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스타그램 빗장을 열어젖히다.
오늘 아침. 5년여 만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그램을 멈춘 그 즈음 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었다. 나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를 의식했고 혹여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볼까 봐 두려웠다. 현재에 몰입하고 행복하고 싶었다. 내 행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들켜버리면 그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멈 처진 나의 인스타그램을 깨운 사람은 무슨 책방의 사장님이다. 나는 사장님이 그인지 그녀인지도 모른다. 그녀일 거란 짐작만 한다. 최근 온라인 독서모임을 신청하면서 신유진 작가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주문했다. 무슨 책방 사장님께서 주최한 모임으로 이왕이면 무슨 책방에서 책을 사고 싶었다. 주문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피드의 사진들이 따뜻했다. 시그니처 컬러인 초록이 이토록 이뻤나 새삼 놀랐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화요일 늦은 저녁 택배가 도착했다. 얼른 읽을 생각에 신이 나서 박스를 열었는데 이미 책을 보호하는 포장재부터가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재질이라 감사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포장을 걷어내고는 뭐가 많아서 1차로 놀랐고, 2차로 포장의 정성에 놀랐다. 당장에 이 유니크하고 정성스러운 포장을 해체하긴 싫었다. 트리 옆 테이블에 하루를 꼬박 두고 설렜다. 다음날 아침 햇빛 아래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전히 포장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저녁이 되었는데 종이봉투 속이 너무 궁금해졌다. 한편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에 열어볼까? 싶다가도 얼른 노트에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musn이라고 디자인된 테이프를 살살 떼어냈다.
커다란 필사 노트와 미니어처 필사 노트, 진초록 외장의 연필과 펜텔 rolling writer 수성펜 그린 색, 무슨의 주소가 적힌 예쁜 엽서, 핑크 핑크 한 10% 할인 쿠폰, 무슨 로고 글씨체 그대로 도무송된 커다란 로고 스티커, 마지막은 사장님의 손글씨 엽서였다. 생각지도 못한 엽서를 받아들고 한참을 감사했다. 산타클로스 뺨치는 선물 꾸러미에 이미 정신이 혼미했는데 펜텔 rolling writer 수성펜 그린 색으로 쓰인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의 인스타그램 빗장을 열어젖히게 했다. 오랜만에 피드에 글을 쓰다 보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쓰고 보니 '사장님께서 땅 파서 장사하시는 것 같다.'라는 표현이 불쑥 뛰어 나왔다. 사장님께서 파신 땅의 흙들이 쌓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픈하신지 이제 5개월을 넘어선다고 하셨는데 50년 500년 오래오래 즐겁게 책방 운영하셨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해본다.
[무슨 서점]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 같이 읽으며 '기록'하기
D-29
바이올렛북
무슨
고마운 마음을 어찌어찌 전하고 싶어서 부단히 애를 썼는데, 어찌어찌 가닿은 것 같아 기쁩니다. 열심히 땅을 파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제 마음을 어떻게 아셨을까요ㅎㅎ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도 같이 좋아해 주시니 든든한 친구를 한 명 얻은 기분입니다. 기원해 주신 대로 서점 오랫동안 잘 키워가 보겠습니다. 바이올렛북님도 이곳에 기록하는 동안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겨울매미
[50쪽] 쓴 사람도, 읽은 사람도 떠난 시간 동안 혼자 덩그러니 남은 말들은 시간을 가둬놓았다가 펼치는 순간 무섭게 쏟아졌다.
[65쪽] 엄마는 내게 가장 어려운 타인이다. 아주 타인일 수도 완전히 나일 수도 없어서 힘든 사람.
[69쪽] 왜 슬픔일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 마음 끝에 왜 슬픔이 있을까. (중략) 나는 모자라게 사랑해서 슬펐다. 죽었다 깨도 엄마만큼 사랑할 수 없어서.
[75쪽] 내게 보는 일은 걷는 일. 걷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면 세상은 커다란 거울이 되어 온통 나만을 비췄다. 나의 못생긴 얼굴, 못난 마음, 나의 자만, 나의 자의식, 그렇게 거울 속의 나는 점점 자라 나를 잡아먹고... 그러니 내 안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면 걸어야 한다. 내면의 풍경은 '안'이 아닌 '바깥'에 있으니까.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나의 눈이 머무는 곳에.
무슨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저는 이제 막 오늘 읽을 챕터를 펼쳤습니다. 마음에 남은 문장들은 늦은 저녁에 기록하게 될 것 같아요. 겨울매미님이 골라주신 문장들을 마치 영화 예고편 보듯 읽었습니다. 어서 읽어야겠어요!
바이올렛북
고등학생 때는 줄곧 하는색만 좋아했어요. 대학생 이 되고 문득 바이올렛에 푹 빠져 각종 사이트 아이디로 많이 사용하면서 제 분신이 되었네요. 지금 제 방의 벽 페인트 색도 짙은 바이올렛 이랍니다. 막연히 책을 좋아해서 아주 나중에 책을 쓰게 된다면 바이올렛북 이라는 제목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무슨
보라색엔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온도 차이가 극명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색이라 그런 걸까요. 방에 칠해진 짙은 바이올렛이라니,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겨울매미
겨울에는 매미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땅속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죠. 제 닉네임은 그런 뜻이에요. 없는 것 같지만 있는 존재. 어둠 속에서 꿈을 키우는 존재.
무슨
어둠 속에서 꿈을 키우는 존재!
없는 것 같지만 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지 않나 합니다. 그 소중함을 아시는 겨울매미님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새 계절의 신호탄 같은 '매미'는 그 이름까지도 여름스럽다 생각했었는데, 겨울과 붙어있는 것도 꽤나 잘 어울리는군요.
바이올렛북
미자
p.29/ 그때마다 나는 모르는 척 시침를 뗏지만 사실은 기억을 꼬집힌 것처럼 따끔한 감각을 느끼곤 했다.
p.29/ 이제 미자가 나를 업어줬던 힛수보다 업혔다는 말을 전해 들은 횟수가 더 맣다. 미자는 열아홉 살 때까지만 우리와 함께 살았고, 그 이후로 내가 미자의 등에서 내려와 마흔까지 자랐으니 미자보다 미자의 추억이 더 언니인셈이다.
p.31/ 엄마는 엄마와 나, 그리고 미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로 나를 부른다.
p.32/ 기다리는 마음, 기다림을 지켜보는 안타까운마음, 사랑하는 마음, 마음을 여러겹 포갠 포대기로 나를 둘러업었던 그 여자들의 등, 나는 지금도 그 등의 온도를 기억한다.
p.34/ 요즘도 가끔 미자의 옷장 같은삶 속에 숨어 술래를 기다린다.
p.34/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야기는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기억이 자라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p.35/ 미자가 떠나던 날에 바람이 많이 불더라. 그 바람에 미자 입김이 자꾸 흩어졌고. 기억도 그렇잖아, 금세 흩어지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자꾸 말해야지. 그래야 사라지지 않지. 안 그래?
p.36/ 다시 볼 수 없어도, 얼굴을 잊어도,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그런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이올렛북
안녕
p. 40/ "같이 가자!" "어디를?" "아무 데나, 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우리는 그런 것을 우정이라고 불렀다. 어디든 같이 가는 것.
p. 40/ 들키기 싫은 마음을 다 들키고 난 후에, 감추고 싶은 마음을 다 털어놓은 후에 도착한 곳은 매번 그 골목이었다.
"안녕."
p. 42/ "나쁜 년, 서태지 망해라."
p. 46/ 나는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털이 달린 조끼를 입은 할머니를 보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를 떠올렸다. 이제 토끼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면 낯선 세계의 낯선 아이가 될 것 같았다.
p. 47/ 엄마는 내가 들고 온 배추로 된장국을 끓여줬지만 나는 잘 먹지 않았다. 배추는 날 것으로 먹어야 달달하고 맛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건 눈을 감고, 까만 입속에서 부딪치는 치아를 찾아 더듬더듬, 눈 뜨면 코앞에 어른거리는 불행을 내쫓으며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바이올렛북
그 여름의 끝
p. 50/ 쓴 사람도, 읽은 사람도 떠난 시간 동안 혼자 덩그러니 남은 말들은 시간을 가둬좋았다가 펼치는 순각 무섭게 쏟아졌다.
p. 51/ 모두 미래형으로 적힌 과거들이다.
p. 51/ 다만 청량하게 울리는 미래형 동사들은 어쩐지 훔쳐오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이제 나는 미래 시제를 잘 쓰지 않는다. 미래에 대해서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궁금하지도 않다. 아주 높은 확률로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갈 테니까.
p. 53/ 네 개의 눈으로 부지런히 세상을 당기고 밀어내며 기록했던 그 불온한 편지들은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p. 54/ 그런데 밀레니엄이라는 말, 그 미래지향적 단어에서 왜 그렇게 오래된 냄새가 날까. 그 미래는 언제 우리를 비껴갔을까.
p. 55/ 문득 지금까지 내가 본 지영이의 얼굴이 과거의 잔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안다고 믿었던 그 얼굴이 이제는 없는 게 아닌지. 마치 내가 아직 지금의 '나'에게 당도하지 못한 것처럼.
p. 58/ 현재란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누군가가 줄기차게 계속하고 있는 연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이토 마리코
겨울매미
[97쪽] 그러고 보면 나는 내가 본 것을 증명하지 못할 때 외롭다. 이제는 사라진 꽃밭, 뽑기 기계가 있었던 문방구,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집 강아지 록키. 그런 것들을 말할 때, 있었던 것이 없는 것이 될 때,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는 얼굴을 마주할 때, 나는 문득 외롭다.
[99쪽] 데버라 레비(Deborah Levy)가 말했던가, 단어는 마음을 열어젖혀야 한다고. (중략) '당신이 본 것을 내가 봤다.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다. 그러니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해도, 어느 날 사라진다 해도, 우리에게는 영원히 있는 것이다'라는 말. 그러니까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요니
@무슨 저의 닉네임은 정말 단순하게 제 이름에서 따왔지만 덧붙이자면, 제 이름은 김ㄱ연이고 제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 김ㄴ연 이거든요. 그래서 둘다 있을 땐 나름 구분하고자 친구들이 ㄱ요니 ㄴ요니 라고 불렀는데, 생활 반경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저희는 앞글자가 빠진 그냥 ‘요니’ 로 불리게 되었어요. 요즘은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해서 닉네임으로 부르는 곳들이 많던데 항상 무슨 이름을 지어야 하나- 고민하다보면 결국 예전에 친구들이 정겹게 불러주던 그 별명이 떠오르더라고요 ㅎㅎ
무슨
저도 오래전부터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명으로 온갖 아이디며 닉네임을 만들어 왔었는데요. 애플사에서 'Siri'를 쓰면서부터 관뒀습니다.ㅎㅎ 제 이름이 '실' 자로 끝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작은 제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만, 따라 한 것처럼 돼버려서 원. 근데 이제 와 좀 아쉬운 거는... 나이 들수록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점점 없어져서요. 닉네임에라도 계속 쓸 걸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요니
이미 침대에 누워 가지고 책을 꺼낼 수 없어 밀린 ‘책 속 문장 기록하기’ 대신 ‘나에 대한 기록’을 먼저 해봅니다.
지난 주 무슨 서점을 다녀 오고 친구와도 끝내주는 식사와 밀린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동선과 시간 활용이라니 너무 행복한 날이다, 2022년 중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불행은 다음 날 시작되었어요. 중요한 날이었는데 알람을 듣지 못 해 지각해버렸고, 그로 인해 택시를 타서 돈을 허공에 날렸으며 (ㅠㅠ), 그날따라 지갑을 얕은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흘리고 말았죠 ...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던 저라 크게 상심했는데 택시에 흘려가지고 다행히 찾을 수 있었어요! 그 다음 일정을 양해를 구하고 다시 찾으러 갔는데 글쎄- 전기차 택시여서 충전을 시켜야 한다며 한 시간이나 더 걸릴 것 같다고 하시는 거에요 .. 이럴 줄 알았으면 가지고 있던 카드 한 장으로 하루 버티는건데 싶은 생각이 들며 왜 먼저 말씀해주시지 않았을까하는 원망도 생겼지만 누굴 탓하겠어요 다 제 불찰인데😂..
그래도 다음 날 기사님께 소정의 사례비와 커피를 드리며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근데 그 이후부터 집착처럼 지갑을 찾고, 만지기 시작했어요. 딱 한 번의 실수였는데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나봐요. 집 앞 카페 가느라 가방 없이 패딩 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가면 그 사이 불안해서 지갑을 만지고 또 만지고 .. 그냥 손 시려운걸 포기하고 아예 들고 다니고🥺.. 오늘도 어머니와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데, 그럼 지난 주처럼 내일은 덜렁이다 지갑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예전보다 피로도가 심한 나날이네요
무슨
그래도 지갑을 찾아 다행입니다. 왜 힘든 일은 항상 한꺼번에 오는 건지요.
저도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라 극공감했습니다.ㅎㅎ 그래서 가방이건 옷이건 핸드폰과 지갑을 넣는 주머니 위치가 정해져있어요. 왼쪽은 핸드폰, 오른쪽은 지갑 이런 식으로. 쓰고 나서 제자리에만 두자, 하며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다 어떤 날 나도 모르는 새 위치가 바뀌어있거나, 그 자리가 비어있거나 하면 순간 패닉 상태가 되곤 하지만...
화제로 지정된 대화
무슨
지난 화요일 밤에 집에 들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수선을 피우다 문장 기록을 못했더니, 체크해 둔 문장이 어러 개가 되었네요. 어제 목요일은 특히 '무슨 서점'에서 여는 첫 오프라인 모임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바빴습니다. 모임에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요. 그믐에서 만난 분들도 언젠가 실제로 같이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능하려나요.
겨울매미
실제로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정말 좋을 거 같아요.
우선은 제가 시간을 내어 무슨책방을 방문해 봐야겠네요. 지방에 살다 보니 쉽지 않지만, 가게 되면 반갑게 인사 나누어요.
무슨
시간 나실 때 언제든 들러주세요.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같이 온라인 모임 했던 분들은 특히나 더 뵙고 싶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서ㅠㅠ
곧 인스타그램에서도 공지를 할 텐데요, 1월에 오프라인으로 연계되는 온라인 모임 모집이 며칠 전 이곳 '그믐'에서 시작되었어요. 일정이 되신다면 그날 뵈면 더 좋겠네요! 오프 모임이 어려우시면 온라인으로라도 계속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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