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의 새로운 얼굴들] 유령의 마음으로

D-29
저도 이거 너무 웃겼는데 ㅎㅎ 밥 먹고 나올 때 식당 계산하는 카운터 위에 흰 색 마름모 모양의 박하사탕들이 투명한 유리 단지에 들어있고 집게로 그 중 하나를 들어 올렸을 때 떨어지지 않아 난감했던 기억 다들 있는 거 맞죠? 보통 힘을 주면 바로 떨어지는데 어떤 것들은 대체 이 사탕들은 언제부터 녹았다 붙었다 했던 걸까 잠시 상념에 빠지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의 개인적 취향은 식당 후식은 개별 포장된 폴로 사탕을 주시는 것이 좋더란...
194쪽, [나는 세수하다가도 나와서 통장에 찍힌 숫자 0일곱 개를 들여다보았다. 천만 원으로는 내일이라도 당장 감독과 정수를 떠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머무르게 했다.]
200쪽, [오래전에 정수의 일기장을 훔쳐 읽은 적이 있었다. 함께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따. 주경이는 가끔 자면서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일기는 거기서 멈춰 있었다. 나는 그 뒷말이 오랫동안 궁금했다. 때로는 좋은 문장들이 떠올랐다. 더 사랑하게 된다, 이불을 덮어 주게 된다,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때로는 나쁜 문장들이 떠올랐다. 미워하게 된다, 숨이 막힌다, 죽고 싶어진다. 한때는 그 생각만으로도 밤을 새울 수 있었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_240쪽, [빠르구나, 빨라. 서울에서 내 죽임이 잊히는 속도는 한밤중의 배달 오토바이만큼이나 빠르다. 하기야 서울은 사람이 아쉽지 않은 도시, 사람 하나쯤은 티 나지 않는 도시이니까. 같은 이유로 나는 서울을 좋아하기도 했다.]
248쪽, [스크린 속 숫자가 0이 되자 무대 조명이 켜지고 콜드플레이가 등장했다. 함성과 함께 응원 불빛이 물결처럼 흔들렸고, 관객들의 머리 위로 종이 눈이 쏟아졌다. 흥분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맞고 서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들뜨거나 흥분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눈앞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온갖 색의 조명으로 물드는 무대와 관객들을 바라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팔을 천천히 앞으로 뻗어 보았다. 조명에서 나오는 붉은 빛은 내 팔에 닿는 순간 사라졌다. 다른 조명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색의 조명이 닿아도 내 팔은 변함없이 어둠, 새까만 어둠이었다. 나는 어두운 팔을 바라보다가, 화려한 빛으로 물든 무대와 관객들을 바라보다가, 첫 곡이 끝나기 전에 공연장에서 빠져나왔다.]
249쪽, [왜 그랬어? 그냥 기분이 이상했어. 거기서는 아무 생각도 말았어야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만 바라보았다. 청소기 말이 맞았다. 공연장에서는 아무 생각도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 그것도 지나치게 살아 있는 것이 무서웠고,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무서웠다.]
255쪽, [첫차를 보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으세요? 여자가 물었다. 용기가 필요해서요. 역무원이 대답했다. 그는 생전에도 마음이 무너질 때면 첫차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조용하던 플랫폼에 약속처럼, 마법처럼, 때로는 기적처럼 첫차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고.]
262쪽,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들로부터 흘러나왔음을 적어 둔다. 침대 발치에 놓인 거울, 방 안에서 내려다보던 새벽의 고속도로, 폐업한 가게 내부에서 죽어 가던 식물들, 흐르는 물, 더 세게 흐르는 물, 독립 영화관 스크린에 닿던 지하의 빛과 가로수에 닿던 지상의 빛, 나무라는 이름의 나무, 새벽 첫차와 자정의 택시, 신경증과 환영들, 낮 같았던 밤과 밤 같았던 무수한 낮들.]
삶을 조금이나마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만든 책이었다. 길을 걷다가 나무에게서도, 버려진 청소기에서도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유령의 마음으로'를 읽고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과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셨군요. 임선우 작가님이 읽으시면 왠지 찡하실 듯.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증정][박소해의 장르살롱] 23. 단요 작가의 신학 스릴러 <피와 기름> [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이런 주제로도 독서모임이?
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2월 8일(토) 연극 같이 봐요!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2월 26일(수), 함께 낭독해요 🎤
[그믐밤X그믐클래식] 32. 달밤에 낭독, <일리아스>
2025년에도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
재미있는 스토리의 비결을 찾아서~
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
김새섬의 북모닝, 굿모닝 ☕
[1월 북모닝도서] 넥서스 - 하라리다운 통찰로 인류의 미래를 묻다[1월 북모닝도서]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 또라이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아이팟의 아버지[1월 북모닝도서] TSMC, 세계 1위의 비밀 - 클립 하나에 담긴 보안[1월 북모닝도서] 레드 헬리콥터 -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1월 북모닝도서]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역사 속 리더들에게 배우다
1월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이달의 고전] 1월 『금각사』 함께 읽어요[이달의 고전] 1월 『설국』 함께 읽어요
책도 벽돌, 독자들의 대화도 벽돌!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7. <노이즈>[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한국 장편 문학을 찾고 계신다면?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작품 말고 작가가 더 궁금할 때!
[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SF 어렵지 않아요! 함께 읽는다면
[함께 읽는 SF소설] 03.키리냐가 - 마이크 레스닉[함께 읽는 SF소설] 02.민들레 와인 - 레이 브래드버리[함께 읽는 SF소설] 01.별을 위한 시간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