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무역이 시작된 10장의 초반 내용부터 궁금증이 생긴 것은 식물 종자의 이동과 생태의 변화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의 시작점이라 봐도 무방할 시기의 내용들이죠. 이 시기에 특정 일부 지역에서만 문제되던 식물들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정착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453페이지에도 짧게 언급을 하고 지나갑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식물들의 확산이 있었을 것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미생물들도 함께 퍼져나갑니다. 이에 질병이 함께 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0-2.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대기의 화학을 바꾸기 시작했다. 식물과 동물 종의 서식 범위, 다양성, 분포뿐 아니라 물 순환과 침식 같은 근본적 지질학적 과정도 바꾸었다.”
“지구 역사에서 어느 한 종이 그런 힘을 지닌 적은 없었다. 우리가 풀어놓은 변화의 힘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믐북클럽] 1. <빅 히스토리> 읽고 답해요
D-29
지혜지
권열
10-1
이전 몇 장이 다소 역사책과 비슷해서 큰 감흥이 없었는데 혁신의 원동력을 3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시기별로 구분해 특징을 살펴보는 면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현대 산업혁명이 생물권 자원 통제력이 급격히 높아진 시기다 라는 언급 또한 인류의 역사 중 산업혁명 시기를 바라볼 때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었네요.
(전부 언제나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혁신과 독점의 반비례도 흥미로웠습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의 플랫폼 경제는 과거보다 더 어마어마한 인수 합병이 진행되고 있음에도(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에 의한) 이들의 독점을 규제하기 매우 까다롭고, 법적조치가 뒤늦게 허겁지겁 따라가는 현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혁신 속도로 역사를 바라보는 틀을 읽고 나니 오늘날에 독점을 막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마지막으로 차익거래로 인한 수익이 노예 노동을 갈아서 만든 부 라는 점이 끔찍하네요. 요즘 들어선 눈부신 발전의 이면으로 이러한 사실이 바라봐 지는게 아니라 그저 끔찍한 일을 인간은 벌여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10-2
(427p) 농경시대 내내 느렸던 기술 변화의 속도 자체도 혁신을 가로막았다. 투자자들이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보상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사업가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인 교역 방식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비단이나 보석 같은 물품을 거래할 독점권을 힘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더 나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웃 국가의 부를 빼앗아 자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편이 나았다. 연구소도 없고 경쟁하는 기업도 없는 사회에서는 수익이 나기까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기술에 투자하기보다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전쟁을 벌이는 쪽이 대체로 나았다.
(431p) 그러나 번영은 언제나 붕괴로 끝났다. 인구는 가용 자원보다 빨리 성장하곤 했고 토지는 과도하게 이용되어 기근을 불러오곤 했다. 소도시는 점점 오염되곤 했고, 이윽고 보건 위생이 열악해지기 시작했다. 자원 쇠퇴에 직면한 국가는 전쟁을 통해 이웃 국가의 자원을 약탈하는 익숙한 전략을 실행했고, 전쟁의 야만성과 황폐화로 여러 지역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질병과 죽음이 만연했다. 농경시대에 인류 역사를 주도한 맬서스 주기의 원천은 그 시대 내내 혁신의 속도가 느렸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메이플레이
10-1
교환망이 커지고, 통신과 교통 발달하면서 최초로 세계화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이렇게 혁신의 속도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과거 농경시대에 비해 결과물이 크지 않다는 점은 그 근간이 농경에 있으면서 생산성과 발전에 노력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로지 남의 부를 빼앗는 것으로 성장하려는 생각으로 제로섬 게임같은 시기라는 것이 답답하네요. 현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인류의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농경시대 혁신의 한계로 부정적인 면이 많이 느껴졌어요.
거기에 유럽인들의 야만적이고 정복적인 세계화에서는 화가 나게 하네요. 야만적인 군사적, 정치적 규칙 아래 활동하고, 자신들이 침략하는 사회에 도덕적 감정도 느끼지 않았기에 정치적 우위를 차지했다는 말은 양심을 버린 행동 같았어요. 이렇게 자신의 이익 앞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네요.
10-2
식물의 광합성에서 나온 에너지를 이용하는 세계에서는 혁신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행정적 능력이 자원 동원을 좌우했다. 가장 성공한 국가는 가장 많은 군대를 동원하고 이동시키고 먹이고 인상적인 기념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이 농경시대 내내 생산성이나 생산량을 놀이는 것이 아니라 이웃 국가의 부를 빼앗는 것이 성장을 의미했던 또 다른 이유다. 가용 자원이 고정된 세계에서 성장은 제로섬 게임이었다. 429쪽
스페인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유럽국가들의 야만적인 군사적, 정치적 규칙 아래에서 활동하고, 자신들이 침략하는 사회에 아무런 도덕적 감정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우위를 차지했다.449쪽
띠에리
10-1
앞서 많은 분들이 맬서스 주기가 키워드라는 리뷰를 봤는데, 저 역시 맬서스 주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맬서스 주기를 깊게 공부해보지 않았는데, 주기라는 것이 수학식처럼 정해져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covid-19를 겪고 있는 지금도 맬서스 주기에 속하는게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맬서스 주기를 겪음으로서 일보 후퇴 하지만 고난을 원동력을 삼아 이보 전진하는 인류의 힘에도 가끔 감탄합니다. 비유가 적절하진 않지만 바퀴벌레 보고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가졌다고 하잖아요? 저는 인간들도 조금은 비슷한것 같다고 느끼는데, 너무 과한 생각일까요?
10-2
따라서 종교, 예술, 윤리, 기술을 포함한 모든 분안에서 새로이 나타나는 착상인 혁신의 속도는 작은 공동체보다 큰 공동체에서 훨씬 빨라진다. 인구 성장 자체가 집단 학습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419p)
농경시대 내내 느렸던 기술 변화의 속도 자체도 혁신을 가로막았다. 투자자들이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보상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427p)
오후
10-1. 혁신의 세 가지 원동력인 교환망 확대, 교통과 통신의 개선, 상업화가 두 가지 큰 맬서스 주기를 거치며 중요해지는 양상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장을 읽는 내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서막인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가 세 차례가 언급된 점은 무척 반가웠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인쇄 관련 언급이라서 더 뿌듯했는데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상정고금예문><직지심체요절>이라고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욕심^^;;;)
10-2. p.424 기계적인 사본 제작법인 인쇄는 8~9세기에 한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듯하다. ... 한국인들은 나무판에 꼼꼼하게 글자를 새겨 찍었다. 활자판 인쇄도 11세기 한국에서 처음 나타났다. 글자들을 나뭇조각에 따로따로 새긴 뒤 활자판에 끼워 인쇄했다.
p.458 금속활자 인쇄술은 고려인들이 발명했고, 이 기술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책은 1377년 고려인들이 찍은 불경이다.
토끼풀b
10-1.
세계 모든 지역의 정보가 모이는 집합소인 유럽에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남으로 인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무지의 인정'이 유럽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태도였다는걸 봤던것 같은데, 그 태 도는 혼란스러움에서 시작된건가봐요.
10-2.
P457 영국 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탐사와 직접적인 관찰로 얻은 새로운 지식이 진리의 열쇠라는 경험주의를 주장했다. 베이컨은 당대의 지리적 발견을 과학이 나아가야 하는 방식의 모형으로 인식했다. 고대 문헌을 파고드는 대신 현실 세계를 탐구하고 꼼꼼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지식을 새롭고 더 확고한 토대 위에 재정립하려면 기존 권위에 의문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지식이 불러일으킨 회의론, 그리고 탐사를 통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확신은 유럽의 지적 지평선을 넓혔고 17세기의 '과학혁명'과도 이어졌다.
매일그대와
10-1. 흥미로웠던 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p.424, 458 인쇄가 8-9세기에 한국에서 최초 개발되고, 활자판 인쇄도 11세기에 한국에서 처음 나타났지만, 한글의 등장과 서민 문화 등장과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의 한수였을까. 유럽을 세계 지식의 창고로 바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재발견은 뒤통수가 좀 많이 띵하다.
p.448-453 유럽인들이 화약 무기를 동원해 질 낮은 상품을 억지로 떠넘기고 포로로 잡거나 대량 학살을 함과 동시에 면역력이 없는 새로운 질병을 퍼뜨리며 세계적인 대규모 차익 거래로 엄청난 이익을 올리는, 줄글을 따라 읽다보니 착취의 역사를 문명으로 덧씌워 계몽되고 교육받아온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화물로 거래되어 노동력을 제공한, 그야말로 배터리였던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아팠다.
10-2. 밑줄 그은 문장
p.422 혁신이 근대에 중요해지고 최근 수백 년 사이에 극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는 크게 3가지가 있다. ⓵교환망의 크기와 다양성 증가 ⓶통신과 교통 체계의 효율 증가 ⓷상업 활동, 경쟁 시장, 자본주의의 팽창
p.428 태양에너지를 활용하는 주된 방법은 쟁기와 수레를 끌고 짐을 옮길 때 가축의 에너지를 이용하고, 노예로 잡혀서 그저 지능이 있는 에너지 저장고로 취급되곤 했던 사람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현대 이전의 수많은 지역에서 노예제가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노예는 무척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배터리 같았다.
p.430 최초로 공식 주화를 발행한 곳은 BCE 제1천년기 중반 아나톨리아다. … CE 1024년 중국 송나라는 동화와 은화가 부족해지자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p.445 기독교 선교에 대한 열정, 말리의 황금에 대한 지식, 유럽의 생선 수요 증가, 오스만제국이 인도양으로 향하는 동지중해 교역로를 차단한 조치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유럽 통치자들과 기업가들, 그들에게 돈을 대는 이탈리아 금융업자들이 전보다 열심히 대서양을 탐사했다.
p.453 콜럼버스 교환
느려터진달팽이
열린연단은 사랑이라며 몇년동안 아주 행복했었죠^^ 하나씩 보세요~ 다만, 이러다 이렇게 인생다가겠구나 배우는게 재밌기는 한데; 그럼 10장 들어갑니다.
혁신의 속도가 증가한 이유로 세가지 원동력을 꼽고 있습니다. 1. 증대된 교환망, 2. 통신과 교통발달, 3. 혁신의 유인증가인데요. 여기서 중앙아시아 하면 뭔가 사막이 떠오르는 1인은 천년 전엔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같은 지역이 세계 과학 기술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앞서 장작가님께서 답변해주셨던 송나라의 자본주의 맹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지역의 자본주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인이 등장하죠^^ 424p 앞서 전갈이 시베리아 동부에서 남쪽의 한국, 중국, 일본으로 전달ㆍㆍ이 대목에서 먼저 등장하긴 했습니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먼저다! 고유명사를 쓰진 않았지만.
느려터진달팽이
그리고 430p 화폐/어음/조세의 메카니즘도 잠시 등장합니다. 멜서스 주기는 이 장에서 아주 빈번히 등장하는데요. 책 뒤편에 용어 정리가 따로 되어있어요. Malthusian cycle: 경제, 인구, 문화, 정치 등이 팽창하다가 위기와 전쟁, 인구와 문화와 정치의 쇠퇴를 겪는 긴 주기. 농경 문명 시대 내내 뚜렷했던 이 주기는 대체로 수세기 동안 이어진다고 나오네요. 혁신이 나타나지만 그 속도가 인구증가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결국 붕괴한다는데 인구론에서의 그 비극적 정서?가 선뜻 스칩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의 많은 무역양상을 소개하고 노예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본 정부와 상업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요. 송나라 이야기는 440p에^^ 인구의 1/3이 숨진 흑사병도 등장하고 이 대목에서 코로나 초창기에 사람들이 ww1, ww2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호소력있게 말씀하시던 바이든의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이 와중에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이라니 🤬 (욕이 써있으리라 추정)
그리고 444p 콜럼버스 항해선 26m보다 다섯배는 큰 중국의 정화의 배 120m가 등장하는데 시기도 1405~33까지 더 앞섰어요.
또 인상적인 부분은 447p 마젤란이 아메리카 남쪽까지 항해한 뒤 태평양을 건너는 길에 나섰는데 필리핀에서 살해당하고 부함장 후안이 세비야로 귀향에 성공했다는 서술에서 최초로 세계일주를 해냈지만 실은, 통역으로 팡글리마 아왕이라는 말레이 제도 출신 노예가 바다를 통해 한 바퀴 돈 최초의 인물이었다!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히말라야 원정에서 누가 해냈다고 떠들썩할 때, 실은 거긴 우리 뒷산이라며 장비도 잘 갖추지 않은 채로 무거운 짐을 들고 같이 등반한 세르파의 이름은 무언지 늘 궁금했는데 여기서 조금 해갈되는 느낌이었어요.
세계적 교환망은 유럽에도 영향을 미처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에 입각하고 데카르트의 회의론과 탐사를 통한 지식추구는 유럽의 지적 지평선을 넓혔고! 과학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지적혁명이라니요 😭
참조: 열린연단,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 편
https://classe.ebs.co.kr/classe/detail/show?prodId=132936&lectId=10398373&clsfn_syst_id=40009039&hmpId=classe
여기서도 볼 수 있네요~ 좀 더 짧은듯 해요☆
느려터진달팽이
하나 더 하겠습니다. 주초가 한가한 편이라서요~ 그리고 실은 이걸 설 전에 끝내고픈 맴이 있습니다. 낼 두 개 더 하더라도 양해를^^;
11장은 우리가 정치경제역사사회에서 이미 많이 다루었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다루어 좀 더 수월하실 거예요~
여기에서의 문턱은 이제 산업혁명!입니다. 영국의 직물산업에서 시작되었구요. 증기기관이 왓슨이 최초가 아니고 그보다 비효율적인 장치를 개선한 것이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창발성은 역시 뒤에 보면, emergent property: 구성요소들에는 없지만, 구성요소들이 특정하게 배치되어 하나로 연결되면 출현하는 복잡한 실체의 특성을 가리킵니다. 시너지를 내는 잠재력 정도 될까요?
중국에서도 나올 수 있었는데 영국에서 먼저 시작된 이유로 표 11.1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분노의 포도를 연극으로 봤었는데 그 때 잘 표현되었던 엔클로저 운동도 나오고 대지주들은 대체 언제부터 저리 땅을 소유하며 세습했을까? 그 기원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대략 이시기였군요. 이 시기 드디어! 맬서스 주기가 아니고 저주인가 싶던 그걸 넘어서게 됩니다:) 도농현상이 빠르게 진행되며 최초로 만국산업박람회가 그 유명한 수정궁에서 1851년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개최됩니다. 이 무렵 영국은 직물, 금속, 채굴, 기계 제작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478p
산업혁명은 벨기에, 프랑스, 미국, 일본과 러시아 등지로 확산했고 혁명의 시대였던 만큼 그 확연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산업화의 세차례 물결이라 표현하셨네요. 뒤의 용어정리에 세번째라 하신건 오타가 아닐까 해요.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아렌트가 너무 좋아 몇 권의 책들의 강독에 참여했었는데 그 중 혁명론에서 프랑스 혁명 보다 미국혁명이 더 시민들에게 의미있었다는 점에서 더 혁명적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역시 거시적 역사를 다루다보니 이토록 짧게 지나가는구만요~
지도 11.2에서 제국주의와 이주를 그림으로 나타내는데 여기 또 한국이 등장하고☆ 아마 사탕수수재배하러 강제이주되셨던 것 같네요. 그 슬픔의 역사를 이토록 마치 내가 원해서 가는것마냥 '이주'라 표현하니, 기후변화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거든 결코! 이쪽으로는 올 수 없음에도; 마치 가역적인 것인양 중립적으로 표현하는게 저는 좀 별로였습니다.
아프리카 제국주의에서는 역시 넷플릭스에서 감동적으로 보았던 보츠와나 이야기 <오직 사랑뿐>였던 가요? 생각이 났구요. 그토록 광물자원이 탐이 났더냐! 마치 독짓는 늙은이가 역정내는 심경이;;
504p 런던 하수 문제는 제가 번역했던 책에서 비르효라는 인물이 당시 유럽 어디나 만연했던 하수처리 문제를 잘 해결했던 부분이 등장하는데 그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앞서 등장한 비스마르크와 소세지 결투를 벌였던 직업을 네 개쯤 가졌던 천재의사였어요.
그리고 성별문제에서는 506p 빅토리아 시대 유럽인의 성별가치 기준에 따르면, 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남편이 이끄는 가정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고 나오는데 제가 대학원 때 교수한테 들었던 워딩이 저런 것이었다는 게 벌써 꽤! 오랜 일이지만 새삼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덕분에 밖에서 공부많이 했는데 이토록 세월이 흘렀을 줄은 미처 몰랐다는 것 역시 새삼스러웠습니다^^;
느려터진달팽이
12장 갈게요~
지난 번 아마콩쿨 지원했다 예선탈락했는데 여기되어서 좋다고 했었는데 덕분에 본선 연습할 시간이 굳어 ㅋ 책 더 읽네요.
12장은 인류세입니다. 대학원 때 사회학을 조금 팠던 사람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내용들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문체가 묘하게 이공계적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12장 1부는 인문사회계열에 익숙한 밀도의 문체가 담겨있는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6p에서 정부지출과 모든 상품과 용역의 총가치인 국내총생산 비율이 1913년에 8% ᆢ 에서 GDP에 대한 정부지출의 비율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걸까요? 복지 등 공공지출의 비율인가 싶었구요.(마침 요게 전공분야였어서)
그리고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줄어드는 시장을 놓고 자본주의 열강이 벌인 충돌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517p에서 재미지게 읽었던 <전체주의의 기원>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사회주의권의 초반 성공과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필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자들이 대공황 이후로도 계속 실패할만큼 멍청하지도 않고, 사회주의자들이 초반에 유토피아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였던 현상을 계속 지속할 것으로 믿을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계속 식민지와 그 독립의 여파가 여기저기 묘사되는데요~ 제가 홉스봄 책을 서양현대사 시간에 사두고 꽂아만 두고 있었는데, 그 무수한 세월을 너머 이제는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식민지들이 대거 등장하는만큼, 정복자들의 빼놓을 수 없는 논리인 '식민지 근대화론'이 명칭까진 아니어도, 과거 제국주의 정부는 식민지의 경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등한시했고, 수익이 가장 많은 원료를 생산하는 쪽을 선호했다고 나오네요~ 525p 제가 저 기만적인 이론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를 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계획경제로 결국엔 망한 메카니즘이 등장합니다. 부르주아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들의 필연적 공포로 인해 가능성 자체를 압살한 헤롯같다고 하면 오버일까요?
이어 2부에서 혁신을 장려한 세계 곳곳의 발달모습이 등장하고 3부에서는 그 성장과 산업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등장합니다.
늘어나는 인구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소비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유형의 진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543p
여기에서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포드혁명이 생각났어요. 자기가 만든 차를 남만 사는게 아니라 노동자도 살 수 있게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닌,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로 공장식 라인에서 비용을 절감하여 주인된 기분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따뜻한 혁명이 창업주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가능한거구나~했습니다:)
그리고 545p 농경시대 삶의 특징이었던 엄격한 남녀분리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산업화된 지역들에서는 더욱 급격하게 나타났다. 그 나라들 조차 지금도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은 상황이긴 하다. 이 대목에서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여주인공이 빡치는 장면이 절로 소환됐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본주의가 윤리혁명을 대변했다는 지점에서 544p 농민사회의 전통적 미덕인 근검절약대신 소비와 사치를 찬미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잘 연결이 안되는데요. 과소비를 찬양하는 의식의 전환일까요?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혁명과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검을 미덕으로 삼던 카톨릭 정신을 구원과 연관지어 결국 탐욕을 부추겼다고 개신교 지역의 사람들에게 산업을 더 추구할 동력을 갖게하기 위해 사고방식의 렌즈를 갈아끼게 했다는 신학자 칼뱅이 제공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데~ 비슷하게 이해하면 될런지요? 그럼에도 사치와 윤리혁명은 딱 부합하진 않는다는 생각입니다만.
바닿늘
10-1
인간이 지닌 앎에 대한 욕구는 정말 대단하다고 매번 느낍
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목숨 걸어가며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큰 도약
의 배경에는 항상 앎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했으리라는..
어렴풋한 예상을 해봤습니다.
10-2
p.443
교환망은 CE 1350~CE 1700년에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
로운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역사상 처음
으로 진정한 세계적인 종이 되었다. 모든 세계 지대의 사회
들이 이전보다 크고 다양하며 단일한 교환망으로 통합되면
서다.
p447
유럽 선원들이 대서양의 바람과 해류를 오가며 항해하는
법을 배운 이유는 초기의 상업적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
했기 때문이다. (중략)
1519년 스페인 통치자를 위해 일하던 포르투갈 항해자 페
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아메리카 남쪽
까지 항해한 뒤 태평양을 건너는 길에 나섰다. 그는 1521
년 필리핀에서 살해당했지만, 부함장 후안 세바스 티안 델
카노(Juan Sebastian del Cano)는 1522년 세비야로 귀
항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5척이 함께 출항했지만 소수만
이 살아남아 1척만 돌아왔다.
바닿늘
10-1
세계사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한국이 전쟁을 자주 겪은
국가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유럽에 비교하면 한국은 전쟁
을 자주 겪은 나라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대부분의 것들은 상대적인 관점으로 한 번씩 볼 필
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시기의 유럽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피비린내가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도
다시금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다시 불안해졌지만요..;;;
10-2
p448
■ 교역자와 정복자
유럽의 정부와 상인들은 최초의 세계적 교환망에서 중심적
지위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냈다. 유럽인들에게
는 가장 풍요로운 인도양 교역망의 지역 상인들이 관심가질만한 물품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마주한
상대는 대부분 작거나 중간 크기의 교역 정체 또는 도시
국가였다. 이들은 화약 무기를 동원하여 질 낮은 상품을
억지로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십 년 사이에
포르투갈 선단은 동아프리카 킬와나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동인도 제도 고아(1510년에 점령)와 말라카 같은 인도양
교역망의 요지에 교역소를 세웠다. 포르투갈인은 이곳에서
지역 향신료 거래의 일부를 맡고 수익을 올렸다. 인도양에
서 지중해를 잇는 교역을 독점한 오스만제국 중간상인들
을 우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449
유럽 이주민들은 교역자뿐 아니라 정복자로서도 아메리카
에 도착했다. 16~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거대한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했다. 스페인은 아스테카 같은 지역
제국의 적들과 종종 동맹을 맺으며 야만적인 전쟁을 벌이
고 단기간에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산맥에 있는 아메리카
문명의 심장부를 점령했다. 포르투갈은 자신들에게 저항할
큰 국가 구조가 없는 브라질에 새 정착지들을 건설하기 시
작했다.(중략)
17세기부터 다른 유럽국가들, 특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의 상인과 기업가도 카리브해와 북아메리카에서 나름의 제
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바닿늘
10-1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제도 중에 특히나 '노예 제도'는..
끔찍한 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인간
존엄을 어떻게 다른 인간이 소유할 수 있었을지를 ..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합니다. 지금은 노예가 없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노예가 있는 게 당연한 시기가 오랫
동안 이어졌다는 게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약간은..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한동안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영상들을 찾아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라는 소설이 노예
제도 폐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저처럼 관심 있으시면 유튜뷰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괜찮게 봤던 영상은 요거예요.
https://youtu.be/XV_KYLiX6fQ
10-2
p451
● 대서양 교역 체제를 뒷받침한 노예무역
1492년 이전까지 유럽과 교류하지 않았던 대서양 지역에
서도 새로운 세계 교역망의 중심축이 될 교환망이 출현했
다. 이 체제도 한 지역에서 값싸게 생산하여 다른 지역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품을 찾아내는 방식에 의존했다.
(중략)
노예 노동을 착취하는 초기 플랜테이션 농장은 아메리카를
활용하는 야만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과 모형을 제시했다.
카나리아제도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소유한 인물
의 사위였던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 때 산토도밍고에 사
탕수수를 들여왔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
카 노예들이 일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들을 브라질
에 이미 조성한 상태였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침략자들이 카리브해의 섬들에 사탕수수를 도입
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성공하려면 값싸고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정제 설비에도 투자해야 했
다. 곧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출현하여 필요한 노동력을 공
급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질병이 들어온 이후 원주민 대부
분이 사망한 카리브해 섬들에 특히 노예가 필요했다. 유럽
투자자들이 대부분의 자본을 댔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상들
은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유럽 소비자들은 수요를 제공했다.
느려터진달팽이
마무리를 지어보겠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ㅠ
이 책의 의의는 세가지 점에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1. 지구를 역사의 주체로 등장시킨 점, 2.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을 다루어 준 점, 3. 미래까지도 역사의 무대로 소환한 점. 신선했어요^^
557p 사람 발자국 human footprint : 지구의 재생능력을 뜻하는 환경용량에 인류가 가하는 부담을 뜻한다네요. 2002년 이미 미국국립과학원은 1980년 경 사람 발자국 👣 이 처음으로 지구의 환경 용량을 초과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풀무질에서 멸종반란이라는 테마로 전문가분들 모인 자리에 갔었는데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뒤에 프란시스 무어 라페 여사님도 등장하셨던 것 같은데, 무려 오십년 전!에 내신 책에서 지금의 비건운동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주창하셨다는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각종 어두운 전망들이 난무하고; 기후도 그렇지만 생태계도 파괴되고 식량공급도 또;; 위험에 처해있다고ㆍㆍ ai기술이 난무하는 요즈음에도 유효한 발언이실지? 그와중에 핵위협과 각종 바이러스 위협ㆍㆍㆍ푸틴과 북한/ 코비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너무도 적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끝내면 그러니까 희망적인 추세도 공평하게 언급하고^^ 이는 1. 기후 안정, 2. 생태계 회복, 3. 소비감소와 도시 재설계, 4.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 발전, 5. 세계적 협력과 소통으로 얘기해주셨습니다. 이 중 민주주의 부분에서 실은 앞장에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 정치학 전공자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지므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님의 민주주의 책들 위주로 봤던 사람은 이번에 지구 민주주의, earth democracy: justice, sustainability & peace 이런 제목의 Vandana shiva님의 저서를 알게 되었네요.
이 중 세계적 협력과 소통에 희망을 좀 더 걸어봅니다. 예전에 un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un새천년선언 MDG 반가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끝나는 literally 역사의 종언 시점이 올 것이고 이후 맞이할 먼 미래에 지구는 다시 죽은 곳이 되고 모든 복잡한 구조는 서서히 분해될 것이다. 행성과 생명을 탄생시킨 골디락스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585p ... 우주는 영구히 커지면서 단순해질것이다. 영원히.
이러면서 우리는 우주가 경이로운 세계를 생성하는데 필요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던 시절의 산물이라며 끝을 맺습니다. 마치 생명의 탄생과도 같네요. 처음으로 회귀하는 것만 같습니다. 흑암이 뒤덮었던 최초의 시간☆ 재밌었습니다.
새벽서가
9-2.
Particularly striking is the fact that adaptation sometimes led to cultural simplification rather than to increasing social and technological complexity.
새벽서가
10-2.
We can also see in this period the befinning of a profound change in the global distribution of wealth and power. Before 1500, the societies of Eurasia's Atlantic Seaboard had been marginal, sitting at the edge of the vast exchange networks of the Afro-Eurasian Zone. After 1500, societies of the Atlantic region suddenly found themselves at the center of the largest and most diverse trade networks that had ever existed.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11장 읽기****
드디어 마지막 문턱인 근대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근대의 상징, 산업혁명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챕터에서 조금 더 자세히, 우리가 모르는 개념과 뒷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모임의 마지막 날(1월 24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네요. 남은 기간 동안 또 함께 힘을 내어 달려봅시다! 이 넓은 우주에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이 있어 오늘도 외롭지 않네요.
18일과 19일, 이틀 동안은 열 한 번째 장을 읽겠습니다.
리브
11-1
산업혁명이 시작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인들 일부가 필요했다. 막대한 잉여 자본, 값싸고 많은 노동력, 새로운 상품 시장, 새로운 동력원, 새로운 원료, 개선된 교통 체계다. 사회적ㆍ이념적 맥락의 변화도 중요했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화의 1차 물결이 일어났고 1820~1840년에 에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2차 산업화의 물결이 이어졌고, 3차 물결은 1870년경 러시아와 일본으로 확산되었다. 3차 물결의 흐름에 조선이 빠져 있다는 점은 결국 어두운 한국 근대사의 서막이 된 것 같다.
11-2
P.486
많은 사람이 노예제, 고문, 극도로 가혹한 범죄자 처벌처럼 이전의 수세기동안 당연시되던 잔혹한 행동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남들에게서도 느끼기 시작했고, 보편적이고 평등한 천부적 인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과 미국 의회가 처음 주장한 이 사상은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더 큰 영향력을 얻었다. 마침내 5년 뒤 프랑스 국민의회는 모든 프랑스 영토에서 노예제를 폐지 했다.
P.490
영국에는 중국인이 원하는 물품이 전혀 없었다. 중국이 화폐 주조에쓰는 은만 예외였다. 1800년경 영국은 많은 은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영국 직물 노동자와 탄광 광부는 소득의 5%를 중국차를 마시는 데 썼는데, 그 차는 영국 정부가 은을 주고 샀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를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 팔고 대가로 은을 받았다.
노예무역을 폐지 한 이후 영국은 중국의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파는 쪽을 택했다. 중국 정부가 아편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후반기에 영국은 대규모 밀수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밀수는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세계경제체제가 무너지지 않게 막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P.493
유럽이 아프리카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두 가지 혁신에 있었다. 남아메리카에서 자라는 한 나무의 껍질에서 찾아낸 퀴닌으로 말라리아에서 자유로워진 유럽인들은 사하라 남부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혁신은 영국으로 이주한 미국인 하이럼 맥심이 발명한 맥심건이라는 기관총이었다.
P.495
유럽의 위세가 안팎으로 커지자 유럽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바뀌었다.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푸는 한편으로 유례없이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과거의 모든 국가처럼 다른 지역들을 희생시켜 부를 늘리고 있지 않는가? 유럽인들은 다른 지역 사람과 문화들을 열등하다고 판단했고, 자신들이 다른 모든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으며 오만해졌다. 이 믿음은 자신들의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기존의 믿음과 결합되곤 했다.
P.496
유럽 각국의 식민주의 정책이 자신들의 핵심 가치 및 국내 관습과 모순된다는 점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남성 시민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더 민주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민족 독립과 상충되는 독재적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이들은 식민 통치가 불안해질까 우려하여 자국의 현대화를 식민 통치에 장려하지 않았다. 이 뻔한 모순은 20세기에 유럽 식민지 통치의 토대가 무너지는 데 기여했다.
P.496~497
유럽의 산업혁명과 세계정복이라는 큰 그림을 돌이켜보면 이 엄청난 변화가 겨우 200년 사이에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진다. 근본 요인은 대규모로 연소한 석탄 인 듯하다. 산업국의 제국주의를 빚어낸 또 다른 요인은 19세기 말의 기후변화였다. 1870년대 말부터 전 세계의 적도와 주변 지역에 세 차례 잇따라 가뭄이 찾아왔다. 인도와 동아프리카에서는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브라질 북서부와 중국 북부에도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뭄은 1번에 몇 년씩 이어졌다. 남아메리카 서쪽 바다에서 일어나는 엘니뇨라는 해류 변화가 강수량 변화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산업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이 효과가 확대되어 사회적ㆍ경제적 붕괴가 일어나 3000만~6000만 명이 사망했다. 앞서 언급한 지역들의 국가 생산량도 급감하자 이에 영향 받은 국가들이 저개발에 빠져들었다.
새벽서가
11-1.
드디어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네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삶과 역사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책 시작전부터 이 챕터가 사실 가장 기대되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몇백년동안 어쩌면 유럽이 배워가고 싶은게 많았던 중국은 산업혁명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유럽 중심, 서구 중심의 사회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거겠죠. 산업혁명은 영국에서만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차는 영국에서, 2차는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독일등의 유럽국가와 미국에서, 그리고 3차는 1870년경이 되어 러시아와 일본까지 확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제1차, 2차 세계대전 종주국들이 라는게 씁쓸합니다. 일본이 3차 물결을 타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근대화에 성공했을때 한국도 거기에 동조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하고 생각해보게 되네요.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환경,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보이고, 남녀 평등과 인권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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