는 호메로스적인 반응의 전 영역으로 옮겨갔다. 폭력을 받아들이는 어린아이 같은 어리석음에서, 온전한 내 자신이 되기 위해서 그를 죽이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남자다운 인식으로 이동한 것이다. 막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호메로스적인 영웅들이 그토록 익숙했던 세계에 내가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그 세계는 자신의 목숨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죽음에 달려 있는 그런 세계였다. ]
[ 우리는 일어섰고, 나는 옷을 입고 그는 바지를 올렸다. 칼은 여전히 손에 든 채로. 나는 웃으며 팔미라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바로 팔을 뻗으면 닿는 위치에서 그와 나란히 걸었다. 우리는 그의 자전거를 놓아둔 곳으로 갔고 그는 자전거를 세워 올렸다. 칼은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손에 그대로 들려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자전거가 그와 나 사이에 있게 하고 걸었고, 그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눈을 보고 웃으며 편안한 척,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그가 다시 멈추고 내게로 다가올 때를 기다렸다. 그때를 위해 분노나 공포심 같은 감정은 한 치도 없이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걸으면서 나는 길 위에 놓인 돌을 눈으로 찾았다. 때가 왔을 때 그걸 집어 들어 그의 눈 사이로 쳐서 두개골을 으스러뜨릴 심산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나를 처음에 덮쳤던 지점을 지났다. 더 멀리 갈수록 내가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야자수 수풀 끝에 다다랐고 저 멀리 탁 트인 사막이 푸르스름하게 눈에 들어왔다. ]
[ 그는 내가 갔어야 하는 길을 손가락으로 알려주고는 오른쪽 길을 향해 돌아서 자전거와 함께 그늘진 숲 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마을과 호텔을 향해 사막을 가로질러 계속 걸었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부스에서 내가 의식한 것보다 더 오랫동안 서 있었다. 나는 그날 밤 내가 뭔가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이 더없이 범속하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보다 훨씬 덜 끔찍했고, 전부와 무無가 신비롭게 결합하는 느낌이었다. 아름답지도 쓰라리지도 않았다. 위협이 불러온 것은 극단적인 고요였고, 더없이 분명한 것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위협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 당시 나는 호메로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것들이 전부 호메로스적인 이해의 모든 측면들이라는 사실을. 이런 것들은 효용과 의무가 일상적인 삶의 구조의 한 부분인 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시들은 궁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값싼 전율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낸 과장된 환상이 아니다. 여기에 ‘우와!’는 없다. 호메로스가 순전히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 자체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호메로스의 진실성을 보증하는 한 가지인 것이다. ]
[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그 북쪽의 태곳적 과거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다른 어딘가에서 왔다. 절반의 신성神聖을 지닌 그에게는 출신 도시가 없다. 그는 산악 지대의 켄타우로스에게서 길러졌다. 그의 고향은 호메로스에 나오는 다른 누구보다도 저 멀리 북쪽에 있고, 그의 이야기는 『일리아스』에 나오는 다른 모든 것들과 이상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다. 그는 트로이를 점령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할 것이고, 아나톨리아 서쪽 지역 전역으로 약탈 원정을 떠나며, 그가 없다 해도 헬레네를 되찾아오는 일에 대한 그 모든 설명이 별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
[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맞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다른 그리스인들과 동떨어져 있어서,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진실을 말한다. 그는 강렬한 사랑과 폭력성을 품고 있으며 그 두 가지가 그의 마음속에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 (친구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그의 가장 깊은 사랑이 (그의 적수 헥토르를 향한) 그의 가장 격렬한 폭력성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가까운 이들은 그를 무척 아끼지만,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멸시한다. 하지만 그의 주된 특징은 그를 둘러싼 세상이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따르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다. ]
[ 이렇게 모든 면에서 아킬레우스는 세련된 남쪽의 힘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스스로를 그것들과 대립하는 위치에 두게 된다. 그는 아가멤논이 왕으로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보다 정교해진 정치제도와 오디세우스의 유창한 언변을 비웃는다. 그는 헥토르를 경멸하며, 다른 모든 전사들처럼 도시를 모조리 부숴버리고 싶어 한다. 호메로스는 그를 (북쪽의 위대한 전쟁의 신 아레스와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파괴자’라 부른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인들의 몸과 말을 공격할 때 호메로스의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은 개별적인 죽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몰락이다. ]
[ “드넓은 하늘 위로 연기가 올라가고 있다. / 분노한 신들이 활활 불타도록 허락한 도시로부터.” 아킬레우스는 남쪽으로 내려오기 이전의 세계, 도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세계, 순수와 온전함을 간직하고 있는, 복잡해지기 전의 세계를 제 안에 품고 있다. ]
[ 그는 『일리아스』의 제9권에서 오디세우스에게 하는 대사에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전세가 그리스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로부터 브리세이스를 훔친다.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여자, 그가 “내 마음과 동침하는 여인”이라 부른 여자다. 아가멤논이 그에 대한 우월함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했던 그 도둑질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전장에서 물러나 그리스인들이 죽고 다치기를 바랐고, 그들이 전쟁에서 파국적인 실패를 맛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제 전세가 트로이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에 마음이 다급해진 아가멤논은 잘못을 바로잡아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배를 한가득 채울 전리품과 보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는 오디세우스를 전령으로 보내서 그런 제안을 전하지만 그에 대해 아킬레우스는 장엄하고 간단치 않은 자신의 신조를 개진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
[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막사로 돌아오기 바로 전에,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전사의 영광스런 업적을, 영웅들의 과거를 노래로 불러주고 있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오자 아킬레우스는 영웅이 취해야만 하는 의례적인 행동을 한다. 손님에게 살진 양과 염소 고기, ‘기름이 많이 붙은’ 큰 돼지의 등갈비를 대접한 것이다. 모든 게 의례처럼 행해지고 예의바르게 이루어지는데, 그런 장면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수천 년에 걸쳐 수천 명의 족장들의 거처에서 일어났음직한 장면이다. ]
[ 호메로스 시의 힘은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리아스』의 주제는 전쟁이나 전쟁의 악함이 아니라 존재 방식에서의 위기다. 당신은 아가멤논처럼 당신의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 오디세우스처럼 세상을 적절히 다루는가? 헥토르처럼 다른 무엇보다도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때문에 당신의 의지를 꺾는가? 아니면 아킬레우스처럼 사랑의 고결함과 명예의 순수성을 죽음 앞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믿는가? 호메로스에게는 이런 질문들이 절실했다. 초원의 문화가 도시의 문턱에 도달했을 때 그런 질문들에 답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286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시가 진행되면서 그는 고난을 겪고 성장하고 슬픔에 겨워 이성을 잃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마침내 새롭고 한층 더 깊은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초원의 세계를 의식한 이 위대한 발화를 통해서 호메로스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바로 우리 문명 최초의,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이상주의였다. ]
[ 하늘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초원지대 인도유럽인들의 사고에는 수평을 이루면서도 모순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란어에서 힌두어, 히타이트어, 그리스어와 로마어, 모든 로맨스어, 슬라브어와 독일어 계통, 아일랜드어와 다른 켈트어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파생 언어에서는 정定동사(주어의 수·인칭·시제·법에 의해 한정되는 동사의 형을 가리키는 말 _옮긴이)들이 반드시 정확한 시제를 나타내게 되어 있다. 인도유럽어족에서는 어떤 것도 그것이 발생한 시간 안에 위치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국어족 같은 다른 언어들에서는 시제가 없고 따라서 그런 구별을 지워 없애는 게 가능하다. 그것이 언제 발생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서도 어떤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유럽어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처럼 특수한 의식형태가 시간의 흐름을 한시도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광의 덧없음에 대한 호메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고뇌, 서사시가 시간의 효과를 부정하는 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청동기시대에 수천수만 개의 봉분을 만들어서 그것이 페르시아 만 안의 섬나라 바레인에서부터 아일랜드의 클레어 주에 이르는 유라시아 풍경의 한 특징이 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생각 틀 자체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 탓에 생겨났다. 인도유럽인들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깊은 수준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이 모든 게 지나가버리고 만다는 인식인 것이다. 하늘은 시간 바깥에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그런 영속성을 지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양극성에 대한 생각이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기본 틀은 그런 인식을 둘러싼 채 만들어져 있고, 그것은 예컨대 메시아라는 생각은 절대 싹틀 수가 없는 사고체계다. 영속성과 덧없음 사이의 틈을 메워줄 것은 없다. 신들은 인간과 관계를 맺어서 아이를 낳을지 모르지만, 그 영웅적인 아들 딸들은 그저 언젠가는 죽고 마는 인간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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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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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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