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서점]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 같이 읽으며 '기록'하기

D-29
115p /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먼 길을 떠나는 이유도 그 익숙한 리듬을 깨뜨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깨뜨려야 벗어날 수 있고, 깨져야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매일 놓치고 사는 '지금, 이 순간' 같은 것. 여행지에서 우리는 평소와 다른 리듬 속에서 '지금' 눈에 들어온 것들을 충분히 보고, '현재' 느끼는 것들을 만끽한다. 먼 길로 돌아가며 느림을 되찾고, 그렇게 조급함에 훼손된 시간을 회복한다. 그러니 지금 놓치고 사는 것이 있다면 익숙한 리듬을 깨뜨려보자. 느림을 되찾아보자. 그것만으로도 자꾸 달아나는 '지금'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118p / 한트케는 "인생의 매 순간은 다른 모든 순간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로운 상상뿐이라고. 나는 모든 순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든 미래든 나는 언제나 내게 돌아왔다. 최종 목적지는 '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며 그렸던 작은 원이 나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시켰다. 나는 나를 붙잡았던 문장 옆에 이렇게 새겨 넣었다. 나는, 어디에나, 있다. 122p / 안경을 쓰는 마음으로 같은 길을 자주 걷는다.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본다. 책의 제목을 몇 번이고 노트에 적는다. 그렇게 시력을 교정한다. 123p / 나는 문장을 만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 바라보는 일이면 충분하다. 단어를, 쉼표를, 호흡을, 문장에 감춰진 진짜 말들을. 그런 것들은 눈을 통해 내 안에 들어와 입술에 머물고 목구멍을 통과해 심장으로 향한다. 나는 문장을 죽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 126p / 창문 밖 나무를 눈으로 쓰다듬는다. 사랑을 배우기에 이토록 좋은 장소가 또 있을까. 함부로 손을 뻗어 망가뜨리지 않고, 가만히 두고 볼 수 있는 사랑 말이다. 그러니 여기, 창가에서 사랑을 다시 배워본다. 가만히 바라보는 사랑을, 눈으로 쓰다듬는 사랑을. 131p /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잘 모르는 것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곳에 적힌 시어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지만, 시인이 고개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 보이는 것이 있고,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시집을 가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145p / 이제 나는 완전히 열지 못했던 창을 활짝 열고 이 기록을 힘껏 던진다. 내게 가장 먼 곳이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곳임을 기억하며, 여기, 이 글을 저기 멀리서 보고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간다. 150p / 가장 빈번히 출몰하는 악몽이자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 왜 하필이면 그 바다 곁에서 글을 썼을까? 그런 물음이 찾아오면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뒤라스의 말처럼 들렸다. 울음과 비명 그리고 침묵의 반복. 내게 뒤라스의 세계는 위태로운 곳이었고, 나는 그녀의 글을 통해 위태로운 것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어둡게 지는 것, 불안에 흔들리는 것, 고통에 젖은 것, 그러니까 들추기 싫은 삶의 이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151p / 어떤 작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의 창문에 서서 그가 보는 풍경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밀린 숙제하듯 옮겨 적었더니 또 한 바닥을 채우고 말았군요. 책장을 넘길 수록 책의 마지막과 해의 마지막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올해의 마무리를 이 책의 마지막 챕터와 함께 하고 싶은 느낌ㅎㅎ 차후 있을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모임 때문에 그 책도 동시에 읽기 시작했는데요. 거기에도 페소아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해서 이참에 페소아의 책도 주문했습니다ㅎㅎㅎ(뒤라스 책은 이미 모셔두고 있었던...) 새해에 읽을 책이 점점 늘어갑니다. 다들 새해엔 어떤 책을 읽어 보고 싶으신가요? 어떤 책으로 시작하실 계획이셨나요? 궁금합니다.
저도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를 읽기 시작했고 아주 천천히 읽을 생각이니 그 책이 저의 2023년 첫 책이 되겠군요.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날. 작업(그림)과 책 읽기와 필사로 조용히 부드럽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전공 서적보다도 지금 줄을 더 많이 긋고 있는 저를 발견하네요. p.115 카페를 나왔다. 이제 풍경 속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요기에 별을 하나 그리고 책갈피를 꽂아두었습니다. 오늘과 내일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갈 텐데요. 끝을 보기 싫은 마음도 듭니다. 신유진 작가님에 빙의하다 싶이 여행하듯이 지금 읽고 있어서 이 감정을 마무리 짓고 싶지가 않을 만큼 책이 재미있어요. [엄마의 창문]처럼 내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부분이 또 나타날까 봐 기분 좋은 두려움도 있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모닝페이지를 쓰고, 최근에 [크리에이티브 데일리]를 한 페이지씩 읽기 시작했어요. 새해에 눈을 뜨면 이 책으로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에 푹 빠질 예정입니다 ^^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비롯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튼을 활짝 열고 첫 문장을 찾는 나', '완전히 열지 못했던 창을 활짝 열고 기록을 힘껏 던지는 나' 등 다양한 나를 저도 계속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으로 쓰다듬는' 걸 반복하고 있는 거지요. 문장을 가만가만 쓰다듬다 보면 거기에 자꾸만 내가 비춰지니 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ㅎㅎ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책은 얼추 다 읽었는데,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 기록이 늦어지고 있네요 ^^; 2023년의 목표 1위는 ‘미루지 않기’ 로 정해야겠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목요일에 나를 기록해 보자면 지난 그믐 첫 모임과 두번째 모임으로 에세이에 대한 장벽이 낮아졌어요. 소설 외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특히 에세이는 ‘나 살기도 바쁜데 무슨 남의 이야기?’ 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우울이라 쓰지 않고>, <창문 너머 어렴풋이> 를 읽어보니 남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나를 돌아보는 일이더라고요. 덕분에 저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글쓴이의 경험과 시각에 공감해보고 잊고 있던 기억을 상기하는 일이 저를 단단하게 해주더라고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더욱이 공감하는 한 해 였어요. 덕분에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됐고, 온라인 독서 모임을 활동하며 느꼈던 아쉬운 마음을 다른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나가며 채우기도 했고요. 다음 달에 무슨 서점에서 있을 그믐 모임도 기대가 됩니다. 책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저는 집콕만 했을거에요😔 내년에는 어떤 사회가 저를 반겨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문장들을 기록하러 또 올거지만, 모두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해피 뉴 이어 -!
요니님 이야기 중에서 '남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나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도 에세이 읽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놓치고 있었던 내 내면의 섬세한 결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두 분 의견에 동감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 저도 에세이를 그러한 목적으로 읽습니다. 산책하듯 읽으면서 나를 상기하고 회고하기에 에세이만 한 게 있을까, 생각해요. 그동안 답을 내리지 못했던 질문,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던 감정을 누군가 글로 풀어내 놓은 걸 읽는 것만으로도 저는 큰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서점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힐링할 수 있는 책' '위로받을 수 있는 책' 추천해달라고 하시는데요. 그 이유도 거기에 있는게 아닐까, 다들 은연 중에 에세이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니 샤피로도 <계속 쓰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쓴 산문은 그 자체로 영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과연 그 말이 정답이다!' 했더랬지요.
'잘 쓴 산문은 그 자체로 영향이다.' 수첩에 옮겨 적습니다. 그 자체로 영향이 되는 산문을 쓰고 싶다는 야망이 생깁니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책 추천합니다(!). ㅎㅎ 제 '올해의 책' 중 하나예요.
오옷 바로 무슨 책방 인스타 프로필 링크로 들어가 주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저는 새해에 계속 다른 독서모임에서 진행중인 소설을 격파할 예정이에요! 세계 3대 판타지 소설 중 하나인 <어스시 연대기>를 따라 열심하 항해중입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려 혼자서는 진도가 영 안 나가는데, 취미 활동이지만 나름의 강제성을 부여하니 속도가 나고 있어요. ㅎㅎ 각각 다른 분야의 책들로 병렬 독서 하는 맛에 빠져 펼쳐본 책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 모두 내것이 될거라는 믿음이 있어 든든한 마음입니다. 아! 어제 따끈하게 도착한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도 함께요^_^
어마어마한 소설을 읽고 계셨군요. 말로만 듣던 <어스시 연대기>! 저는 어슐러 르귄의 <두 고양이> 책이 있어서, 작가에 대해 찾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에요. 세계 3대 판타지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저도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최근엔 다른 책들을 읽느라 너무 뒷전이었네요. 요니님 이야기를 들으니 새해엔 장르 소설도 좀 같이 섞어서 읽어야 하나 싶고 그렇습니다.
오늘이 독서모임의 마지막 날이네요. 올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요. 온라인 독서모임은 그믐에서 처음으로 도전해 보았는데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 혼자 읽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창문 너머 어렴풋이]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멋진 책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책 함께 읽어서 감사해요.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행복했습니다. 23년이 시작되네요. 꿈꾸는 일 이루시는 편안하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세요~
모임 끝나기 10분 전에 들어왔습니다! ㅎㅎ 다들 책은 다 읽으셨나요? 저는 금방 마지막 챕터를 다 읽었습니다. 지난 모임때 마지막 날짜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모임지기였음에도 인사 한마디 없이 어영부영 모임을 끝내버렸거든요. 이번엔 절대 그러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접속했습니다. 2022년의 마지막을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분들과 대화하며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함께해주신 @요니 @겨울매미 @바이올렛북 @진공상태5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3년 되기 3분 전!!ㅎㅎ 2023년에도 좋은 책으로 모임 열어보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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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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