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갈게요~
지난 번 아마콩쿨 지원했다 예선탈락했는데 여기되어서 좋다고 했었는데 덕분에 본선 연습할 시간이 굳어 ㅋ 책 더 읽네요.
12장은 인류세입니다. 대학원 때 사회학을 조금 팠던 사람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내용들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문체가 묘하게 이공계적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12장 1부는 인문사회계열에 익숙한 밀도의 문체가 담겨있는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6p에서 정부지출과 모든 상품과 용역의 총가치인 국내총생산 비율이 1913년에 8% ᆢ 에서 GDP에 대한 정부지출의 비율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걸까요? 복지 등 공공지출의 비율인가 싶었구요.(마침 요게 전공분야였어서)
그리고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줄어드는 시장을 놓고 자본주의 열강이 벌인 충돌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517p에서 재미지게 읽었던 <전체주의의 기원>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사회주의권의 초반 성공과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필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자들이 대공황 이후로도 계속 실패할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사회주의자들이 초반에 유토피아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였던 현상을 계속 지속할 것으로 믿을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계속 식민지와 그 독립의 여파가 여기저기 묘사되는데요~ 제가 홉스봄 책을 서양현대사 시간에 사두고 꽂아만 두고 있었는데, 그 무수한 세월을 너머 이제는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식민지들이 대거 등장하는만큼, 정복자들의 빼놓을 수 없는 논리인 '식민지 근대화론'이 명칭까진 아니어도, 과거 제국주의 정부는 식민지의 경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등한시했고, 수익이 가장 많은 원료를 생산하는 쪽을 선호했다고 나오네요~ 525p 제가 저 기만적인 이론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를 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계획경제로 결국엔 망한 메카니즘이 등장합니다. 부르주아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들의 필연적 공포로 인해 가능성 자체를 압살한 헤롯같다고 하면 오버일까요?
이어 2부에서 혁신을 장려한 세계 곳곳의 발달모습이 등장하고 3부에서는 그 성장과 산업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등장합니다.
늘어나는 인구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소비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유형의 진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543p
여기에서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포드혁명이 생각났어요. 자기가 만든 차를 남만 사는게 아니라 노동자도 살 수 있게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닌,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로 공장식 라인에서 비용을 절감하여 주인된 기분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따뜻한 혁명이 창업주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가능한거구나~했습니다:)
그리고 545p 농경시대 삶의 특징이었던 엄격한 남녀분리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산업화된 지역들에서는 더욱 급격하게 나타났다. 그 나라들 조차 지금도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은 상황이긴 하다. 이 대목에서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여주인공이 빡치는 장면이 절로 소환됐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본주의가 윤리혁명을 대변했다는 지점에서 544p 농민사회의 전통적 미덕인 근검절약대신 소비와 사치를 찬미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잘 연결이 안되는데요. 과소비를 찬양하는 의식의 전환일까요?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혁명과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검을 미덕으로 삼던 카톨릭 정신을 구원과 연관지어 결국 탐욕을 부추겼다고 개신교 지역의 사람들에게 산업을 더 추구할 동력을 갖게하기 위해 사고방식의 렌즈를 갈아끼게 했다는 신학자 칼뱅이 제공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데~ 비슷하게 이해하면 될런지요? 그럼에도 사치와 윤리혁명은 딱 부합하진 않는다는 생각입니다만.
[그믐북클럽] 1. <빅 히스토리> 읽고 답해요
D-29

느려터진달팽이

바닿늘
10-1
인간이 지닌 앎에 대한 욕구는 정말 대단하다고 매번 느낍
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목숨 걸어가며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큰 도약
의 배경에는 항상 앎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했으리라는..
어렴풋한 예상을 해봤습니다.
10-2
p.443
교환망은 CE 1350~CE 1700년에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
로운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역사상 처음
으로 진정한 세계적인 종이 되었다. 모든 세계 지대의 사회
들이 이전보다 크고 다양하며 단일한 교환망으로 통합되면
서다.
p447
유럽 선원들이 대서양의 바람과 해류를 오가며 항해하는
법을 배운 이유는 초기의 상업적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
했기 때문이다. (중략)
1519년 스페인 통치자 를 위해 일하던 포르투갈 항해자 페
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아메리카 남쪽
까지 항해한 뒤 태평양을 건너는 길에 나섰다. 그는 1521
년 필리핀에서 살해당했지만, 부함장 후안 세바스 티안 델
카노(Juan Sebastian del Cano)는 1522년 세비야로 귀
항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5척이 함께 출항했지만 소수만
이 살아남아 1척만 돌아왔다.

바닿늘
10-1
세계사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한국이 전쟁을 자주 겪은
국가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유럽에 비교하면 한국은 전쟁
을 자주 겪은 나라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대부분의 것들은 상대적인 관점으로 한 번씩 볼 필
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시기의 유럽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피비린내가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도
다시금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다시 불안해졌지만요..;;;
10-2
p448
■ 교역자와 정복자
유럽의 정부와 상인들은 최초의 세계적 교환망에서 중심적
지위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냈다. 유럽인들에게
는 가장 풍요로운 인도양 교역망의 지역 상인들이 관심가질만한 물품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마주한
상대는 대부분 작거나 중간 크기의 교역 정체 또는 도시
국가였다. 이들은 화약 무기를 동원하여 질 낮은 상품을
억지로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십 년 사이에
포르투갈 선단은 동아프리카 킬와나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동인도 제도 고아(1510년에 점령)와 말라카 같은 인도양
교역망의 요지에 교역소를 세웠다. 포르투갈인은 이곳에서
지역 향신료 거래의 일부를 맡고 수익을 올렸다. 인도양에
서 지중해를 잇는 교역을 독점한 오스만제국 중간상인들
을 우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449
유럽 이주민들은 교역자뿐 아니라 정복자로서도 아메리카
에 도착했다. 16~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거대한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했다. 스페인은 아스테카 같은 지역
제국의 적들과 종종 동맹을 맺으며 야만적인 전쟁을 벌이
고 단기간에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산맥에 있는 아메리카
문명의 심장부를 점령했다. 포르투갈은 자신들에게 저항할
큰 국가 구조가 없는 브라질에 새 정착지들을 건설하기 시
작했다.(중략)
17세기부터 다른 유럽국가들, 특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의 상인과 기업가도 카리브해와 북아메리카에서 나름의 제
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바닿늘
10-1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제도 중에 특히나 '노예 제도'는..
끔찍한 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인간
존엄을 어떻게 다른 인간이 소유할 수 있었을지를 ..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합니다. 지금은 노예가 없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노예가 있는 게 당연한 시기가 오랫
동안 이어졌다는 게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약간은..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한동안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영상들을 찾아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라는 소설이 노예
제도 폐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저처럼 관심 있으시면 유튜뷰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괜찮게 봤던 영상은 요거예요.
https://youtu.be/XV_KYLiX6fQ
10-2
p451
● 대서양 교역 체제를 뒷받침한 노예무역
1492년 이전까지 유럽과 교류하지 않았던 대서양 지역에
서도 새로운 세계 교역망의 중심축이 될 교환망이 출현했
다. 이 체제도 한 지역에서 값싸게 생산하여 다른 지역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품을 찾아내는 방식에 의존했다.
(중략)
노예 노동을 착취하는 초기 플랜테이션 농장은 아메리카를
활용하는 야만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과 모형을 제시했다.
카나리아제도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소유한 인물
의 사위였던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 때 산토도밍고에 사
탕수수를 들여왔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
카 노예들이 일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브라질
에 이미 조성한 상태였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침략자들이 카리브해의 섬들에 사탕수수를 도입
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성공하려면 값싸고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정제 설비에도 투자해야 했
다. 곧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출현하여 필요한 노동력을 공
급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질병이 들어온 이후 원주민 대부
분이 사망한 카리브해 섬들에 특히 노예가 필요했다. 유럽
투자자들이 대부분의 자본을 댔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상들
은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유럽 소비자들은 수요를 제공했다.

느려터진달팽이
마무리를 지어보겠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ㅠ
이 책의 의의는 세가지 점에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1. 지구를 역사의 주체로 등장시킨 점, 2.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을 다루어 준 점, 3. 미래까지도 역사의 무대로 소환한 점. 신선했어요^^
557p 사람 발자국 human footprint : 지구의 재생능력을 뜻하는 환경용량에 인류가 가하는 부담을 뜻한다네요. 2002년 이미 미국국립과학원은 1980년 경 사람 발자국 👣 이 처음으로 지구의 환경 용량을 초과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풀무질에서 멸종반란이라는 테마로 전문가분들 모인 자리에 갔었는데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뒤에 프란시스 무어 라페 여사님도 등장하셨던 것 같은데, 무려 오십년 전!에 내신 책에서 지금의 비건운동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주창하셨다는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각종 어두운 전망들이 난무하고; 기후도 그렇지만 생태계도 파괴되고 식량공급도 또;; 위험에 처해있다고ㆍㆍ ai기술이 난무하는 요즈음에도 유효한 발언이실지? 그와중에 핵위협과 각종 바이러스 위협ㆍㆍㆍ푸틴과 북한/ 코비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너무도 적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끝내면 그러니까 희망적인 추세도 공평하게 언급하고^^ 이는 1. 기후 안정, 2. 생태계 회복, 3. 소비감소와 도시 재설계, 4.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 발전, 5. 세계적 협력과 소통으로 얘기해주셨습니다. 이 중 민주주의 부분에서 실은 앞장에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 정치학 전공자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지므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주의 책들 위주로 봤던 사람은 이번에 지구 민주주의, earth democracy: justice, sustainability & peace 이런 제목의 Vandana shiva님의 저서를 알게 되었네요.
이 중 세계적 협력과 소통에 희망을 좀 더 걸어봅니다. 예전에 un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un새천년선언 MDG 반가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끝나는 literally 역사의 종언 시점이 올 것이고 이후 맞이할 먼 미래에 지구는 다시 죽은 곳이 되고 모든 복잡한 구조는 서서히 분해될 것이다. 행성과 생명을 탄생시킨 골디락스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585p ... 우주는 영구히 커지면서 단순해질것이다. 영원히.
이러면서 우리는 우주가 경이로운 세계를 생성하는데 필요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던 시절의 산물이라며 끝을 맺습니다. 마치 생명의 탄생과도 같네요. 처음으로 회귀하는 것만 같습니다. 흑암이 뒤덮었던 최초의 시간☆ 재밌었습니다.

새벽서가
9-2.
Particularly striking is the fact that adaptation sometimes led to cultural simplification rather than to increasing social and technological complexity.

새벽서가
10-2.
We can also see in this period the befinning of a profound change in the global distribution of wealth and power. Before 1500, the societies of Eurasia's Atlantic Seaboard had been marginal, sitting at the edge of the vast exchange networks of the Afro-Eurasian Zone. After 1500, societies of the Atlantic region suddenly found themselves at the center of the largest and most diverse trade networks that had ever existed.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11장 읽기****
드디어 마지막 문턱인 근대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근대의 상징, 산업혁명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챕터에서 조금 더 자세히, 우리가 모르는 개념과 뒷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모임의 마지막 날(1월 24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네요. 남은 기간 동안 또 함께 힘을 내어 달려봅시다! 이 넓은 우주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이 있어 오늘도 외롭지 않네요.
18일과 19일, 이틀 동안은 열 한 번째 장을 읽겠습니다.
리브
11-1
산업혁명이 시작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인들 일부가 필요했다. 막대한 잉여 자본, 값싸고 많은 노동력, 새로운 상품 시장, 새로운 동력원, 새로운 원료, 개선된 교통 체계다. 사회적ㆍ이념적 맥락의 변화도 중요했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화의 1차 물결이 일어났고 1820~1840년에 에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2차 산업화의 물결이 이어졌고, 3차 물결은 1870년경 러시아와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3차 물결의 흐름에 조선이 빠져 있다는 점은 결국 어두운 한국 근대사의 서막이 된 것 같다.
11-2
P.486
많은 사람이 노예제, 고문, 극도로 가혹한 범죄자 처벌처럼 이전의 수세기동안 당연시되던 잔혹한 행동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남들에게서도 느끼기 시작했고, 보편적이고 평등한 천부적 인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과 미국 의회가 처음 주장한 이 사상은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더 큰 영향력을 얻었다. 마침내 5년 뒤 프랑스 국민의회는 모든 프랑스 영토에서 노예제를 폐지 했다.
P.490
영국에는 중국인이 원하는 물품이 전혀 없었다. 중국이 화폐 주조에쓰는 은만 예외였다. 1800년경 영국은 많은 은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영국 직물 노동자와 탄광 광부는 소득의 5%를 중국차를 마시는 데 썼는데, 그 차는 영국 정부가 은을 주고 샀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를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 팔고 대가로 은을 받았다.
노예무역을 폐지 한 이후 영국은 중국의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파는 쪽을 택했다. 중국 정부가 아편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후반기에 영국은 대규모 밀수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밀수는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세계경제체제가 무너지지 않게 막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P.493
유럽이 아프리카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두 가지 혁신에 있었다. 남아메리카에서 자라는 한 나무의 껍질에서 찾아낸 퀴닌으로 말라리아에서 자유로워진 유럽인들은 사하라 남부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혁신은 영국으로 이주한 미국인 하이럼 맥심이 발명한 맥심건이라는 기관총이었다.
P.495
유럽의 위세가 안팎으로 커지자 유럽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바뀌었다.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푸는 한편으로 유례없이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과거의 모든 국가처럼 다른 지역들을 희생시켜 부를 늘리고 있지 않는가? 유럽인들은 다른 지역 사람과 문화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했고, 자신들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으며 오만해졌다. 이 믿음은 자신들의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기존의 믿음과 결합되곤 했다.
P.496
유럽 각국의 식민주의 정책이 자신들의 핵심 가치 및 국내 관습과 모순된다는 점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성 시민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더 민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민족 독립과 상충되는 독재적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이들은 식민 통치가 불안해질까 우려하여 자국의 현대화를 식민 통치에 장려하지 않았다. 이 뻔한 모순은 20세기에 유럽 식민지 통치의 토대가 무너지는 데 기여했다.
P.496~497
유럽의 산업혁명과 세계정복이라는 큰 그림을 돌이켜보면 이 엄청난 변화가 겨우 200년 사이에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진다. 근본 요인은 대규모로 연소한 석탄 인 듯하다. 산업국의 제국주의를 빚어낸 또 다른 요인은 19세기 말의 기후변화였다. 1870년대 말부터 전 세계의 적도와 주변 지역에 세 차례 잇따라 가뭄이 찾아왔다. 인도와 동아프리카에서는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브라질 북서부와 중국 북부에도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뭄은 1번에 몇 년씩 이어졌다. 남아메리카 서쪽 바다에서 일어나는 엘니뇨라는 해류 변화가 강수량 변화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산업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이 효과가 확대되어 사회적ㆍ경제적 붕괴가 일어나 3000만~6000만 명이 사망했다. 앞서 언급한 지역들의 국가 생산량도 급감하자 이에 영향 받은 국가들이 저개발에 빠져들었다.

새벽서가
11-1.
드디어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네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삶과 역사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책 시작전부터 이 챕터가 사실 가장 기대되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몇백년동안 어쩌면 유럽이 배워가고 싶은게 많았던 중국은 산업혁명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유럽 중심, 서구 중심의 사회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거겠죠.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만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차는 영국에서, 2차는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독일등의 유럽국가와 미국에서, 그리고 3차는 1870년경이 되어 러시아와 일본까지 확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제1차, 2차 세계대전 종주국들이 라는게 씁쓸합니다. 일본이 3차 물결을 타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근대화에 성공했을때 한국도 거기에 동조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되네요.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환경,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보이고, 남녀 평등과 인권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거북별85
11-2
467쪽 산업혁명이 시작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인들 일부가 필요했다. 막대한 잉여자본(돈), 값싸고 많은 노동력, 새로운 상품시장, 새로운 발명, 새로운 동력원, 새로운 원료, 개선된 교통체계다. 사회적 이념적 맥락의 변화도 중요했다.
469쪽 영국을 산업화로 내몬 또 다른 요인은 기후변화다. 소빙하기였던 1250-1900년에 세계 많은 지역의 기온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난방을 위해 땔감을 더 많이 태웠다. 작은 섬에 사는 영국인들은 대부분의 숲을 없앴고 이 현상은 석탄을 효율적으로 채굴할 방법을 찾아내는 동기가 되었다.
480쪽 신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새 산업에 투자하는 자본이었다. 영국에서 17세기 말에 설립된 잉글랜드은행은 저렴하게 투자 자본을 제공했다. 산업화가 빨라지자 대형 은행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 유대인 은행가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아들 5명은 19세기에 유럽 금융업을 개척했다. 이들은 각각 중요한 도시였던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나폴리, 빈에 자리잡고 투자를 촉진했다.
484쪽 산업화의 3차례 물결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1차 물결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2차물결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확산된 산업화로 1820년-40년에 시작되어 그 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3차 물결은 1870년경 러시아와 일본으로 확산된 산업화다.
493쪽 19세기에 미국과 유럽은 서서히 금본위제를 채택하여 세계 자유무역을 부추겼다. 그러다가 1873년에 빈의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유럽전체가 불황에 빠졌다. 많은 산업국은 관세로 자국 산업과 제품을 보호하려 했다. 자유무역과 정반대되는 행보였다. 또한 여러 나라가 식민지의 시장과 원료를 독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겠다고 나섰다.
495쪽 유럽의 위세가 안팎으로 커지자 유럽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바뀌었다. ~유럽인들은 다른지역 사람과 문화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했고 자신들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으며 오만해졌다. 이 믿음은 자신들의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기족의 믿음과 결함되곤 했다.
496쪽 유럽의 산업혁명과 세계정복의 근본 요인은 대규모로 연소한 석탄인 듯하다. 태양이 매일 제공하는 에너지 외의 추가 에너지원을 기계에 연결하자 다른 모든 것이 뒤따라 왔다. ~산업화의 생산성은 새로운 물질과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투자 수요도 낳았다. 유럽에서는 인구가 폭팔적으로 증가하면서 수백만 명이 국내의 반란이나 극단적 억압을 피해 세계 각지로 이주했다.
504쪽 런던의 하수는 템스강으로 흘러 나갔지만 밀물때는 거꾸로 밀려 올라오면서 지독한 악취를 뿜었다. ~ 1858년에는 이른바 대악취 사건이 벌어져 의회가 일주일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 식수에 배설물이 섞이면서 1832년 1848년 1865년에 콜레라가 대유행했다. 1891년경 런던은 하수 시설과 수돗물 공급 시설을 개선한 덕분에 당시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콜레라 유행을 피할 수 있었다.
506쪽 많은 식민지 주민이 식민지 당국에 협력하지 않고 종종 반란을 일으키곤했다. 1857-58년에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 항쟁과 중국에서 일어난 2차례의 농민 항쟁인 태평천국의 난과 의화단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세포이 항쟁은 영국이 소와 돼지의 지방을 윤활유로 바른 새로운 탄약통을 들여와서 촉발되었다. 소는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이고 돼지는 무슬림이 꺼리는 동물이다. 힌두교와 무슬림 모두 영국이 이 혁신 물품으로 자신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508쪽 산업국에는 식량과 원료가 끊임없이 필요했기에 드넓은 숲과 자연생태계가 계속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여러 해동안 한 작물만 재배하는 단일 경작이 이루어졌다. 인도에도 커피와 차 같은 작물을 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이 조성되었고 도입된 종을 단일 경작하는 사례가 많았다.

거북별85
11-1
여덟번째 문턱으로 산업혁명이 나온다. 7곳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농경혁명과 달리 산업혁명은 단 1곳인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763년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새로운 대서양 세계교역 체제의 중심이 되어 대량의 원료를 확보하고 새로운 시장에 꾸준히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국을 산업화로 내몬 원인 중 하나로 소빙하기가 있어 흥미롭다. 날은 춥고 땔감으로 사라진 숲 대신 사람들은 석탄을 효율적으로 채굴할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궁핍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공식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정부의 가용자원이 많아지면서 정부의 성격도 달라졌다. 농경문명은 민족국가 즉 현대국가란 새로운 체제로 변모했다. 현대국가는 커져가는 산업 경제의 부와 권력을 관리하기 위해 출현했다. 현대국가는 용병을 고용하는 대신 보편적 징병을 통해 시민군을 구성하고 세금을 늘리고 토지 이용을 규제하고 화폐와 국채의 공급량을 조절하고 부모에게 자녀를 교육할 것을 강요했다.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의 충성심을 얻기 위해 공통의 언어와 역사에 토대한 민족 공동체를 상상하는 국가 이념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그리고 환경파괴로 인한 질병들에 시달린다.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를 또 다른 어떤 체제와 세계로 이끌지 궁금하다.
식민지 세계의 문제점이 단순히 사회문제 뿐 아니라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인한 단일 경작의 문제 동물의 멸종, 원주민들의 감소등의 환경적 문제도 크게 발생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다른 인간의 욕망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연대해서 이러한 잘못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법을 어떻게 공유하고 지켜나갈 것인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동광동
11장
근대 세계라는 문턱을 다룬 11장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해진 변화들을 보여줍니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고, 그를 뒤따른 서유럽 국가들의 생산력이 빠르게 증가한 것을 반드시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위한 여러 요인들을 잘 나열해주고 있듯이, 이런 조건들이 함께 맞물리는 게 중요한데 그 조건들이 반드시 영국과 서유럽인들의 우월함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거든요. 다른 책에서는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당시 인구와 노동력이 넘쳐나서 기술 혁신을 위한 유인이 부족했던 점을 꼽고 있더라구요.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듯이 '혁신을 위한 유인'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18세기 이후 보편적인 평등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서 확산된 점은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466 산업화로 화석연료에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하게 된 인류는 잠시나마 세계적 규모로 맬서스 주기를 이겨냈다. 2012년에 세계는 인구 70억 명을 지탱할 만큼 엄청난 자원을 추출했다.
478 모든 산업회사는 영국 사회의 후손으로서 저마다 독특하게 발전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누구도 미리 계획할 수 없었던 힘들이 수렴되어 나타났지만, 다른 지역들은 열정적인 기업가나 강력한 정부가 주도하여, 또는 양쪽이 협력하여 모방했다.
486 방대한 중앙 관료 체제와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는 현대 국가를 정의하는 구성 요소다. 그 배경에는 유럽인의 근본적인 의식 전환이 있었다. 18세기에 발달한 새로운 공감 능력이었다. 이 사안은 아직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고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노예제, 고문, 극도로 가혹한 범죄자 처벌처럼 이전의 수 세기 동안 당연시되던 잔혹한 행동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남들에게서도 느끼기 시작했고, 보편적이고 평등한 천부적 인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과 미국 의회가 처음 주장한 이 사상은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더 큰 영향력을 얻었다. 5년 뒤 프랑스 국민의회는 모든 프랑스 영토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496 유럽의 산업혁명과 세계 정복이라는 큰 그림을 돌이켜보면 이 엄청난 변화가 겨우 200년 사이에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진다. 근본 요인은 대규모로 연소한 석탄인 듯하다. 태양이 매일 제공하는 에너지 외의 추가 에너지원을 기계에 연결하자 다른 모든 것이 뒤따라 나왔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11-1. 11장에서 흥미로웠던 점이나 새로 알게 된 사실 등 지금 함께 읽고 있는 다른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알려주세요.
11-2. 11장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호디에
11-1
산업혁명이 시작되려면 막대한 잉여 자본(돈), 값싼 노동력, 새로운 상품 시장, 새로운 발명, 동력원, 원료, 교통체계 등의 요인들이 필요했고, 사회적.이념적 맥락의 변화도 중요했다. 수 세기 동안 여러 측면에서 기술이 앞서 있었던 중국은 왜 산업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을까? 18세기까지만해도 중국인의 생활수준은 유럽인과 비슷했다. 많은 학자들이 지리적.문화적 요인을 들어 중국이 산업화를 이끌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몇 가지의 요인들 중 가장 납득할만한 내용은 산업화가 유교 사상에 반한다는 것, 늘 외세, 특히 북방 민족의 위협이나 침입에 시달리고 싸워야했다는 점이다.
18세기 중반에 7년 전쟁에 승리하면서 영국은 여러 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산업혁명의 밑받침이 되어준 것 같고, 무엇보다 기후나 환경적 인측면에서 영국이 절실하게 산업화로 갈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 다각도에서 산업화 여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산과 산업력이 증가하는 데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하층 노동자와 목화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자행된 노예 노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내용과 상관없지만, 산업혁명에 비교적 늦게 나선 독일이 화학 산업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글에 문득 BASF(예전 직장 거래처) 가 스치고 지나가 검색해보니 설립일이 1861년, 독일 통일 이전에 세워진 것이다. 설립한지 150년이 넘는 회사였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두고 보통은 인종차별 문제를 먼저 든 후 산업경제를 배경 설명으로 하는데, 저자는 이 전쟁을 최초의 진정한 산업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이 신박했다.
산업화의 1차 물결은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 2차 물결은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확산된 산업화(20세기까지). 3차 물결은 1870년경 러시아와 일본으로 확산된 산업화. 20세기의 발전소가 될 나라들은 모두 19세기에 산업화를 시작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산업화 물결의 중심에 있던 나라들은 한두 나라를 제외하면 이후 세계 전쟁의 중심에 있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산업화 권력은 정치와 군사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산업혁명과 세계 정복이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가능했던 근본 요인 중 하나가 19세기 말의 기후변화였다는데, 적도와 그 주변 지역의 잇달은 가뭄이 원인이 되었다고. 이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내용이다.
19세기 동안 전지구적 상실 세 가지는 숲, 동물, 원주민이라고 짚는데, 주변을 보면 현재에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새삼 깨달은 점은 일단 전쟁에서 지면 혁명이든 산업화든 늦어지게 된다는 것.
▶ 눈에 들어왔던 부분들입니다.

호디에
11-2
p490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국은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연합했다가 패배했다. 승리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세르비아, 미국은 이 드넓은 지중해 제국을 분할했다.
ㅡ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많이 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애초에 전쟁이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만약 이 전쟁에서 오스만제국이 아예 참전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승리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도 양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혜지
글이 업로드 중에 날아가기도 하는 군요.. 줄여서 다시 작성합니다.
11-1. 오늘 중국의 인구 수가 감소경향에 들어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1장에서 중국이 산업화를 이끌지 못한 이유와 산업화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앞으로 동아시아의 경향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11-2.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1852년에 열대림 파괴가 초래할 수 있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삼림파괴, 기근, 멸종,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초기의 환경보전론자들은 식민지 통치라는 상황에 응답하며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정확히 내다봤다.”

메이플레이
11-1
농경 만으로 늘어나는 인류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산업혁명은 300년 사이에 10배 이상 많아진 인구를 먹여 살릴 만큼의 식량을 늘렸지요. 산업혁명과 과학 혁명을 이끌어낸 이 시기를 통해 인류가 현대로 다가가는 길이라 자부심이 큰 수도 있지만 영국과 서유럽 중심의 세계화는 식민지 쟁탈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씁쓸하네요.
그래도 혁신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산업화의 근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유럽의 발빠른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 부럽지만 그들의 행태는 비난하게 되네요.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인종과 문명이 최고라 여기고 '약하고 열등한 인종'에 책임감과 개화 시킬 필요성을 식민화의 정당화로 삼으려 했던 것은 뿐아니라 자국 내 민주적 방식과 달리 식민지 나라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방식으로 식민 국가를 우민화시켜 통치하려는 야비함이 느껴졌어요.
11-2
에너지 수요 증가는 몇몇 중요한 혁신을 이끌었다. 목재와 숯을 아끼기 위해 영국인들은 난방과 요리에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탄광에서는 지표면 가까이에 있는 석탄을 모두 캐내자 갱도를 더 깊이 파기 시작했는데, 지하수가 스며나와 갱도가 물에 잠겼다. 광부들은 양동이로 물을 퍼올리거나 말을 이용하여 양수 펌프를 돌렸다. 더 나은 방법이 필요했다. 474쪽
유럽 각국의 식민주의 정책이 자신들의 핵심 가치 및 국내 관습과 모순된다는 점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성 시민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더 민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민족 독립과 상충되는 독재적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이들은 식민 통치가 불안해질까 우려하여 자국의 현대화를 식민지에 장려하지 않았다. 이 뻔한 모순은 20세기에 유럽 식민지 통치의 토대가 무너지는 데 기여했다. 496쪽

메롱이
11-1
- 보름달이 뜬 날에 집에 가기 쉬워서 ‘루나 협회’라는 네이밍이 붙게 된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의 모태가 된 협회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19세기 사교계의 인싸들은 상상 이상으로 부지런했겠구나 싶었고요.
11-2
- 466/새로운 에너지는 인류 증감의 멜서스 주기를 끊었다. 산업화 이전에는 다양한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식물이 광합성하여 저장된 태양에너지에 의지했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땅과 지표면의 자원이 인구를 제한했다.
- 468/중국은 엘리트 교육과 백성의 믿음에 토대를 두었다.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험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473/석탄이 형성되던 시대에 모든 대륙이 하나로 합쳐져 판게아라는 초대륙이 생기기도 했다. 미국 동부에 묻혀 있는 석탄은 영국 중부의 석탄과 같은 탄맥에 속해있다.
- 474/루나협회는 보름달이 뜨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월요일 밤에 모임을 열었다. 달빛이 환해서 귀가할 때 편했기 때문이다.
- 476/가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일하는데 익숙했던 사람들은 이제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로 출근해야 했다. 시계가 없는 노동자가 많았기에, 고융주는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사람을 보내 노동자들의 집 창문을 두드려야 했다.
- 477/우리가 보기에는 당시의 혁신이 느렸겠지만, 당시 살마들에게는 유례없이 빨랐을 것이다.
- 478/1851년 영국은 자국의 성취를 찬미하고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런던의 수정궁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개최한 세계 최초의 만국 산업 제품 박람회를 열었다.
- 478/영국은 산업 혁신이 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신기술 수출과 숙련 노동자의 외국 이주를 막는 법도 제정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사람을 영국으로 보내 비밀을 알아냈다. 공장을 세우기 위해 기업가에게 뇌물을 주고 배로 기계를 밀반출하기도 했다.
- 479/프랑스는 1830년에 세계 최초의 백화점을 열었다.
- 480/미국 정부가 내쫓은 문화들은 대부분 농경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변화를 늦출 농경 문명 전통도, 저항할 전통 엘리트도 없었다. 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조직이 탄탄한 종교도, 법적인 계급 구분도 없었다.
- 483/1861년까지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농노로서 영주의 땅과 영주의 처분에 얽매여 노예와 비슷한 처지였다.
- 483/러시아제국은 한 가지 근본적인 모순에 직면했다. 산업화를 추구하는 한편 차르와 귀족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자 했기때문이다.
- 485/최초의 국가가 초기 도시를 관리하기 위해 출현한 반면 현대 국가는 커져가는 산업 경제의 부와 권력을 관리하기 위해 출현했다.
- 487/프랑스혁명 이전에 일어난 미국독립혁명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도운 프랑스 병사들이 자유사상을 지닌 채 귀국했고, 프랑스 정부는 경쟁국 영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미국 독립을 지원한 결과 파산 지경에 내몰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다.
- 488/19세기 말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와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간격이 엄청나게 벌어져 있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지역별 부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 490/영국 직물 노동자와 탄광 광부는 소득의 5%를 중국 차를 마시는 데 썼는데, 그 차는 영국 정부가 은을 주고 샀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를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 팔고 대가로 은을 받았다.
- 491/밀수는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세계경제체제가 무너지지 않게 막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491/1800년대 말에는 중국 인구의 약 10%가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아편을 이용했다. 추정값에 따르면 실제 중동자는 4000만 명에 달했을 것이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세계 아편 공급량의 95%를 중국인들이 소비했다.
- 493/영국은 처음에는 인도, 다음에는 아프리카에서 맥심건을 사용했다. 5시간 동안 이어진 한 전투에서는 영국 병사 20명이 죽은 반면 수단인은 1만 1000명이 몰살당했다.
- 496/스마일은 현대성의 근본적 측면은 전 세계에서 기분 전환에 쓰이는 방편들을 모아 축적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 방편은 담배, 차, 커피, 설탕, 카카오, 코카, 아편, 대마 등이다. 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로 가는 해상로를 발겨한 유럽인들으 담배, 설탕, 초콜릿, 차, 커피 등 새롭고 부드러운 약물이 주는 고양감을 경험했다.
- 498/산업혁명은 역사학자들이 명확히 분석하기가 유달리 어렵다. 아직 그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적 산업화로 나아갈 수도 있고 지속 불가능한 시대의 종말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효과를 평가하기란 어렵다.
- 502/유럽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이주가 탈출구였다. 증기선과 철도 덕분에 유럽 이주민들이 큰 물결을 이루며 세계로 퍼져나갔다.
- 504/아동을 자산이 아니라 비용으로 인식함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졌고, 이 점은 여성에게 혜택이 되었다.
- 504/말 1마리는 연간 2.7~3.6t의 똥을 눈다. 이 배설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59년에 최초의 지하철 건설이 시작되었다.
- 506/동아프리카의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남성을 으레 ‘애들’이라고 불렀다.

권열
11-1
근대로의 진입, 과학적 확실성과 진보라는 개념의 출현. 그 뒷편에 얼마나 많은 폭력과 희생이 자행되었으며 이젠 야만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당시에 정당화 되고, 당연한 일로 행해지는 기록을 마주하게 되네요.
영국의 산업화한 복합적 이유에 대한 표 11.1 자료가 유용했으며, 대니얼 스마일의 현대 산업화에 대한 근본 원인 분석도(현대성의 근본적 측면은 전 세계에서 기분 전환에 쓰이는 방편들을 모아 축적하는 행위이다) 흥미로웠습니다.
11-2
(496p) 유럽 각국의 식민주의 정책이 자신들의 핵심 가치 및 국내 관습과 모순된다는 점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성 시민의 참여가 높아지면서 더 민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 독립과 상충되는 독재적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이들은 식민 통치가 불안해질까 우려하여 자국의 현대화를 식민지에 장려하지 않았다. 이 뻔한 모순은 20세기에 유럽 식민지 통치의 토대가 무너지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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