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5~66
크리톤 :
그래, 얼마나 생생하겠나. 하지만 이보게 소크라테스, 지금이라도 내 말대로 해서 자네 목숨을 구하게. 자네가 죽게 된다면, 내가 잃게 될 손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걸세. 절대로 다시 얻지 못할 친구를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네. 게다가 자네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돈을 써서 자네를 살리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자네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인데도, 내가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것이라고 말할 걸세.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친구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긴 자로 생각하게 될 것인데,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자네를 살릴 방도를 제안하고 그렇게 하자고 그토록 권했는데도, 자네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 않을 테니 말일세.
소크라테스 :
하지만 이보게 크리톤, 왜 우리가 다수의 생각에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가? 우리가 마땅히 신경을 써야 할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믿어줄 걸세.
2월 나머지 공부
D-29

조영주

조영주
pp.68~9
그러니 소크라테스, 일이 이렇게 되도록 계속해서 내버려두는 것은 자네에게나 우리에게나 해악일 뿐만 아니라 치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잘 생각해보게. 아니,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시간조차 없네. 지금은 자네의 결심이 이미 서 있어야 하네. 오늘 밤에 모든 일을 다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네. 더 지체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네. 그러니 소크라테스, 제발 내 말다로 해고 다른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게.
소크라테스 :
사랑하는 크리톤, 자네의 열심이 정의로운 일에 대한 것이라면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열심이 크면 클수록 더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킬 것이네. 그래서 우리는 자네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찬찬히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네.
나는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는 것들 중에서 오직 이성에만 복종해서, 모든 일을 이성에 비추어서 깊이 숙고하여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따라 살아온 사람이네. 그런데 지금 내게 이런 운명이 주어졌다고 해서, 내가 이전에 지켜왔던 원칙들을 지금 와서 배척할 수는 없네. 도리어 그 원칙들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고, 나는 그것들을 여전히 존중하고 소중히 여긴다네.

조영주
p.72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부분들 중에서 불의에 의해서는 훼손되고 정의에 의해서는 유익을 얻는 그 부분이 망가졌을 때,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겠는가? 아니면,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부분 중에서 불의나 정의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어디이든, 우리는 그 부분이 우리의 몸보다 못하거나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조영주
pp.74~5
소크라테스 :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도적으로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는 불의를 행해도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가? 또는, 우리가 전에 수없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방금도 말했듯이, 불의를 행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선하거나 명예로울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모든 것이 이 며칠 사이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크리톤, 우리가 이 나이를 먹도록 그토록 오랜 세월 서로 진지하게 대화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대화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우리가 전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확고한 사실인가? 다수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겪은 고초가 지금보다 더 심하든 가볍든, 불의를 행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악하고 수치스러운 일인 것인가? 거기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
크리톤 :
거기에 동의하지.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되네.
크리톤 :
물론이네.
소크라테스 :
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불의를 당하면 그대로 되갚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밖에 없네.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네.

조영주
P.94
이보시게들, 사람들이 쾌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네. 쾌감은 그 반대인 것으로 보이는 고통과 아주 기묘하게 연관되어 있지. 이 둘이 어떤 사람에게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네. 하지만 사람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쫓아가서 붙잡으면, 다른 한 쪽도 거의 언제나 붙잡게 된다네. 마치 이 둘은 하나의 머리를 가진 두 개의 몸처럼 말이야.

조영주


조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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