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작년에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느라 인상 깊은 문장과 함께 독후감 내용을 생각하며 하이라이트를 해뒀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느낌대로 하이라이트를 하다 보니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지,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있네요.
(전자책으로 읽고 있어 페이지는 제외하고 적어보겠습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들이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근조’ 이것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으니,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죽음이 오늘이 맞는지, 어제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추측을 담담히 하는 모습에 덩달아 차분히 뫼르소의 감정이나 행동을 따라가게 만들었습니다.
뫼르소의 모습 중 제가 눈여겨봤던 것은 ‘말’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사장에게 휴가를 신청하고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후 “난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던 부분 또는 버스를 타고 가다 어깨에 기댔던 군인에게 “그가 웃으며 멀리서 오는 거냐고 물었는데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네“라고만 대답했다.” 이런 부분들에서 뫼르소는 솔직하게 말을 하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를 하거나 대체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 것이 보였습니다. 뒤이어 입관한 엄마의 모습을 보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괜한 말을 했구나 싶었다.”라는 내용이 나올 때도 다시 한번 그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모든 게 빠르고 확실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내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마을 어귀에서 담당 간호사가 내게 했던 말은 생각이 난다.”라는 문장이 나온 다음에 이후에 나온 “아직도 그날 본 몇몇 광경이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라는 문장을 읽고, 흘러가듯 진행된 일들로 인해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상태이지만 간호사가 했던 말이나 몇몇 광경들은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남았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전체적으로 시각, 후각, 청각 등 감각에 대한 묘사가 계속 시선을 끌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휘발유 냄새, 하늘과 도로에서 번쩍이는 햇빛”, “바다와 마랭고 사이를 막고 서 있는 언덕들 위로 하늘빛이 불그스름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가 실려 있었다.”, “안뜰에 있는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기다렸다. 신선한 흙냄새를 들이마셨더니 더 이상 졸리지 않았다.”, “푸르고 흰 하늘과 갈라진 아스팔트의 끈적이는 검은색, 사람들이 입은 상복의 음울한 검은색, 니스 칠한 영구차의 검은색 등 단조롭기만 한 색깔들 사이에서 나는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햇빛, 가죽 냄새, 니스 냄새, 영구차에서 풍기는 말똥 냄새, 향냄새”, “그리고 성당과 거리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 위의 붉은 제라늄들과 마치 관절이 해체된 인형처럼 페레가 실신한 일, 어머니 관 위로 굴러떨어지던 붉은 흙덩이, 그 속에 섞여 있던 하얀 나무뿌리들,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어느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쉬지 않고 붕붕대던 엔진 소리” 등의 묘사들을 통해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생생함과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론가의 인생책> 성현아 평론가와 [이방인] 함께 읽기
D-29
day
성현아
@day 님! 이전에는 독후감 내용을 생각하며 하이라이트 했었고 이제는 다른 부분들을 "온전히 느낌대로" 하이라이트 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정말 공감이 가요. 저도 비평을 쓰기 위해서 읽을 때는, 좀 더 큰 주제로 이어질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좋을만한 부분들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이방인 읽을 때! 군인과 대화하는 부분! 그 부분에 줄을 긋고 웃었었는데! 같은 부분을 이야기해주셔서 너무 반갑네요!! 그리고 '말'에 뫼르소가 천착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주셔서 감탄했네요! 말을 아끼기도 하고, 오히려 말을 했다는 것에, 대화를 나눌 구실을 줘버렸다는 것에 후회를 많이 하는 인물인 데 잘 포착해주셨어요! 덕분에 저도 배워갑니다^^! "어느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은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서정적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또 숱한 카페들, 기다림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좋은 문장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거북별85
한번 쓱 읽고 나서 왠지 카뮈의 <이방인>을 완독한 듯한 뿌듯함에 빠졌는데 다시 읽으니 또 새롭네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다시 읽는게 참 소중하다 싶습니다^^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24쪽 그제야 나는 그들이 전부 맞은편으로 수위 주위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거기에 모여 있는게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전 이 상황이 뫼르소의 과잉망상이 아닌거 같아요 )
26쪽 잠시 후 노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깨어나서 몹시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는 큰 체크무늬 손수건에다 가래침을 밷어 냈는데 뿌리째 뽑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가래침 뱉는 소리를 이렇게 묘사하다니 신선했어요)
27쪽 교외에 나와 본것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나는 만약 엄마 일만 아니었더라면 산책을 하면서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싶었다
28쪽 "장의사 인부들이 좀 전에 도착했어요 나는 그들에게 관을 봉하라고 할 예정입니다 그러기 전에 마지막으로 귀하의 어머니를 보시겠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32쪽 조금 뒤에 그가 물었다 "저분이 댁의 어머니이신가요? "나는 또 "네"하고 대답했다 "연세가 많으셨습니까?"나는 정확힐 나이를 몰라서 "그렇죠 뭐"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말이 없었다
34쪽 이제는 드러누워 열두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나의 기쁨
(어머니의 장례식장의 뫼르소의 메마른 낙엽같은 감정을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 상황들은 이후 사건들의 복선같다 )
성현아
여러 사람들과 읽는 경험이 소중하다고 얘기해주셔서 감동입니다^^!ㅎㅎ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거기에 모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 부분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짚어주시니까 더 와닿네요. 과잉망상이 아닌 것 같다는 점에 저도 동의하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엄청 궁금해요!
이 부분에서 뫼르소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주인공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주인공이 사람과 대화하거나,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에 어색함을 넘어서 공포를 느끼잖아요.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타인 민감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타인 민감성이 높은 이들은 타인의 상태를 잘 캐치하다 보니, 좀 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런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낯섦을 두려움으로까지 감각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더불어서 좀 더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메마른 낙엽"에 빗대어 주신 부분도 참 좋네요! 동의하고요!
거북별85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거기에 모여있는 게 아닌가 하는'문장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에 대한 복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뫼르소는 우발적 아랍인의 살해이후 감형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사형을 선고받는데 그 근거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뫼르소의 태도였습니다
언젠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에 고통받는 유명인들에 대해 누군가가 기사에서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발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 각해보니 사회에서 여러사람들이 자신들은 진실을 추구한다고 외치지만 생각해보면 무엇이 진실일까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의 증언과 평판때문에 결국 예상치 못한 결말까지 이르는데요 그 점에서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심판을 받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성현아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말이 참 슬프게 들리네요. 각자가 원하는 진실이 다른 것 같아요. 진실이라는 것도 상대적이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심판을 받은" 것 같네요. 참 씁쓸하지만 와닿는 말입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니, 서글프기도 하고요. 감상 나누어주 셔서 감사해요. 정말 많이 배워가요ㅠㅠ! 만나서 정말 반갑고 기뻤고요!
사장님
저는 다른 분들이 언급하지 않으신 부분에서 어떤 느낌적인 느낌을 받은 부분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장례식장의 밤 풍경)
무언가가 스치는 통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인지 실내가 전보다 한층 더 하얗게 작열하는 것 같았다. 내 앞에 그림자라곤 없었다. 물건들이, 모서리들이, 그리고 모든 곡선들이 눈을 찌를 듯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 뫼르소가 인식하는 세계는 늘 이런 식이지요.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서 그 감정을 언어로 포착하여 종이 위에 옮겨 놓습니다. 이런 서술 방식이 뫼르소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들이(세상의 관습, 인습, 도덕, 규범, 가치 따위로 이름 붙여진) 말하는 뫼르소의 '죄'는 정말 '죄'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때로는 '나도 그런데...'하기도 하고요.
(노인에 대하여)
노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의 세부적인 특징들은 낱낱이 시선에 포착되는 데 반해 기척은 전혀 들리지 않아, 나는 그들에게서 거의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내 주의를 끈 점은, 눈은 간 데없고 대신 주름이 자글자글한 구멍 한 가운데에 흐릿한 빛만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 오, 노화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곳에 있던 노인들은 각자 자신의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결국 노화는 '자글자글한 구멍 한 가운데에 흐릿한 빛'으로 모아지네요. 장례식 전등빛과 대조된 흐릿한 빛(눈빛)이 인상적입니다. 마흔이 넘고 나니 저 역시, 노화란 내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게 '빛'(생기, 생명력)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아, 이제 뫼르소가 참석한 장례식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 노인'의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이해했어요. 자연의 생명체 중 인간만이 '효'에 대한 가치를 정해두고 이를 어겼을 경우 '불경한 것'이라 비난하지요.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미가 새끼를 키우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지만, 새끼가 자립한 이후에 어미를 거두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도 있겠어요.
(자본주의 시스템에 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사소한 사고)
그 대신 나는 뒤뜰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신선한 흙냄새가 풍겨 왔고, 더 이상 졸리지도 않았다. 사무실 동료들 생각이 났다. 지금쯤 그들은 출근 준비를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이 무렵이 내게는 언제나 가장 힘든 시간대였다.
: 어쩌면 사소한 일이 가장 큰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차이가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나비효과'처럼요.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하루 혹은 한달을 살아가는(일급과 월급을 기준으로) '평범한 직장인'에게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고' 중 직장과 관련된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효자로 정평이 나신 시아버지께서 시할머니 장례 절차를 진행하다가 일어난 작은던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교장 선생님이셨던 시아버지는 관을 이끌고 장지로 가던 중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하다가, "**아, 누구 누구 차비 챙겨주게 봉투에 얼마씩 돈 넣어놔라. 아이고, 아이고, 미리 스무개 만들어 놔라." 하셨지요. 그제야 곡소리는 하늘을 찌르는데 눈이 말라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구나 죽음을 통한 이별의 슬픈 감정이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지속되기만 한다면 그게 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
나는 주변의 시골 풍경을 둘러보았다. 하늘 언저리 언덕에까지 줄지어 심긴 실편백들, 적갈색과 녹색을 띤 대지, 드문드문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집들을 통해 나는 엄마를 이해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이란 마치 애수 어린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게다. 오늘, 끓어넘칠 듯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인해 일렁이는 풍경은 비인간적이고도 위압적이었다.
: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개체(존재)인데 그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직접 그와 대면하여 그의 얘기(감정, 주장)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의 언어를 통해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다만, 그가 생전에 바라보았던 객체(세상)을 통해 그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알아가려 노력할 뿐이지요.
성현아
오 정말 말씀해주신 것처럼 감각을 빠르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감정들이 탈각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네요! 잘 분석해주셔서 재미있고요. 더불어서 노인에 관한 묘사가 정말 실감났어요. '빛'이 생기이자 생명력이라는 이야기에도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 빛이 빠져나가는 일에 관해서도 짚어주셨네요!
'엄마'의 장례식을 '한 노인'의 장례식으로 인식한다는 말씀에 감탄했습니다! 진짜 그렇게 느껴져요. 또 알베르 카뮈가 형 뤼시엥의 장모가 사망했을 때, "양로원에서 노파가 죽는다."라는 메모를 남겼는데, 이후에 집필한 <이방인>의 에피소드와 맞아떨어지죠. 소설 속에서도 말씀해주신 것처럼 뫼르소는 엄마의 죽 음을 어떤 노인의 죽음으로 인식하고 있고, 창작 단계에서도 작가는 친밀하지 않은 한 노인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린라스
저도 이 부분이 제 마음에 머물러 있어요
"저 멀리 하늘 닿는 언덕까지 줄지어 늘어선 편백나무들, 그 적갈색과 초록의 대지, 드문드문 흩어져 있지만 그린 듯 뚜렷한 집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은 우수에 젖은 휴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오늘은, 풍경을 전율케 하면서 천지에 넘쳐나는 태양때문에 이 고장은 비인간적이고 기를 꺾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라는 문장에서 주인공이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문장에서 뫼로소에게 느꼈던 벽같은 답답함이 조금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엄마의 무엇을 이해했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이 고장의 저녁이 우수에 젖은 휴식' 으로
주인공에게는 ' 넘쳐나는 태양때문에 이 고장은 비인간적이고 기를 꺾어놓은 듯한 느낌' 이라고 표현했는데 묘한 대조를 느꼈습니다. 죽음과 너무도 젊은 삶과의 대조라고 보이기도 했구요.
성현아
죽음과 너무도 젊은 삶의 대조라는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의 입장에서 이 고장에서의 저녁을 상상해 본 부분이네요. 뫼르소 본인에게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그 고통을 온전히 견뎌야 하는 다소 끔찍한 공간이지만요. 엄마의 무엇을 이해했다는 것일까 도 좋은 질문이 될 것 같아요! 엄마의 시선에 관한 이해일 수도 있겠고요.
허우적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원문의 단어를 이방인”이라고 해석하는게 맞냐는 논의도 있던데...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함과 주인공을 바라보는 그 당시 사람들의 느낌이 서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살인과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으려는 검사와 이를 못본척하는 판사를 보면서 이들 직업에 대한 불신은 동서양을 따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도 읽었고 다시 오디오북으로도 들어보았습니다. 오디오북의 경우 성우분이 주인공의 캐릭터에 동화되어 뭐랄까 꽤나 미니멀한 톤으로 읽어 주셔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가끔씩 생각 날 때마다 읽을듯 합니다.
성현아
오디오북도 있군요! 들어봐야겠어요! 우선 스포일러가 있어서!ㅎㅎㅎ 가려두긴 했습니다!! ㅎㅎ
성현아
@사장님 자본주의 시스템과 개인에 관해 서술해주신 점도 좋네요! 저런 경험! 다들 한 번씩 있을 것 같아요. 누구누구 봉투에 돈을 챙겨줘야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챙겨주시는 어른들을 보면서, 좀 어색함을 느꼈던 게 기억납니다. 슬픔과 어울리지 않는 형식적인 절차들이 생경했어요. 슬픈 감정이 쭉 지속될 수는 없다는 데에도 동의해요. 그 순간순간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ㅠㅠ !
마지막에 "그가 생전에 바라보았던 객체(세상)를 통해" 그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는 말도 인상적이네요. 누군가와 시선 맞추는 일보다, 그 누군가가 시선 주고 있는 곳에 집중해 보면 좀 더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려서 좋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현아
여러분 2/3까지였는데 2/8로 착각하여ㅠ_ㅠ 1부를 좀 늦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1부를 다 읽어주시면 되고요^^! 1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이방인>에 관해 전혀 모르셔도 되고, 배경지식 없어도 되고, 어떤 것이든 느끼고 얘기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감상에 방해가 될까 싶어 <이방인>에 관해 많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서 제가 아는 선에서 이야기 드려볼게요. 댓글에도 틈틈이^^ 깨알 배경지식들을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셔도 좋고요. 그리고 꼭 그런 배경들이 있다고 해서 독해가 그런 방향으로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롭게 읽어주시면 좋고요. 독자가 해석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고 달라지는 <이방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기의 효과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점 염두에 두시면 좋겠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현아
우선 해설에 실려있듯, <이방인>은 1942년 5월 말, 독일군에 점령된 파리에서 세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카뮈는 작품을 집필해나갈 명확한 계획을 세워 갖고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세 단계, '1) 부정(부조리), 2) 긍정(반항), 3)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는 청사진을 그렸다고 해요. 우선 부정을 표현하려 했는데, 이 부정을 소설, 극, 사상으로 나타내려 했고요. 그 계획에 따라 구현된 것이 소설은 <이방인>, 극은 <칼리굴라>, 사상은 <시지프 신화>였어요. <시지프 신화> 도 책으로 나와있는데 함께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긍정의 경우는 소설 <페스트>, 극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사상 <반항하는 인간>으로 형상화됩니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단계는 작가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방인>을 부조리의 삼부작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현아
여기서 '부조리'라는 개념이 좀 복잡합니다. 저도 어렵지만, 열심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ㅎㅎ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요. 이것은 달리 말하면, '삶의 의미'를 의문시하는 것이겠죠. 그가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고, 그것은 자살이다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삶이 "살 만한 것이 못 된다"라는 걸 고백하는 일인 것이죠.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습관적인 행동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카뮈는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사후세계도 부재한다고 보는 입장인 셈입니다.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 또한 부정하는 것이 되는데,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삶은 필연적이거나 합리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진리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연에 의해 작동할 뿐인 거죠.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는 하나의 논리로 환원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명확함, 자명함에 이르려하고, 이러한 열망과 반대로 하나의 합리적인 원리로 환원해낼 수 없는, 설명해낼 수 없다는 불가능성이 대치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해보자면, 인간은 논리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인과관계가 있고, 어떤 필연성이 있는 삶의 의미를 원하지만, 삶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는 겁니다. 결코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명쾌하고 자명한 진리를 인간은 갈구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기에 언제나 두 부분이 대립하는 것입니다. 이 두 극단을 서로 타협시킬 수 없는 상태를 그는 '부조리'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를 추론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탐색하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그 또한 그 부조리를 남김없이 다 해명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설명도 카뮈가 이야기하는 '부조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 설명드립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현아
카뮈는 그런 부조리의 징후를 읽어내려고 노력하는데요. <이방인>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구절들, 대화들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옮겨봅니다.
>>> 몇몇 상황에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아무것도."라고 대답하는 것이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거짓된 꾸밈일 수 있다. 연애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잘 안다. 그러나 만약 그 대답이 솔직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대답이 저 기이한 영혼의 상태, 즉 공허가 웅변적이 되고, 일상의 판에 박힌 행동을 이어 주던 끈이 툭 끊어지면서 마음이 그 끈을 다시 이어 줄 매듭을 찾으려 해도 헛일이 되는 그 기이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때 그 대답은 바로 부조리의 첫 징후인 것이다.(<시지프 신화>, 29쪽)
"아무것도."하는 무의미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대화에서 생활의 연쇄를 끊어내고 부조리를 직면해보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귀한 순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또한 '낯섦'도 부조리로 꼽는데요. 낯설다는 감각에서 부조리의 징후를 발견하는 겁니다. 이때, "어떤 순간 거울 속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그 이방인, 우리 자신의 사진들 속에서 다시 만나는 친근하면서도 음산한 형제, 이것 또한 부조리다."라고 덧붙여요. 좀 더 선명해지지요? 습관적인 행동으로 지속하는 삶에서 약간 벗어날 때의 그 감각. 살아낸다기보다는 '살아지는' 삶 속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낯섦에도 부조리가 서려있다는 말로 들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성현아
'낯설다'는 감각을 충분히 음미하시면서 <이방인>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럼 더 길어지면 읽기 싫으실까 물러나며, 여러 감상들 나눠주시면 좋습니다. 1부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 이해 안 되는 부분들 비판해 주셔도 좋고요!!
day
(생각했던 부분을 정리해서 적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나 이해 안 되는 부분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1부 끝까지 읽으면서 레몽과 여자 그리고 레몽과 그 여자의 오빠의 관계와 그 속에 나타나는 물리적이거나 언어적으로 폭력적인 부분들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나오는 부분들이었으나 읽기 조금 힘들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우선 뫼르소의 감정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뫼르소가 방 안에서 바라보았던 일요일의 바깥 풍경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뫼르소의 방 안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 바깥의 모습, 그 속에서 창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안과 밖이라는 공간적인 차이도 느껴지고 분위기의 차이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요일은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문장에서 뫼르소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시공간이든, 감정이든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또한 “자넨 젊으니 그런 생활이 마음에 들 거라 생각하네.”라고 말하며 파리로 가지 않겠냐는 사장의 제안에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은 생활이 변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이란 대개 생활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어떤 생활이든 비슷비슷하며, 또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그렇게 불만이 있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영감은 자기 방문을 닫았고, 이윽고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벽 너머로 조그맣고 괴상한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살라미노 영감에게 다른 개를 기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그는 그 개와 정이 듬뿍 들었다는 걸 강조했다.’와 같은 문장들에서 뫼르소와 살라미노 영감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완전히 같은 경험은 아니나 두 인물 모두 ‘상실’을 경험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런 감정이나 태도의 차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성현아
저도 @day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시대적 간극이 있다 보니 여성을 동등한 인간 주체로 대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혼내준다느니 하는 레몽의 말들은 굉장히 거북했습니다. 오래된 소설을 읽다 보니 이런 표현들을 견뎌야 한다는 문제가 있네요ㅠㅠ. 이 책을 선정한 사람으로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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