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기나긴 연휴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네요. 오늘부터 저는 시작입니다. 같이 읽는 다는 게 참 좋네요. 오늘부터 하루 10장씩 한달이면 끝이 나겠네요. 생각보다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서 가스렌지 옆에서 요리가 되어가는 동안 잠시 읽었네요. 댈러웨이 부인의 유명한 문구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이 가서 꽃을 사와야겠다고" 말한 문장이 저에게도 참 인상 깊네요. 저 역시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오늘도 누군가의 대문 앞에 꽃한송이와 댈러웨이 부인의 책을 놓고 올 것 같아요. 괜시리 눈물이 핑 도네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문장은 page11. 인간이란 참으로 바보로구나"하고 그녀는 빅토리아가를 가로지면서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또한 인생을 그렇게 상상하고는, 인생을 자기의 주위에 쌓아 올리고 또 허물어뜨리며 매순간 쉴 사이 없이 새로이 창조하려고 하는 것인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몰골의 여자들, 현관 계단에 정말 실망낙담하여 쪼그리고 앉아 있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누추한 인생들(이들의 몰락에 축배를 들자!), 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 하긴 그들도 인생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빌린 책이 집사재 출판사 밖에 없어서 약간의 번역이나 해당 페이지가 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D-29
호야네
박하사탕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 앞에 있는 이것, 여기, 현재였다. ... 필연적으로 완전히 죽는다는 것이 문제가 될까. 그녀 없이도 이 모든 것들이 틀림없이 계속될 것이었다. . .. . 사물이 밀리고 미는 흐름 속, 여기, 저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는 살아남고, 피터도 살아남아, 서로서로의 존재 속에서 살리라...... 그런데 해처즈 가게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무엇을 꿈꾸고 있지? 그녀가 되찾으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20-21p.
아직은 무슨 얘기를 하려하는지 쫓아가는 중입니다.
클라리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런던거리를 걸으며 죽음을 떠올리고 있네요. 이 산책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누구나 그렇듯이.
냅다
원문이 궁금해지는 표현들, 문장들이 많네요. 대조해서 보고 싶은 곳들이 쌓여가고 있어요. 기다리지 말고 지금 냅다 질러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
청광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사고 장애 중 한 현상으로 floating of ideas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이 둥둥 떠 다니는 것이지요. 책에서도 댈러웨이 부인 시선이 가는 곳마다 각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하는 생각들까지 의식의 흐름으로 다가 옵니다. 현재 지각하는 시간과 공간이 모두 떠 다니는 듯, 여기에서 저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흐름 속에 있고 그 속에 있는 각 인물들의 의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쫓아가려고 할 필요 없이, 각 시간과 공간들이 떠 다니며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읽으면 될 듯합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쫓아가는 스토리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듯합니다.
전승민
@몰운대 안녕하세요! 제가 답변이 조금 늦었습니다. 이미 참가중이신 것으로 뜨는데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계실까요? 읽고 계시다면 반갑고 기쁘겠습니다!
전승민
@박하사탕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제 거의 완독하셨을까요? 읽고 있는데 내가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도록 만드는 게 울프의 마력이기도 한 듯합니다. "쌓아 올리고 무너뜨리고 매순간 새롭게 삶을 창조"하는 게 울프가 삶을 보는 핵심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을 보면 밀려왔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느껴지지요. 삶이라는 것의 진실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인물들에게는 공감이 좀 가셨나요? 어떤 인물들에 주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셉티머스를 사랑해요.
전승민
@호야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제 어느 덧 책 읽기도 중반 이상을 지나셨겠지요? 인상깊었던 구절을 부러 타이핑 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한번 더 대목을 읽게 되니까요. 첫문장으로도 아주 유명한 이 소설의 의미심장함이 이미 완독 전에 느껴지셨다니 좋군요! 요리 하시는 동안 잠시 읽으셨다는 독서 기록도 기쁩니다. 어떤 때, 어느 장소에서 읽느냐에 따라 같은 책도 많이 달라지는 듯해요. 저는 병원에 있을 때 끼고 살던 책이라 지금의 일상에서 다시 읽으니 또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제가 도심을 걷는 행인1의 입장이니까요.
전승민
@냅다 원문 대조하며 읽는 느린 읽기의 즐거움이 있지요! 아마 그러다 보면 번역보다 원문에 마음을 훨씬 더 주게되실 듯합니다만 ㅎㅎ 냅다 지르셨나요? 궁금합니다. 옥스포드 판을 추천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전승민
@청광 조현병이라는 키워드가 새롭습니다! floating ideas의 양상이 소설의 흐름, 속도와도 비슷할까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쫓아가는 스토리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듯"하다는 감상에 무릎을 탁 칩니다. 그렇지요. 플롯, 구성 이런 것들이 울프의 소설에서도 분명 분석대상이긴 하지만 핵심은 그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활자들의 흐름인 듯해요. 어디까지 읽으셨을까요? 궁금합니다. 소설의 서술적 흐름 뿐만 아니라 내용, 인물들의 감정에는 어떤 감상을 느끼셨나요?
전승민
여러분, 각자 자유롭게 잘 읽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느덧 새해도 두 번째 달로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의 흐름과 방식, 양상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셨는데요. 인물들은 어떠한가요? 가령, 피터 월쉬를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이 쪼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데요 ㅎㅎ 샐리와의 관계는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찰나의 과거라는 점에서는 언제나 좀 아쉽고 씁쓸하고요.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한번 말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의 원앤온리러브는 언제나 셉티머스예요. 나무와 교감하는 장면을 혹 읽으셨다면, 이 부분은 어떻게 읽으셨을까요?
전승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달 동안의 읽기 모임이 끝나고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_ㅠ 생각보다 더 많은 후기를 듣고 싶었는데 어쩌면 제가 더 많은 말을 해서 마중물을 더 만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완독은 다들 어느 정도 하셨을까요? 인도와 영국,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을 내달리는 소설의 흐름에 압도되진 않으셨을까요? 마지막 엔딩에서 인물S와 그의 주치의와의 장면은 또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상반기에 제가 서울의 모 동네 책방에서 버지니아 울프 장편소설로 깊이 읽기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못다한 읽기는 혹 관심 있으신 분은 (이런 말씀드리기 너무 부끄럽고 머쓱하지만)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을 여기에서 공지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아직 책방과 협의 중에 있어서요.
아쉬운 마음 안고 댓글을 씁니다. 오늘 자정까지니까요, 마지막으로 더 감상을 남기고 싶으신 분들은 가감없이 얼른 마구마구 써주세요.
수북강녕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문득' 다시 주목하게 되면서 여성의 삶과 읽기, 쓰기에 대해 생각이(생각만) 많았던 지난 한 달이었어요 외국에 머물렀던 시간, 다른 일들의 시간에 쫓겨 댓글을 많이 남기지 못했고 S와 주치의와의 장면에 대해서도 정리해 쓰기 쉽지 않은데요, 동네책방지기의 한 사람으로서, 동네책방에서 버지니아 울프 모임 하시는 것 대단히 관심있고 응원합니다 ♡
호야네
288쪽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저들 좋은대로 지껄이겠지.
267쪽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사물의 본체와 통하려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묘하게 회피하기 때문에 중심을 맞추기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느끼게 되었다. 친밀감도 떨어지고. 기쁨도 식어간다. 인간은 고독했다. 죽음 속에 커다란 깨달음이 있었다.
149쪽 풍토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여 진정한 신앙으로부터 이탈시키려고 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 사원을 파괴하고 우상을 쳐부수고, 그 대신에 자기의 엄격한 면모를 내세우려고 지금도 분주하다.
148쪽 인간은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즉 균형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방으로 들어와서 그리스도임을 자칭하고 (흔히 있는 망상인데) 대게 그러하듯이 메시지가 있다고 하면서 종종 자살 하겠다고 위협하며 균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침대에서 요양을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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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쪽 이 소설을 읽게 되는 독자들은 조심해아 할 것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일반적인 소설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 백에 백은 중간에 손을 놓게 되거나 책을 던져 버리게 된다. 우선 특별한 줄거리가 없고 중심 인물도 없다. 클라리사라는 인물과 런던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의 의식을 따라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조심해야 할 것이 더 있다. 댈러웨이 부인을 다 못 읽을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창가에 기대어있다가 떨어져 버릴 것 같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물이 떨어져 버릴 것 같고 세상이 너무 슬퍼서 누군가를 향해 오지 말라고 미친 듯이 소리칠 것 같고 내가 내 슬픔에 못 이겨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어 가지고 강물에 걸어 들어갈 것만 같은 괴로움만 가득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슬픔을 뒤로 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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