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동시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게 사랑이라는 말씀이 재미있네요.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인식을 했다는 것은 내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과 같으니까요. 뒤로 돌아가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고르든, '선택'이라는 걸 해야 하기에 (어느 쪽으로든) 사랑이 기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ㅋㅋ <부부의 세계>와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를 경유해 들려주신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오디의 2♡ 노래가 떠올랐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른 수록작도 그렇지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참 많지요.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도 많으셨을 듯한데요, 자신의 밑줄을 공유해 주세요!
"개판이었어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헤더, 교수들과 있을 때 늘 그런 언어를 사용하나요?" "아뇨. 강의 끝나고 아파트로 초대하는 교수님하고 있을 때만 그렇죠." "제가 잘못 풀었으면, 그러니까, 제가 맞지 않았으면 말이에요, 저를 왜 이곳에 초대하셨어요?" 그는 거실로 걸어와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쳐다봤다. "헤더는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것이 시험이었어요. 헤더는 통과했고." "그럼 이제 저는 A를 받게 되나요?" "아뇨. 차를 좀 얻어 마시게 되지요." 헤더와 로버트의 위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계속 곱씹어 보게 되는 장면들이나 문장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챕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 그는 스토브에서 주전자를 들어 도자기 포트에 뜨거운 물을 옮겨 부으며 말했다.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무언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강해져서 그것에 대항하려 애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그때에도, 콜린이 내게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러다 보니, 나도 나 자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로버트로부터, 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공감 백배인 문장입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죄의식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주인공만큼은 아니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는 하지요. 비밀이라면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이 상대방에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밑줄 그었던 문장들이에요.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인증글입니다. ✍️인상적 구절 절대 풀 수 없는 방정식. 십 년이 지난 지금도...설명하기 힘들다.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92) 나이가 들면 역설에 환멸을 느끼기가 쉬워지지요. 모든 물리학자들에게,자기를 넘어서는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자기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수준,하고 그는 말했다.(95) 그는 젊고 잘생기고 뻔뻔스러울 만큼 고집이 셌고,세 계에 대한 건강한 낙관이 가득했다.(96) 내가 그 영화가 별로였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것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노력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술을 이해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101)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106) 무언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강해져서 그것에 대항하려 애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117)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보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보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 생각에,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시킬 수 있는 나의 일부이다.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이다. 로보트는 내가 거의 10년 동안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가끔은 그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십년이 되었고 그 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에 가까운 재정 상태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반응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는, 그 사실을 내면화하여 속으로만 삭일 것이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다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일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126) ✍️단상 고대 그리스인들이 물질의 근원으로 꼽은 네 가지 원소 불, 흙, 공기, 물 중엔 빛이 없다. 빛은 물질인가?”물질을 알갱이, 즉 입자들의 집합체라고 한다면,“빛도 물질인가?”란 질문은 “빛도 입자인가?”란 질문과 똑같다. 그러나 빛은 파동이다.따라서 빛 자체는 물질이 아니다.하지만 햇빛이 비치면 공기가 데워지고 데워진 공기로 우리 몸이 따뜻해지니,우리 몸을 데우는 빛은 곧 입자일수도 있지않은가?빛도 물질일 수 있지않은가?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제목이 다,했다. 책을 덮고나면 언제나 드는 생각.그래서 빛은 뭐고 물질은 무엇이며 둘에 관한 이 이론은 무엇인가? 적어도 이 소설에서 빛은 파동이 아니라 입자다.채워지지는 않지만 점멸하며 맴도는.
적어도 이 소설에서 빛의 로버트, 물질은 콜린으로 내 안에 빛이 점멸되어 '산 송장'이란 표현처럼 살아있는 좀비같은 삶을 살만큼 사랑했어도 사랑은 현실과는 다른 존재의 것.임이 느껴집니다.
Guilt is the reason we tell our lovers these secrets, these truths. It is a selfish act, after all, and implicit in it is the assumption that we are doing the right thing, that bringing the truth out into the open will somehow alleviate some of the guilt. But it doesn't. The guilt, like any self-inflicted injury, becomes a permanent thing, as real as the act itself. Bring it out into the open simply makes it everyone's injury. (78)
저는 <아술>을 보고 사랑은 서로가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볼 때가 되어서야 이미 많은 걸 망친 현실을 돌아보게 되지만요. 폴은 여전히 캐런 쪽을 보고 있는데 캐런은 폴을 보지 않고 아술만을 바라봐요. 마치 가질 수 없었던 자녀를 늦게야 얻은 사람처럼요. 부부가 위기였던 시기, 캐런은 폴에게 불임으로 인한 괴로움을 털어놓을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야. 불임인 자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난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래서 캐런은 다른 곳을 바라봅니다. ‘위협을 느낄 만한 상대는 아니었’던 남자 교수와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폴이 그 관계에 단호하게 불쾌함을 드러냈기 때문에 캐런은 아술에게 최선을 다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아술이 부부 사이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폴의 환상이 구급차의 경적으로 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안쓰러웠습니다. 아술을 바라보는 캐런과 그런 캐런을 따라 아술을 바라보는 폴, 둘이 좀 더 일찍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는 없었을까요.
단편집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표제작을 읽는 일 같습니다. 내게 온 여러 선물상자 중에서 가장 큰 상자를 열어보는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작은 상자에 들어있는 선물이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표제작에서는 다른 단편을 읽을 때보다 묘한 기대감이 앞섭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빛에 로버트를, 물질에 콜린을 대입하게 됩니다. 로버트에 대한 사랑은 마치 빛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콜린과의 사랑은 물질처럼 ‘손에 잡히는’ 사랑이었으니까요. 소설은 로버트가 낸 방정식으로 시작합니다. 그중 헤더는 가장 오래 남아있고 유일하게 끝까지 남아 답이야 어떻든 풀이해내는데, 그 모습이 로버트를 사랑하는 모습과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헤더는 ‘결국에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몇 시간 동안이라도 로버트의 집에 남아있었으니까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참 뻔한 것 같으면서도 매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묘하게 엮인 것 같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사랑의 크고 적음보다 사랑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로버트에 대한 사랑은 언제부터였을지, 헤더는 콜린을 언제까지 사랑한 것인지, 둘 다 모든 진심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이라면 두 사랑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론, 사랑에 대한 이론은 앞으로도 오래 다뤄질 것 같습니다.
휴스턴은 예전의 휴스턴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오래 살아서 오일 붐을 기억하고 있다.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 마을은 하룻밤 사이에 도시가 됐고, 마을은 예전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일부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는 바라보지 않지만, 이따금은 그 시절이, 대기에 흐르던 그 에너지와 그때의 낙관과 희망이 그립다. 내가 좋아한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세상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리라 생각하며 수영장으로 나가 불을 켠다. 그런 다음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 담뱃불을 붙이고, 잠시 후 수면 위에 반듯이 누워, 별들 아래서 유유히 떠다닌다. 중력 없이, 짝도 없이, 길을 잃고서.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본다. “나는 표류해. 가끔 강의 시간에 학생이 말을 하잖아. 그럼 눈으로는 그 학생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지만 그 학생이 하는 말은 듣고 있지 않아. 나는 강의실에 있지만 강의실에 있지 않아. 내 말뜻 알겠어?” “열일곱 살에 랜드로버를 몬다는 게 상상이 돼?” “아니.” 나는 그려늬 손을 잡으며 말한다. “마흔여섯 살에 랜드로버를 몬다는 것도 상상이 안 돼.” 나는 부엌에 서서 나이 든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아술>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러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강가의 개>와 <외출> 읽고 모이기로 한 날이죠. <강가의 개>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이 소설은 단 두개의 대사로 완성되는 소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나'의 기억이 희미한 그날 밤, 벤슨 씨네 파티장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에세이를 쓰려 했을 때, 교수님이 '나'에게 준 피드백이에요. "독자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알 권리가 있다."(141쪽) 두 번째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 더그 형이 칼러 씨의 자동차 앞 유리를 깬 뒤, 그 잔해를 치우고 있는 '나'를 향해 칼러 씨가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154쪽) 하고 것이었어요. 이 소설은 더그 형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나'의 불완전한 기억을 재구성해 보려는 시도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교수님과 칼러 씨의 모순되는 두 개의 대사가 기억의 모호함이랄지, 불분명한 속성을 더욱 강조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더그 형이 저지른 폭력에 아예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알 권리'가 있지만,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말에 밀려나는 듯하달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강가의 개>에서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셨나요?
<강가의 개> 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라면 거북바위님이 느끼셨던 부분을 비슷하게 느껴서 여러분들이 쓰신 글들을 읽고 내려오다가 흠칫 놀랐어요. 저도 같은 부분을 읽고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에서요. 화자는 폭력적이고 친구들에게 소문거리를 제공라는 형을 부끄러워하죠. 최소한 집밖에서는 거리를 두고 모른척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소설 내내 읽혔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내 형이고 자신이 백퍼센트 무관하지 않기때문에 그 날밤의 일에 대해 알 권리가 있지만, 형에게 두었던 거리때문에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조차 나와는 무관한 일로 비추어진다는 것이 속상하면서도 안도되는 느낌이었어요.
형의 잘못이 나와 무관한 일로 비춰지는 것이 속상하면서도 안도된다는 느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어요. 새벽서가님께서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맹목적으로 믿기가 더욱 어려우셨겠어요. 답글을 읽고 저의 경우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는데요, 저 또한 쉽게 떠오르진 않네요^^;; 최근 저는 믿는 것보다 믿고 싶은 것을 찾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태양은 뜨”겁고 “세상은 명료해 보”(143쪽)입니다. 그와 달리 ‘나’는 ”무슨 뜻인지 말하고 싶“은데도 ”아무 뜻 없다“(137쪽)고 말하고, 더그 형은 ”지금은 다 잊어버린“(151쪽) 이전의 할 말을 끝내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서로의 인생에서 마지막 교차점을 그렇게 통과합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이유는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무얼 말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요. ”나중에는 기억이 나지 않겠“(151쪽)느냐며 무척 앤드루 포터식 발언을 내뱉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이 소설인 듯합니다. 소설의 도입부에 이제서야 내가 그때 형을 미워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요. “그냥 그렇게 조용해졌다”(151쪽)는 문장이 좋았어요. 캐리 선배에게 일어난 일이 모두에게 잊혔듯, ‘나’에게 일어난 이 일련의 일들도 곧 잠잠해쟜겠지요. 더군다나 형은 할리 오토바이를 주고 떠났으니까요. 그럼에도, 앤드루 포터의 인물들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회피하고 유예한 순간을 기어이 ‘지금-여기’에서 재생합니다. 그 시차가 아득하면서도 먹먹했어요.
<강가의 개>에서 처음 이야기가 시작될 때 형에 대한 온갖 소문들에 대해 나오면서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일까 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이 소문들의 진위를 떠나 화자가 받았을 스트레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외출>과 함께 이야기하자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였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 대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낙인에 대해서 특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형의 폭력에 대해서는 그날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게 대부분 이미지인 화자가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형의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어, 무슨 뜻이야?”라는 말에 다시 ‘무슨 뜻인지 말하고 싶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아무 뜻 없어”라고 말한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랬던 화자가 에세이를 쓰려고 했다는 것은 당시에 두려움이나 죄악감 같은 감정을 느끼고 상황을 회피하려다가 시간이 흘러 그날의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말에서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회에서 한 가족과 그 구성원을 바라보며, 때로는 책에서처럼 상관이 없다는 말로 구성원 중 몇을 상황에서 배제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성원 전체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외출>에서는 아미시 공동체의 레이철과 데이트를 하던 열여섯의 봄을 회상하고 있는데요.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아미시는 십대의 어린 '나'에게 호기심을 일게 하기 충분했던 것 같아요. 어딘가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레이철에게 호기심을 갖게 했던 이 특별한 감정은, 소설의 후반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합니다. "나는 가끔씩, 만약 내가 그날 밤 그 아이에게 아미시를 떠나라고―나와 결혼해서 나와 내 가족과 같이 살자고―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곧 대학에 진학하게 될,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으니까."(176쪽) '지금' 시점에서 화자의 생각을 담은 말이겠지만, 사실 그때에도 '나'는 모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와 레이철의 다름이 처음에는 매혹적이었으나 나중에는 결국 그가 자신이 레이철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소름이 돋았네요! <외출>을 읽으며 여러분께 여쭙고 싶은 부분은 166쪽에 있어요. "한마디로 믿음이었다. 믿음과 타이밍. 미끄러졌다 하면,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 하면, 발이 널판 사이로 미끄러져들어가 정강이뼈가 뚝 부러질지도 몰랐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만약 재수가 없어서 발이 쑥 빠져버리는 날에는, 10미터 아래 강물 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물론 한 번도 미끄러지거나 빠지거나 비틀거려본 적이 없었다. 머리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정작 중요한 점은 믿음, 나무 널판이 내가 발을 디디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리고 널판은 항상 그랬다." 화자가 말하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은 정말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일 텐데요, 이 책을 함께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그렇게 어리고,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을 이미 훌쩍 지나오셨을 것 같아요^.ㅠ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보다 조심스러울 게 더 많고, 믿음 또한 신중하게 쌓아나가실 텐데요. 여러분들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때가 있을까요?
‘내’가 아이작 킹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나는 내가 그를 미워한다고 믿었다.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미웠다.” (174쪽) <강가의 개>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외출>의 화자 역시 그때는 미워한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던 것일까요. 평론가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내‘가 레이첼에게 가졌던 우월 의식의 발현인 것 같아요. “우리는 어렸고 왠지 섹스란 것은 다른 문제들—책임과 성장—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았으며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167쪽)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집에 나오는 10대 인물 중 뭐랄까 가장 ‘반-성장적’ 인물로 보여서요. “비정상이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162쪽) (그러나 진짜 ‘비정상’인 사람은 자각조차 못 하는 사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책임과 성장’은 청소년기의 주요한 과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소설집의 청소년들이 어떤 책임을 지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비교해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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