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목동, 비평가』 혼자 읽기

D-29
[인간적 유토피아는 인간들을 전반적으로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모든 현대적 기술은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때 현대 기술은 인간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욕구에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생업 노동이 점점 줄어드는 세계에서 행복해지려면 인간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계발에 쏟아부어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디지털 기술 자체가 인간들에게 자신과 적절하게 교류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육 제도와 관련해서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내적 동기를 교육의 중심에 놓는 것이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충만한 삶을 살 능력을 갖추어 주기 위해서이다. 미래에는 생업 노동이 더 이상 그들 삶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을 것이기에 더더욱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미래에서 보면 2010년대는 참 특이한 시대였다. 사람들은 디지털 혁명의 쓰나미에 열광하거나 압도당했다. 나침반도 없고 방향 감각도 상실한 채, 디지털 거대 기업들이 약속하는 특정한 미래와 그들이 내세우는 필연적인 역사의 진로를 믿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은 경제적 몰락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믿었다. 또한 사람들은 〈인터넷〉이 현실적 국가법과는 완전히 다른 법을 가진 가상 세계라고 생각했고, 현실 세계의 법칙이 여기서는 통용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가 심지어 이 세상에는 진보가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특정한 진보만 있다고 여겼다. 가령 1970년대의 사람들이 핵에너지가 더 나은 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수밖에 없는 정해진 진보와 미래라고 믿었던 것처럼. 이런 형태의 믿음은 2010년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거기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케케묵고, 세상 물정 모르는 기술과 진보의 적으로 치부되었다. 이는 원자력을 두고 벌어진 1970년대의 논의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주류에 속하고 싶은 사람은 2018년에도 정신 나간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그런 믿음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기껏해야 기술적 진보의 속도 조절이나 부르짖고, 교육과 판단력의 가치나 강조하고, 디지털 대기업의 투명성 강화만 요구했다. 디지털 경제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디지털 사업 모델이 국민의 복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인터넷의 본질이 권력의 문제이지 우리에게 주어진 필연적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시 차별적으로만 간간이 나올 뿐이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인공두뇌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전 세계 사람들은 디지털 세계의 축복을 전반적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고, 그것을 도로 닫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그것에 적응하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이 유저로 격하되고, 자신의 정보가 판매되더라도 반발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껏 디지털 기업들이 제공하는 것들을 즐겁게 이용해 왔고, 그것이 재미를 주는 한 허구적 가상 세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이것이 세상의 순리가 아닐까? 미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동구권의 붕괴 이후 예고했던 것처럼 자유 민주주의가 역사의 끝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테크노크라시와 자율적 기계 시대로 가는 도상의 중간 정거장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길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연법칙으로 미리 예정된 것이 아니다. 소위 인류의 예정된 길이라고 주장했던 다른 모든 길처럼 말이다. 가령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인류가 프로이센식 관료 국가로 이행될 거라고 예고했고, 카를 마르크스는 이른바 〈역사의 끝〉으로서 〈계급 없는 사회〉를 그린 바 있다. 그런데 이제 개인 정보의 자유로운 사용에 합법적인 길을 열어 주면 우리는 실리콘 밸리의 과점 기업들을 덩치가 점점 더 커지는 초강자로 키우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 강자들은 우리의 사회적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부드러운 방식으로 무력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에 관한 우리 시대의 역설은 바로 다음에 있다. 시민의 자유를 전반적으로 보장하거나 복원하기 위해서는 개인 정보를 사용하는 기업의 자유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 문제에서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할수록 우리의 가치가 잠식되고, 우리의 자유가 파괴되는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몇 가지 영리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시중에는 『너희는 나를 잡지 못해! Mich kriegt ihr nicht!』 같은 제목의 책이 많이 나와 있는데, 이런 유의 책들에는 정보 괴물의 마수로부터 눈에 띄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요령과 기술이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간단하지 않다. 시간과 수고를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른 위험도 있다. 그런 방법을 쓰면 정보기관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숨길 게 있으니 숨으려고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독일에서 누군가 자신의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의심을 사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다. 이 사안이 그렇게 복잡한지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는 듯하다. 기술적 진보가 축복으로 입증되려면 동시에 사회적 진보도 이루어져야 한다. 퇴행의 위험은 확인되는 순간 단순히 인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없애야 한다. 그것은 제반 사회 문제에 대한 수많은 사회 공학적 해결책으로서, 우리를 금치산자로 만들고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위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정보를 빼내 가는 스파이 행위에도 해당된다. 게다가 이 점에 대해서는 합의가 좀 더 쉬울 것 같은데, 과세 제도도 손봐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사업 모델들이 세제(稅制)에서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제 세금 규정의 근본적인 개혁을 2018년 현재까지 방치해 오고 있다. 핵심은 가치 창출의 형태와 과세 지역을 밀접하게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납세자는 자신이 돈을 번 곳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를 위해 유럽 연합에 필요한 것은 법인세 책정의 공통 근거이다.]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2014년 당시 독일 법무부 장관 하이코 마스는 디지털 콘체른들의 알고리즘을 강제로 공개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당시 경제부 장관 지크마어 가브리엘은 거대한 플랫폼 운영자들의 해체를 언급했다. 그러나 둘 다 시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움직임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럽 연합의 정보 보호 기본법은 중요한 발걸음이다. 바퀴는 오래전부터 계속 돌고 있다. 독일과 유럽 기업들이 멋대로 착취해서는 안 되는 개인 정보를 계속 탐하는 동안 실리콘 밸리는 그런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는 중에 있다. 무료 서비스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십억 유로의 수입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로봇카에서 사물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인공 지능과 관련한 많은 아이디어에 광고 수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어차피 값을 치른 상품에 대한 부수입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사업 모델에 대해서도 깊은 숙고와 대처가 필요하다. 유럽 연합의 국가들은 지금껏 빠른 네트워크 구축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도 왜 그것을 이용하는 업체들로부터 비용을 다시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가? 송전선에는 돈을 내면서 왜 광케이블에는 돈을 내지 않는가? 그것은 〈자율〉 주행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납세자들의 돈으로 건설한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요금을 내야 한다. 외국 인터넷 콘체른들이 독일 인프라를 기반으로 돈을 번다면 왜 그런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는가? 가령 구글이 자율 주행 자동차 서비스를 일정한 요금을 받고 독일 도시들에 제공한다면 왜 그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 왜 통행세를 내지 않는가? 자치 단체나 납세자들이 수십억 유로를 들여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가 아닌가?]
[인류의 야심 찬 꿈과 악몽, 이 둘은 2018년에는 아주 가깝게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제1차와 제2차 산업 혁명 때도 정확히 그러지 않았던가? 노동자의 운명은 경악스러웠고, 자본가는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 마르크스조차 집단적 가난을 향해 계속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믿었다. 노동자를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맞춰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단순히 손이나 놀리는 존재로밖에 보지 않았던 제2차 산업 혁명 시기 등장한 테일러리즘의 냉소적 인간상도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 언젠가는 변화가 찾아올까? 20세기 초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해방을 예견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역사의 목표로 오인한, 테일러리즘에 못지않은 냉소적 인간상으로 무장한 스탈린주의의 흡입력도 떠오른다. 그렇다면 〈디지털 테일러리즘〉, 즉 인간을 인간에 대한 정보와 그 정보의 효율적 착취로 환원시키는 시대가 왜 역사의 종착지여야 하는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의 교류에서 수정 가능한 하나의 과도기가 아니라 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미래 사회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들의 사회이다. 또한 삶의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의미를 찾는 인간들의 사회이다. 사냥꾼으로서 미지의 새로운 체험을 찾든, 목동으로서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든, 혹은 비평가로서 사회에 대해 숙고하고 사색하든 상관없다. 또한 정원을 가꾸든,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든, 이웃들을 격려하고 고무하든, 또는 이웃의 심신을 돌보든 전혀 상관없다. 삶은 오늘날보다 훨씬 많은 품위와 자유, 발전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곳은 남들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과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구분할 줄 알고, 미래 세대의 비용으로 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이다. 의학은 점점 개선되고, 기대 수명은 높아지며, 매연을 내뿜는 교통은 소음 없이 굴러가는 교통으로 대체된다. 더 많은 식물과 더 많은 녹지, 더 많은 휴식과 고요, 명상이 이 세계 속으로 진입하고, 대신 삶의 배경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인공 지능 기계들이 인간의 복리를 위해 일한다. 노동 세계의 분주함과 스트레스는 말없이 일하는 기계들의 몫이다.]
[GAFA 같은 기업과 그 투자자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아름다운 신세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그 신세계가 그들의 약속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리라는 데 있다. 한편으로 많은 사업 모델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순수한 미래 기업일 뿐이다. 승객 중개 서비스업체인 우버는 매년 약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지만, 그로 인해 세상을 매일 조금씩 더 낫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이 기업에 많은 돈을 퍼부은 사우디아라비아나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자들이 크게 불안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버의 가치는 결산표상의 실질적인 손실이나 6백 억 달러로 추정되는 상상 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기꾼들의 희망에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 이런 기업이 우버 하나만은 아니다. 수많은 디지털 콘체른의 가치는 그것들의 약속에 신뢰를 보내는 〈미래 투자형 펀드〉나 벤처 캐피털 자금의 꿈을 먹고산다. 에어비앤비든, 윔두 Wimdu든, 아니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전자 학습 영역이든 간에 실제로 수익이 나는 사업 모델은 거의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만일 막대한 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하는 손쉬운 신용 대출 제도로 인해 경제적 거품이 생긴다면 2007~2009년의 세계 금융 위기는 분명 머지않아 엄청난 디지털 위기로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럴수록 독일 같은 나라들이 디지털 소비재 경제에 너무 과하게 종속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특히 모든 사람을 상대로 이윤에만 초점을 맞추는 서비스업에 말이다. 품질 좋은 전기톱, 나사, 산업용 섬유, 또는 여행용 트렁크를 제작하는 것은 미래에도 독일 경제의 중추로 남을 것이다. 반면에 실리콘 밸리가 우리에게 미리 그려 보인 총체적 테크노 영역으로의 길은 분명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곧은길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사회적 평화를 위해 인구의 3분의 2를 가상 오락으로 진정시킬 수는 있겠으나, 그게 성공하더라도 인공 지능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한 이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줄 만큼 충분한 소비력이 생성되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사회적 평화를 위해 인구의 3분의 2를 가상 오락으로 진정시킬 수는 있겠으나, 그게 성공하더라도 인공 지능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한 이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줄 만큼 충분한 소비력이 생성되지는 않을 듯하다. 어쨌든 소비에 의존한 디지털 경제는 엄청난 난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래에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우리의 시스템을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옛 시스템의 그렇게 많은 수익자들이 선진 산업 국가에서 임박한 대량 실업을 과소평가하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길이 이렇게 지속될 수 없음을 어렴풋이 깨닫는 순간, 필연적으로 근본적인 대안을 숙고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서도 거대 경제 단체들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두 번째 위기는 이미 거론되었다. 미래에도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소비자로서 필요하겠지만, 단지 소비자의 기능으로서만 그럴 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Homo Deus』에서, 계몽주의의 자유로운 인간상이 군사적인 면뿐 아니라 경제적 면에서도 그것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관철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많은 애를 썼다. 용병 부대가 국방의 의무에 자리를 내주고, 공장에서도 일할 인력이 필요해지자 국가는 국민에게 여러 권리를 부여하고, 인간을 개인으로 선포했다. 인간이 그 자체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라리의 이 테제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19세기 초 공장에서는 개인이 필요하지 않았고, 인권이 오직 제복을 입은 시민들의 동기 부여만을 위해 선포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도덕과 자본주의 경제가 자유주의 속에서 한시적으로나마 동맹을 맺었다는, 그러니까 미래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그런 식의 동맹을 맺었다는 하라리의 결론은 맞지 않을까? 만일 대중이 그들의 경제적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면 인권과 자유는 계속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것들에 대한 도덕적인 논거가 충분할까?]
읽고 난 감상: 인공지능 경제, 인공지능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효능감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소득은 수령자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들에서 소외되는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금융거래세 아이디어는 무척 솔깃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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