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제국』 혼자 읽기

D-29
[ 변화를 위한 다른 움직임들이 있다. 늘 전문적인 유행어를 선호하는 기술업계는 ‘교차성’이라는 용어도 채택하기 시작했다. 트위터의 경우, 2017년에 교차성, 문화, 다양성 관련 업무를 책임질 부회장으로 캔디 캐슬베리 싱글턴을 고용한 바 있다. ‘교차성’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후반에 변호사이자 페미니스트인 킴벌리 크렌쇼가 인종, 성별, 성적 취향, 계급이 중복된 상태로서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겪을 수 있는 정체성과 관련한 특정 유형의 경험에 원인이 될 수 있다는—그리고 독특하게 중복된 차별이나 편견도 낳는다는—사실에 착안해 창안했다. 요즘 들어 다양성의 중요성을 둘러싼 담화가 계속 유행하자 이 교차성이라는 용어가 대중의 담론, 회의, 시사물에서 다양성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채택돼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신경다양성과 장애인 포용을 고려하는 일로 확대되고 있다. ]
[ 도프먼은 “자선사업을 하고자 하는 부자들이 시장의 힘을 이용해 세상을 개선하려는 사례가 많아지면, 진짜 위기가 닥쳐올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시장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적 대의들은 푸대접을 받고 뒷전으로 밀릴 것이고 해결을 위한 투자도 확보할 수 없게 되는 위기 상황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비영리 단체들은 정부와 민간 분야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담당해왔습니다. 저 역시 세상을 개선하는 일에 투자자들의 자본을 활용하는 일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투자자들의 자원과 자본을 활용할 것을 재단들에게 독려합니다. 하지만 비영리 단체에 좋은 일에 쓰라고 제공하는 보조금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미래의 기부자 중에 그런 사실을 간과하는 이가 있을까 걱정됩니다.” 실로 그렇다. 트루 벤처스와 기가옴의 창시자인 옴 말릭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리콘밸리가 행한 집단행동의 충격적 실태를 조사한 뒤 <뉴요커>에 기고하고 널리 퍼진 그의 에세이에서 실리콘밸리의 공감 능력 결핍을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실패는 부실한 제품 마케팅이나 약속 이행 같은 것과 관련된 게 아니라, 기술의 마법에 홀려 인생을 망치고 있는 자들의 공감력 부족이다.” 그가 지적했다. “기술업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우리 중 누군가가 나서서 정말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때가 왔다. …… 기술업계에 종사하는 우리가 스스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돌려 나약하고 소외된 시민들을 내몰고 있는 급속한 변화의 영향력을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톰킨스-스탠지는 “저는 실리콘밸리의 접근 방식이 걱정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인종과 성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25세의 부유한 백인 남성의 접근법이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평균적인 인력이 이런 유형의 남성 집단이기 때문에, 제 말이 맞을 것입니다.” 풀 만한 문제라고 해서 꼭 구조적으로 복잡할 필요는 없다. ]
[ (실리콘밸리 리더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적 선을 마케팅에 내재화하는 일은 위험하다. 계속 뭔가를 염원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시태그를 연결할 만한 일이 아니면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해결하고 싶은 열망, 그것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열망은 문제를 왜곡시킨다. 우리는 우리를 구제해줄 문화적 역할을 실리콘밸리 리더들에게 부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과 관련될 때만 우리를 구제해줄 것이다. ]
[ 글로벌한 ‘초국경post border’의 삶은 기술기업들에게 우리의 통제권을 넘길 것이다. 어쩌면 이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출현일지도 모른다. 닉 덴튼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공동의 정보 와 공동의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 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파편화된 상태인데, 지리적 연계성은 없지만 문화적인 연계성으로 무리 지어진 상태입니다. …… 어쩌면 그런 기준으로 투표구도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에서 확인했듯, 피터 틸과 마크 저커버그 모두 기성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실리콘밸리의 다른 일각에서도 거버넌스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셔빈 피셔바는 “도시와 공동체의 미래는 집단적 형태로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서 자연스럽게 진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셔빈은 자본주의를 자율적 거버넌스self-governance라는 시장 형태로 정의한다. 이는 말하자면 소비자 선거구consumer constituencies 체제다. 우버, 아마존, 애플은 이미 사실상의 소비자 선거구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는 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 우리 경제의 운전자가 되어 우리 미래의 주인이 되는 방식으로, 보이는 손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무력감을 느끼고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지만, 우버의 CEO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응대로—그가 트럼프 편에 섰을 때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듯—우버에서 탈퇴함으로써 변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런 일이 어떤 매력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 소비자 권력에 대한 관념은 허구적으로 형성된 면이 많다. 저명한 미래학자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은 첨단 기술 브랜드가 사회 유기체처럼 기능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잘 그려낸 인물이다. 가령 <사물 인터넷의 장대한 투쟁The Epic Struggle of the Internet of Things>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완전히 정착된 어떤 봉건제를 묘사했다. 그 안에서 우리 인간들은 계속 돌아가는 데이터 농장에서 기술 영주들의 끊임없는 감시 속에서 일하는 농노로 살아간다. 스털링은 기업들이 사물 인터넷에 관해 제시하는 비전이나 마법 같은 일들은 그저 ‘동화’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적으로 보아, 우리가 사물 인터넷과 맺는 관계는 민주적이지 않다. 심지어 자본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체제로서, 디지털 봉건제이다. 사물 인터넷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클라우드 성Cloud Castles의 귀족들에 의해 감시당하며 방목되는 봉건 영지의 가축들과 같다.” 그런 시대가 아직은 오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 최근의 개발품들을 보면—모든 것이 인터넷과 연결된 상태인—사물 인터넷과 더불어 시청각 인터넷이 대세가 되고 있다. 스털링의 예견대로, 사물들이 가정 내의 일반적인 라이프스타일 기기가 되었으며, 사물 인터넷의 의인화된 버전으로서 시청각 인터넷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 음성 감지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로 희귀한 방언이나 다양한 음성까지 해독 가능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인터넷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다. 농촌 벽지에서 실시하는 리터러시(읽고 쓰는 능력) 교육도 이제는 쉬워질 것이다. 아마존 에코가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어떤 개인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고, 신용카드 정보도 입력할 필요가 없으며, 눈 오는 날 우버를 부르려고 장갑 낀 손으로 서툴게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터넷이 스스로 알아서 계속 학습하고 적응해가며 우리를 예측해 낼 것이다. 자동차들도 우리의 지시에 따라 알아서 시동을 켤 것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기술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우리의 정신세계 역시 변화를 맞을 것이다. 최근까지는 가정 안에 구현된 기술들이 가시적이어서 실질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지위의 상징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런 기기와의 상호작용으로 자신의 행동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TV를 켜는 행동을 직접 하고, 메시지 ‘보내기’를 직접 눌렀다. 그런데 인터넷이 우리 주변에서 눈에 안 보이는 안개와 같은 상태가 된다면, 우리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리얼리티 TV 쇼 <빅브라더Big Brother>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된다면, 욕실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기록에 남기는 실수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기록될 것이다. ]
[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이렇게 마키아벨리적 관점에 놓고 보는 것이 부당할지도 모르겠다. 본래의 실리콘밸리 창업자는 자신의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을 때 그 기술이 총체적으로 발휘할 영향력은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벌어들인 금액만 알아챘을 것이다.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나온 참신한 시민적 아이디어들이 많다. 미국 대선 후에는 시스테딩Seasteading2에 관한 기사들이 신문의 머리기사들을 장식했다.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대중화시킨 이들은 자유주의 정신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이었다. 피터 틸이 시스테딩 인스티튜트Seasteading Institute에 투자한 것을 계기로 이 아이디어에 더 관심이 쏠렸다. 시스테딩 인스티튜트는 2008년에 웨인 그램리치Wayne Gramlich와 패트리 프리드먼Patri Friedman이 국제 공해상에 ‘해상 표류 플랫폼 위에서 운영되는 이동 자치 공동체’를 설립하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한 조직이다. 패트리 프리드먼은 자유주의 운동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경제학자 로즈 프리드먼Rose Friedman의 손자이기도 하다. 프리드먼과 함께 《시스테딩: 해양 도시는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Seasteading: How Ocean Cities Will Change the World?》를 집필한 조 쿼크Joe Quirk는 독립적인 실리콘밸리 국가가 보여줄 흥미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쿼크는 “해안국과 섬나라 들을 위협하는 해수면 변화와 거버넌스의 혁신 부족이라는 세계의 가장 큰 양대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우리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 프로젝트입니다. 플로팅 파빌리온의 형태로 프로토타입이 이미 네덜란드 바다 위에서 시험 중입니다. ]
[ 쿼크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개발 중임을 알렸다. “미래의 수생 시대가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에 의해 창시되고 있습니다. 헌신적인 시스테더들이 해초류와 해조류를 기반으로 개발해낼 식품과 연료에 기대가 큽니다. 심해의 울타리 없는 양식장에서 특별한 환경적 영향 없이 야생 물고기보다 건강한 물고기를 양식하는 일도 기대가 매우 큽니다.” 우리는 정부가 부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쿼크는 정부를 믿는다. “아이스크림 독점 사업자가 우리에게 4년마다 두 종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초콜릿 아이스크림 아니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51%가 바닐라에 투표하면, 모두 4년간 바닐라만 먹게 됩니다. 두 가지를 섞은 프랄린앤크림 아이스크림은 상상할 수도 없겠죠. 우리는 지금 수억 명의 사람들에 대한 거버넌스의 독점을 겪고 있습니다.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찾기 위해서는 개인의 취향에 맞춘 혁신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다 위에 건설하는 신생 소형 국가가 수가 많아질수록, 다양한 인간 가치를 적합하게 드러낼 수 있는 더 맛있는 맛들을 지닌 거버넌스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말한다. “미국인들은 현재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실 말고는 어떤 것에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따라서 시스테딩은 사람들이 논쟁을 멈추고 대안 마련에 착수할 완벽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독점 체제인 정부들이—감정을 소모시키고 금전적 손실을 겪게 하는 해수면 변화나 선거 문제 같은—21세기의 문제들에 무능하게 대처하고 있어서, 시스테딩이 전례 없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휴렛패커드에 있을 때는 휴대폰을 못 만들어냈지만, 그곳을 뛰쳐나오고 나서 애플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
[ 일자리를 잃은 광부, 트럭 운전사, 소매업 점원에 대한 해결안으로서, 트럼프 대통령과 많은 전문가들이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고, 미국에 기반을 둔 번성한 기업들의 일자리를—이민자들보다—미국 시민들에게 우선 제공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단 인도와 중국의 고숙련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서 H-1B 비자3에 의존해야 하는 기술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예외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 <누가 애플에서 이득을 볼까?Who Benefits from Apple?>에서 그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4년제 대학 졸업 증명이나 그에 준하는 자격 증명을 요구하는 취업비자. “애플은 제품 디자인에서 마케팅,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고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계속 해왔다. 제품과 부품이 해외에서 제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외국이 아닌 미국에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말한다. “애플의 제품을 조립하는 노동 인력은 주로 중국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조립은 대만인이 경영주인 폭스콘의 공장에서 진행된다. 중국은 임금을 벌지만 이윤은 가져가지 못한다. 아이폰 가격의 중국 지분은 2%로, 이는 일본, 한국, 대만 기업들 지분의 1/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애플 성공의 주요 수혜자는 애플과 그 회사를 거의 독차지한 미국인 주주 및 직원들이다. 애플은 전자제품의 진정한 가치는 조립이 아닌 디자인, 개발, 마케팅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스튜어트는 설명한다.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제조업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수한 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최상의 자원을 동원해 막대한 가치와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한다’라고 진단하는 애플에 관한 PCIC 보고서에 주목하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은 코딩조차 자동화되어 섬유 공장의 재봉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
[ 사람들은 정부가 지닌 긍정적인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기술적 경이들은 정부가 과학과 연구의 많은 부분에 자금을 지원해서 가능했다. 일론 머스크에게 허가를 내주고 자금을 지원한 곳이 정부인데도, 테슬라가 우주여행에 성공하면 그 영광은 일론 머스크에게 돌아갈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개발과 아이폰의 시리 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기술 종사자들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도로도 정부가 건설해서 유지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로서, 어떤 회사도 원치 않는 라스트 마일last-mile 서비스들을 책임지는 곳도 정부다. (영국 우편국은 거주자가 한 명밖에 살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섬까지 소포를 전달하겠지만, 아마존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부를 과소평가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부의 서비스가 더디고 지루하고 적절성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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