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 어느 사회집단이나 조직에서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희노애락이 나타난다. 구성원들의 합의로 만들어지기보다는 리더나 권력자들이 정한대로 운영되는 체제가 아직은 더 많다보니 적응하기 힘든 갈등이 생길 때 조직이 아닌 소수의 개인이 그 체제를 떠나는 다소 소극적인 방법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슬프다. 그러나 내가 속한 곳의 체제가 진정 구성원들을 위할 줄 아는지 예리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레이더 망 안에서 굴러간다면 시작에서 생긴 잡음들도 하나씩 제 음색을 찾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바뀔 수 있으리란 희망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력 : 권력에 도취된 뇌의 특징으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너무나 동의한다. 권력이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아마 대부분의 인간들은 권력 앞에서 그동안 눌러왔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나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인문학적인 성찰의 중요성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타인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라고 하면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우쭐해하는 자세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줄 알고,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거나 사익으로 활용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나의 체제 속에서 권력의 불협화음으로 인한 비극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미움 : 미움은 결국 나 자신도 갉아먹어버리고 만다는 걸 체감한다. 나름대로의 도덕적 기준과 정의로운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이 작품에서 화자가 경험한 것처럼 근거없는 추측성 발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미움을 낳을 수밖에 없고,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상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악감정은 나를 피폐하게 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 그렇구나!' 하는 반응으로 내 안에 싹트는 혹은 싹트게 하는 미움이란 감정을 무미건조하게 날려버리려고 한다. 미움이 내 사고를 장악하고,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내지 않도록 말이다.
[두 번째 원고] 출간 기념 독서 모임
D-29
아리사
호돌이
권력과 체제, 미움 키워드를 다 활용해서 글을 써주셨군요. 각각의 통찰마다 오래 머물면서 생각해볼 거리들이 있네요. 세 화두로 던져주신 이야기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게 신기해요. 우리네 삶의 조건을 예리하게 살피는 가운데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지 말아야 한다는 마지막 다짐과 결론이 반짝하고 빛납니다. 대화 속에서 배워갑니다.
개츠비
당신은 체제가 주는 권력을 누리는 중이라고 얘기하면 모두들 손사래 치며 코웃음 칩니다. 그러나 당신은 체제의 권력에 부림을 당하고 있다고 하면 너도 나도 할 말을 쏟아냅니다. 사람은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처지더라고요. 신기하게도 내 앞에 있는 것들은 보이지만 뒤에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르는데 알 수가 없습니다. 기득권에게 어떤 권력이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보다 비기득권에게 어떤 권리가 누락되었는지 알게 하고, 직접 나설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합 니다. 비기득권을 위해 기득권이 앞장서겠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오만 아닐까요.
호돌이
권력추가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도록 시스템적인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도 읽혔습니다. 세상의 기준이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처지마다 달리 느낄 수 있다는 점, 음미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ESC
전혀 알림이 오지 않아서 몰랐네요… 늦게나마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돌이
들러주셔서 반갑습니다, ESC님~!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저희 모든 작품 함께 찬찬히 같이 읽어보기로 해요~
지나가는나그네
안녕하세요, 임현석 작가님? 소설 잘 읽었습니다. 캠퍼스란, 그리고 문단이란 참으로 무서운 곳이더군요. (거기에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단지 사견일 뿐이지만 사람은 남에게 인정을 못 받으면 남을 평가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런 경우가 대부분 그렇듯 누구의 탓도 아닌데 어쩐지 힘들어 하는 사람은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 한 사람뿐인 듯합니다. 피해자가 있어야 피의자가 있는데, 모두에게 혐의가 있다면 누구도 기소될 수 없는... 그런 꼴일까요. 스스로 괴롭히거나 타인을 힘들게 하거나, 어쨌든 인생이 어려워지는 모양새입니다. 정신병원에는 정신병자 주변 사람들이 모인다는 쉽게 웃을 수 없는 농담처럼, 질식할 것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난 기억들을 복기했습니다. 그래, 환기를 합시다. (물론 추울 땐 가스비 폭탄, 따뜻할 땐 미세먼지... 겨울에 창문 열기란 쉽지 않은 일...)
호돌이
환기 중요합니다!! 지나가는나그네님, 반가워요. '모두에게 혐의가 있다면 누구도 기소될 수 없는' 그 말씀 듣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인정욕구가 중요한 필드에선 평가와 인정 시스템이 건강하게 구축되는 게 중요하죠. 확실히 덜 대중적인 예술 필드나 인문학 계열에선 지나치게 전문가 집단인 동료(교수 등을 포함한)간 리뷰나 평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듯해요. 질식할 곳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해주셨는데, 그런 환경이 쉽게 만들어진달까. 전반적인 한국 지식 생태계의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저희가 여기서 만난 게 흥미로워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접촉면을 늘려가다니. 우리가 그믐에서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환기가 아닐지? :) 자주 뵙고 싶네요.
지나가는나그네
체제: 체제는 형이상학적 기계 같은 게 아닐까. 적어도 인공지능 기계는 아니라서 실 시간으로 대처할 수 없는, 그래서 사전에 입력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오직 사후 대처만이 가능한 그런 기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이 기계가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이 기계가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모든 경우가 실제로 발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체제는 마치 전기톱 같아서 아무리 안전장치를 고안해도 누군가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잘려 나간다. 언플러그드(?) 톱을 쓰면 될 일이지만 편리함을 포기할 수는 없다.
권력: 권력자가 자유를 외칠 때 살림은 힘들다.
미움: 미워도 다시... 아니 미우면 다시 안 보는 마음으로 살고 싶으나 쉬운 일은 아니다. 평행에서 0.0000000001도로 궤도를 벗어나 서로의 시야에서 멀어지기까지 거의 평생이 걸리는 그런 관계가 있더라도 어쨌든 생자필멸이다. 미워도 언젠가 끝난다... 끼이익....
호돌이
이런 유머감각 진짜 좋아해요 ㅎㅎㅎ 전기톱의 불가피성과 그것의 부작용을 동시에 인식한다는 건 아름다운 태도라는 생각듭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만이 방황하기에 또 슬프기도 하고... 권력엔 여러 속성이 있지만 자유와는 자기모순된 비효율성이라는 측면도 있죠! 재밌습니다. 미움 키워드로 정리해주신 건 '미워도 생자필멸'로 요약해도 될까요? 가훈으로 삼고 싶어지네요 ㅎㅎ
외계인
처음에는 오승태가 정말 억울해보였는데 읽다보니 책속에 말들이 오승태의 변명처럼 읽혀졌어요.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 그래서 권력을 승계받고 싶은 사람, 그래서 교수에게 관심받는 후배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어 보였습니다. 또 오승태의 말들을 교수는 그렇게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았어요. 밝고 즐거운 미래만 이야기하자 처럼 긍정적인 표현인듯하나 마음을 달래는 정도의 용어들로 오승태의 마음을 조정하는 기분도 들었구요.
오승태는 문단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체제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관이나 자신만의 신념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그 세계의 권력이 또한 강력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테지요
처해 있는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그냥 그렇게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어요.
에세이에서 ‘그냥’, 이라는 뭔가 의미없이 던지는 말같은 이 한마디가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말씀 하신 부분도 좀더 생각하봐야할 것같아요.
미움 : 처음은 좋은 마음이었지만 점점 충돌하는 지점이 생기니 한두번 양보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지나갔던 것들도 그냥 못넘어가고 끝까지 내 주장을 펼치게된다. 미움마음이 생기니 생각의 범위도 좁아지고 타인의 기분마져 배려하지 못하게 된다. 내 자신이 이런 에너지 소모로 몸살을 앓게 되면서 못할짓인 걸 알게된다. 이런 경우는 가까운 사이에서 미움에 대한 생각이고 좀더 대의를 위해서 미움을 받더라도 용기내서 해야할 말을 또 할때가 있을 것이겠다.
호돌이
반가워요, 외계인님!! 탐나는 닉넴예요. 하루하루 이 세상을 탐사하시는 기분이실까요? 동류 의식을 느낍니다 ㅎㅎ ' 그 세계의 권력이 또한 강력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중략)' 이 말씀을 오래 생각해보게 됩니다. 권력이 강력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감각 속엔, 벗어날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걸 넘어서 이 세계의 논리와 권력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잃는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을 듯해요. 자신만의 신념과 세계관이라고 믿어왔던 것도 어쩌면 세계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신념의 종류나 내용 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신념조차도 때때로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회의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교수의 말에서 폭력성을 살피는 외계인님의 감각과도 같은 것이겠죠.
호돌이
참 어려워요. 우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늘리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경우엔 타인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주 겪게 되죠. 실제 생활에선 대의만으로도 대화가 성립하지 않고, 기분만 공유하는 것은 또 공허하죠. 외계인님의 200자 글쓰기에선 '생각의 범위'와 '배려'라는 키워드가 눈에 확 들어와요. 우리 모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네요.
쿠로
작가님 안녕하세요~ 소설 정말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대학원생이 많고 이런 비슷한 이야기도 듣곤 해서 익숙한 일 같은데도, 전 한번도 이런 주변 일들이 하소연은 돼도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거든요. 대학의 권력과 컴플렉스를 파고들어갈 때 '오!'하고 빠져들어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조금씩안 안타깝고 동시에 지긋지긋했어요. 교수도 진영도 승택도 다 어딘가에서 줄이 툭 끊어진 거 같아요. 승택이 권력 안에서 묘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좋게 보기만은 어려운데, 동시에 불쌍하고 공감하게 되는 구석도 있고요. 진영도 자기 세계를 잘 꾸려가니까 공감도 하게 되다가 어쩌면 정말 또 다른 권력이 되려고 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되더라고요. 이 소설의 독특한 매력예요.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계속 바뀌다가 저도 마지막엔 환멸을 느꼈습니다 ㅎㅎ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는 식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을 병들게 하는 체제를 느끼게끔 해줘서 정말 좋았어요. 병적인 한 개인이 문제인 것처럼 보여도 일방적인 개인 잘못으로 몰아갈 순 없겠죠. 체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 제겐 그랬어요.
호돌이
쿠로 님 반갑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표현 새롭네요, 근데 이게 뭔지 알 거 같은. 말씀 듣고보니 대학 빌런 유니버스 같기도 하네요. 작중 인물 모두 실은 자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실행하는 사람들이죠. 한정된 인정 자원을 가지고 투쟁하는 세계에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충돌 같기도 해요. 문학이 한국에서 어떻게 제도화돼 있는지 보여주는 여러 작업물 살펴보시면 좋아하실 거 같아요. 조영일 평론가의 장편 비평 3부작부터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 등등.
다별윤서
이제 막 알리바이 성립에 도움이되는 현대문학강의 를 읽고 글을 남깁니다.
작가님의 지난 삶을 안다면 이 편지가 전하고자 하는게 조금은 더 이해가 되지않을까 아쉬운마음이들었습니다.
시에무지한 독자로 진영씨가 쓴 시가 궁금합니다.
편지에 쓴 승택씨의 문학에대한 견해에 따르면 우리모두는 문학자인것이네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 견해에 동감해주고 싶었어요
호돌이
다별윤서님, 반갑습니다! 편지 형식의 글이어서 더욱이나 개인의 경험과 맞물려 있을 거라 생각해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글 뒷부분 에세이에도 제 이야기가 아주 일부 담겨 있긴 한데, 저도 문학 관련 대학원 진학을 고민(근데 그땐 창작자가 아니라 연구자로서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했고 오래 문학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필드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레 있었던 편예요. 그때는 관심 수준이니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요. 진영 씨가 쓸 법한 시는, 서정시가 아닌 시들인데 최근 시 트렌드와도 크게 다르진 않긴 합니다. 책 추천도 해주는 작은 서점에서 주인에게 요즘 잘 나가는 시집 무엇인지 슬쩍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 문학을 성역처럼 여기곤 싶지 않고, 문학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감합니다.
개츠비
키워드가 그래서 그랬을까요? 짧은 글이지만 써놓고보니 어딘가 호전적이라 민망하네요. 작가님의 다정한 코멘트 고맙습니다! 벌써 둘째날이네요~! 메모해두었던 질문 살포시 올려봅니다◕‿◕
에세이에서 제도와는 무관하게 늘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쓰기를 멈추지 않으신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쓰는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쓰는 글이라면 나도 진지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은 나의 세계관을 이해받고 싶다, 동조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은 느낀 적이 없으신가요?
호돌이
에세이에서 그런 느낌 받으셨다니! 저희 이미 대화를 나누고 있었네요. 저 역시 이해받고 싶어서 이해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다만 저는 제 글이 가진 논점이나 호소력을 통해 타인의 공감이 이뤄졌으면 하고 바라죠. 그건 엄청난 일일 테고요. 그런 종류의 공감은 이쪽 저쪽 편들기를 넘어서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문학에서도 그렇지만 저널리즘 윤리 측면에서 더 고민스러운 지점이기도 해요.)
ESC
회고 형식의 서간문이라니! 입을 틀어막아가면서 읽다 끝으로 갈수록 씁쓸해지더라구요. 일개 독자가 문단에 부여하는 권위는 대체 무엇일까, 하고요.
읽는 내내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시인 혹은 작가에는 자격이 필요할까요? 순문학과 웹-장르문학을 가르는 경계가 존재할까요? 창작이론과 역사를 정식 교육기관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학습해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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