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31.
인류학 이론에 따르면 집단이 클수록 일부 사람들이 권력과 권위를 더 노결적으로 행사한다. 구석기 친족 집단의 평등주의는 초기 농경시대에 부와 권력의 가파른 계층구조로 서서히 대체되었다.
234.
농경 때문에 남녀의 상대적 지위가 뚜렷이 변화했지만, 이 모습을 정확히 설명하는표준 모형은 없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고고학 기록에서 남성과 여성의 것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남성과 여성 중 한쪽만 섰음이 분명한 유물이 적어서다.
245.
지도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고, 대체로 집단의 동의를 받아 다스렸으며, 많은 사람과 물적 자원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도자가 쉽게 교체되기도 했다. 권력이 아직 동의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믐북클럽] 1. <빅 히스토리> 읽고 답해요
D-29

호디에

권열
5-1. 수렵채집인에서 농경으로의 선택이 고된 일을 자처하는 것이었으나 문명의 방향으로 나아간 아이러니한 측면이 엿보이네요. 그렇지만 우리가 행복해졌을지의 생각해보면 수평적 관계에서 계급적 관계를 맞닥뜨리고 결국 이는 착취적 세계를 열게 된 셈이죠. 게다가 고노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마치 자멸해가는 선택을 자처하고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지구 입장에서도 농경에 대한 인간의 선택은 파괴를 가속화한 저주스러운 사건일지도 모르고요.
이 책의 장점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긴 시간을 차지함에도 기록된 역사에 밀려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역사를 알게 해준 다는 점이 좋네요. 농경사회로 나아가는 지점과 초기 농경 사회에 관한 5장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5-2.
(242p) 따라서 인류 사회에서 어떻게 권력이 출현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은 2가지로 나뉜다. 처음 출현한 단순한 권력은 동의에 토대를 두었다(상향식). 하지만 지도자는 이윽고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획득했다(하향식).

동광동
5장
이 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농경의 탄생 그 자체를 인류사의 변곡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당시의 여러 조건들이 인류로 하여금 농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언가가 뿅 하고 발견되고 그걸 계기로 도시, 국가, 문명이 막 탄생하고... 이런 유발 하라리 식의 설명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였거든요. 수천 년에 걸친 초기 농경시대를 등한시하지 않고 다루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인 것 같습니다.
217 미국 고고학자 피터 리처슨의 연구진은 홀로세에 인류가 농경을 택한 이유는 농경이 가능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각지의 인류 집단은 길들임을 실험하다 보니 수렵채집인 무리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리처슨은 그 뒤에 집단들이 심하게든 약하게든 경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농경을 택했고, 불가피하게 농경이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224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각각의 경작지에서 새로운 역사 단계인 초기 농경시대로 진입했다. 세계사 책들은 대개 이 시대를 무시하고, 농경이 곧바로 도시, 국가, 문명으로 이어졌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곤 한다. 그 대규모 권력 구조는 수천 년 뒤에야 출현했다. 사실 초기 농경시대는 도시가 처음 출현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전체와 맞먹을 만큼 길었다!

띠에리
5-1
초기 농업이 수렵채집보다 더 나은 생활 체제였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빅 히스토리를 통해서도 몇몇 사례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피엔스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Chapter 5)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초기 농업문화는 개척의 시기라 힘들었겠지만 결국 발전의 방향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은 확실한듯 합니다. 수렵채집인보다 행복하고 더 자유로운지는 모르겠지만요.
5-2
인류의 역사와 생물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주로 문화적 변화가 이끄는 반면, 후자는 유전적 변화가 이끈다. (212p)
일부 지역은 사람들 모두가 정착할 수 없을 만큼 인구밀도가 높아졌다. 각 집단은 점점 더 좁은 땅에서, 이주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정착 생활의 덫에 빠지고 만 것이다. (231p)
대인은 선물은 주고 상대방의 마음 깊이 새겨지는 호혜성 관념을 이용하여 권력을 얻는다. 현대 인류학자들은 대인이 어떤 식으로 돼지, 담요, 가지 있거나 유용한 물품 등을 모아놓았다가 공동체에 필요한 시기에 나누어주는지를 깊이 연구했다. 대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빚졌다는 느낌을 계속 쌓음으로써 사회적 권력을 획득한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누이트의 한 속담은 권력을 얻는 길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선물은 노예를 만들고, 채찍은 개를 만든다." (244p)

메이플레이
5-1
수렵생활의 인간이 농경생활의 길로 들어섰네요.
"정착이라는 덫에 사로잡힌 공동체" 결코 농경생활이 인류발전에 지대한 발전의 시작이겠지만 씁쓸함을 주는 말이네요. 초기 농경시대는 수렵생활보다 영양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았는데도 농경으로 들어선 인간은 정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늘어난 인구는 다시 수렵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이제 늘어난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렵생활보다 힘든 농경의 고된 과정을 감수해야겠지요.
농경의 채택은 인류 역사가 다른 궤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인류가 기존의 생명체과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으로 느껴졌어요.
농경의 선택으로 점점 집단화되고 계급화되는 사회가 만들어져 가는 거죠. 점점 커지는 사회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겠지만 수렵생활을 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인류이 농경의 시작은 환경파괴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인간입장에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된 사회가 정말 발전일까 돌아보게 됩니다.
권력의 등장으로 계급화되는 사회의 불평등, 농경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여파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더 악화되어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농경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땠을까요? 자연친화적이어서 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았을까요? 지나간 역사지만 농경이라는 문턱을 넘어선 것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지지 않네요. 차라리 단순한 수렵채집인의 삶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복잡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5-2
과잉 인구압과 기후변화에 직면한 풍족한 수렵채집인에게는 경작은 집약화하고 농경을 택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222쪽
떠돌이 수렵채집인에게 정착 농경인이 된 인류는 많아지고 조밀해지는 인구를 먹여야 했기에 취약한 환경에 종종 큰 부담을 주었다. 생존을 위해 마을과 소도시, 공동체를 부양하는 경작지와 목초지를 인공적으로 길들이기고 인간 중심적 환경을 빚어냈다. 의도하지 않고 자각조차 못한 상태에서 과잉방목을 해서 척박한 토양이 사막화했고, 관개에 지나치게 의지해서 염류화가 나타났다. 숨과 정글을 계속 벌목하여 토양이 심각하게 침식되었다. 게다가 길들인 동식물 종이 유전자가 변이하여 다양한 질병과 해충에 취약한 잡종이 나타나곤 했다. 246쪽

메롱이
- 5-1
- 5장부터는 아무래도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적들이 많다보니 좀더 구체적이고 실체화된 단서들이 보여서 흥미로웠습니다. 농경혁명이 탁월한 착상 이론이 맞지 않다니… 회귀물의 텐션이 급 떨어지는 순간이네요.
- 5-2
- 215p 여러 증거를 보면 구석기 시대에 아인슈타인이 나타났다고 가정하고 농경 출현을 설명하는 ‘탁월한 착상’이론은 맞지 않는다.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농경혁명이 단계적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각 개인이 의도를 갖고 세운 계획은 한정된 역할만 했다. ‘진화적이었지만 혁명적이지는 않았다’는 이 설명은 농경을 촉진한 환경과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 요인들이 일부 지역에서 인구밀도가 증가하여 일어난 환경압과 연관있다고 본다.
- 218p 인류가 지금까지 유용하게 길들인 식물 종은 약 100종에 불과하다. 농경민들은 육상 포유류 148종 가운데 14종 정도만 길들일 수 있었다. 길들일 만한 동물은 빠른 성장 속도, 일정한 출산율, 무리 짓는 습성, 바람직한 성향 등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 219p 성서의 ‘에덴 동산’이 서남 아시아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처음에는 농사짓지 않고 땅에서 자라는 풍족한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아갔다. 정착 생활이 이어지자 결국 인구가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인구를 억제하던 조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219p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의 군디티마라족은 수천 년간 뱀장어를 ‘양식’한 듯 하다.
- 221p 이스라엘 아인말라하에서는 나투프인들이 수확하여 요리한 곡물을 주로 먹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유골을 보면 대부분이 보리죽과 밀 납작빵을 많이 먹어서 충치를 앓았다.
- 224p 사실 초기 농경시대는 도시가 처음 출현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전체와 맞먹을 만큼 길었다.
- 229p 초기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농경민들은 유전자 돌연변이 덕분에 소의 젖을 많이 먹어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이 증가했다.
- 234p 떠돌이 집단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기에 더 평등한 경향이 있다.
- 244p 이누이트의 한 속담은 권력을 얻는 길을 생생하게 말해준다. “선물은 노예를 만들고, 채찍은 개를 만든다.”
홍텐이
5-1.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농경을 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농경을 택한 인류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또 기후, 인구 등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어쩔수 없이 농경을 택했다는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저는 농경의 발전을 농업혁명으로 배워와서 이를 ‘발명’으로 인식했기 때문인거같아요.
또한 구석기시대말에서 농경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계급사회가 생긴줄 알았는데, 그 사이가 꽤 길었다는 점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공동체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권력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는데 이 부분은 읽어나갈 뒷장에서 더 설명이 될거같아 기대중입니다!
5-2.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길든 동식물 모두 공생 관계에 깊이 의존했고,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의 생존도 위태로워질 정도가 되었다. p.212
사회성 곤충이 큰 집단으로 살도록 유전적으로 적응했듯이, 농경으로 넘어간 인류는 정착하고 상호 의존하며 살아가는 현실이 대두하자 문화적으로 적응했다. p.242
선물을 주는 등의 관대함은 모든 소규모 사회가 매우 가치있게 여기는 속성이다. 대인은 선물을 주고 상대의 마음 깊이 새겨지는 호혜성 관념을 이용하여 권력을 얻는다. p.244

토끼풀b
5-1.
농경 생활이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체적 선택일거라 생각했는데, 거기엔 강제적 요소가 더 큰 역할을 했다는걸 알았어요. 농경시대로 인해 성별의 지위가 바뀌고, '권력' 이라는게 생겼다는 점도요.
그리고 이누이트의 속담은 아주 인상적이네요. "선물은 노예를 만들고, 채찍은 개를 만든다."
5-2.
P217 미국 고고학자 피터 리처슨의 연구진은 홀로세에 인류가 농경을 택한 이유는 농경이 가능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각지의 인류 집단은 길들임을 실험하다 보니 수렵채집인 무리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리처슨은 그 뒤에 집단들이 심하게든 약하게든 경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농경을 택했고, 불가피하게 농경이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지혜지
5-1. 농경시대 초기의 모습을 보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농업으로 기르게 된 종들은 과거의 누군가가 맛보고 작물로 키우기 시작했을 텐데, 이 과정은 우연으로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본능일까요? 맛있는 과일들을 용케 찾아 먹는 새들은 먹지 않아야 되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2. “농경 생활이 수렵채집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힘들고 덜 건강하며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에 대해, 목숨걸고 하는 수렵채집보다 집 앞에서 하는 농경 생활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는 데에 조금 놀라웠습니다.

장맥주
‘배가 고파서 아무 거나 먹고, 그런 이들 중에서 죽는 사람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론은 너무 잔인한가요? ^^;;; 조너선 스위프트는 ‘제일 처음 굴을 먹은 사람’의 대담함에 대해 쓴 적이 있었는데, 저는 사람들이 복어 요리 같은 걸 어떻게 개발했는지, 복어에서 복이 있는 부위를 잘라내는 기술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인해전술(...)이었을까요.
저희 부모님 댁 개를 가을에 산책시키려면 땅에 떨어진 은행 열매 못 먹게 하느라 굉장히 고생스러운데 개들도 모여서 집단생활을 하면 은행 열매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칠까요.

오후
5-1. '정착 생활의 덫에 사로잡힌 공동체'와 '농경이라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소제목에 놀랐습니다. 정착 생활과 농경은 인류의 지혜가 이루어낸 위대한 성취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인구압과 기후변화에 직면한 풍족한 수렵채집인에게는 경작을 집약화하고 농경을 택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각각의 경작지에서 새로운 역사 단계인 초기농경시대로 진입했고, 대규모 권력 구조가 출현한 것은 이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뒤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초기 농경시대는 도시가 처음 출현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전체와 맞먹을 만큼 길었었네요! 초기 농경시대의 생활 모습과 권력의 초기 형태를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5-2. P.246 생존을 위해 마을과 소도시, 공동체를 부양하는 경작지와 목초지를 인공적으로 길들이고 인간 중심적 환경을 빚어냈다. 의도하지 않고 자각조차 못한 상태에서 초기 농경민들은 지속 불가능한 농법을 추구하곤 했다.

매일그대와
5-1. 흥미로웠던 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p.214-215 모든 수렵채집인이 농경을 더 매력적인 생활방식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 농경 생활이 수렵채집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힘들고 덜 건강하며 스트레스가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 유골을 분석한 결과 … 새 질병들 … 수명이 더 짧았고 d아 사망률도 더 높았다는 증거도 있다.
농업혁명이라는 말로 은연중에 발전과 은혜로 받아들였나보다. 당연히 수렵채집보다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선진의 것이므로 은혜 받지 못 할까봐 안달복달하는 수렵채집인들을 상상했었다. 너무나 신선한 지적이라 부끄러웠다.
p.216 후기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집단은 다양한 동식물 종을 시험 삼아 먹으면서 ‘폭넓은’ 식단을 구성했다. 이 실험은 제대로 된 농경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이걸 먹어도 된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은 복어같은 독을 가진 것들이나, 손질법이 복잡한 먹거리들을 보면 거의 항상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세상에! “시.험.삼.아.”라는 말로 그냥 툭 던져둔 저 문장이 말씀처럼 느껴지는 건 뭘까.
p.221 정착 생활의 덫
정착이라는 게 괜찮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자 길목이고 정거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덫이라니. 그런가? 그랬나? 그런 것도 같은데 .. 그래? 어? 진짜??
5-2. 밑줄 그은 문장
p.209-210-211 1만 2000~1만 년 전 세계의 특정 지역들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들에 힘입은 인류는 빠르게 늘면서 농촌 마을 같은 크고 조밀한 공동체가 나타났다. 더 복잡한 공동체인 소도시를 형성한 곳도 있었다. 이 과정이 인류 사회의 복잡성을 새로운 수준으로 높였다. 인류의 농경 채택은 사회를 뒤바꾼 경제적· 문화적 혁명의 첫 단계였다. …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변화 속도가 지역마다 크게 달라졌다는 의미다. … 그렇다고 해서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애쓰며 꾸준히 개발한 전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어쨌든 삶의 조건들이 다양해지면서 세계의 각 지역은 저마다 다른 역사 궤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조밀한 농경 공동체가 출현한 곳에서는 집단 학습의 속도가 빨라졌다. 일부 지역과 집단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역사적 ‘기어 변속’이 일어났다. 농경 혁명으로 인류는 근대 세계의 경이로운 복잡성으로 곧장 나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p.212 인류의 역사와 생물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주로 문화적 변화가 이끄는 반면, 후자는 주로 유전적 변화가 이끈다.
p.223 식물석. 많은 식물에 들어 있는 미세한 광물 결정. 식물의 유기물은 썩어서 사라져도 무기물인 식물석은 남으므로 생물고고학자에게 중요한 증거다.
p.226 사람들은 동물 비료의 잠재적 혜택을 수천 년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른바 2차 산물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다. 관개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제한적이었다.
p.243 분명하지 않은 점은 당시 사람들이 잉여 농산물을 축적하기 시작한 이유다. … 한 이론에 따르면 군장이 잉여 농산물이나 물품을 나누어주고, 받는 이들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불러일으킨 결과이다. 선물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집단의 화합을 유지하는 핵심수단 …잠재적 지지자들을 후하게 대우하고 관대함을 과시하여 권력을 얻는 길

느려터진달팽이
바닿늘님이 올려주신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교수님이라 쓰고 aka. 세계적 석학분들의 짧은 대담 잘 보았습니다. 불평등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진 않는다고 하셨는데 불평등으로 인해 혁명은 일어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잠시 배웠던 사회학에서,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가 아파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던 현대사회학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여기에서도 불평등은 인도 등 저개발국가의 사례를 들어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적 전망을 해주셨지만, 코로나가 전세계를 강타한 지금 다시 말씀해주신다면 또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5장에서 실은, 권력이 등장하면서 하향식/상향식이 조합되어 있으며 ᆢ 일반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권력이 먼저 나타난다. 이 현상은 위쪽에 있는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242p 여기에서 아래로부터라고 하면 뭔가 풀뿌리 민주주의 grassroots democracy로 앞서 239p에서도 언급하신 합의적 권력 consensual power와 궤를 같이 하는듯 보이는데요. 이어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 폭력을 사용할 필요를 언급하신 부분은 하향식/ 강압적 권력 개념과 더 잘 이어지는 게 아닐까 해요. 질문 드립니다.

바닿늘
저도 스티븐 핑커의 요즘 입장은 접한 바가 없어서
궁금했습니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
권력에 대한 부분을 저는 구체적으로 접근하기보단..
추상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제 생각에, 동의와 강압이 적절히 혼합되어가는 과정은
지 금까지도 완전히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 같아요.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은 여러 동의를 어렵게 통과해서 결국 강압의 길로
가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동광동
293쪽 6째줄에서 오타를 발견했습니다. 다음 쇄에 수정되길요.
왕국는 → 왕국은

동광동
책 읽으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분량이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편집, 조판도 그렇고 제본 상태도 아주 안정적이어서 읽기가 참 편합니다. ^^

장맥주
4-1
‘팽창화’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습니다. ‘공동체의 평균 크기나 밀도가 커지지 않고 인류 분포 범 위가 증가’하는 과정이라고요. 구석기시대 사냥을 남자가 도맡아 했다는 식의 역할 구분이 최근 반박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구석기 비너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군요.

장맥주
4-2
190쪽, [ 인류가 상징적으로 생각했음을 시사하는 예술 활동은 기호 언어로 대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약 5만 년 전의 이 다양한 변화를 ‘후기 구석기 혁명’이라고 한다. 리처드 클라인을 비롯한 많은 고고학자는 우리와 똑같아 보이는 존재가 10만여 년 전에 진화했더라도, 우리처럼 행동하는 존재가 있었다는 증거가 처음 나타난 것은 후기 구석기였다고 주장한다. ]
204쪽, [ 전체적으로 인구가 적고 인구밀도도 낮았지만, 초기 인류는 방화 농법(fire-stick farming)을 활용하고 대형 동물을 멸종시켜 생물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수북강녕
4-1. 수백억 년의 역사가 요약 기술되고 인간이 등장했습니다 한국사를 배울 때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는 늘 간단하게 다루어지고, 시험에서도 예측 가능한 한두 문제만 출제된 후, 고려와 조선, 근대와 현대로 오면서는, 비교적 짧은 몇백 년의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긴 시간과 많은 분량을 통해 다루던 것을 생각해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이라는, 비교적 최신 소식이 '벌써' 등장했네요 (역사학과 수업에서 구석기시대를 소홀히 다루는 이유를 책에서도 설명해 주고 있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불의 이용(프로메테우스!), 기호언어와 집단학습, 협동작업이라는 키워드가 4장을 요약하며 농경으로 가네요~
4-2. 불의 이용은 사람아과가 나아간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다.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해주는 이 형질은 많은 후속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활동은 언어 발달뿐 아니라 도구 제작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p.180
700만 년이 흐르는 동안 척추는 곧게 펴지고, 골반은 더 좁아지며, 뇌는 더 커지고, 팔은 더 짧아지며, 짝 결속을 이루고, 의사소통과 협력의 수준이 높아지며, 불을 이용하고 주먹도끼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일은 급격한 기후변화라는 맥락에서 나타났다. p.181
구석기 시대의 2가지 주요 '사건'은 기후변화와 팽창화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 다양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한 인류) p.194

수북강녕
5-1. 농경이 이토록 중할진대, '농경'이라는 키워드가 이미 '도시, 국가, 문명, 기술'이라는 키워드로 바뀌어 버려, 어쩌면 몇백 년 이내에 곧 흔적 어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작 속에서 인간은 이미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성역할을 고정화하고 권력을 출현시켰습니다 '농경'을 대체하는 미래의 키워드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담겨 있을까요? 긍정과 부정이라는 가치판단 또한 미래 기준에 따른 몫일 테고, 어쩌면 그 시대에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5-2. 농경은 주변의 식물, 동물, 경관을 조작하여 에너지와 자원을 늘리는 다양한 방법이다. 농경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p.211
일부 연구자들은 정착 생활이 여성의 지위를 낮추었다고 주장한다. 떠돌이 집단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기에 더 평등한 경향이 있다. 정착 생활은 여성을 집에 머물게 하여 고립시키고 남성은 소를 몰고 '정치;를 하는 등 공적 역할을 하도록 해방시켜 모든 것을 바꾸었다. 결국 여성이 우물에서 물을 긷는 등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지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다르게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여성들이 주도하여, 떠돌이 생활을 포기하고 적극적이고 의욕적으로 경작하며 정착하도록 공동체를 설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떠돌이 수렵채집인의 삶이 여성에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p.234-235
새로이 출현한 농경 공동체의 사람들은 어째서 굳이 지도자를 필요로 했을까? 이웃 공동체와 충돌할 때 방어하고, 작황에 의존하는 공동체에 중요한 종교로 신과 소통하며, 분쟁 해결 등에 관한 법적 문제를 처리하고, 복잡해지는 관개망을 관리하는 행정 등에 지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화를 도모하는 기구가 없으면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는 공동체의 일을 떠맡을 인물이 필요해졌다. p.243
초기 농경 공동체에서 권력과 지위가 출현할 때 작용한 요인들을 섬세하게 분석하려면 환경, 대물림되는 지위, 호혜성, 집단 내 경쟁과 합의, 종교의 역할을 포함한 원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지도자는 대부분 남성이었고, 대체로 집단의 동의를 받아 다스렸으며, 많은 사람과 물적 자원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도자가 쉽게 교체되기도 했다. 초기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폭력으로 의지를 관철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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