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

D-29
'이스트 씨네' 책방 이름을 그믐에서 보니 왠지 더 반갑네요. 예전에 저희 동네에서 책방 하시다가 몇년 전에 정동진으로 가셔서 책방+극장 컨셉의 멋진 공간을 만드신걸 사진으로만 봤는데.. 꼭 가보고싶다 생각만 하며 아직도 못가봤어요. 흑흑 (책방지기님 잘 지내고 계시는지...) 그리고 제가 같은 취향의 누군가와 오랜시간 편지로만 소통하는 로망이 있는데,, @수북강녕 님 너무 부럽고 대단하셔요!(>ㅅ<)
책방+극장 컨셉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얼핏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거든요. 보고 나니 그래서 East Cine 로 서점 이름을 지으셨구나 싶네요. 프랜차이즈로 대동단결한 길거리에 '무슨서점'을 비롯 독특하고 개성있는 서점들이 요즘 눈에 종종 띄어 반갑습니다. 이스트 씨네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와. 상상도 못한 일이... 여고시절 1년 남짓 지금 생각엔 아주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비밀을 담고 있는 교환일기를 쓴 기억이 스치네요. 두 분의 우정이 정말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영화 같아요. 매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니! 제 직업이 편집인이 아님에 너무도 아쉽네요. 언젠가 책으로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273통의 편지라니... 저는 꾸준하지는 않아도 드문드문 써왔던 친구들과의 편지를 고향집에 고이 모셔두었는데요. 제가 독립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어머니께서 전부 버리셨어요. 한마디 상의도 없이ㅠㅠ 각종 쪽지들, 편지, 카드 등등을 모조리요. 그 이야기를 듣고 화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멍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인데도 그 상실감이 여전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백여통의 편지가 더더욱 부럽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이 '아~~ 맞아 나 참 편지 쓴 적 오래 됐구나' 였어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게 도대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거든요. 그러고 책상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날 아침에만 업무용 메일을 3통 이상 보냈더라고요. ㅎㅎㅎ 요즘 직장인 업무 시간 중에 이메일 쓰기 가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텐데요, 이메일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생각을 제가 안 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에 등장하는 예술가 18명을 소개합니다. 아래 순서대로 편지를 쓰셨네요. 에릭 사티 / 프랑수아즈 사강 / 바츨라프 니진스키 / 김소월 / 존 버거 / 버지니아 울프 / 빈센트 반 고흐 / 알바 알토 / 프란츠 체프카 / 페르난두 페소아 / 실비아 플라스 / 권진규 / 나혜석 / 로맹 가리 / 배호 / 장국영 / 다자이 오사무 / 박용래
아무래도 박연준 시인님과 장석주 시인님이 두 분 다 시를 쓰셔서 예술가 중 시인의 비중이 약간 높은 거 같기도 하고요... 배우는 한 분 있습니다. 제가 원래 잘 알고 있는 예술가들도 있고 잘 모르는 분들도 있네요. @겨울매미 님처럼 저도 복잡한 연말에 이 책과 함께 하니 좋습니다. 계속 읽어나가겠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 삶을 스스로 세우는 것, 당신이 가르쳐준 거예요.] 박연준 p.54 좋아하도록 교육받은 천사 말입니다. 그 천사는 때때로 제 앞에 와 자신이 곡 '나'라고 우깁니다. 나는 그녀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만약 내가 고소당해서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겁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나의 글에서 핵심을 빼앗아갔을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집안의 천사 죽이기] p.55 스스로 온전할 수 있는 힘은 당신이 말한 ‘자기만의 방’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자신으로 오롯할 수 있는 시간, 공간, 여건.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p. 57 등뒤에 당신이 있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는 큰 용기를 얻습니다. [당신은 왜 그토록 거리 배회에 탐닉했을까요?] 장석주 p.54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 [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사진을 해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으로 기억하기보다는 그녀의 옆모습 흑백 초상사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자기만의 방‘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요 방 하나에 책상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방문 입구에 있는 컴퓨터 작업용 하얀 책상, 창가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두 번째 책상은 오롯이 글을 쓰거나 읽는 용도의 빈티지 책상입니다. 그 두 번째 책상은 5년도 훨씬 전부터 제가 가지고 있었어요. 작고 기다란 손잡이를 두 개 당기고, 뚜껑을 열면 책상이 나오는 일명 피아노 책상이에요. 저런 책상은 뚜껑을 열면 오르골 소리가 나올 것처럼 신비롭고 예뻤거든요. 그러니까 10대의 제 로망이었어요. 나이가 들어 마침내 예쁜 피아노 책상을 가졌지만 정작 장식용에 지나지 않았어요. 눈길이 갈 때면 ’저기서 글을 써도 좋겠다.’ 하는 짧은 상상을 하고는 지나쳤어요. 그러던 중 올해 8월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한 첫날. 우연히 서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집어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날을 계기로 굳게 닫혀있던 책상이 활짝 열렸습니다. 매일 아침 이른시간 글을 쓰고, 책을 읽게되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드디어 저에게 펼쳐졌습니다. 진짜 저만의 방이 되었습니다.
한 편의 짧은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겨울 아직은 바깥이 검푸른 이른 새벽, 다갈색의 피아노 책상에 앉아 바이올렛북을 쓰고 계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요.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이른 시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감미로울까요? 저도 이른 아침의 그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고, 그 시간을 자양분 삼아 하루를 살기에 더욱 공감이 갑니다.
@무슨 "읽는 속도가 생각보다 잘 안 나는 게 흠이라면 흠" 이라고 이야기하신 게 뭔지 이제 알겠네요. 니진스키를 읽다가 무용가인데 직접 무용을 못 보고 글로만 읽는다는 게 너무 답답해서 이것 저것 찾아보다 보니 시간이 30분 이상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니진스키 같은 경우는 시대를 앞서간 그의 안무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네요. 이 책에 실린 예술가 중에 지금은 다들 칭송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던 당시에는 대부분의 대중들이 외면하고 욕하고 그랬다는 게 참.... 인간에게는 과연 아름다움과 진리를 구별하는 눈이 있는 걸까요? 진흙 속에 진주가 있으면 그걸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전 오늘 서점에서 하루 종일 에릭 사티만 들었습니다. 평소 좋아했고, 즐겨 듣던 곡이었는데도 이들의 편지를 읽고 들으니 새롭습니다. 생전에 외면받았던 이들이라 연민이 더해져서 일까요. 이 음률이 고통 속에서 나왔다 생각하니 안쓰럽고 짠하고. 그러고 보면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는 덕질을 전도하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예술가 덕질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그믐밤 때 2부에서 편지 쓰는 시간에 에릭 사티와 배호, 장국영으로 BGM 요청해도 되나요? ㅎㅎ 저는 예술가 중에 특히 음악가들은 다른 예술가들과 다른 거 같아요. 다른 예술은 제가 못 해서 그렇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알겠는데 음악은 어떻게 탄생하는 건지 정말 궁금해요. 작곡이라는 건 어떤 기저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걸까요...어떻게 선율을 떠올릴 수 있는 걸까요?
BGM 매우 가능합니다ㅎㅎ 안 그래도 장국영 음악은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서 애플 뮤직이 추천하는 베스트 리스트를 좀 들어 보았는데요. 추억 어린 곡들이 좀 있더라고요. 영화 '영웅본색' 주제가부터 제가 좋아하는 '월량대표아적심'도 그의 버전이 있고... 해서 며칠 반복 재생하며 들었습니다. 편지 쓸 때 이것저것 섞어서 한번 틀어볼게요! 에릭 사티는 같이 낭독하며 이야기 나눌 때도 은은하게 깔려있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나저나 작곡의 과정은 저도 항상 궁금하고 신기한 부분입니다. 글 쓰는 이들에게 문장이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걸까요?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를 읽으면서 한 예술가에게 접근하는 두 시인의 서로 (미묘하게) 다른 관점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 예술가의 삶과 존재 전반에서 특히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는가 하는 점에서, 박연준 시인과 장석주 시인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이 책이 더욱 풍부한 것이겠지요.
저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입니다. 미묘하게 다르지만 미묘하게 비슷한 구석도 분명 있어서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열여덟 명의 예술가를 두 사람이 동시에 좋아한다는 것도 참 대단하고요. 아무리 친한 사람도 그러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제가 그래서 처음에 박연준 시인 편지를 쭈욱 읽다가 그런 것 보다 한 사람씩 비교하면서 번갈아 읽는 게 더 재미있겠다 싶어서 지금 장석주 시인님 것 읽고 그 다음 책 뒤로 돌려서 박연준 시인님 것 읽고 그러고 있습니다. ㅎㅎ 그러니까 또 시간이 더 걸리네요. 등장하는 예술가들 중간 중간 찾아보느라고 시간 걸리고 또 두 분 편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 시간이 걸리네요. 장석주 시인님은 예술가들의 전반적인 생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먼저 읽으니 좋더라고요. 박 시인님은 편지가 한 편의 시처럼 다가와서 좋구요.
맞아요. 저도 그래서 장 -> 박 순으로 읽고 있습니다 ㅎㅎ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건 매한가지지만요. 1월 1일부터 예술가 한 명씩 읽기 시작해서 오늘은 고흐에게 보내는 편지 두 통을 읽었습니다. 두 시인이 써놓은 아름다운 문장을 취하기도 벅찬데, 몰랐던 예술가들의 생애까지 쫓으려니 쉽지 않군요. 편지를 읽고 고흐의 '슬픔'과 '영원의 문' 두 작품을 찾아보았는데요. 처음 보는 그림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고흐의 꽃과 나무 그림을 좋아한다고 저도 모르게 그런 그림들만 줄곧 봐왔더라고요. 두 시인 덕분에 고흐의 작품까지 새로이 보게 됩니다. 이다음 예술가에게 쓴 편지를 통해서는 또 어떤 걸 새로이 알아가게 될지 기대하는 중입니다.
[알바 알토] 박연준 / 72쪽 멋이란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건강한 것이다. 자신이 자신임을 좋아하는 것. 자기다움으로 충만한 것! 타자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멋 내지 않을 때 멋이 난다. * *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달, 2019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진정 멋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타자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타자의 시선을 몹시 의식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저는 제가 저여서 좋거든요. 진짜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건강한 것', 즉 멋을 흠뻑 지니고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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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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