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장 마지막에 '우리는 나무와도 같다'는 윌리엄스의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작은 나이테로부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이테들이 점점 커지며 모든 나이테들이 한 나무 안에 있다는 점이요. 우리 안에도 아직 아기, 어린이, 청소년의 부분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어른인 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끔 아기, 어린이, 청소년 같은 모습이 나오더라도 내 안에는 그래도 어른의 나이테도 계속 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다행입니다.
콘텐츠 보험이 우리나라로 치면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같은 것일까요. 물건 자주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저 같은 '파괴의 손'을 가진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보험이죠. 카페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작가가 한국에 살았다면 카페안에서 물건분실보다는 좋은 자리쟁탈전이 더 심각한 문제인 것을 알았을텐데요. 이 부분 읽다 잠시 문화적 차이를 느끼며 K-보안이 최고라는 국뽕에 차오릅니다.
2-2.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우리 내면의 여러 나이테들을, 우리가 지닌 소중한 것들을 보장받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생애 단계에서 어른이 되는 일이란 다음과 같은 능력들의 개발을 뜻한다. 괴로운 순간에 우리 내면의 가장 조그만 나이테들을 참아내고 주의를 기울이고 돌보는 능력, 성급하게 결론이나 해결책에 도달하는 대신 잘못된 부분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능력, 우리 자신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 준비도 되기 전에 어른의 영역에 던져져 몹시 왜곡된 감각이 아닌, 조금 더 의미있는 어른다움의 감각을 발견하는 능력. (p153)
2-3.
플레이리스트의 유튜브 링크를 따라 들어간 비틀스의 곡 다음에 자동재생된 것이 미국 재즈 음악가 Jon Batiste가 커버한 'blackbird'였는데요.
원곡도 좋지만 존베티스트의 표정과 피아노 연주, 노래를 보니 그 감정이 다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폴메카트니가 60년대 미국의 흑인인권운동의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하니 더 감동적이더라구요. 이 버전도 함께 들으면 원곡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H46yXW4qR_M
[그믐북클럽] 2. <어른 이후의 어른> 읽고 성장하기
D-29
애플망고
프라싱
2-1. ‘어른이란 뭘까?’ 답까지는 아니어도 답 근처까지 미치리라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어른이란게 도당체 뭔지 알 수 없다.’ 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어나간다는게 어른인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1-1에서도 썼지만, 전 이 책이 참 어렵네요. ^^;;
2-2.
1950년대에 성년이 되었던 세대와는 달리 우리의 집단적 이성 속에는 어른다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없고, 그래서 그것을 정의하기 위해 각자만의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 p.112
급격한 사회 변화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더 많은 자유를 선사했지만, 따라갈 각본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 p.113
마치 세상이 기울어진 언덕이고,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오히려 그럴 때가 ‘척’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 p.116
2-3.
혁오밴드의 ’톰보이‘가 떠올랐어요.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란 가사때문인가봐요. 어른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훅 떠올랐나 싶습니다만 가사를 찾아서 보니… 역시 추천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란 가사가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아 뜨끔합니다. 나이 먹는건 실감하지 못하고, 몸은 점점 노화의 징후가 나타나는데… 나는 뭘까? 라고 여적 고민하는걸 보면 말이죠.
Seogarden
2-1.
어른이 된 초자아, 자신을 용서하는 초자아에 대한 내용이 참 좋았어요. 특히 달리기 대회에 나간 어떤 남자가 어린 소년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들을 읽는데 코끝이 찌르르 하더라고요. 저자처럼 저 또한 내게는 없지만 바라던 종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2-2.
131-133쪽
우울증, 혹은 프로이트가 불렀던 것처럼 ‘멜랑콜리아'를 한차례 경험할 때, 사람의 초자아는 “과도하게 가혹해져서 약한 자아를 학대하고 모욕하고 냉대하며,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벌을 주겠다고 위협하고, 너무도 먼 과거에 했던 행동들, 당시에는 가볍게 여겨졌던 행동들을 이유로 자아를 비난한다.” 아, 그게 뭔지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콘텐츠 보험의 반대항 같은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돌봐주고 우리의 자존감을 보호해주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면 우리가 자신에게서 가치를 두는 부분이 무엇이든 그 부분을 비하하고 벌을 주고 깎아내리는 내면의 목소리다.
하지만 좀 더 적응을 잘하고 신경증적인 성향이 덜한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초자아는 그렇게 엄격하고 가혹하고 폭군 같은 형상이 아니다.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지만, 프로이트는 책 속에서 자기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들도 정말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도움이 되고 동기를 부여하고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초자아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런 초자아는 우리에게 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허락하고,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면서 좋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초자아에 대해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전 어느 자선단체에서 하는 달리기 대회에 나갔을 때, 나는 어떤 남자와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 소년 앞에서 천천히 달리게 되었다. 우리가 달리는 동안 소년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다정한 말들을 쏟아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정말 잘하고 있어. 바로 그거야, 그냥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계속 내디디면 돼. 자, 이제 조금 있으면 언덕이다.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가팔라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너무 힘들면 언제든 쉬어가면 돼. 내가 보기에 우린 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방금 지나온 언덕보다 그렇게 많이 가팔라 보이진 않거든. 그것도 안 멈추고 잘 올라갔이니까, 이번에도 한번 해보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남자의 말에 귀기울이는 동안 나는 어떤 거대한 감정이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마치 내게는 없지만 바라던 종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그 소년이나 아버지나 그들의 관계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내가 듣기로는 아주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남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들에게 벌을 주기보다는 보호해주는 초자아를 부여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133쪽
건강하게 발달한 초자아의 일대기. 힌셜우드는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의 개념들을 따라가며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초자아는 “서로 관계 있는 자기혐오와 처벌”로 특징지어지지만, 그 두 가지가 수 없이 오간 뒤에 모든 것이 잘되면 어른이 된 초자아는 “자기용서의 출현”을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힌셜우드는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는 초자아를 잔인한 처벌에서 관대한 보상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초자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일 거라고 생각한다.
13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셜우드가 설명한 자신을 용서하는 초자아는 때때로 여전히 너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그런 어른이 된 초자아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을 용서하는 내면의 감각이, 좌절이나 불행에 직면했을 때 생겨나는 일종의 회복력과 강건함이 사무치도록 갖고 싶다. 이것들은 아들을 돌보던 그 남자가 그랬듯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들이다.
140-141쪽
카티 윌리엄스에게 도움이 되어준 건 친구들이었다. 그가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흑인 여성 친구들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통틀어 제가 이렇게 정당하고 존재감 있고. 이해받는 존재라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의 배경은 모두 다르다. 카티 윌리엄스는 자메이카인과 인도인의 피를 물려받았고 친구들은 나이지리아, 자메이카, 우간다, 가나, 트리니다드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영국인의 눈에 그들은 똑같아 보이고, 그것은 그들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이 공간을 흑인 여성으로서 헤쳐나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어리고 백인 친구가 많았을 때, 그가 친구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할 때면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이런, 그건 그냥 네가 상상해낸 거잖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기분을 좀 바꿔보지 그래.” 하지만 지금의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다른 반응이 돌아온다. “네 기분 알겠어. 그런 일이 일어나서 유감이야. 얘기 좀 더 들려줄래?” 혹은 “네가 조금 더 마음이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카티 윌리엄스는 이런 변화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는데 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과,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이 정당하고 존재감과 자격을 지니고 있으며 상처받았다고 느껴도 된다는 걸 아는 것은 다르다. 그에게 자양분이 되어 주고, 그를 격려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준 것은 이런 관계들이었다. “그게 저를 가장 저 자신처럼 느끼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가장 어른처럼이 아니라요. 어쩌면 어른다움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로 향하는 여정에서,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저 자신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142-143쪽
“・・・ 그건 ‘안기는 느낌’이에요.”
정신분석학자들은 이 ‘안기는 느낌’을 단순히 신체적인 경험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아기의 몸이 부모의 두 팔에 안겨 있는 동안 아기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에 안겨 있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안락함,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상태가 계속될 거라는 감각을 가져다준다.
143-145쪽
비온의 이론은 우리는 태어날 때 새로움이라는 끔찍한 상황 속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몸과 마음 양면에서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통제되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감각들과 감정들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우리는 완전히 무력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기들이 그렇게 울어대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정 어린 부모는 두 팔로, 마음으로 아기를 안아줌으로써, 아기가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호화해 말로 바꾸려고 노력함으로써—몽상을 통해—이런 압도적인 느낌들을 담는 그릇이 되어줄 수 있다. 그건 마치 부모가 감정의 되새김질 거리를 씹으며 아기의 감정들을 조금 더 다루기 쉬운 형태로 아기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소화하는 것과 같다. 만약 모든 게 잘되면 그 감정들은 조금 덜 압도적이고 조금 덜 무서운 것이 되고, 아기는 포용되는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윌리엄스는 이것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이고, 단번에 정답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며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걸까? 안아줬으면 하는 걸까? 어디가 아픈데 뭐가 문젠지 말을 못 하는 걸까? “저는 몽상과 포용의 과정에선 궁금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한 태도보다는 부모가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정말로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을 때 포용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월리엄스는 그렇게 말한다. 이것은 반드시 소리 내어 말해야 하는 과정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상태다. 아기가 결국 자기 자신을 포용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궁극적으로 허락해 주는 것은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타고난 재능, 불확실한 것과 공존하고 알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능력으로, 이는 부모가 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어른이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마음을 발달시키고,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감정을 기호화하고, 자신을 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운다.
2-3.
‘안기는 느낌’,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과 관련해서 루시드폴의 <천사의 노래>가 떠오르네요.
홍텐이
2-1
p.117 그게 제가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기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그렇게 ‘척‘을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p.128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한계와 취약한 부분들을, 언제 스트레스를 받고 언제 몸이 아픈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알아야만 한다.
p.144
아기가 결국 자기 자신을 포용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궁극적으로 허락해주는 것은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타고난 재능, 불확실한 것과 공존하고 알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능력으로, 이는 부모가 줄 수 있다. 그 능력은 아기가, 그 다음에는 아이가, 그다음에는 어른이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마름을 발달시키고, 감정에 압도되지않도록 감정을 기호화하고, 자신을 포용할 수 있게 해준다.
p. 153
나의 어린애 같은 감절들은 떨쳐버리고 때려눕히고 붙잡아 감옥에 보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포용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이해할 만 한 것이 될 수 있다.
2-2
학대하기보다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내는 것의 중요성으로 챕터를 정리했습니다. 성장하면서 사회의 기준에 맞춰 무엇이 되어야한다에 스스로를 얽매이진 않았는지 생각해볼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책에서 언급된 인종차별만큼은 아니겠지만 ’학벌‘과 ’능력주의‘가 제 시야를 막고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 원인도 조심스레 짚어보았습니다
2-3
노고지리의 ‘찻잔’이 떠오릅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차에서 틀어놓던 옛날 가요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노래 중 하나입니다. 사실 노래의 가사가 챕터의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도입부의 멜로디와 가사의 일부가 차가운 손을 작지만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멜로디는 개인이 느끼기에 따라 너무 다를 수 있기에 언어로 표현하기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긴합니다. 실제 가사는 연인을 만질 때 느껴지는 따스함이 퍼지는 사랑을 표현하지만, 저는 두개의 자아가 작지만 깊게 서로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을테니까요
오후
2-1. 여러 인터뷰이 가운데 '레거니'가 기억에 남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자신을 구체적으로,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는 논지가 와 닿았어요.
2-2. pp.151-152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덜 어른스러운 부분들에 이만큼 너그럽고 친절하게 반응하는 방식이 또 있을까. 이것은 내적으로 몽상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자신의 모든 다양한 부분을 돌보는 것이다. ... 어른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자기 자신을, 자신의 반응과 대답들을 이해하는 사람일 수 있다
2-3. 질문을 읽는 순간 이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https://youtu.be/BjuYbFpwMsU
매일그대와
2-1.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뜨끔하며 시작한 2장이었습니다. p.104에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한 애덤의 비유와 p.146의 어른다움에 대한 레거니의 의견이 그 뜨끔함을 다독여주는 듯하여 고마웠고요.
읽다 보니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전투적인 일이 아닌가 싶어, 도망도 치고 부정도 하면서 잠깐의 방황과 고민을 활명수삼아 또 조금 나아가보게도 되는 거겠지 생각하며, 응원군을 얻은 듯 또 살짝 옆으로 도망쳐보는 저를 또 발견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2-2.
p.153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우리 내면의 여러 나이테들을, 우리가 지닌 소중한 것들을 보장받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생에 단계에서 어른이 되는 일이란 다음과 같은 능력들의 개발을 뜻한다. 괴로운 순간에 우리 내면의 가장 조그만 나이테들을 참아내고 주의를 기울이고 돌보는 능력, 성급하게 결론이나 해결책에 도달하는 대신 잘못된 부분이 어디인지 궁금해 하는 능력, 우리 자신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 준비도 되기 전에 어른의 영역에 던져져 몹시 왜곡된 감각이 아닌, 조금 더 의미 있는 어른다움의 감각을 발견하는 능력.
2-3.
‘칠흑 같은 밤을 까만 새가 노래하며 날아오를 때 그리는 자유’의 노래와 어쩌면 비슷할 것 같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노래를 떠올리며 읽은 2장이었어요.
제가 꼽아보는 2장 주제곡은 국가대표 OST인 Loveholics의 Butterfly로 하겠습니다.
가사도 좋고, 도입의 반주부터 응원이 되는 듯해요.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도도새우
2-1.
나를 돌보는 법. 나 스스로를 보듬어 주는 것. 얼마 전 기질검사를 하고선 내가 태어나기를 매우 예민한(사회성 민감도 100)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나는 늘 주변에 잘 적응하고, 눈치도 빠르고 무던하게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 타인의 감정변화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서 눈치있게 행동하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보다는 타인을 잘 챙기고, 신경쓰는 사람으로 지냈는데, 얼마 전 이별을 겪은 후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뭘 놓치며 살아가고 있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도 하고, 거리를 두고 지냈던 책도 꾸준히 읽으려하고, 3월부터는 공부도 시작하기로 했다. 이게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집중하는 이 시간이 스스로는 멋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의 내 모습이 좋다. 앞으로의 내 모습도 기대된다.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2-2.
그건 역에 도착하는 기차와 떠오르는 태양의 차이예요. 기차가 역에 언제 도착하는지는 모두가 알죠. 요란한 소음과 연기와 함께 낡은 증기기관차가 들어올 때 시각은 정확히 5시 32분이라든가 뭐 그런 식이죠. 기차는 그 시간에 거기 와요. 어른이 되는 건 그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어른다움은 아마 떠오르는 태양에 더 가까울 거예요. 정확히 언제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일어나고 있을 때는 알게 되죠. 점점 더 밝아지니까요.(104p)
이것은 샐러드에 올라가는 잣 같은 보여주기식 아름다움이며, 표면 밑에서 이루어지는 충실한 진짜 성장과 반드시 짝을 이루는 건 아니다.(115p)
사람들은 이 모든 걸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차단한다고 생각해도. 바쁘게 지내고, 텔레비전을 보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나머지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서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말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는 거죠. 사람은 자신한테 정말로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가 훨씬 더 쉽다고 저는 생각해요.(119p)
어른이 된다는 것에는 사실 자기 자신을 돌볼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도 포함되는 것 같아요.(125p)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는데 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과,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이 정당하고 존재감과 자격을 지니고 있으며 상처받았다고 느껴도 된다는 걸 아는 것은 다르다.(141p)
괴로운 순간에 우리 내면의 가장 조그만 나이테들을 참아내고 주의를 기울이고 돌보는 능력, 성급하게 결론이나 해결책에 도달하는 대신 잘못된 부분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능력, 우리 자신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153p)
2-3.
자우림-스물다섯스물하나(그냥 나의 20대가 떠오르는 노래라서 읽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이하이-한숨(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억눌려있던 20대였던 것 같아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느려터진달팽이
우선 브금 깔고 가겠습니다~
https://youtu.be/YA2VauTY-sg
사실 노래보다 관련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들이 생각나서 무슨 곡을 할까 생각 좀 했는데요. 저자가 어린시절로부터 독립해야 하는데 아직은 보호받는 어린이이고픈 마음과 고군분투하는 것이 일종의 분리불안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예전에 많이 들었던 넬의 separation anxiety를 가져와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많이 떠오르긴 했습니다. 거기 주인공은 이 책에서 다루는 보통범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어른되기의 고군분투 양상과는 좀 다르지만, 나중에 주인공이 상황을 깨닫고 현실을 수용한 후 압축적으로? 성장한다 또는 최소한 그렇게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줄거리가 등장하는데요. 인상적이었어요.
여기에서는 성인진입기 emerging adulthood를 나타내는 특징으로 108p => 1. 정체성 탐색, 2. 자아에 대한 집중, 3. 사이에 끼어있다는 감각, 4. 가능성에 대한 낙천적인 느낌, 5. 불안정성을 말합니다. 저자는 거의 모두 자신에게도 해당한다고 고백하는데요~ 소위 일정표에 따른다면 수년전에 진입을 끝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데에 따르는 '뒤쳐진다'는 감각에 따라오는 불안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9p 저는 원래부터, 정말로 쪼끄맸을 때부터 어른이 되어야 했는데 그건 일종의 학대라고 생각해요. ᆢ 어린아이한테 그런 걸 얘기하는 거잖아요. 이는 아동노동만큼이나 충격적인 노동이라 표현하며 어떤 아이도 절대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어 다음장에서 강해지려 애쓰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강인한 흑인 여성이란 말따위! 정말로 끔찍하다는 표현을 하시네요.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때, 넌 똑똑하잖아. 넌 씩씩하잖아는 식으로 고맙다기 보다는 당연한 defalut인것마냥 여겨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또 누군가는 알아주기도 하고 그랬지만요~ 생각보다 여기 남기는 일이 1기 때와 달리 좀 심리적인 부분이라 부담도 느껴지는 게 사실이네요; 글 남기시는 분들 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가입 후 그저 보고 계시기만도 했던 것 같구요;; 암튼 ㅎ 2장은 이렇게 마무리를☆
바닿늘
오잉?? 그믐이 새롭게 바뀌었네요??
부지런히 적응해야겠습니다. ^^;;;
도우리
훨씬 더 예뻐진 그믐, 마음껏 누리시고 피드백 주세요 ^^
호디에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호디에
2-2
115.
나는 우리가 이렇게 측정 가능하고 수량화하 수 있고 현실적이면서 지연되고 있는 중요한 경험들ㅡ독립, 주택대출, 결혼ㅡ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어른다움을 손쉽게 정의하고 어른이 도지 못한 상태의 더 깊은 의미에 관해 고민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17.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일종의 갑옷 입는 법을, 어른의 역할을 수행하는 법을 배운다.
119.
바쁘게 지내고, 텔레비전을 보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나머지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서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말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는 거죠. 사람은 자신한테 정말로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가 훨씬 쉽다고 저는 생각해요.
129.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건 남자다움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뒤틀리고 왜곡된 대답이니까요. 남자다움은 자기가 정의하는 거예요. 너는 어떤 사람이지? 너는 어떤 사람이야?
134.
나는 그런 어른이 된 초자아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을 용서하는 내면의 감각이, 좌절하거나 불행에 직면했을 때 생겨나는 일종의 회복력과 강건함이 사무치도록 갖고 싶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돌불 수 있게 해주는 도구들이다.
151.
다양한 어른의 방식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고, 가끔씩은 그냥 차단해버려도 괜찮다는 걸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남들에게는굉장히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건 어른의 대응 전략이에요.
153.
괴로운 순간에 우리 내면의 가장 조그만 나이테들을 참아내고 주의를 기울이고 돌보는 능력, 성급하게 결론이나 해결책에 도달하는 대신 잘못된 부분이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능력, 우리 자신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 준비도 되기 전에 어른의 영역에 던져져 몸시 왜곡된 감각이 아닌, 조금 더 의미있는 어름다움의 감갈을 발견하는 능력.
승환
짬짬이 본다는게 게으름이 도졌는지
입춘지나 봄 바람이 불어 졸았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늦었습니다
1장 읽는중입니다
부지런히 읽겠습니다
도우리
환환님, 화이팅입니다! ^^
승환
읽다가 얼마전 심리치료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내가 나를 모르고 잘살고 있구 그러다 죽을수 있겠지요 아마 주변인들과의 단절이나 트러블을 이해 못하고 살거 같아요 어차피 완전체는 될수없겠지요 알수도 없고 정답은 없지만 살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 자문하고 생각해야될듯 합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면 전문가나 조언받는것을 두렵거나 무시하지 말아야겠 구나 느끼네요
마토
공감합니다. 저도 마음이 힘들면, 꽁꽁 싸매지 말고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설령 그 전문가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 마음에 응어리를 누군가에게 풀어 낼 수 있는 용기는 실보다 득이라 생각해요. 2장에서 나를 포용할 줄 아는 능력을 어른이 되는 과정 중의 일이라 언급합니다. 나를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포용하는 과정도 조금은 수월하겠지요. ^^
바닿늘
2-1
아넷의 이론에 제 경험을 대입해봤습니다.
우리 나이로 치면 30살까지는 성인 진입 시기라는 점
에서는 대체로 공감되었습니다. 제가 29살을 넘기기
직전에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30살부터 첫 째 아이가
태어나서 키우기 시작했었지만.. 그때까지도 어른이란
느낌을 스스로 전혀 갖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그로부터
3년 후 둘 째가 태어나고, 여러 일을 겪은 뒤에서야..
아주 조금은 '어른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병원신세를 지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건강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로부터도 몇 년이 더 지나서야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만 따져
본다면 '30살 보단 40살이 더 어쩌면 성인 진입기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일반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늘 경계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조금 더 뒷부분에..
"저에게 어른다움은 어느 정도는 남자다움의 동의어
예요. 그러니까 그 질문은 '남자란 무엇인가'이기도
한 것 같아요." 라는 애덤의 사례를 보며, 저도 오랜
시간을 성 고정관념 때문에 고민이 컸음이 떠올랐어요.
물론 지금도 성 고정관념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경계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얻게 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짧게 적어보자면 저는 남자입니다만..
장난감 피규어를 좋아하고, 장식장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한 때 열대어도 열심히 키웠었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꺼내놓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성 고정관념에서 제법 벗어났다는 증거죠. "침묵은 금이다"
라는 말을 정말 최악으로 싫어합니다. 사회가 규정해놓은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보는 것이 어쩌면.. 나를 알아
가는 첫 걸음 같기도 합니다.
2-2
아넷은 결국 성인 진입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18세
에서 29세 사이에 겪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이 시기가
시작될 때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자신이 어른이라고
느끼지만, 끝날 때, 그러니까 20대 후반이 될 때쯤이면
질문을 받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된 기분이라고
대답하곤 했고, 그런 다음 보통은 책임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무엇보다 먼저 나오는 단어예요. 책임." 아넷이
말한다. 책임은 아넷이 '3대 요소', 즉 그가 인터뷰한 사람
대다수가 어른다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이어진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능력이고,
둘째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 셋째는 경제적 독립
이다. 아넷이 30년 넘게 이 질문을 해오는 동안 사람들의
대답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한다.
"아뇨." 결과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내내 한결
같았다. "사회가 명백히 변화하고 경제도 좋았다 나빴다
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죠."
하지만 연구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결과를
찾아냈다. 아넷의 질문은 인도와 남아메리카, 중국, 그리고
다른 지역들에서 연구를 촉발시켰는데, 그 연구들은 우리가
어른다움을 이해하는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똑같지 않으며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p105~106
아넷은 18세에서 29세까지의 사람들 수백 명과 한 인터뷰
를 기반으로 이 새로운 생애 단계의 다섯가지 특징을 식별
해냈다. 정체성 탐색, 자아에 대한 집중(이것은 이기적 성향
이라기보다는 자아의 발견이라고 아넷은 강조한다), '사이
에 끼어 있다는' 감각, 가능성에 대한 낙천적인 느낌, 그리고
(관계, 거처, 직업 등에서의) 불안정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거의 모두 내게도 해당된다. 내가 성인기에 완전히 진입했다
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결혼과 거처에 있어서의 안정
성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 면에서는 여전히 어느 정도 불안정
함을 느끼고 있다. 30대에 정신역학적 심리치료 교육을 받으
며 책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넷의 일정표에 따르자면
수년 전에 진입'을 끝내야 했을 내가 여전히 성인 진입기인 것
처럼 느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나는 궁금하다.
p108~109
애덤이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내 머릿속에는 이미지 하나가
떠오른다. 슈퍼맨 의상을 입고 창턱에 올라선 꼬마 소년 애덤
이 날 수 있다고 믿으며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광경이다.
애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의 한계를 완전히 부인하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자신이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없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물리치료사에게서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들어야 겨우
연습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애덤이 한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는 일의 핵심적인 부분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을, 우리의 한계와 취약한 부분들을, 언제 스트레스
를 받고 언제 몸이 아픈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알아야만
한다. 내가 이 슈퍼맨 이미지 이야기를 하자 애덤은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어른다움은 어느 정도는 남자다움의 동의어
예요. 그러니까 그 질문은 '남자란 무엇인가'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 질문에 대해 우리 대부분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듣게
되는 대답은 남자란 이래야 한다고 사회가 규정해놓은 모습일
것이다. p128
2-3
블랙버드를 이번에 처음 들어봤어요. 팝송보단 가요를
즐겨 듣는 편이라.. 비틀즈 라는 그룹이 평화를 노래했
었다는 정보만 알았을 정도로 비틀즈를 잘 몰랐습니다.
곡 정보를 찾아보면서 어떤 배경에서 이 곡이 만들어
졌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위키백과에 따르면..
매카트니는 이 곡의 가사가 1960년대 미국의 불행한
인종 관계뿐만 아니라 인도의 리시케시의 블랙버드의
부름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네요.
흠.. 제가 주제곡을 뽑는다면.. 요즘 한 달 넘게 출근길을
함께하는 마왕 신해철 - 민물장어의 꿈 을 추천하고 싶어요.
해당 곡은 마왕이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틀어질 곡으로
정해놨다고 했었을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곡이기도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쯤으로 줄일게요.
시간 되시면 가사에 집중해서 한 번 들어보세요. ^^;;
느려터진달팽이
남자분이셨을 줄이야! 대단히 지적이고 수다스러운 동년배 아줌마?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같이 나이들어가는 아줌마로서 😀 서른살보다 마흔이 요새는 정말 더 '어른'이란 지위에 걸맞는 것 같아요. 자리잡는 것도 다 늦어지고 있고 물론 야무진 청춘들은 진즉 모든 걸 다해놨지만 말입니다~ black bird는 일본 어느 법학을 하다 재즈가수로 전향한 분의 버전도 많이 들었는데 그런 사회고발적 배경이 있었는줄은 몰랐어요. 민물장어의 꿈도 너무! 좋죠 ㅠ 신해철 죽어서 수십년만에 다시 피아노학원에 발길을 들였던 1인☆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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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1-1.
옛날에는 가정을 꾸릴 나이이기도 했던 18세라는 나이에 갑자기 어른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건 현대 사회에서는 좀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계속 해 왔습니다. 사실 대학생 정도의 연령의 성인(?)을 봐도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몸만 큰 아이 같은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그리고 복지시설에서 18살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도 없는 아이들이 사회로 내몰리는 광고(?)를 볼 때마다 나라에서 살 집 정도와 최소한의 생활비는 마련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신적인 조력자도요. 책에도 영국의 경우를 예시로 들었듯이요.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법적인 정해주기’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로 미성년자와 성인을 구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규정이 없다면 미성년자들이 더욱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 될 것도 같고요.
근데, 읽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이 왜 부모나 어른으로서의 우리가 성장하는 그들에게 맞춰 주어야만 하는가입니다. 그들에게 그것 또한 너희들의 성장 과정이며,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그들 또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서로가 존중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 사회는 ‘더 나이든 자’에게 매우 냉혹합니다. ‘나이를 저렇게 먹었는데...’ 등등의 이유로 윗세대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항상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타자화시키고 배척하거든요.
미성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딱히 그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도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듬어 주되, 따끔히 성장과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 그것으로 인해 상처 받는 부분도 있겠지만, 부모나 주변 어른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아이도 (크게) 변하지만, 어른도 어제의 나는 아니니까요.
최선을 다해 보호와 조력을 해 주지만, 그들이 겪는 모습은 ‘다른 형태로’ 우리도 처음 겪는 것이니까요.
1-2.
39p :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배우고 적응하고 변화하고 있고, 그건 멈추는 법이 없어요.
우리가 뇌에 관해 아는 바에 미루어볼 때 이건 사실입니다.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형태는 평생 달라질 수 있고, 무언가를 배우는 데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걸 저 개인의 삶에서도 느껴요. 우리는 10대 후반이나 20대의 어떤 나이가 되면 그냥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고, 우리는 그것들을 발견하고 있는 거죠.
44p : 나는 언제나 어른들이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 어른이 된다는 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진다.
83p : 샘에게 아이들은 꿈꾸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고,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하는 부당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공모자가 되어 뭐든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고, 변화의 과정도 자연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94p : 새로운 시작이 엉망진창인 이유는 엉망진창일 필요가 있어서다.
1-3.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에 대한 시기심 부분’은 제 SNS 하는 스타일과 달라서인지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저와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건 이해 되었고요. 제 경우에는 큰 기술도 예쁘게 꾸밀 수 있는 기술이 딱히 없어 그냥 잘 찍은 사진 중에 골라 그야말로 ‘지껄이고 싶은 대로’ 글을 올리기 때문인지, 다시 제 글을 보거나 사진을 보면 저의 행복했던 과거가 떠올라 즐겁습니다. 예전엔 과거에 대한 기록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정말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게 요새 드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음....다들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 얘기하지 않으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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