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의 새로운 얼굴들] 유령의 마음으로

D-29
신작 장편소설 혹은 단편소설집을 읽는 모임입니다. 첫 번째로는 임선우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인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습니다. 아직까지는 함께 하는 분이 없어서 유령의 마음으로 혼자서 떠들 예정입니다. 동참해주실 분은 누구든 환영입니다.
지금부터 읽기 시작
15쪽, [빵집에는 스무 가지가 넘는 빵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없는 빵은 감자빵이었다. 투박한 생김새에 맛도 없어서 매일 두세 개씩 꼭 남았다. 그 바람에 남은 감자빵은 매번 내가 처리해야 했다. 처음에는 매일 저녁으로 감자빵을 먹었지만, 먹다 지친 나머지 감자빵을 처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유령 만난거 보다도 더 충격. 초입부터 감자빵에 대한 모독이라니...
21쪽, [유령은 감정을 전달받는다는 게 얼마나 바쁜 일인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지금은 평온한데? 내가 말하자 유령은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평온한 적은 없었어.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정수가 생각났다. 정수가 콧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정수는 지금도 콧노래를, 얼터너티브록을, 가벼운 산책을, 단정한 셔츠를 좋아할까?]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인지, 유령이 이야기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이렇다. 이제 평온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지럽고 바쁜 사고와 감정들이 이어진다. 지금 이 짧은 문장을 쓰는 순간에도.
28쪽,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유령의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따뜻했고, 너무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안녕하세요! 남궁필명님. 저도 이 책을 함께 읽어봐도 될까요? 제가 이 책을 방금 처음 접해서 아직 책이 없습니다만, 얼른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앗 너무 좋습니다. 댓글을 이제서야 확인했는데 감동입니다. 새로고침을 해야 답글이 뜨나봐요.
29쪽, [빵이 질리지는 않아? 김지원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여기 빵은 너무 맛있지도 너무 맛없지도 않기 때문에 계속 먹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먹는 동안 맛에 대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도 안할 수가 있을까?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다보면 가끔 아무 생각도 안나는 순간이 있다.
멍해지려고 여행을 간다는걸 어디서 주워들었지 했는데, 검색해보니 5년만에 신혼여행이었다. <5년만의 신혼여행> 123쪽,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데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트린다.
위에 오타났다. 인간답데->인간답게. 수정을 할 수 없으니 더 신중하게 타이핑을 해야겠다. 수정버튼 만들어주세요..
또 멍해질 때가 있다. 음악 페스티벌 가서 다음에 나올 아티스트를 기다릴 때. 기대감은 2분 정도 갖고, 그 이후로는 계속 멍하게 있는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빡세게 운동을 하고 잠깐 쉴때 엄청나게 멍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극장 안에서 영화나 연극을 볼 때, 애매하게 재미없으면 멍해진다. 아예 재미없으면 머릿속으로 계속 딴 생각하고, 너무 재밌으면 몰입해서 보게 되는데, 애매하게 재미없으면 멍하다. 극장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휴대폰을 꺼낼수도 없고 멍해진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 멍해지시나요?
빛이 나지 않아요/ 36쪽, [해파리로 변해 가는 사람들을 보자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밴드가 망하고, 서울에 있던 월세방 보증금을 까먹고, 쫓겨나듯 시골로 와서 지내게 된 구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댁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37쪽, [사람들은 해파리를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해파리에게서 멸망을 보았다. 누군가는 신의 모습을 보았고, 누군가는 삶의 탈출구를 보았다. 그리고 구는, 해파리에게서 취업 기회를 보았다.]
49쪽, [구와 내 휴일이 겹친 주말, 우리는 빗속에 버스를 타고 나가 마트에서 장을 봤다. 간장과 참깨, 대파와 시금치 한 단, 계란 같은 것들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서울에서는 음식을 해 먹은 적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채 바깥을 구경했다. 세상은 점점 이상해져 가는데, 우리는 집에서 시금치를 무쳐 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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