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보다 더 친절한 이진숙의 서양미술사에 빠져 봅시다.
서양미술사에 대한 이진숙의 멋진 해설을 듣고 싶다.
D-29

롱기누스모임지기의 말

롱기누스
<레이니르 레아엘 대위의 지휘하에 있는 11지구의 자경대>는 렘브란트가 그린 자경대 그림과 함께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같은 방에 전시되어 있다. 이런 배치는 단순한 미술사적인 고려만이 아니다. 독립운동은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받고 자기 공동체의 발전에 대한 꿈, 그리고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의 희생과 같이 이후에도 건강한 공동체 유지를 위한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자경대 초상화들은 이런 집단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중요한 미디어다. 인류사에서 보기 드물게 사회적인 건강함이 넘쳤던 순간 중 한 장면이 예술작품으로 기록된 것이다.

롱기누스
“ 이탈리아의 화가들 역시 모델들을 보고 그렸지만, 그들은 되도록 모델을 이상화시켜서 시간을 초월한 인간상에 근접시키려 했다. 그 결과 그림 속 인물들은 대부분 젊고 완벽해 졌다. 그러나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인간에 접근해갈수록, 우리는 그 인물의 개성에 주목하게 된다. 개성의 강화는 결국 보편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불완전함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어떤 인간에게도 '완벽함'이란 없다.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다. 개인의 초상화가 그려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도 바로 그 '다름' 때문이다. 한 개인도 어떤 때는 뜨겁고 어떤 때는 차가우니, 그때그때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영원한, 완벽한 것은 없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순간에만 존재하는 불완전함뿐이다. 렘브란트는 불완전한 인간 그대로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세트 - 전3권 - 미술사를 바꾼 순간들 101』 p.308, 이진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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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 그러나 아버지가 용서했다고 모든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른편에 서 있는 큰 아들은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 하나의 갈등이 끝나고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이 점을 놓치지 않은 것이 바로 렘브란트의 위대함이다. 죽음을 앞둔 렘브란트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 삶에는 불완전한 것 뿐이라고,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 잠시 숨을 돌리면 또 다른 새로운 문제가 문득 이렇게 들이닥친다고, 그렇다고 해서 이 무한 갈등의 악순환처럼 보이는 삶을 절대 증오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몇몇의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삶 전체를 증오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아무리 던져버리고 싶은 삶이라도 그것이 당신의 삶인 한, 이렇게 끌어안아야 한다고. ”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세트 - 전3권 - 미술사를 바꾼 순간들 101』 pp.313-314, 이진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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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평범하지만 손때 묻은 사물이 담긴, 샤르댕의 각별한 애정이 돋보이는 작품메서 프루스트는 사물과 인간의 의미 있는 우호적인 관계를 읽어낸다. 평범한 사물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거기에 우리의 기억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물에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평범한 삶에 의미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롱기누스
세상은 많이 보는자, 많이 느끼는 자의 것이다.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세트 - 전3권 - 미술사를 바꾼 순간들 101』 p.356, 이진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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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오랜 착각을 거두어내고 역사를 들여다보면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대라는 것은 결국 민중의 요구였다.
나폴레옹이라는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어낸 것은 프랑스 혁명동안 구호화된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과 구시대적인 권력 독점형 영웅주의의 기괴한 이중 결합이었다.
영웅숭배는 참으로 기이하고 어리석은 현상이다. 나의 나약함을 덮는 방법으로 타인의 완전함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근본에는 여전히 나보다 높은 누군가를 상정하는 서열화된 의식이 깔려있다.
완벽한 이론이,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한 영웅도 없다. 물론 이 경우 스 토리는 좀 소소하고 평범해진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위고는 말한다. 위대한 영웅이 필요없는 시대가 좋은 시대라고. 21세기에는 소소하고 조금은 평범한 영웅들이 함께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자기 삶에서 용기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이면 된다.



롱기누스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벙어리 3년'은 시집살이가 가혹하던 시절 며느리의 생존술이었다. 그러나 어디 시집살이뿐이겠는가?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이것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심리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길들여졌던 사람은 후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극심한 억압과 불안은 인간의 보편적 공감 기능을 퇴화시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감각이 퇴화한 곳을 차지하는 것은 경직된 원칙이다.


롱기누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을 경우, 종교는 정적을 제거하는 무서운 수단이 된다. 근대적인 정치판단은 생각이 다른 반대편과의 타협과 중재를 원칙으로 한다. 반면 종교적인 선악판단은 상대방을 섬멸하여야 할 절대악이라 여기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가 손을 맞잡으면 죽음의 정치, 혐오의 정치로 귀결된다.
종교재판에 들어가서 살아나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단으로 고발된 사람은 자신이 이단임을 인정할 때까지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이단으로 인정하면 이단이기 때문에 처단을 당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어떤 변화도 거부한 채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회가 겪어야 하는 광기의 이미지다. 우리 모두는 한 시절을, 한 시대를 사는 것이다. 각기 시대가 부여한 과제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인간'이라는 큰 이름 아래서 거시적 관점으로 가능한 풀고, 다 하지 못한 것은 후손에게 넘길 수 밖에 없다. 눈앞에 당면한 과제를 두려워하는 사람, 있는 과제를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시간과 함께 제기된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고, 자신이 그 문제해결의 적임자가 아님이 드러나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세대들이다. 그런 사람은 미래가 두려운 사람, 제 생존을 위해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된다.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으면서 사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그들에게는 공동체의 몰락이라는 영원한 저주가 내릴 것이다.



롱기누스
구체적인 사물로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상징(예를 들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과 달리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알레고리라고 한다.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세트 - 전3권 - 미술사를 바꾼 순간들 101』 p.412, 이진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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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혁명의 과정은 함께 했으나, 혁명의 성과물을 나누는데 있어서는 분열이 시작됐다.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1 - 인간다움의 순간들 :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 p.414, 이진숙 지음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1 - 인간다움의 순간들 :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예술가들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포착하고, 새로운 미학 속에서 드러낸 풍부한 인간의 모습이 곧 미술의 역사다. 《 새로고침 서양미술사》는 101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 속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서양미술사의 매력을 한층 깊이 있게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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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 자유, 평등, 박애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가치들은 추상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고 인간사의 모든 행동 영역에 비추어 토론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자유, 평등, 박애가 동시적으로 사유되고, 그 가치들을 위해서 좀 더 진지하게 탐구되지 않으면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세트 - 전3권 - 미술사를 바꾼 순간들 101』 pp.414-415, 이진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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