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소유정 평론가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함께 읽기

D-29
저도 혼자 읽을 때 너무 좋아서 다시 읽어야겠다고 꼭 다짐했었는데요, 이렇게 많은 분들과 다시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ㅇ^)/!
여러분, 안녕하세요? 명절 연휴 잘 보내셨나요? 내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만, 저는 조금 일찍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해요. 여러분들은 부담없이, 자신의 속도에 따라 답을 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구멍>과 <코요테>를 읽기로 했지요. 두 작품 모두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소설이에요. <구멍>은 죽은 친구인 탈 워커에 대해, <코요테>는 영화 감독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1) 우선 <구멍>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어떠셨어요?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듯한 느낌이지 않았나요? 이웃에 살던 또래 친구 탈 워커의 집에 있던 커다란 구멍은 "부정한 어떤 것, 하나의 비밀"처럼 여겨지는 은밀한 공간이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아래쪽이 폐하수관으로 연결되어 있어 워커 씨의 가족이 그 구멍을 통해 몰래 쓰레기를 투기했기 때문이에요. 그 쓰레기들은 엄청난 유독가스를 발생시켰고, 그로 인해 구멍에 빠진 탈과 두 명의 소방관이 사망하게 되지요. 사실 <구멍>에서 화자는 소설 전체를 통틀어 탈의 죽음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 가령 죄책감, 후회, 그리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감정들은 조금씩 변주되어 꾸는 꿈으로 나타나곤 하지요. 소설의 말미이기도 한, "내가 꾸는 꿈속에서의 진실"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한데요. "내가 꾸는 꿈속에서 구멍에 잔디 봉지를 빠뜨리는 것은 탈이 아니라 나라고. 어떤 때는 내가 녀석을 밀어넣는다고. 한번은, 내가 녀석에게 내려가보라고 부추겼다고."(15쪽) "꿈속에서의 진실"과 꿈 바깥의 진실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요?
장면 하나하나가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듯한 느낌, 너무너무 공감해요! '구멍' 뿐 아니라 이 책의 모든 작품들이 그런 느낌이예요. 저는 3년 전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처음 읽었는데, 처음 '구멍'을 읽고나서 한동안 정말 멍- 하게 있었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부분 '꿈 속에서의 진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저를 혼란스럽게 하네요..@_@ 진실... 그것이 알고싶다.... '내가 구멍에 들어가고, 탈이 살게 된다'는 마지막 문장을 봐서는 '꿈 속에서의 진실'은 '그날의 진실'은 분명 아닐것 같아요.
맞아요. 소설 속 문장들이 섬세해서 그런지 몰라도 풍경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아주 많지요. 토끼풀님의 말씀처럼 지금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꿈 속에서의 진실이 그날의 진실과 같지는 않겠지요. 다만 꿈 속에서라도 가능하다면 이루고 싶은 진실은 아니였까 싶어요.
조금 전까지 익살스러웠던 친구 '탈'이 구멍에 들어가 곧 죽어버리게 된 사고를 나는 12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기억을 합니다. 구멍에 유독가스가 가득 차 있어서 질식사로 판명났지만, 그 사고 현장에 '나'가 있었기에 '탈'의 죽음을 혹시나 본인이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수도 없이 꾸며 괴로워 합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던 일상이었고 '나'도 평소와 다를 바 없게 행동했던 게 잘못였던 것처럼 말이지요. '탈'이 구멍에 들어가고 '나'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나'는 이미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대한 무기력함과 충격이 컷을 것으로 짐작되어 집니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친구의 죽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고 전후 상황에서 '나'가 이렇게 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았을 뿐이지요. 죽은 자를 기억하는 남은 자의 몫이 참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맞아요. 로지님의 말씀처럼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친구의 죽음을 변하지 않지만, 꿈에서라도 죽음이라는 진실을 바꿀 수 있다면 탈이 아닌, '나' 자신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심정이 느껴졌어요. 죽은 자와 남은 자라는 언급을 해 주셔서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프레모 레비가 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말씀하셨듯 짧지만 장면을 따라가면서 계속 상상을 하게 돼서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은 글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상상을 하며 따라가다 보니 "꿈속에서의 진실"에 대한 언급이 나왔을 때 살짝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탈이 구멍에 들어가던 모습에 대해 말했던 부분이 그 일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 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다."라는 말에서 "꿈속에서의 진실"의 내용이 어쩌면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반복해서 꾸는 악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후회로 인해 왜곡된 형태의 꿈으로 나타나 “꿈속에서의 진실”이라 말한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다시 책 내용을 보고 글을 적어 보는데 계속 새롭게 생각이 듭니다. “꿈속에서의 진실”에 대한 평론가님의 의견도 궁금해지네요! +덧붙이자면 구멍에 쓰레기를 버리고 이 쓰레기가 유독가스를 발생시켰으며, 세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주목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어떠한 행동이 이후에 어떻게 될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 모든 과정이 정말 알 수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 두 편을 읽었지만 자꾸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두 편을 다 부채감이라는 코드로 바라봤는데요. <구멍>에서 꿈속에서의 진실과 꿈 바깥의 진실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데, 이 의도적인 애매함은 곧 소설이 사고(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의 정상 그 자체보다 사고를 둘러싼 마음을 다루고자 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독가스나 카일의 떠넘김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던 꿈속의 일마저 사고의 원인처럼 다뤄지기 때문에, 사고의 사실보다는 그 마음들이 더 무겁게 와닿았습니다. 사고를 떠올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 중에서는 ‘만약 이랬다면 살았을 텐데’ 같은 긍정의 가정도 자연스러울 텐데, 화자는 특히 부정적인 가정, 다양한 버전의 죄책감을 상상한다는 점도 그렇고요.
저는 제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신청했는데, 십여년전쯤 출간된지 3-4년쯤 되었을때에 읽었던 책이더라고요. 저만 이런 경험 하는건 아니겠죠? (1) ‘구멍’ 을 읽으면서도 ’코요테‘를 읽으면서도 과거의 나에 대한 부채감, 혹은 현실의 나의 삶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첫 이야기에서의 ’나‘가 꿈속에서 말하는 진실과 꿈 바깥에서 말하는 진실 그 중간 어디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요? 적극적으로 탈이 구멍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던 나, 혹은 주머니를 구멍에 넣었을 수도 있는 나는 결국 친구의 죽음의 원인이었을 수도, 방관자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야기의 서두에 오래적 일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연 실제를 기억하는 것일까요? 얼마 전에 저는 친구와 고등학생 시절을 추억하다가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2) 한가지 이유는 아닐것 같습니다. 탈의 죽음에 자신이 어느 정도 일조했다는 죄책감도 이유중 하나일것 같구요. 그 당시의 상황을 본인이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때였을 수도 있을거 같아요. 누구든 그런 충격적인 경험후에는 자신이 뭘 보고 들었는지, 경험한 것들에 대해 확신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장례식장에서의 탈의 가족이 나를 대했던 태도도 그렇고, 결국 카일이 원했던 것은 자신이 할 잔디깎는 일을 동생에게 떠넘김으로써 동생의 죽음에 일조했고,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의 일을 이야기해달라며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나에게 동생이 죽은 원인이라고, 자신의 죄책감을 떠넘기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나의 입장에서는 탈을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신나서이야기를 써내려가다가 그 의도를 읽고 차마 편지를 보내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부당한' 죽음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극적인' 죽음이다. 이런 불행은 인간은 대비할 수도 처리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겪는 불행이 무의미한 우연의 소산이라는 사실은 견딜 수 없으므로 어떤 식으로건 납득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들려고 하며 그 불행을 둘러싼 어떤 작은 우연ㄴ도 혹시 필연은 아닐지 의심한다. 책임질 주체를 찾으려 하고, 끝내 찾을 수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이라도 피고석에 세운다. -신형철 [안녕, 주정뱅이] 해설 중
1)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 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1쪽) 가끔 잠에서 깬 후, 방금까지 꾸었던 꿈과 지금부터 시작되는 생시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어요. 내가 그런 일을 했었나?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나? 정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떼어 붙여 만든,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가상의 경험. 부정적 감정이 그 가상 세계의 생성을 촉진하는 듯하고요. <구멍>은 짧지만 강력한 소설이고, 그건 화자인 ‘내’가 자기 친구인 탈의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의 여기 있음,과 친구의 여기 없음,은 단지 같은 시공간에서 발생했을 뿐 독립시행이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탈의 죽음과 ‘나’의 ‘생존’이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당시 어렸던 ’내‘가 그러한 시선을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트라우마로 남았을 테죠. 꿈속에서 수없이 그 장면이 반복되었을 것이고요. 그렇기에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유일한 목격자니까. 그가 이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할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고백을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2) 탈의 사고 이후 '나'의 가족이 펜실베이니아주로 이사오고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탈의 형인 카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지요.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나'는 형에게 그날의 일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문의 편지를 쓴 뒤, 결국 그 편지를 부치지 않고 책상 서랍에 넣어둡니다. '나'는 지금도 탈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는 날이면 옆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매번 그 이야기를 할 정도인데요, 왜 카일의 요청에는 끝내 회신을 할 수 없었을까요?
질문에 대한 답글을 질문 밑에 달았어야 하는데. 삭제해서 옮기려니 삭제가 안되네요. 처음이라 미숙하네요. 다음엔 제대로 달아볼게요
저는 ‘나’의 꿈속에서의 진실과 편지를 보내지 못한 이유 모두 ’나‘의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정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날의 감정들이 꿈에서 변주되면서 나타나는데 그것들이 현실 속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나‘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사실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있어선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그날 자신이 탈을 민 것 같기도, 부추기기도 한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나’에겐 진실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이렇게 죄책감에 억눌려 있는 '나’라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의 무게를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탈의 형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지 않을까요? 만약 탈의 부모가 그날 이후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면, 너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현실 속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나'에게 있어선 진실이 아닐까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비슷하게 할 수만 있다면 꿈에서라도 진실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에서 다른 분이 말씀해 주셨듯이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던 '나'라면 상황 설명을 위한 편지를 썼다고 한들 그것이 자기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연루되고, 죄책감에 짓눌렸을 것 같아요 ㅠ.ㅠ 만약 탈의 부모가 그날 이후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면, 하는 가정도 흥미로운데요. 정말 그렇게 했더라면, '나'의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카일'은 본인의 일인 잔디깎이 일을 동생이 하게함으로써 동생의 사고가 일어난 데에 상당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 문득 '탈'과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어서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일'은 '나'에게 그날의 일을 상세히 알려달라고 편지를 씁니다. 처음에 '나'는 나의 아픈 마음을 동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으로 그날 이야기와 내가 꾸는 꿈, 형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장문의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탈'의 장례식에서 '나'에 대한 '탈'의 부모님의 싸늘함을 기억했고, '카일'의 편지에서 알고싶어 하는 그날의 자세한 이야기란 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곧 '카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와 '탈'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닌 '탈'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임이 '나'임을 듣고 싶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저는 읽어냈습니다.
“꿈속에서의 진실”에 대해서 장례식장에서 탈의 부모님이 말을 걸었더라면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카일에게 썼던 편지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꿈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덧붙이긴 했으나 보내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것에 대해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진실 또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어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꿈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고 느끼는 바에 대해 가족인 카일에게는 전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편히 털어놓아 내려놓고 싶어 가까이 있는 인물인 여자친구에게 매번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2) 카일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는데, 화자는 그날의 일을 요구하는 카일을 통해 일종의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였으며 당시 현장에 있어 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서 그간 어디에 털어놓을 수 없었던, 사건으로서의 정황이 아닌, 자신이 느꼈던 그날을 털어놓을 기회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털어놓지만 다 쓰고 나서야 자신의 편지를 돌아봤고, 편지를 읽고 카일이 다시 빠져들 죄책감과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을 그제야 마주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카일에게 편지를 쓸 당시에 ‘나’는 자신이 기억하는 사고 당시의 사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가 사는 곳에 올 일이 있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을 쓴 것으로 보아 탈의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인 카일을 만나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처럼 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동질감 또는 위안을 느끼고, 탈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의 삶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그 ‘사고’에 대해 이제 좀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편지를 다 쓰고 나서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부치지 않은 이유는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그날’의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탈은 죽었고, 자신은(또는 자신만) 살아 돌아왔다는 점에서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을 해결할 방법이 없고, 그래서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에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책, 죄책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구멍> 마지막 장면에서 ‘나’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탈은 살게 되는 ‘나’의 꿈 장면이 나오는데, 탈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고 또 그것을 막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온 ‘나‘는 육체는 살아 있을지라도 영혼은 탈이 죽었을 때 함께 죽었음을 나타내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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