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도상이란 무엇일까?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법론

D-29
참가자분들께서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이 있으시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히 공유해 주시면 저희가 함께 고민해 봐도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미학책을 접한 지 오래간만이라 내용이 쉬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강연원고 형식이긴 합니다만 난이도가 대체로 어떻게 느껴지셨는지도 궁금하네요.
남은 모임 기간에는 마지막 챕터, 프리츠 작슬의 해설을 읽어 보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르부르크의 뉴멕시코 여행] 챕터입니다. 작슬은 1890년 생으로 1948년 사망한 인물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2장은 건너뛰고 3장만 봤는데, 도판도 많고 재밌네요. 뱀하면 역시 일루미나티가 생각납니다. 그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뱀 이미지가 가진 힘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3장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바르부르크의 얘기가 흥미로운 것도, 어떻게 보면 음모론의 흥미로움과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류학이나 미학에 관해 아는 건 없지만, 바르부르크의 강연은 학술적, 이론적 엄격함보다는 중간단계가 뭉텅뭉텅 빠져있는 데도 냅다 지르는 힘에 더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이 강연이 병원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그런 것도 있겠고요. 그 점이 한편으론 강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강연자인 바르부르크와 그의 캐릭터에 더 관심이 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읽다보면 무지, 신화, 원시성,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힘에 대한 바르부르크의 노스탤지어나 갈망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억지를 보태자면 과거의 도상들에 나타나는 정념정형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바르부르크의 노력은 연구자의 작업처럼 보이기보다는, 그런 힘의 복원을 소망하는 정치가나 예술가, 혹은 광인 예언자의 기획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물론 실제로 광인이기도 했고.. 당시의 연구방법론이란 건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그런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저는 그런 면들이 재미있었네요.
저 또한 1900년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해석은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바르부르크의 다른 작업은 어떤지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론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남긴 학자이다 보니 모든 작업이 이렇게 인상비평적으로 진행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혹은 당시의 학문적 풍토가 아직 미국식 실증주의, 양적 방법론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상세한 자료와 증명보다는 (아마도 독일, 프랑스처럼 유럽식의) 이미지와 논평을 통해서도 학문적 아이디어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당 강연 내용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수정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에른스트 융어도 <강철 폭풍 속으로>를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정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삶의 어느 시점, 혹은 장소나 사건으로 광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최근에 누가 네이트판에 '개구리 소년' 사건에 관해 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돌았던 일도 생각나네요..
듣고 보니깐 그렇습니다. 삶의 특정한 순간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예술가라든지. 혹은 끊임없이 그때를 사례로 사용하는 분석가라든지. 강박적인 트라우마라든지. 어찌 보면 지난번 모임에서 봤던 <자연인>에 등장한 전쟁 경험 속에 평생을 살고 있는 할아버지도 그렇고요. 그런 인물들에겐 지금의 풍경도 마치 게임에서 스킨을 씌우듯, 과거의 경험이 맵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일루미나티며 네이트판이며.. 속된 얘기만 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모임 날짜가 하루 남았습니다! 릴레이 식으로 규칙을 정하고 책을 이어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슬은 해설에서 바르부르크의 뱀 이미지와 번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번개를 보고 두려움에 떨다가, 그것을 설명 가능한, 표상 가능한 개념을 끌어당기면서 뱀이라는 상징을 떠올린다는 것인데요. 이 둘을 동일시함으로써 파악 불가능한 것을 파악할 수 있게(176)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신화의 기능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알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지식과 개념을 만들어 내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문화적으로 전승되고...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나 학문이 되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인류세, 식인, 원주민, 생태계 연구 등이 활발해지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이나, 태평양 군도 원주민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들도 생각나고요. 처음이라 어색함이 많았으나 아무쪼록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셨길, 재미난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또 다른 기획과 도서로 찾아뵐까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2010년대를 다룹니다. 하실 말씀도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바르부르크의 거대한 사유를 느껴보는 데 함께해주신 참석자 여러분께 모두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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