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드디어 사람아과가 등장 하면서 인류의 시작인 구석기 시대에 들어 왔다, 학교에서 그냥 스치듯 배웠던 부분을 이렇게 여러가지 관점에서 주장한 글 읽으니 너무 반갑고 즐거운 독서였다.
4-2 구석기시대에 불을 통제하고 이용한 행위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에너지 혁명이었다. 불의 이용을 발명한 쪽은 호모에렉스투스옜겠지만, 의미 있게 이용한 쪽은 구석기시대 인류였다. 당시 인류는 요리와 난방뿐 아니라 방화 농법으로 대규모 사냥을 하는 데도 불을 사용했다.
[그믐북클럽] 1. <빅 히스토리> 읽고 답해요
D-29

sy

거북별85
4-2
173쪽 침팬지는 혈연관계의 수컷들을 중심으로 12~80마리가 무리지어 살며 수컷 한마리가 여러 암컷과 짝을 맺는다 수컷들은 영토를 정하고 경계를 순찰하고 공격적으로 방어한다 암컷은 대개 사춘기에 들어선 직후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로 들어간다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서다 이를 부거제라고 하며 반대로 수컷이 다른 집단으로 떠나는 것은 모거제라고 한다
(침팬지들도 근친교배를 막으려고 한다니 침팬지들이 어떤 근거로 그런행동을 하는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174쪽 침팬지는 성생활이 문란하고 짝짓기와 육아에서 영구적인 애착관계를 맺지않는다 육아는 대개 암컷이 홀로 맡는다 암컷에게는 여러 수컷과 짝짓기하는 편이 유리하다 부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컷은 자기 새끼가 아닌 어린 수컷을 죽이곤 하므로 암컷으로서는 새끼가 어느 수컷의 자식인지 모호하게 만드는 편이 바람직하다(인간사회에서는 친자확인이라는 과학기술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경우 침팬지의 생활이 흥미롭네요)
198쪽 넓은 땅에서 식량을 모아야 하므로 수렵채집인들은 대개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식량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떠돌이 생활방식이 성공하려면 인구를 적게 유지해야 했다 무리 중에 유아나 노인이 많으면 이동성이 떨어져 이주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석기시대에 생존하려면 자연적 피임 유아살해 노인 살해등을 해야 했다 한 연구자는 선사시대 집단의 유아살해율이 최대 50%에 달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비교인류학자들은 태어난 여아의 50%를 부모가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이 행위들의 결과 떠돌이 수렵채집인 집단은 인구가 매우 느리게 증가했다(약자에 대한 배려와 서로에 대한 존중이 힘든 이런 상황이 최대한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네요)

바닿늘
5-1
일 곱번째 문턱인 농업에서는..
세 부분에 특히 관심이 크게 끌렸습니다.
첫 번째, 농업의 발전 과정
두 번째, 성 불평등의 기원
세 번째, 새로운 권력 관계의 출현 입니다.
먼저 첫 번째는, 인류가 수렵채집 시기를
지나, 농경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과정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1만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을테지만..
추측해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양하게 남아있
으니 어느 정도는 맞을거라고 납득됩니다.
특히 제가 납득이 되었던 부분은 피터 리처슨
연구진의 주장이었습니다. '홀로세에 인류가
농경을 택한 이유는 농경이 가능해졌기 때문
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기 때문' 이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그랬을 것 같거든요..)
인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에, 농업혁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지 대강 예상은 했지만..
구체적인 과정들을 생각해보니 더욱 더 신뢰가
갔다고 해야할까요..?
두 번째, 성 불평등의 기원에 관심이 갔습니다.
저는 남자입니다만.. 성 불평등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보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는 할테지만, 오랜 과거
에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평등해졌다고 말을 하며
만족하라고 하는 것은 명확히 잘못된 논리죠.
마치, "옛날에는 노예제도 있었는데, 이만큼 편해
져 놓고도 만족을 모르냐?" 라고 말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데이터를
들지 않더라도, 아직 우리 사회의 성 불평등의
문제는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
니다. 특히 남성이 지금보다 더 나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새로운 권력 관계의 출현에 대해
크게 관심이 갔어요. 특히 가장 크게 관심이 갔던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농경 생활이 필요에 의해 정착된 것처럼, 합의적
권력의 형성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질서와 그것을 뛰어 넘는 법 체계 등이 필요
했을테고, 그것들을 더욱 더 잘 운영하기 위해서
는 체계적인 지위 시스템이 분명히 필요 했고,
결국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권력인 셈이죠.
어쩌면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은,
그러한 연장선에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자격이 있는 자가 국민을 통치해야
된다는 철인정치를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
니다. 오히려 경계의 필요성을 크게 느낍니다.
능력 있는 자가 권력을 쥔 다음, 독재자가 된
경우는 한국 역사에서도, 세계사에서도 너무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를 포함한 80억
인류는 수많은 문명과 진보를 이뤄냈지만,
그에 뒤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크게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요즘 자주 느낍니다.
그래서 유독 해당 장에서 다뤄진 권력에 대한
설명에..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장은 좀 길게 다뤘습니다.;;;

바닿늘
5-2
p209
1만 2000년 전 인류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살면서 수렵채집을 했다. 구체적인 생활
방식은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중략) 우리 종은
집단 학습 능력으로 다양하게 적응했지만 대부분
의 집단은 작았고 그들 사이의 교환도 한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구석기시대의 집단 학습은 이후
시대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만2000~1만 년 전 세계의 특정 지역
들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들에 힘입은 인류는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얻었다. 식량과 에너지가 많아지자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농촌 마을 같은 크고 조밀한 공동체가 나
타났다. 더 복잡한 공동체인 소도시를 형성한 곳
도 있었다. 이 과정이 인류사회의 복잡성을 새로
운 수준으로 높였다.
p211
농경은 주변의 식물, 동물, 경관을 조작하여 에너
지와 자원을 늘리는 다양한 방법이다. 따라서 농
경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의 상호작용 방식
에 따라 달라진다. 상호작용은 종들 사이의 의존
인 공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자연계에서 많은
생물이 먹이를 얻거나 보호받기 위해 서로 의지
하고, 시간이 흐르면 이 관계가 각 종의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
일부 종은 더 의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다가 홀로
는 생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물이 공생을 활용한다. 아프리카 잎꾼
개미도 그렇다. 이 개미는 중요한 먹이인 곰팡이
를 세심하게 가꾸고 수확한다. 개미의 도움을 받
지 못하면 곰팡이는 죽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중략) 오랜 세대를 거치면서 양쪽 좋은 공생 관
계로 진화했다.
p215
여러 증거를 보면 구석기시대에 아인슈타인이 나
타났다고 가정하고 농경 출현을 설명하는 '탁월한
착상' 이론은 맞지 않는다.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
는 이론은 농경혁명이 단계적 과정이었다고 설명
한다. 각 개인이 의도를 갖고 세운 계획은 한정된
역할만 했다. '진화적이었지만 혁명적이지는 않
았다'는 이 설명은 농경을 촉진한 환경과 기후변
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 요인들이 일부 지역에서
인구밀도가 증가하여 일어난 환경과 연관 있다고
본다.
p217
미국 고고학자 피터 리처슨(Peter Richerson)의
연구진은 홀로세에 인류가 농경을 택한 이유는
농경이 가능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
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각지의 인류 집단은 길들
임을 실험하다 보니 수렴채집인 무리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리처슨은 그 뒤에 집단들이 심하게든
약하게든 경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농경을 택했
고, 불가피하게 농경이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리처슨 같은 연구자들은 환경 요인과 사회적 요인
을 결합하여 설명하므로 한 요인만으로 농경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보다 설득력이 크다. 기후
는 모든 설명의 토대로 중요하지만, 이 책도 문화
적 적응과 생물학적 적응 모두를 고려하는 다중
원인 이론 모형을 따를 것이다. 여기서는 농경
채택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기술한다.
1단계(선결 조건 1) 인류는 농경에 필요한 지식
과 기술 이미 많이 지니고 있었다.
2단계(선결 조건 2) '선적응되어 길든 생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동식물 종도 있었다.
3단계 세계의 몇몇 주요 지역에 떠돌이 생활을
덜하고 '일시적으로'라도정착한 집단들이 있었다.
4단계 기후변화와 인구압이 작용하여 이 집단들
은 어쩔 수 없이 '정착 생활(sedentism)의 덫'에
사로잡혔다. 한 해의 대부분을 한 곳에서 지내는
정착 생활을 택했으니, 늘어난 인구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더욱 집약화해야 했다. 그 결과 5단계로
나아갔다.
5단계 농경이라는 유일한 대안.
p234~234
초기 농경시대 공동체의 성별 관계에 관한 증거는
약간 남아 있지만 모호한 점이 많다. 농경과 정착
마을 생활이 여성의 지위에 미친 영향도 분명하지
않다. 농경 때문에 남녀의 상대적 지위가 뚜렷이
변화했지만, 이 모습을 정확히 설명하는 표준 모
형은 없다. (중략)
일부 연구자는 아프리카 남부의 수렵채집인인
산족을 연구하여 정착생활이 여성의 지위를 낮추
었다고 주장한다. 떠돌이 집단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기에 더 평등한 경향이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정착 생활이 여성을 집에 머물게
하여 고립시키고 남성은 소를 몰고 '정치'를 하는
등 공적 역할을 하도록 해방시켜 모든 것을 바꾸
었다.
결국 여성이 우물에서 물을 긷는 등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지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다르게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여성들이 주도하여,
떠돌이 생활을 포기하고 적극적이고 의욕적으로
경작하며 정착하도록 공동체를 설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떠돌이 수렵채집인의 삶이 여성
에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 관찰
한 수단의 풍족한 수렵채집인들이 이 모형을 뒷
받침한다.
p239
차탈회위크와 대다수의 초기 농경시대 사회들은
높아지는 인구밀도, 인상적인 건축, 정교해지는
신앙 체계를 지녔지만 비교적 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공존했다. 집들의 크기나 소유물이 사실
상 똑같았던 차탈회위크와 예리코에는 계급 구조
가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무덤에 성별 차이를 드
러내는 부장품이 있지만 물품의 가치는 다르지
않았다. 여성도 식량을 동등하게 얻은 듯하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문화적 구분이 여성을 경제
적으로 예속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은 듯하다.
(중략) 주목할 점은 모든 초기 농경시대 소도시 중
가장 인상적인 이곳에서 종교적·정치적 지도층이
출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
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는 질문은, 시간이 더 지난
초기 농경시대 말기에 지도자가 공동체의 합의하
에 통치하는 합의적 권력이 어떻게 출현했느냐는
것이다.
p 240~241
권력을 소수가 다수에게 행사할 수 있도록 인류가
허용한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은 2가지다. 이 이론
은 서로 다르지만 겹치기도 한다. 첫 번째 이론인
'상향식 권력'은 처음에는 권력이 아래로부터 나
왔다는 동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이때 권력은
크고 복잡한 사회에 사는 이들이 조화로운 관리
기구를 원하거나 필요로 함으로써 통치자를 따르
기로 동의하여 출현한다.
이 이론이 규명하려는 문제는 이것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도자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이 지냈
는데, 어떻게 소수가 다른 이들을 지배하도록 동
의했을까? 두 번째 이론은 강압에 초점을 맞춘다.
권력이 위에서부터 나왔다는 '하향식 권력' 개념
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의지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이 이론이 규명하려는
문제는 이것이다. 통치자는 어떻게 공동체에 자신
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따랐을까?
아래로부터의 권력은 동의에 토대한 합의적 권력
을 설명하기에 좋다. 합의적이라는 말은 적절해
보인다. 사람들이 기꺼이 개인적·가족적 자율성
을 얼마간 포기하고 지도자가 자신들의 삶과 자
원을 통제하도록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이
다. 위로부터의 권력은 폭력에 토대한 권력을
이해하려 할 때 유용한 강압적 권력이다. 이 모형
은 필요하다면 지도자가 폭력으로 사람들과 자원
을 통제할 능력을 획득한다고 본다.
p242~243
인구가 많아진 초기 농경시대 사람들은 서로의
활동을 조화시킬 필요성을 점점 크게 느꼈을 것
이다. 몇 가족이 모인 작은 공동체는 서로 마주
보며 문제를 파악하고 공동으로 할 일을 조정할
수 있다. 반면 수천 명이 사는 소도시뿐 아니라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 마을도 어떤 형태로든
지도자가 없으면 그럴 수가 없다. (중략)
그런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도자로 선택했을까?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속성을 지녀야 했을까?
사제나 샤먼, 전사나 외교관, 공동 과제 관리자
등 재능이 특별한 이들이 선택 되었을 것이다.
반면 재능과 무관하게 출생에 따라 선택 받는
사례도 있었던 듯하다. 특히 군장을 선택할 때
그랬을 것이다.
많은 초기 농경시대 마을이 군장 사회였다.
공동체를 위해 결정하도록 선택된 엘리트 귀족
집단이나 군장이 복잡한 사회를 이끌었다. 농경
민들이 일을 점점 더 잘함에 따라 공동체는 잉여
농산물을 생산했다. 지도자는 식량 생산이라는
일에서 벗어났고 엘리트 집단이 출현했다.(중략)
사람들은 여전히 공동체를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기에, 출생에 따라 평민과 귀족이 정해지고
각자에게 다른 미래가 열린다고 여겼다. 분명하
지 않은 점은 당시 사람들이 잉여 농산물을 축적
하기 시작한 이유다. 현재에도 단순한 마을을 이
루어 사는 농경민들이 생존에 필요한 양 이상으
로 경작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문이 더욱
커진다.

흥하리라
4-1
인류가 등장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왔음에도 알고 있는게 너무 제한적이었단 생각입니다. 지구과학, 생명과학(생물), 역사 등등으로 나뉘 교과에서 다룰 때는 각각의 과목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따로 있어서 이 부분은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과학과 역사가 함께 다뤄지는 빅히스토리를 통할 때 빛나는 영역같습니다.
4-2.
p. 176 암컷들은 청년기에 원래 집단을 떠나더라도 계속 강한 결속을 맺는다.
p.183 과학자 파울 크뤼천은 현재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므로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인류세, 즉 인류가 생물권을 지배하는 시대다.
p. 185 특히 세대르 ㄹ거치며 공유하는 정보를 쌓고 증가시킬 만큼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종은 인류뿐이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6장 읽기****
모임지기도 게으름을 부린 일요일 오후입니다. 어느덧 <빅 히스토리>도 절반을 향해 달려가네요. 도시와 국가, 문명이 등장하는 6장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은 문턱 넘기’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왜 작은 문턱이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8일과 9일, 이틀 동안은 여섯 번째 장을 읽겠습니다.

느려터진달팽이
국가는 등장했지만 확대된 농경은 아직 시작 전이라 작은 문턱이라 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그럼 6장 들어갑니다.
6-1
국가가 등장하며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시도를 길가메시 서사시 등에 나타난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지구라트 등 의식을 통해 위계와 통치를 정당화하는 구조물을 거의 부역을 통해 학대에 해당할만큼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지어내고 맙니다. 이는 와르카 꽃병의 그림이나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6-2
280p 인더스강 유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보다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인도 종교와 철학의 주된 주제는 비폭력과 생명 존중이었다. 이를 인더스강 유역 최초의 도시들이 남긴 유산으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ᆢ
앞서 스티븐 핑커×최재천 대담에서 언급했듯 불평등 부분에 대한 대답의 일환으로,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고 폭력과 군사활동이 없었다는 인더스 문명의 특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간디가 주창했던 비폭력이 이때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네요! 인상적이었습니다.
292p 지도6.7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초기 농경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하셨는데 철기 생산지를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청동기보다 철이 우수하다는 건 상식이니까 두 곳 뿐이었다던 철기생산지에서 무기를 만들면,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약탈해 오면 굳이 고생고생 안해도 남이 경작한 거 다 빼앗아 올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ㆍㆍ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호디에
6-1
오랜 기간에 걸쳐 생산성이 증가하고, 집단 학습의 힘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창안되고,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도시와 국가가 출현했다.
2차 산물은 여성이 하는 일의 성격이 바뀌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요구르트와 치즈를 가공하고 직물을 짜고 뜨는 일을 대개 여성이 맡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 이 일들을 여성이 했을까라는 질문에 인류학자 주디스 브라운의 답을 대신한다(1970년). 브라운은 육아와 양립할 수 있느냐에 따라 여성이 공동체의 특정한 일을 맡았다고 주장하면서 여성들은 언제든 쉽게 중단했다가 쉽게 재개할 수 있고,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낮고, 집에서 멀리까지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일을 맡았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위의 연장선으로 '모든 농가의 성공 여부는 가능한 한 많은 자녀를 키우는 데 달려 있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공공 영역에서 정치 활동과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여성 대부분은 가정에서 육아라는 '중요한 일'에 몰두하느라 시민 영역에서 권력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p256)' 이렇게 쓰여있는데, 그처럼 농경 사회에서 인력은 성공 여부의 열쇠가 되고 육아는 그만큼 '중요한 일'임에도 여성은 왜 권력구조의 하층부에 있게 됐을까?
BCE 3500년경 작성된 세계 최초의 문헌은 우루크의 에안나복합신전에서 발굴 - BCE 3000년경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추상적 숫자가 출현 -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BCE 27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추정 - 수메르 쐐기 문자로 몇 가지 언어를 기록.
이렇듯 인류 사회가 문자를 발명하자 모든 것들이 빠르게 정교해젔다. 사회 전체가 지식을 기록하고 보존하면서 집단 학습이 빨라졌다. 문해력의 발달로 지식이 급격하고 팽창했고, 천문학과 수학이 발전했으며, 달력을 고안했다. 수메르 쐐기 문자로 몇 가지 언어를 기록했다. 새삼 문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인더스강 유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보다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인도 종교와 철학의 주된 주제는 비폭력과 생명 존쟁이었다. 다른 문명 발원지에서는 볼 수 없는 비폭력과 생명 존중, 부의 균등 분배가 이루어졌던 지역에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신분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특이점은 가나 왕국이 출현하고 멸망한 후 뒤어이 말리제국이 출현하고, 사하라 이남에 작은 지역 국가들과 크고 작은 왕국이 계속 나타나는 CE 10세기 이후까지 규모가 큰 농경 문명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
▶ 관심이 갔던 부분들 정리입니다.

동광동
6장
초기 농경시대를 지나 도시, 국가, 문명이 출현한 모습을 둘러보는 장입니다. 멀리 떨어진 서로 다른 지역에서 농경이 각각 나타난 것처럼, 도시와 국가 역시 전 세계 적어도 7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출현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무래도 따뜻해진 기후일 테고, 농경이 나타난 이후 인간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기에 문명이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1년이 12개월이고 하루가 24시간, 1시간이 60분...과 같은 단위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하네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지만 인류 문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54 아프로·유라시아 농경민들은 길들인 동물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사람들은 목축이라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개발했다. 거의 전적으로 동물의 산물에 의지하는 삶이었다. 목축 덕분에 사람들은 무척 건조해서 경작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살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옮겨 다니기만 하면 그 지역에도 동물이 충분히 먹을 풀이 자랐기 때문이다.
257 도시와 국가의 출현에 기여한 요인은 많다. 오랜 기간에 걸쳐 생산성이 증가하고, 집단 학습의 힘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창안되고,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도시와 국가가 출현했다.
267 인류 사회가 문자를 발명하자 모든 측면이 빠르게 정교해졌다. 사회 전체가 지식을 기록하고 보존하면서 집단 학습이 빨라졌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문해력이 급격한 지식의 팽창으로 이어졌고 특히 천문학(달력)과 수학(셈하기) 분야가 발전했다. (...) 1년을 12개월로 나누고, 하루를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나누는 달력도 고안했다. 또 원을 360˚로 나누었다. 무척 친숙하지 않은가? 그리스 수학자들은 바빌로니아를 통해 수메르의 수 개념을 들여 옴으로써, 이 성공적인 문화적 관습이 서구 문명과 현대 세계로 퍼지는 데 기여했다.
리브
6-1
6장에서는 4대 문명,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 황하문명을 중점으로 다루었고 아메리카의 농경 문명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태평양 섬들도 언급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자연의 힘을 경외하고 신격화했고 신들이 사회 에서 가장 강한 최상의 계층이라고 여겼으며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중시했고 민물과 바닷물의 혼합물에서 세계가 생겨났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도 사람들이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했다는 사실이 당연한 일인데도 새삼 놀라웠습니다.
최초의 도시 우르크와 최초의 국가 수메르의 모습을 읽으면서 도시와 국가가 출현하면서 인간의 생활방식이나 사회규모가 상당히 커졌는데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의 출현을 거쳐 역사를 쭉 읽어 오다보니 사회적 차별, 엘리트 계급의 출현, 종교, 전쟁, 다양한 직업군, 공납, 문자등 그 도시 규모와 복잡성이 속도면에서 엄청나게 빠르다고 느껴졌습니다.
6-2
P.270
최초로 도시를 건설한 이들은 우루크 주민들이지만, 그들만이 도시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강 유역으로 내몬 건조해지는 기후, 쟁기질과 관개에 토대한 농업 생산성 증가, 범람원의 비옥한 토양, 성공적인 번식과 이주에 따른 인구밀도 증가 등의 힘은 비슷한 위도대에서 다른 도시들이 독자적으로 출연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P.280
인더스강 유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보다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인도 종교와 철학의 주된 주제는 비폭력과 생명 존중이었다. 이를 인더스강 유역 최초의 도시들이 남긴 유산으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P.294
섬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자원이 적고 고립되어서, 규모가 온전한 농경 문명이 출현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전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사회와 생산적인 농업 경제를 구축했다. 놀라운 사실은 환경과 창의성을 통해 인구 증가를 떠받칠 만큼 잉여 식량을 생산한 공동체가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하게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오후
6-1. 흥미로운 대목을 한 두 가지만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그 가운데에서 두 가지를 골라 보았는데요,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던 인더스강 유역 문명'과 약 4000년간 계속 사용된 '초기 중국 문자'입니다. 어떤 요인들이 이런 이런 독특함을 만들어 낸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6-2. pp.279-280 인더스강 유역에서 도시가 출현한 양상은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를까? 지금까지 무기와 전쟁, 왕, 왕궁, 커다란 신전을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는지? 그곳에는 정치적 계층구조인 중앙행정기관이 없었고 대규모 갈등도 없었던 듯하다. ... 무엇이 인더스강 유역 사회를 통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혈통으로 사람의 계급을 엄격하게 나누는 카스트제도는 인더스 문화가 전쟁 없이 그처럼 넓은 지역에 퍼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 인더스강 유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보다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인도 종교와 철학의 주된 주제는 비폭력과 생명 존중이었다. 이를 인더스강 유역 최초의 도시들이 남긴 유산으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p.285 약 2,000자에 달하는 갑골문자 대부분이 지금의 한자로 계승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쐐기문자나 상형문자와 달리 초기 중국 문자는 약 4,000년 동안 계속 쓰였다. 그림으로 시작된 이 문자는 그림들을 조합하여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쪽으로 발전했다. ... 대부분의 문자와 달리 한자는 자모, 즉 음성 구성 요소를 채택한 적이 없다. BCE 1045년 주나라 초기부터 문자가 문학으로 확대되었다.

거북별85
6-1
최초의 도시와 국가가 출현하면서 인류 역사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농경 문명의 시대 최초의 도시는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우르크 문명이 어떤 형태와 생활상이었을지 구체적인 모습들이 궁금하다.그리고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최초의 도시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와 그러한 도시발생으로 인해 그 주변부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형태의 어떤 발전이 가능했는지도 궁금하다. 이 외에 다른 도시와 국가들이 등장한다.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누비아, 인더스강 유역의 도시와 문명,중국의 황허강과 양쯔강 유역의 문명,아메리카 문명,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명 그리고 태평양 섬들이 나온다. 인더스강 유역 문명의 특징 중 하나가 폭력과 군사 활동이 없었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보다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점이고 인도 종교와 철학의 주제는 비폭력과 생명 존중이었다는 사실이 있는데 어떤 원인에 의해 이러한 특징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자연환경 때문에 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농경문명이 가장 늦게 발전되었다. 이러한 사실 이 유럽의 침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는 주요 요인인지 이를 피할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도 궁금하다.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책을 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더 생각하고 다른 책들도 같이 읽는다면 이러한 구멍들도 메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새벽서가
6-1. 이번 챕터에서도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잠시 언급이 되는데, 왜 여성은 요거트나 치즈를 만들고, 옷감을 짜고 뜨개를 했나 하는건인데, 인류학자들은 이런 활동들이 아이를 보는 중에 잠시 멈추었다 다시 이어서 하기가 가능한 활동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이런 일이 주어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도시와 국가가 등장했습니다. 어릴때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 4대 강을 중심으로 도시와 국가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때 이집트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꽤나 흥미로웠던 챕터였구요. 런던 뮤지엄에서 봤던 로제타 스톤을 사진으로만 다시 보는데도 가슴이 뛰더라구요. 이런 사소한(?) 발견 하나로 고대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니 재밌지 않나요?
멕시코에서 살았었고,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북미에서의 agrarian civilization을 가장 관심있게 들여다보게 되네요. 자세히 알지 못했던 Olmec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 사하라가 아니라 남미의 페루와 칠레 밑에 있는 아타카마 사막이라는 것도, 이 지역에서 이집트보다 2천년 먼저 미라를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6-2. What was different about the rise of cvities in the Indus valley? Have you noticed there has been no mention of weapons and warfare, kings, palaces, or large temples? Political hierarchy, or central administration, seems not to have existed, The Indus Valley appears to have been a land without large-scale conflict.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6-1. 6장에서 흥미로웠던 점이나 새로 알게 된 사실 등 지금 함께 읽고 있는 다른 멤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알려주세요.
6-2. 6장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메롱이
6-1
- 너무 익숙해서 종종 잊게 되는데 내가 도시 문명에 그것도 현대의 국가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6장을 읽었습니다. 까탈스럽게 골라 먹은 오늘의 한 끼가 어딘가의 농경민 9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숙연해집니다. 와르카 꽃병에 있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이 약탈했었다는 코멘트가 인상적이네요. 21세기에도 전통적인 방식의 문화재 약탈은 계속됩니다.
6-2
- 251p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민 1명을 먹여 살리는 데 농경민만 9명쯤 필요했다.
- 252p 농경 문명이 이전 사회들보다 우월하거나 ‘발전했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더 복잡했고, 훨씬 많은 살마과 물적 자원을 통제했다.
- 256p 평등주의 체제가 관리할 수 있는 개인의 수는 300명 정도가 최대다.
- 263p BCE 3000년대 말 우르크에서 만들어진 표준 직업 목록이라는 점토판에는 100가지 직업이 나열되어 있다.
- 264p 최초로 농경이 출현한 시기에 지중해 동쪽 끝자락의 농경민들이 잎의 색깔이 짙고 꽃은 옅은 파란색이며 높고 가늘게 자라는 아마를 길들였다. 사람들은 높이 약 1.2m까지 자라는 아마의 줄기로 리넨이라는 섬유를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모든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이 1년 동안 입을 옷을 만드는데 약 57일이 걸렸다.

호디에
6-2
p279
인더스강 유역에서 도시가 출현한 양상은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를까? 지금까지 무기와 전쟁, 왕, 왕궁, 커다란 신전을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는지? 그곳에는 정치적 계층구조인 중앙행정기관이 없었고 대규모 갈등도 없었던 듯하다. 예술에는 군인이나 전쟁이 등장하지 않는다. 화살촉, 창, 단검은 발굴되었지만, 긴 칼, 철퇴, 전투용 도끼, 투구, 방패, 전차는 발굴되지 않았다. 최근 발굴된 유적들은 예전의 이론과 달리 군사적 방어 시설이 어느 정도 있었고 경제적 계층구조도 있었음을 보여주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중략) 혈통으로 사람의 계급을 엄격하게 나누는 카스트제도는 인더스 문화가 전쟁 없이 그처럼 넓은 지역에 퍼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권열
6-1. 초기 도시들의 쇠퇴와 멸망을 보면 오늘날의 세계 역시 일시적일 것에 불과함에도 영원할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되네요.
6-2.
(252p) 국가와 제국은 문화적 특징이 비슷하고 넓은 지역에 들어선다. 여기에는 공납을 내는 농경민들이 포함되고, 국가는 이들에게 의존한다. 영향력 있는 미국 인류학자 에릭 울프에 따르면 공납은 자원이다. 대체로 강압적 위협으로 국가가 통제하는 물품, 노동력, 화폐인 공납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노예제는 가장 명백한 공납 형태다. 공납 사회는 폭력적 위협으로 많은 자원의 흐름을 통제하고, 신체적 폭력을 칭찬할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메이플레이
6-1
농경문명의 발생으로 이제 인류는 멋진 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최초의 도시 우루크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출현으로 익숙한 문명의 발생지라 친숙했어요. 그런데 강을 끼고 생겨난 농경문명은 주변 지역이 사막에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에 관개망을 갖춘 정착지로 점점 켜졌다고 하네요. 강을 이용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기 힘들기에 관개망을 개발시키며 도시를 발전시키는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거죠.
인간은 척박한 환경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방법을 찾아내고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문명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뒤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문명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명이 진보라는 의미라고 말하지 않고 복잡한 사회라고 부른다는 말에서 인간이 갖는 우월하다고 자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같아요. 농경문명의 인간의 생활 면에서 발전인지 모르지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문제를 그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6-2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문명은 때로 진보의 단계, 즉 다른 사회보다 '발전한 '사회'의 우월성을 가리킨다. 고고학자들은 진보에 함축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복잡한 사회라고 부르곤 한다. 이 책에서는 큰 국가와 제국을 농경문명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문명이 언제나 농경에 의존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농경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농경 문명이 이전 사회들보다 우월하거나 '발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더 복잡했고, 훨씬 많은 사람과 물적 자원을 통제했다. 252쪽
복잡한 사회들은 4000년 넘게 환경을 과도하게 이용하지 않는 장기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매달려왔다. 269쪽

띠에리
6-1
요약에서는 환경이 어떻든 간에 인구가 특정한 밀도에 다다르면 복잡성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증가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양한 지역에서 도시의 탄생과 유지, 발전, 몰락의 사례들을 통해 자연 환경의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르크와 같이 맬서스 주기에 의해 쇠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인더스강 유역 문명과 같이 가뭄에 의한 쇠퇴 하기도 했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같이 거대 사막 때문에 큰 농경 문명이 출현하지 못했다는 점과 태평양 내 섬들은 면적이 작기 때문에 자원의 한계, 고립에 의해 온전한 농경문화가 출현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중국의 경우는 한지역에서 4000년 이상 그 명맥을 유지하고 번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외롭기까지 합니다. 중국에 특별한 자연 변화가 없어서였지 않을까 추정해봅니다.
6-2
이 복잡한 체제가 문명이다. 이 단어는 '도시에 속해있다'는 라틴어 키비스(civis)의 소유격 키빌리스(civilis)에서 왔다.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문명은 때로 진보의 단계, 즉 다른 사회보다 발전한 사회의 우월성을 가리킨다. 고고학자들은 진보에 함축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복잡한 사회라고 부르곤 한다. (252p)
메소포타미아나 인도와 달리 중국에서 발굴된 최초의 문자 기록에는 회계 담당자가 아니라 통치자의 관심사가 담겨 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문자를 기록한 매체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소나 양의 어깨뼈나 거북의 배딱지로 만드는 이른바 점치는 뼈는 공물로 왕가에 바쳐졌다. 학자들이 발굴한 점치는 뼈는 대부분 왕실 고문서다. (284p)
BCE 3세기에 진나라와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했고, 이후 중국의 정치적 중앙집권화와 농업 생산성은 세계 인구의 약 20%를 지탱했다. 농경민들은 4,000년 넘도록 같은 땅에너 경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날의 중국이 4,000년 전에 시작된 문명을 이어받았다고 본다. 다른 현대 문화와 달리 연속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286p)

지혜지
6-1. 큰 강을 끼고 4대 문명이 탄생했다는 내용은 배웠던 기억이 있었습니다만, 메소아메리카의 실험과 안데스산맥의 실험, 초기 국가들의 실험에 대한 내용은 처음 접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터전을 잃는 것도 오랜 역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초기 단계에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걸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지구별 여행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여러번 듭니다.
6-2. “동물 같은 개별 대상을 셀 때는 10진법, 곡물을 셀 때는 60진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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