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3) <코요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공간이었어요. 아버지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지하실'과 화자가 유년을 보낸 공간인 '지붕'이 그러한데요. 각각의 공간이 갖는 의미보다야 이 사이의 간극이 집 그 자체라는 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집, 곧 가족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는 이 공간, 가족이 갖는 유대 같은 것이 '나'에게는 사실 부재했던 것이니까요.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이상화시켜 채워넣었"던 "아버지가 우리 삶에 남긴 빈 공간"이 '나'에게는 지붕 아래의 모든 곳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러분들은 이 소설에서의 공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화자에게는 자신의 침실이 있고, 침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볼 수 있음에도 지붕 위에 앉는 모습에서 지하실과의 거리감이 더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지붕에 있을 때 코요테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바다를 보는 모습에서는 가족 문제에 대해 벗어나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데이트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잠들지 못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모습에서 결국 지붕도 이 집의 구성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의 경우 화자도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공간이자 지하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단순히 아버지의 독립된 공간이라 느껴지기보다는 가족과의 단절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고, 상업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구하는 모습 또한 지하실의 이미지와 겹쳐 세상과의 단절처럼 느껴졌습니다.
3) <코요테>를 공간으로 읽으니 또 새롭습니다. 지하실에는 제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 거실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거실에서는 가족이 한자리에 있어서 불편하거나 혹은 가족이 아무도 없어 공허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갖는 유대가 나에게는 부재했다는 말씀이 그런 점에서 더 와닿습니다.
(3) 미국의 집들 대부분은 주마다 다르긴해도 지하실이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토질과 지반에 따라서 만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거든요. 지하실이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보통 세탁실로 사용하거나 창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뭔가 음침하고, 무서운 공간이라는 인식들도 있습니다. 그런 지하실에,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이인 나, 알렉스는 출입할 수가 없죠. 완벽하게 아버지에게만 속한 공간이니까요. 폐쇄적인 공간, 가족에게 폐쇄적인...특히 아들인 나에게는 더더욱 그런 공간을 아버지로 표현했다는게 느껴졌어요. 그에 반해서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내는 지붕은 늦은밤 데이트를 하거나 일을 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살피고, 멀리서 울어대는 코요테까지도 살필 수 있는 공간이죠. 그래서 저는 알렉스와 그의 아버지를 지붕과 지하실이라는 공간에 엮어 써낸게 센스있다 싶었어요. (4) 보통 우리가 movie라고 애기하는건 극장에 가서 보는 상업적인 영화들, 그리고 film이라고 얘기할 때는 인디 영화나, 외국어 영화, 뭔가 심오한 뜻을 가진 것들을 주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 점에서 데이빗과 엄마,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유정님의 고찰은 타당하게 보이고 공감됩니다.
4)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39~40쪽에 걸쳐 진행되는 아버지와 '나'의 대화예요. 어머니의 회사 사무실을 향해 가는 길, 아버지는 '나'에게 "영화 찍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냐고 묻습니다. '나'는 영화(movies) 말이냐고 되묻지만, 아버지는 영화(films)라고 답하지요. 영화라는 뜻은 같지만 movie와 film은 각각 상업영화, 예술영화로 차이를 갖습니다. 이 의미의 차이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당신이 결혼한 열아홉 살의 아가씨, 버클리대 미대 학생, 학생 시절 찍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 몇 년에 걸친 그의 유일무이한 팀원"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영화(films)의 인물이지요. 그러나 지금,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 있는 어머니"는 데이비드의 영화(movies)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니까요. movies와 films가 '영화'라는 단어 옆에 병기되어 있어 그 차이를 생각하며 읽을 수 있던 부분이었어요. 원문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계속 찍어온 영화(films)와 같이 어머니에게서도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계속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곁에 남아있다고 생각했기에 데이비드와 함께하는 모습을 봐도 어머니와 마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스킨십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구체화되어 일적인 것이든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든 이 모든 것이든 지금까지 버텨오던 힘을 잃고 무너져버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화자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It was dark by the time we finally pulled into the empty parking lot of the firm. My father parked next to the building, beneath a banyan tree, and turned off the engine. I could see that the light in my mother’s second-floor office was still on, and when she came to the window and stood there, I realized that my father had not come to see her about money at all. He didn’t even seem to want her to know we were down there. He leaned back in his seat, his face hidden in shadow, and as she stood in front of the window in her navy skirt, talking on the phone, I sensed that my father was not seeing the successful attorney my mother had become. I sensed that he was seeing the nineteen-year-old girl he had married, the art student at Berkeley, the star of all his student films, his sole crew member for several years—because he turned to me then and smiled. He said, “There will never be anyone in your life as beautiful as your mother.” I nodded. “Remember that,” he said, putting his hand on my shoulder. “If you don’t remember anything else, remember that.” 원문이 궁금하다고 하셔서 올립니다.
*덧. 어머니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아버지의 정신이 급격히 쇠해진 것도 아버지의 영화를 중심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45쪽에서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의 영화는 "쇼쇼니 인디언족에게서 보이는 영혼에 대한 믿음, 육체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가 아주 긴밀히, 거의 공존하다시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들의 의식 태도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요.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 아니지만, 정신적-육체적인 믿음의 연결고리가 깨져버린 것은 어머니와 데이비드의 스킨십 장면을 정확히 목격한 이후니까요.
저의 질문 외에도 함께 읽은 소설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을 남겨 주세요! *.*
<구멍>을 읽으면서 호시 신이치의 <이봐, 나와!>가 떠올랐습니다. 구멍이 나오고 거기에 뭔가를 자꾸 버리고 결국 그 댓가를 치른다는 면에서 비슷하더라구요. 예전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을 때는 왠지 읽다 그만두었는데 이 모임을 계기로 다시 읽어보니 재밌네요 *.*
호시 신이치의 '이봐, 나와!'가 궁금해서 검색해봤어요! <봇코짱>에 있는 작품이 맞나요..? SF 소설인가봐요?? (더욱 궁금해집니당)
네, 맞아요. [봇코짱]은 SF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재밌어요. 어떤 댓가를 치르는지 직접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라는 영상물로만 접했을 뿐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요, 반달님의 댓글을 보니 더욱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이봐, 나와!>라는 소설이 정말 <구멍>과 닮아 있네요. 그러고 보면 구멍이나 굴이 등장하는 소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한국소설 중에서도 강화길 작가의 단편 중 하나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저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이번에 두 번째로 읽는데요. 앤드루 포터의 인물들이 이미 지나가 버린 어느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에 주석을 다는 사람들이라 너무 좋았어요. ”그때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자주 우리와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 어렸다.“ (19쪽) “이후 세월이 흐른 뒤 깨닫게 된 것인데,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단어들과 그것들에 실린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0쪽) ‘나’와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유년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유년의 모든 때를 지붕에서 보냈던(29쪽) ‘나’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 사이를 얼마만큼 거닐었을까요. 마주하는 밑변에 수직으로 발을 내려 두 꼭짓점을 절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만 행복한 가정만큼 불행한 가정이 있으니까. <코요테>의 화자인 ’나‘의 가정은 행복하지는 않았죠. 그렇다면 아이는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누가 더 잘해주었고 잘 못했는지에 (때로) 관계 없이요. (그런 흔들림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도 모르고 흔들리는 아이…) 분노하고, 책임을 묻고,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 ‘내’가 이런 동사들을 그때에도 수행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시간은 시간의 일을 합니다. “그때 내게는 그 모든 상황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23쪽)고 ’내‘가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프면서 정확해서 좋았어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그러나 있었던 줄도 몰랐던 그것을 지금에서 다시 들춰보는 일. 그리고 지금의 입장으로 과거를 곡해하지 않는 일—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종종 행복하지 못했다는 아픈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코요테>의 ‘나’는 그때도 지금에도 자신을 가감 없이 바라보고 있어서 좋았어요.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에 주석을 다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많이 와닿습니다.
반갑습니다. 참여하게 되서 행복합니다.
안녕하세요, 몰운대님! 어서 오세요!
<구멍>속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은 처음 불법적으로 구멍을 만든 탈의 아버지, 잔디 깎는 일을 시킨 탈의 형이 느끼는 것의 무게보다 더 클 필요가 없을 터이나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훨씬 크게 와 닿았을 거 같아요. 당시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을 변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 같고 그 고통과 죄책감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편지를 보내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하네요.
저도 이소님과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탈의 사고로 굳이 책임을 묻자면 아버지와 카일 형이 무관하진 않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탈이 그 구멍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화자가 느끼는 것만큼의 무게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목격자로서 그가 갖는 죄책감의 무게는...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테니까요. 편지에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면 할수록 그날의 일은 '나'에게 더욱 생생하게 리마인드 됐을 거고, 변명하는 느낌도 들었을 것 같아요.
'코요테'의 공간은 지붕과 지하실로 나뉘어짐과 동시에 "집안은 싸늘했다. 공기 속에 바람이 느껴졌다"(32p)와 같이 가족의 단절은 정작 집안을 머무르는 자가 없이 모두 부재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코요테는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로 외롭게 집 밖을 서성이고 있는데 아버지 역시 침입자처럼 몰래 그 순간 쭈구리고 앉아 메모를 남기고 떠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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