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도 그 시를 무척 좋아해서 필사를 해놓았습니다.
마지막 두 행이 참 와닿더라고요.
[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
D-29

호디에
poiein
아름다움은 잠들게 하는 아편이 아니라 행동에 불을 붙이는 좋은 포도주여야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적이지 않다면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p.94,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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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토끼
“ 태양빛 꽃을 본 그녀는 미친 듯이 말하길
"내 종은 다시 산에 올라
색이 없는 꽃을 따 오라,
사프란색도 주홍색도 아닌 꽃을.
레오노라와 리지아를 기릴 꽃,
내가 사랑하는 꽃을 따오라,
잠의 색, 꿈의 색을 띤 꽃을.
나는 들판의 여왕이노라."
-중략-
산에서 내려와 여왕을 찾아가 보니
그녀는 들판을 거닐고 있었지,
이제 창백하지도 사납지도 않은 그녀는
몽유병자처럼 걸어
들판 저쪽으로 마냥 멀어져 가고
나는 그녀를 쫓아가고 쫓아갔지
초원을 지나고 포플러 숲을 지나고
손과 팔로 공기처럼 가뿐히
-중략-
그녀는 얼굴 없이 앞서가네
발자국도 없이 앞서가고 앞서가고.
그래도 나는 안개를 헤치고
그녀를 쫓아가고 쫓아가고.
색이 없는 꽃을 가지고,
희지도 노랗지도 않은 꽃,
시간이 녹아 없어지도록,
정상에서 그녀에게 꽃을 인도하기 위해. ”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13-16,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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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미스트랄의 「공기꽃」은 저도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공기꽃'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이 그지없어 시를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깊습니다. 이 시에는 "그저 애상에 찬 여성시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기백 같은 것이 담겨"(106쪽 역자 후기) 있고, 소리 내어 읽으면 화자의 강인한 목소리가 이입되는 효과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을 때와 눈으로 읽을 때 그 느낌이 천지 차이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저는 「공기꽃」과 「손가락을 잃은 소녀」가 그러했습니다. @모임 여러분도 마음에 드는 시를 낭송하시면 어떤 특별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좀더 특별하게 느끼고 싶다면 음성녹음을 한 후 들어보시면······!
만렙토끼
헉 저도 두 가지를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친구에게 설명해 주면서 읽었는데 울림이 남다르더라구요.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라니 이렇게 놀라울 수 가! 저는 공기꽃 후반으로 넘어갈 수록 감정이 몰아치는 느낌이라 인상깊었어요. 조예가 깊지 않은 제게도 이렇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게 좋았어요. 또 손가락을 잃는 소녀는 손가락을 찾으러 가게 배를 주세요 - 부터 손가락을 도둑맞은 소녀가 있는 곳이라면 그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는 부분이요! 자그맣게 그려진 그림도 마음에 들었어요ㅎㅎ
지니00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새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멀리 날아가 버릴지 모르니까
영영 집에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니까
내 손이 닿지 않는 처마에 둥지를 틀지 모르니까
그러면 내가 머리를 빗어줄 수 없으니까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새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공주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금으로 된 작은 신발을 신고서는
들에서 뛰어놀 수 없을 테니
밤이 되어도 더이상
내 곁에서 잠을 자지 않을 테니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공주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여왕으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내 딸을 내 발로 오를 수 없는
왕좌에 올려놓을 테니까
밤이 와도
내가 잠재울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사람들이 내 딸을
여왕으로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p.39 "두려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딸은 없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모성애를 잘 표현했나 놀라워요. 그녀가 양아들에게 느낀 감정도 똑같았을지 궁금합니다.

아티초크
지니00님이 인용하신 「두려움」은 미스트랄의 모성애가 어떤 것인지를 아주 잘 표현해주는 작품입니다. 미스트랄은 친딸은 없었지만 모든 딸의 엄마였고, 가슴으로 낳은 아들의 엄마였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미스트랄은 특히 버림받은 아이들과 전쟁 고아의 엄마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쩌면 직접 낳지 않았기에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품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니00님의 말씀을 들어보니「예술가 십계명」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낳듯이 마음의 피를 뽑아 작품을 생산하십시오"(92쪽)라는 구절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


바다연꽃3
집 안 난롯가의 남자들은
이 한을 모른다,
하늘이 내리는
이 슬픈 불의 선물을 모른다.
기나긴 물의 고된 하강,
굴복한 물의 하강.
가로누운, 마비된
이 땅을 향하여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느린 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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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space
엄마 몸도 걱정도 두려움도
우리 아가 안에서 잠이 들고
우리 아가 안에서 엄마는 눈을 감고
엄마 마음도 우리 아가 안에서 잠들었으면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엄마의 슬픔>, 66쪽,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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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손가락을 잃은 소녀
손가락을 찾으러 가게 배를 주세요.
뱃사람도 있어야 해요.
뱃삯도 있어야 해요.
뱃사람이 뱃삭으로 도시를 다 달래요.
높다란 탑, 널따란 광장, 배로 가득찬 항구,
마르세유는 세상에서 으뜸가는 도시라지만
손가락을 도둑맞은 소녀가 있는 곳이라면
그 도시는 아름답지 않아요.
지브롤터에서 고래잡이가 노래를 부르며
소녀를 기다리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 시를 읽으면서 미스트랄의 무력감이 파도처럼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이해한 바로 말해보자면
첫 번째 문단은 단계적으로 멀어지는 구조로 인하여 작은 문제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변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장소적 비유도 꽤 눈에 띄었는데 지브롤터는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희망 보루선, 생과 사의 경계선, 평화와 인권이라는 구체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읽힙니다. 마르세유는 이민, 식민, 전쟁의 출발지로서 현재 상실의 종착지로 보이고요.
뱃삯으로 도시를 다 달라는 부분은 절대로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이것을 해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줄게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주지 않겠다는 선언 같이 들렸고요.
높다란 탑, 널따란 광장, 배로 가득찬 항구 또한 소녀가 무력감을 느끼는 존재 같습니다. 탑은 감시, 권위, 지배의 상징이며 널따란 광장은 너무 넓음은 오히려 모두 막힌 것과 다름 없이 어딘가에 도달할 수 없는 환경을 의미하며, 배로 가득찬 항구는 배가 이렇게 많지만 소녀가 탈 배가 없음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소녀는 전쟁 고아, 유대인, 상실자, 독재로 자유를 잃은 칠레 국민, 미스트랄 자신을 의미하는 것 같고요. 손가락은 부모, 조국, 인권, 자유 등과 같은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사라지면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미스트랄이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죽었으니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지 않은 마르세유에서 자신의 배를 기다리는 유령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 근데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delispace
"죽음과 그의 종들이 할일을 모두 마쳤는데도 / 엄마 눈에는 여전히 네가 보이니 놀랍구나 <...> 너는 자신이 그 길을 가는 걸 모르고, / 나는 내가 네 뒤를 따르는 걸 모른 채, / 서로 빛을 비춰 주는 것을 모르고 / 서로에게 균열의 원인임을 모른 채, <...> 잠든 때나 깨어 있을 때나 / 우리는 가고 또 가고 있는 거야, / 우리가 만날 곳을 항하여. / 그런데 우리는 모르고 었어, / 우리는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음을."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67-70쪽
어디서 얻어 들은 문구일텐데, '존재의 부재, 부재의 존재'를 가슴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게 표현한 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의 마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견뎌내려는, 조용하지만 처절한 몸부림 같은 게 느껴져서 자꾸 먹먹해집니다.

바다연꽃3
그녀는 구름에서 자식 열 명을 셌고
소금밭을 자신의 영토라고 했고
강을 남편으로 보았고
폭풍우를 여왕의 외투로 보았다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우리는 모두 여왕이 될 거야,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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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연꽃3
흩어지면 없어지는 구름
녹아버리면 사라질 소금밭
흘러가며 만날 수 없는 강
여왕은 폭풍우 속에 있다
모든것이 허무하게 시라질 것 같지만
다음 세대가 이어가
결국 바다에 도달하거라 믿습니다.

호디에
시집『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들었던 음악이 있습니다.
저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나 비도비치를 좋아하는데요, 제가 들었던 앨범은 아니지만 그의 연주 영상을 공유합니다.
https://youtu.be/e26zZ83Oh6Y?si=1ArnvhwseVTVGt52
poiein
호디에님, 안녕하세요? 지난 밤, 봄비와 함께 올려주신 클래식 기타 영상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다연꽃3
저 여자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은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그슬리지도, 타버리지도 않는 걸까?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예술,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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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연꽃3
세상을 버리고 얻은 벽
그 벽과 대화하는 너와 나
우리에겐 나라와 사람과
귀한 보물이 있었지만
사랑은 자기 희생에 취해
미친 듯이 그 모든 것을 내주었지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시집』 행복한 여자,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 이루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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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poiein
희곡 「화염」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그을린 사랑>은 모성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요. 감옥에 수감된 그녀는 강간으로 점철된 고문실에서 끌려 나오면 밤새도록 노래를 부릅니다. 교도소의 수감자들과 간수들은 그녀를 '노래하는 여인'이라고 부르죠. 미스트랄의 시를 그녀에게 낭독해 주고 싶어졌습니다.

그을린 사랑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시몬은 유언을 따르길 거부하지만 진실이 궁금한 잔느는 지도교수의 도움을 얻어 중동에 있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난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 잔느.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어머니의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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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과 미스트랄의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를 연결하는 poiein님의 안목이 대단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 주는 쾌감이 있습니다. 오래전 극장에서 <그을린 사랑>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제가 poiein님의 글을 보고, 그믐 모임지기를 한 이래 가장 긴 글을 썼다가 방금 지웠습니다.^^; <그을린 사랑>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과 충격을 미스트랄의 시에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성경, 『신곡』의 견지에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다 쓰고 보니 크고 작은 스포일러가 많이 들어가 있어 지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ㅎㅎ
<그을린 사랑>을 @모임 여러분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미스트랄의 산문시 「예술」 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알려주신 poiein님께 감사드립니다.^^
poiein
편집자님, 진정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과 충격을 미스트랄의 시에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 비극과 성경, 『신곡』의 견지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아. 제가 그리스비극과 성경, 「신곡」「아시모프의 바이블」「안티 오이디푸스」「구약성서로 철학하기」등 이런 책들로 수다가 고픈 사람입니다요. 지우셨다는 그 텍스트,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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