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1. 동아일보 이지훈 기자

D-29
그믐이 새롭게 시작하는 코너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인생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생책 5문5답] 인생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준 책.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를 주는 책.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인생책을 추천받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 첫 번째, 영광의 게스트는 동아일보 이지훈 기자님입니다. 2월 1일 첫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Q1 : 이지훈 기자님,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와 인생책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지훈입니다. 2015년 11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올해 8년차 기자가 됐습니다.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등에서 일했고 지금은 잠시 기사 쓰는 일을 멈추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사람입니다. 표현만 솔직한 게 아니라 행동도 그렇습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절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는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하기 싫은 일도 적당히 해낼 수 있어야 하더라고요.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크게 흥미롭지 않은 일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공력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원래 성격이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여전히 저는 제 감정과 생각을 쫓아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주인공인 드라마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는 드라마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기자가 된 후에도 드라마 같은 사건을 취재하는 일에 더욱 강하게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논픽션, 시나리오, 소설… 어떤 형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좋은 드라마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막연한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에 진학해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갑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쓰는 중입니다. <그믐>에는 왠지 저와 비슷한 계통이신 분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장강명 소설가의 페이스북에서 <그믐>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가입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책'을 고르라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음에 해야지"라며 페이지를 닫았던 기억이 납니다. 단박에 떠오른 책이 없었던 건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에 읽은 책이어서 바로 떠오른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인생책'이라고 하면 대단히 거창하진 않더라도 개인의 생각과 감정 혹은 태도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는 동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일주일 넘게 오랜 기억을 더듬고 열심히 궁리해봤습니다. 다음 글에선 어렵게 고른 제 인생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인생책은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의 <사회문제의 경제학>입니다. 이 책은 헨리 조지가 'Frank Leslie's illustrated Newspaper'에 연재했던 글에 새로 집필한 글을 더해 묶어낸 것으로,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으로 명성을 얻은 후인 1883년에 발간됐습니다. 분배이론, 세제개혁에 집중한 <진보와 빈곤>과 달리 이 책은 불평등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펼쳐낸 논증이 주를 이루며,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인권 등에 걸친 광범위한 영역을 다룹니다. 경제학 훈련이 돼있지 않은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헨리 조지는 '토지 공개념'을 주창한 인물입니다. 자본, 노동에 세금을 매겨 인간의 의욕을 꺼트리지 말고 사회가 진보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치가 높아지는 토지에만 세금을 매겨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자는 겁니다.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치가 무한히 증식될 수 있는 자본, 노동과 달리 자연에서 주어지는 토지는 한정돼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보단 사회 발전(인구 밀도, 확충된 인프라, 인근 주민의 소득 수준 등)에 의해 가치가 매겨진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이 책은 헨리 조지가 자신의 주장을 다층적으로 논증하는 사회 비평서에 가깝지만 불평등에 억눌린 약자들의 구원을 염원하는 구도자의 절절한 기도문 같기도 했습니다. 또 인간 본성, 성서에 담긴 교훈, 자연법칙 등을 토대로 사회문제의 해결방안을 이끌어내고야 말겠다는 집요함이 느껴지는 글들은 결벽증에 걸린 철학자가 쓴 것 같기도 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Q2: 바쁜 와중에도 꿈을 위해 드라마를 집필하고 계시는군요. 쓰고 계신 드라마는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도 너무 궁금합니다. 다음 번에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헨리 조지의 <사회문제의 경제학> 을 인생책으로 꼽아 주셨는데요, 이 책이 기자님의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인생책’이라면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태도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은 제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틀을 구축했다고 할까요? 특히 불평등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이들이 내놓는 해결책에는 일방의 희생을 요구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빈부의 세습이 불평등을 공고하게 하는 건 맞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평등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습니다. 결과로 얻어진 빈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행위엔 부작용이 따릅니다. 정치권력이 비대해진다거나 개인의 의욕을 꺾는다거나 자본이 유출된다거나 하는…. 당위를 앞세우는 해결책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연 법칙을 따르지 않는 방식(마르크스주의)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헨리 조지는 말합니다.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헨리 조지는 개인의 성과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의욕과 노력이 견인하는 사회 발전을 장려합니다. 노력하는 개인은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자식에게 부를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금지되어야 하는 건 개인의 의욕을 꺼트리는 행위입니다. 이런 이유로 헨리 조지는 자본과 노동에 세금을 매겨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자본과 노동은 개인의 의욕과 능력에 따라 규모와 가치가 증식될 수 있는 재화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토지는 자본, 노동과 성질이 다릅니다. 사회가 진보할수록 토지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미개발국 대도시보다 선진국 소도시의 지대가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이 부여한 토지는 한정된 재화입니다. 이 때문에 ‘선점’하는 개인에게 모든 이익이 집중됩니다. 헨리 조지는 여기에서 ‘불합리한 불평등’이 시작된다고 봤습니다. 토지 가치의 증대를 가져오는 사회 발전은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공공의 세금을 통해 인프라가 확충되어야 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어야 하며 교육 수준도 높아야 합니다. 개인이 아닌 사회 구성원이 함께 이뤄낸 성과의 수혜를 토지를 선점한 개인이 독점하는 것은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토지는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신이 모든 인간을 위해 공평하게 제공한 토지를 일부 개인이 선점하게 되면 사회가 진보할수록 빈곤의 총량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게 헨리 조지의 주장입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구축하던 때였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접했지만 <사회문제의 경제학>만큼 제게 충격을 주었던 책은 없었습니다. 헨리 조지를 연구하는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알아봤을 정도였습니다. 관찰자로 사회문제를 지켜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기자라는 직업을 더욱 갈망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헨리 조지가 말한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조세 제도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유효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장려하는 불평등과 의욕을 꺼트리는 불평등은 다른 종류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엔 지금도 동의합니다. 능력주의를 옹호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개인이 (물질·정신적으로) 우상향의 삶을 추구한다는 전제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헨리 조지의 주장에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 내용이 머릿속에 생생한 걸 보면 아무래도 <사회문제의 경제학>은 ‘인생책’이 맞는 듯 합니다. 헨리 조지의 생각을 <그믐>에 오신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Q3: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며 <사회문제의 경제학>은 나온 지도 벌써 꽤 오래 되었네요. 거의 140년 전에 쓰였고요. 이지훈 기자님은 대학생 때 처음 이 책을 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당시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건가요? 처음 읽게 되신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대학교 졸업반 때였습니다. 언론정보학 전공 수업 때 본교 출신 현직 기자 선배가 와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사 사회부 소속 A 기자였습니다.(지금도 재직 중) 구체적인 강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자로서 A 기자의 태도와 생각, 정신에 감화됐었습니다.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일었고 기자가 되려면 왠지 A 기자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무모한 편이었던 저는 A 기자에게 "기자가 되고 싶은 후배"라며 이메일을 보내고 무작정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을 찾아갔었습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기 훨씬 전이었고 인턴 같은 실무 경험도 없을 때였습니다. A 기자를 찾아가서 "기자가 되고 싶다. 어떻게 준비하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8년 차 기자로 살고 있는 제 경우에 대입해 생각해본다면, 만약 특강 때 한 번 만난 한 대학생이 회사까지 찾아와서 티타임을 요구했다면 (기특한 마음은 들었겠지만) 조금 귀찮았을 것 같습니다. 근데 A 기자는 귀찮은 티는 전혀 내지 않고(못 느꼈을 수도 있음) 저한테 책을 몇 권(주로 고전)을 추천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그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A 기자가 추천해준 책 몇 권 중 하나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고 강한 충격을 받은 후부터 저만의 '진짜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업 듣는 시간을 제외하곤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어댔습니다.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고 헨리 조지라는 인물이 궁금해져서 <진보와 빈곤>을 포함한 그의 저서를 모두 읽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또 읽고 싶은 책이 생깁니다. 좋은 책에는 반드시 저자가 자신의 생각에 영향을 준 다른 훌륭한 책을 추천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에 매진한 시기는 3년이 넘었습니다. 2015년 11월 동아일보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그랬으니까요. 제 인생 통틀어 가장 공부 같은 공부를 했던 때였습니다. 고3 수험 공부처럼 짜증나거나 귀찮거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취직이 안 되면 어쩌나 종종 불안에 떨긴 했지만 가장 순수하게 몰입했고 강한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회문제의 경제학> 표지를 보면 독서에 매진하던 당시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정도로 좋은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인생책'으로 꼽은 것 같기도 합니다.
Q4: 학교 도서관에서 책상 위에 여러 권의 두꺼운 책을 올려놓고 그 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책들을 읽어나가는 기자님의 모습이 상상되었어요. 그렇다면 이 책은 특히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나요? 기자님처럼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병들에게 특히 유익한 책일까요?
이 책은 저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관해 더 잘 알고 싶다,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싶다,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저는 시간이 많은 대학생이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됐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했던 때였습니다. 덕분에 이 책이 제게 일으킨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고 독서와 공부와 생각과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불평등, 빈부격차, 부동산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한창 공부할 수 있는 학생 때 읽으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아도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보다 중요한 건 의지더라고요. 이 책은 사회문제에 관하여 더 알고 싶고 더 공부하고 싶고 더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Q5: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회문제의 경제학> 에서 밑줄 그으셨던 문장들을 공유해 주세요.
두 가지를 소개 드리고 싶습니다. 헨리 조지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직접 서술한 문장과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의 추천사입니다.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여러 차례 헨리 조지를 직접 언급할 정도로 그의 사상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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