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원고] 출간 기념 독서 모임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저는 네이버 부동산 어플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지역과 매물 유형에 제한 없이 막연한 검색을 이어 가다 보면 산길 갈래에서 툭 혼자 떨어져 있는, 창밖으로 따듯한 느낌의 숲이 보이는 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유 없이 그리운 느낌을 일으키는 그런 집 말입니다. 겪어본 적 없는 노스탤지어에 마음을 빼앗겨 이사를 꿈꾸다 보면 며칠이 훌쩍 지나있곤 하더라고요. 흘러버린 시간에 놀라 일상으로 되돌아오려는 순간, 몽상으로 가벼워졌던 몸은 다시 축축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현실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저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쉬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믿질 못하니까요. - 제가 받은 키워드는 타인, 이사, 주부였습니다. 세 단어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어떤 이미지들이 풍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다급하게 적어 내려가던 저는 문득 아, 이게 바로 주제와 관계없는 글쓰기로구나, 라고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그나마 이사라는 단어는 들어가 있네요. 아마도 저라는 사람의 키워드를 정해본다면 산만, 실수, 멍 때리기일 듯 싶은데요. 어쩐지 뭔가 수습이 잘 안 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머쓱한 중입니다.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시 한 번 타인과 이사와 주부에 관한 생각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오셨다 오셨다 유주현 작가님 오셨다!) 앗 저도 부동산 어플을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는데요. 구매 계획도 없으면서 괜히 그 동네에는 뭐가 있나 찾아보기도 한답니다. 저는 주부로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봅니다. 엄마는 주부이면서도, 아니었다. 부지런히 살림을 돌보면서도 꾸준히 여러 일들을 해왔다.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결코 주부도, 엄마도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끈기있게, 진심으로, 사랑으로 삶을 대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엄마가 주부도, 엄마도 아닌 한 사람으로만 살았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형태의 삶 속에서 어떤 인물로 세상에 나타났을까. 나는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 매순간 감사하면서도, 때론 그녀의 다른 삶을 그려본다. 어디서든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을 그녀를 떠올리다보면, 그 모든 기회를 먹고 자란 사람이 나인 것만 같아서 결코 삶을 허투루 살게 되지 않는다. 내 삶이 꼭 내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2인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운차게 살았다! 으라차찻
그러고 보니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작가님, 독자님들 월요일 잘 시작하셨을까요? 이번 한 주도 <두 번째 원고>와 즐거운 시간되세요!
부동산 어플 보는 걸 좋아하는 분이 또 계시다니! 무척이나 반갑네요. :)) 그리고 택해주신 주부, 글은 여러 번 거듭해서 읽었습니다. 주부도 엄마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 또한 저도 항상 하고 있거든요. 화장실의 휴지가 떨어지지 않고 서랍장에 깨끗한 양말이 모여 있는 이미지가 정말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심지어 저는, 부끄럽게도 그 기회를 먹고 자란 사람이 나인 것만 같아서, 2인분의 삶을 살게 된다는 단단함을 아직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윤 여사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이사온 여자가 실제로 화내는 게 아니라 윤여사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사 온 여자는 그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건데 그렇지 못한 윤여사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했어요. 사실 남의 집에서 제멋대로 한 건 윤여사였죠. 무슨 일을 날거라고 지레 짐작당하는 입장도 썩 유쾌하진 않을 것 같았어요. 꼭 소리지르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가능한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니까요..
- 허우적 님을 지나 개츠비님의 댓글까지 보니, 이렇게 받아 들여주시는 분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네요. 물론 제가 완성한 여자는 약간 기괴한 타입의 사람이긴 하지만요. 남의 집에서 제멋대로 군 건 윤 여사다, 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제가 꿈, 광기라는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남의 집에서 제멋대로 군 건 윤 여사다, 라고 말씀해 주신 개츠비님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D
오, 허우적 님께선 이사 온 여자를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군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더 늦었네요. 사실 소설을 쓸 때, 저는 어떤 조롱의 기운을 분명히 여자에게 불어넣었고요. 또 프레데릭 님이 남겨주신 것처럼 여자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나 있냐는 질문을 오히려 많이 들어왔기에, 허우적 님의 댓글이 저에게 새로운 해석으로 느껴지고 있어요. 사실 여자의 처음 원형은 말씀하신 그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나 막상 소설이 진척되자 광기를 붓에 잔뜩 묻혀서 여자에게 칠해대는 저를 발견하게 됐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2002년 12월에 이사온 곳입니다. 그 이후 약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동네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한번 이사 가 볼까?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있는 곳이 그리 나쁘지 않네요. 어릴 때는 무척이나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주민등록등본에 예전 주소지를 쭉 출력해 본 적이 있는데 총 세장이 되더군요. 아마 그 지긋지긋한 이사 덕분에 20년 동안은 이사 생각이 없는것 같습니다. 아마 이사를 가게 된다면? 글쎄요. 어디가 좋을까요? 가끔 지방으로 일을 다니다 보면 국도변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아파트 단지들에 눈이 갑니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기도 하고요.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런 관련 없는 그런 곳으로 이사 가는 건 어떨까 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한 집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요. 저는 그 집을 떠났다가, 또 돌아왔다가, 진절머리를 치며 도망쳤다가, 다시 패잔병과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저 역시도 허우적 님의 상상, 외진 국도변의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저기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하며 생각에 빠지곤 할 때가 있었지요. 급기야 한 번은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런 관련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는데, 그 당시 가장 소중했던 것은, 아무래도 역시 쿠팡이었습니다.
이 댓글을 읽고 꿈, 광기라는 말이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내가 여기에서만큼은 탈 쓰고 마당놀이 하듯 신나게 놀아보겠다 뭐 그건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ㅎㅎ 그래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놀이공원’이고, 오직 이야기로만 가는 길이라는 거구나 싶군요! 작가님 하고싶은거 다 하세요~ 내놓으시면 제가 읽겠습니다ㅎㅎ 사랑을 느낀다고 얘기해주셔서 마음이 말랑해져버렸어요.🤔 어쩐지 인경을 거쳐 번역하는 여자까지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성장을 한 걸 수도 있고 한 인물안의 여러가지 모습일 수도 있고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설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인경을 거쳐 번역하는 여자까지 하나로 연결된다고 말씀해주신 것 또한 같은 맥락이고요. 제 마음을 이해해주신 것 같아 부끄럽고 또 기분 좋고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말, 정말 좋아하는 말이에요. :D 개츠비 님의 2023년 또한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는 한 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유주현 작가님 안녕하셔요^^ 월요일 밤에 그믐과 유주현 작가님 덕분에 재미난 걸, 숙제 같기도 한 걸 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금요일 밤 같기도 해요. 무언가를 아껴두었다가, 깊은 밤 몰래 시간을 들여가며 혼자 노는 기분이거든요ㅎㅎ '이사'라는 단어 들어오네요. '나에 관한 것들을 버리고 온다'라는 생각이 떠올랐고요. 실은 직전의 이사가 그랬거든요. 13년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쩔수없이 들어가 살게 된 곳이었고, 쉽게 나올 수 없었고, 사연도 수없이 많았어요.ㅎㅎ 그러다보니 우울을 일부로 모른척 하고 살았어요.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낀다면 진짜 살~ 맛이 안 날 것 같아서요. 아무튼 이사를 했을 때 정말 깊은 늪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어요. 나를 버리고 싶다고 한 건 우울과 자신없음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만 기다린 냊가 답답해서에요. 이사를 하면서 정말 놀란 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심과 각오가 서고 직접 움직이니까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더라고요. 이미 손에 운전대를 쥐고 있었는데 너무 움츠러들어 기다리기만 했구나 싶더라고요. 자기계발서같은 소린 안 좋아하지만 최근의 이사는 확실히 삶의 태도가 변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아요. 다음번 이사에는 '버린 나를 되찾아온다'라는 생각을 떠올려볼까봐요. 지루한 얘기가 될까, 책 많이 안 읽는 거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썼네요. 그래도 재미있었고 감사했네요^^
- 그림자1님 안녕하세요. 저 역시 이런 유의 소통은 처음인지라 계속 붕붕 떠 있어요. 아껴두었다가 혼자 즐기는 시간을 두 번째 원고와의 시간을 아껴두었다가 혼자 즐기는 기분을 느끼셨다니, 그저 감사하고, 저도 막막 마음이 뭉클뭉클해집니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셨는지요. 쉽게 벗어날 수 없기에 우울을 덮어두고 사는 하루들이란 표현에 쓸쓸해졌다가, 결심과 각오 이후 앞으로 나아가려 움직이셨다는 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그림자1님의 짧은 글 속에선 어떤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내내 본인을 믿고 달려 나가시길 바랄게요. 저도 그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유주현님 글을 올해 제가 읽은 책들 중 베스트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많지는 않으실 텐데 오래 산 사람 같은 경험치가 묻어 나오고 윤여사의 심리묘사라던지 표현은 혹시 가까운 지인 중에 모델이 있던 걸까요 궁금합니다. 저는 남자인데도 이런 여성의 호흡으로 쓰여진 진짜 같은 허구의 인물들이 나오는 사람 얘기들이 너무 재밌습니다. 나오시는 책마다 꼭 구매하고 팬이 될게요
환환님 안녕하세요. 적어주신 글을 읽다가 심장이 팡 터지는 줄 알았어요. 제 소설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여주신 덕담(!)들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훗날 언젠가 제가 지치고 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떠올릴 수 있을, 그런 기운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D!! 그리고 윤 여사에 대해서는. 제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어서, 나이가 많은 쪽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는 모르겠는데요. 하하. 윤 여사는 모델이 정해져 있다기보단, 패치워크처럼 만들어진 인물이에요. 사실 저는 모든 소설의 등장인물을 그런 식으로 만듭니다. A에게서 a를 떼어오고 B에게서 b를 떼어내고 C에게서 c를..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제가 겪어왔고 들었고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오랫동안 꿰다 보니, 만들어진 존재가 윤 여사였어요. 윤 여사는 마치 제게, 온갖 더러운 기억 뿐인 연애였지만, 결말만큼은 아름답고 슬픈 추억인 그런 존재이기도 해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흥미로웠던 점이요. 작중 인물들이 왜 이런 감정이 됐을지 설명이 상세하진 않은데도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인지 이해가 잘 된달까요. 사람이 의심하고 화내고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 감정이 큰 이유가 없다라는 점을 표현해주신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도 생각해보면 그렇거든요. 딱히 이유도 없는데 거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고 괜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ㅎ 이사온 여자가 화내는 모습들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보다 저런 사람도 어디선가 본 거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세상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혼자사는 여자가 다 그렇지, 내가 많이 도와줘야 할 거 같다는 말도 여운이 남아요. 윤 여사는 자기 감정 조차 낯설었던 게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쿠로 님. 소설을 그냥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씀에 살짝 안도가 드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제가 힘들었던 점도 이유 없이 거슬리거나 심기가 불편한 감정이었거든요. 우리 모두 누군가를 맥락 없이 사랑하고, 또 미워하기도 하는데, 어쩐지 그것을 설명하는 게 언제나 어렵더라고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심리 묘사 때문에 우중충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윤 여사와 인경의 첫 만남 장면을 쓸 때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어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대로만 상대를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우리는 분명 배웠었는데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하는 슬픔도 있었고요. 그래서 최대한 간결하게 대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향수 냄새.. 였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설 잘 읽었습니다. "엄마 모르는 사람 얘기는 그만하자. 난 안 궁금해"라는 수연의 말이 붕붕 떠다니는 하루입니다. 인터넷 신문 속 팝업 광고에 '관심 없음' 버튼을 누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요. 굴곡 없는 목소리. 모처럼 주변 사람들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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