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1)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 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1쪽) 가끔 잠에서 깬 후, 방금까지 꾸었던 꿈과 지금부터 시작되는 생시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어요. 내가 그런 일을 했었나?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나? 정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떼어 붙여 만든,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가상의 경험. 부정적 감정이 그 가상 세계의 생성을 촉진하는 듯하고요. <구멍>은 짧지만 강력한 소설이고, 그건 화자인 ‘내’가 자기 친구인 탈의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의 여기 있음,과 친구의 여기 없음,은 단지 같은 시공간에서 발생했을 뿐 독립시행이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탈의 죽음과 ‘나’의 ‘생존’이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당시 어렸던 ’내‘가 그러한 시선을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트라우마로 남았을 테죠. 꿈속에서 수없이 그 장면이 반복되었을 것이고요. 그렇기에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유일한 목격자니까. 그가 이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고백을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2) 탈의 사고 이후 '나'의 가족이 펜실베이니아주로 이사오고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탈의 형인 카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지요.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나'는 형에게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문의 편지를 쓴 뒤, 결국 그 편지를 부치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둡니다. '나'는 지금도 탈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는 날이면 옆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매번 그 이야기를 할 정도인데요, 왜 카일의 요청에는 끝내 회신을 할 수 없었을까요?
질문에 대한 답글을 질문 밑에 달았어야 하는데. 삭제해서 옮기려니 삭제가 안되네요. 처음이라 미숙하네요. 다음엔 제대로 달아볼게요
저는 ‘나’의 꿈속에서의 진실과 편지를 보내지 못한 이유 모두 ’나‘의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정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날의 감정들이 꿈에서 변주되면서 나타나는데 그것들이 현실 속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나‘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사실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있어선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그날 자신이 탈을 민 것 같기도, 부추기기도 한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나’에겐 진실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이렇게 죄책감에 억눌려 있는 '나’라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의 무게를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탈의 형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지 않을까요? 만약 탈의 부모가 그날 이후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면, 너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현실 속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나'에게 있어선 진실이 아닐까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비슷하게 할 수만 있다면 꿈에서라도 진실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에서 다른 분이 말씀해 주셨듯이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던 '나'라면 상황 설명을 위한 편지를 썼다고 한들 그것이 자기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연루되고, 죄책감에 짓눌렸을 것 같아요 ㅠ.ㅠ 만약 탈의 부모가 그날 이후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면, 하는 가정도 흥미로운데요. 정말 그렇게 했더라면, '나'의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카일'은 본인의 일인 잔디깎이 일을 동생이 하게함으로써 동생의 사고가 일어난 데에 상당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 문득 '탈'과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어서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일'은 '나'에게 그날의 일을 상세히 알려달라고 편지를 씁니다. 처음에 '나'는 나의 아픈 마음을 동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으로 그날 이야기와 내가 꾸는 꿈, 형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장문의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탈'의 장례식에서 '나'에 대한 '탈'의 부모님의 싸늘함을 기억했고, '카일'의 편지에서 알고싶어 하는 그날의 자세한 이야기란 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곧 '카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와 '탈'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닌 '탈'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임이 '나'임을 듣고 싶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저는 읽어냈습니다.
“꿈속에서의 진실”에 대해서 장례식장에서 탈의 부모님이 말을 걸었더라면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카일에게 썼던 편지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꿈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덧붙이긴 했으나 보내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것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진실 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꿈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고 느끼는 바에 대해 가족인 카일에게는 전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편히 털어놓아 내려놓고 싶어 가까이 있는 인물인 여자친구에게 매번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2) 카일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는데, 화자는 그날의 일을 요구하는 카일을 통해 일종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였으며 당시 현장에 있어 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서 그간 어디에 털어놓을 수 없었던, 사건으로서의 정황이 아닌, 자신이 느꼈던 그날을 털어놓을 기회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털어놓지만 다 쓰고 나서야 자신의 편지를 돌아봤고, 편지를 읽고 카일이 다시 빠져들 죄책감과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을 그제야 마주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카일에게 편지를 쓸 당시에 ‘나’는 자신이 기억하는 사고 당시의 사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가 사는 곳에 올 일이 있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을 쓴 것으로 보아 탈의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인 카일을 만나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처럼 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동질감 또는 위안을 느끼고, 탈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의 삶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그 ‘사고’에 대해 이제 좀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편지를 다 쓰고 나서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부치지 않은 이유는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그날’의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탈은 죽었고, 자신은(또는 자신만) 살아 돌아왔다는 점에서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을 해결할 방법이 없고, 그래서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에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책, 죄책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구멍> 마지막 장면에서 ‘나’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나’의 꿈 장면이 나오는데, 탈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고 또 그것을 막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온 ‘나‘는 육체는 살아 있을지라도 영혼은 탈이 죽었을 때 함께 죽었음을 나타내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요.
3) <코요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공간이었어요. 아버지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지하실'과 화자가 유년을 보낸 공간인 '지붕'이 그러한데요. 각각의 공간이 갖는 의미보다야 이 사이의 간극이 집 그 자체라는 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집, 곧 가족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는 이 공간, 가족이 갖는 유대 같은 것이 '나'에게는 사실 부재했던 것이니까요.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이상화시켜 채워넣었"던 "아버지가 우리 삶에 남긴 빈 공간"이 '나'에게는 지붕 아래의 모든 곳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러분들은 이 소설에서의 공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화자에게는 자신의 침실이 있고, 침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볼 수 있음에도 지붕 위에 앉는 모습에서 지하실과의 거리감이 더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지붕에 있을 때 코요테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바다를 보는 모습에서는 가족 문제에 대해 벗어나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데이트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잠들지 못하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모습에서 결국 지붕도 이 집의 구성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의 경우 화자도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공간이자 지하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단순히 아버지의 독립된 공간이라 느껴지기보다는 가족과의 단절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고, 상업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구하는 모습 또한 지하실의 이미지와 겹쳐 세상과의 단절처럼 느껴졌습니다.
3) <코요테>를 공간으로 읽으니 또 새롭습니다. 지하실에는 제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 거실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거실에서는 가족이 한자리에 있어서 불편하거나 혹은 가족이 아무도 없어 공허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갖는 유대가 나에게는 부재했다는 말씀이 그런 점에서 더 와닿습니다.
(3) 미국의 집들 대부분은 주마다 다르긴해도 지하실이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토질과 지반에 따라서 만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거든요. 지하실이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보통 세탁실로 사용하거나 창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뭔가 음침하고, 무서운 공간이라는 인식들도 있습니다. 그런 지하실에,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이인 나, 알렉스는 출입할 수가 없죠. 완벽하게 아버지에게만 속한 공간이니까요. 폐쇄적인 공간, 가족에게 폐쇄적인...특히 아들인 나에게는 더더욱 그런 공간을 아버지로 표현했다는게 느껴졌어요. 그에 반해서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내는 지붕은 늦은밤 데이트를 하거나 일을 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살피고, 멀리서 울어대는 코요테까지도 살필 수 있는 공간이죠. 그래서 저는 알렉스와 그의 아버지를 지붕과 지하실이라는 공간에 엮어 써낸게 센스있다 싶었어요. (4) 보통 우리가 movie라고 애기하는건 극장에 가서 보는 상업적인 영화들, 그리고 film이라고 얘기할 때는 인디 영화나, 외국어 영화, 뭔가 심오한 뜻을 가진 것들을 주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 점에서 데이빗과 엄마,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유정님의 고찰은 타당하게 보이고 공감됩니다.
4)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39~40쪽에 걸쳐 진행되는 아버지와 '나'의 대화예요. 어머니의 회사 사무실을 향해 가는 길, 아버지는 '나'에게 "영화 찍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냐고 묻습니다. '나'는 영화(movies) 말이냐고 되묻지만, 아버지는 영화(films)라고 답하지요. 영화라는 뜻은 같지만 movie와 film은 각각 상업영화, 예술영화로 차이를 갖습니다. 이 의미의 차이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당신이 결혼한 열아홉 살의 아가씨, 버클리대 미대 학생, 학생 시절 찍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 몇 년에 걸친 그의 유일무이한 팀원"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영화(films)의 인물이지요. 그러나 지금,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 있는 어머니"는 데이비드의 영화(movies)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니까요. movies와 films가 '영화'라는 단어 옆에 병기되어 있어 그 차이를 생각하며 읽을 수 있던 부분이었어요. 원문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요!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계속 찍어온 영화(films)와 같이 어머니에게서도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계속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곁에 남아있다고 생각했기에 데이비드와 함께하는 모습을 봐도 어머니와 마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스킨십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구체화되어 일적인 것이든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든 이 모든 것이든 지금까지 버텨오던 힘을 잃고 무너져버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화자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It was dark by the time we finally pulled into the empty parking lot of the firm. My father parked next to the building, beneath a banyan tree, and turned off the engine. I could see that the light in my mother’s second-floor office was still on, and when she came to the window and stood there, I realized that my father had not come to see her about money at all. He didn’t even seem to want her to know we were down there. He leaned back in his seat, his face hidden in shadow, and as she stood in front of the window in her navy skirt, talking on the phone, I sensed that my father was not seeing the successful attorney my mother had become. I sensed that he was seeing the nineteen-year-old girl he had married, the art student at Berkeley, the star of all his student films, his sole crew member for several years—because he turned to me then and smiled. He said, “There will never be anyone in your life as beautiful as your mother.” I nodded. “Remember that,” he said, putting his hand on my shoulder. “If you don’t remember anything else, remember that.” 원문이 궁금하다고 하셔서 올립니다.
*덧. 어머니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아버지의 정신이 급격히 쇠해진 것도 아버지의 영화를 중심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45쪽에서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의 영화는 "쇼쇼니 인디언족에게서 보이는 영혼에 대한 믿음, 육체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가 아주 긴밀히, 거의 공존하다시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들의 의식 태도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요.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 아니지만, 정신적-육체적인 믿음의 연결고리가 깨져버린 것은 어머니와 데이비드의 스킨십 장면을 정확히 목격한 이후니까요.
저의 질문 외에도 함께 읽은 소설에 대한 자유로운 감상을 남겨 주세요! *.*
<구멍>을 읽으면서 호시 신이치의 <이봐, 나와!>가 떠올랐습니다. 구멍이 나오고 거기에 뭔가를 자꾸 버리고 결국 그 댓가를 치른다는 면에서 비슷하더라구요. 예전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을 때는 왠지 읽다 그만두었는데 이 모임을 계기로 다시 읽어보니 재밌네요 *.*
호시 신이치의 '이봐, 나와!'가 궁금해서 검색해봤어요! <봇코짱>에 있는 작품이 맞나요..? SF 소설인가봐요?? (더욱 궁금해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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