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①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브뤼노 라투르 외)

D-29
제가 종종 하는 얘기 중에 "고립된 학문은 죽는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 얘기가 개인적으로나 학제의 차원 모두에서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공동 연구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학문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구를 이해하고 평가해 주고, 또 자신도 다른 사람의 연구를 평가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에는 지도 교수와의 상호 작용이 이런 역할을 어느 정도 하기 때문에 이런 필요성을 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장기전, 비유하자면 마라톤 비슷한 겁니다. 대학원은 그 출발이지요. 졸업을 하고 STS의 특정한 주제를 연구하다 보면 그 주제를 알거나 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나 빼고는 거의 없는 경우를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즐겁게 연구를 이어 나갈 동력이 약해지곤 합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저를 놀라게 했고 아직도 놀라운 또 다른 큰 전환점은 브뤼노 라투르의 엄청난 지배력입니다. 몇십 년 동안 라투르는 놀라울 정도로 이 분야를 장악했는데 저는 아직도 이 점이 의아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라투르가 과학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사회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라투르가 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STS에 복무했고, 도널드 맥켄지가 수학을 전공하고 STS로 온 것을 보면 이 분야의 학자들은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것 같아요. 멕켄지가 대중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의 차이를 언급한 일화가 재미있어서 남깁니다ㅎㅎ
하지만 저는 단순히 동료 사회학자들과 STS 학자들에게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을 특히 즐기는데, 지금은 그런 작업 대부분을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를 통해서 상당히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 재미 중 하나는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자에게 초고를 첨삭받는 일입니다. 이 잡지에 글을 쓰려면 논문을 쓰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주 전 저는 학부 1학년 글을 심사하면서 학생들에게 학술 글쓰기를 알려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을 작은 저술의 교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자들은 제 원고에서, 제가 학생들에게 좋은 학술 에세이를 쓰기 위해 지시했던 종류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 버렸어요.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4장 | 도널드 맥켄지,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저는 STS 학자라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신들은 참 아직도 오래된 사고방식에 휩싸여 있지 뭐야. 사회적 관계들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형성된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야. 내가 말하는 비인간의 역할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 잘 들어 봐. 당신이 알던 모든 걸 바꾸어 줄 테니까.” 이러한 얘기를 아주 공격적으로 하면 아무도 전향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기술 시스템이나 비인간의 역할 등에 주의를 기울이면 기존 관점들을 발전시키고 보완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겠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겸손과 예의를 갖추고서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라는 겁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4장 | 도널드 맥켄지,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분야를 막론하고 겸손과 예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겨 봅니다.
라투르가 한 일은 STS를 더 이상 난해하지 않은 분야로 만들어 STS 분야를 엄청나게 확장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빴죠. 모든 게 너무 산만해졌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라투르와 함께 ‘실험실 생활’을 집필한 스티브 울가의 흥미로운 경력은 경영 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STS 연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울가는 경영학에서 MBA보다 STS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STS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그나저나 라투르는 거의 매 장마다 언급되는 것 같네요... 왜 그리 많은 책이 번역되어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STS가 다른 영역으로 침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경영대학원과 경영학의 경우, MBA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으며 MBA는 사람들을 잘 교육하지 못한다고 인식됩니다. 어쩌면 MBA는 갱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STS가 경영대학원에서 앞으로 수행할 역할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교육이 너무 직업적인 것이 되어 STS 같은 사치는 밀려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STS가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5장 | 스티브 울가,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저도 이 문장 수집했어요.
외국의 경우에는 학계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더 쉽게 알고, 교류도 훨씬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워크숍 같은 것도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고요.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STS 같은 작은 분야에서는 비슷한 관심으로 모일 수 있는 연구자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또 대부분의 STS 연구자들은 대학의 교양학부, 자유전공학부 등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런 학부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혼자서 공부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처음에 얘기했듯이 고립된 학문은 조금씩 고사합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과학을 색다르게 보도록 하는 데에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과학을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정의한다. 이때 STS 학자들은 '진리', '법칙', '지식' 같은 만만찮은 표현들에 압도당하는 대신,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지, 진리의 지위는 어떻게 획득되는지, 물리 법칙은 어느 역사적 시점에 등장했는지 적극적으로 되묻는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의 관점에서 과학이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문화적 조건에서 이뤄지는 열려 있는 실천이다. 이 실천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구, 사물, 동물을 동원하는데,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형태와 능력을 얻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실천으로서 과학을 이해하는 데에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 혹은 과학과 기술의 엄격한 분리는 방해가 된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나아가 STS 학계는 적극적으로 이 분야의 유용성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STS의 잠재력을 두고 넘치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스티브 울가는 STS가 "스스로와 논쟁하고, 스스로를 갱신하고, 새로운 퍼즐, 새로운 호기심, 새로운 현상을 구상하는" 창조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확신한다. 학문적 경계가 유동적인 만큼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라투르는 STS가 늘 인류세를 준비해 왔고 이제는 '중심 학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전부터 자연과 사회, 이를테면 지질학과 인류학을 구별하지 않는 언어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 오늘날 가장 시기적절한 접근법을 취한다는 것이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물론 중심 학문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혼자서 튀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분과들과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홍성욱은 "고립된 학문은 죽는다"고 강조한다. 재서노프는 학문적 특별함이라는 것이 외딴섬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현상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들 사이에서 대화하면서 의미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STS는 외부인이 보기에 난해한 '특이한 학문'을 추구하기보다는, 남들과 나란히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친절한 학문'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완독했습니다. 저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로 넘어가겠습니다~. ^^
전반에는 소개글이 왤케 길어 했는데 후반이 어려워 몇 번씩 다시 읽고 있어요 ㅎㅎ 저도 오늘 휴무라 완독목표
친한 동료인 앤드류 스털링Andy Stirling이 2011년에 《네이처》에 쓴 〈복잡함을 유지하라Keep it complex〉라는 좋은 간결한 보고서를 언급하고 싶네요(Stirling 2010). 그는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흑백 논리의 답이 존재하지 않는 정책에 대해 과학자들은 흑백 논리에 답을 제공하는 일을 거절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도울 방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을 위한 조언을 조건부로, 필요하다면 다중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해리 콜린스는 ‘중력의 키스’ 저자로 알고 있었는데, 중력파 검출 장치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기까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STS가 STS로 불리기 전부터 그것을 전공했다’는 한마디에 위엄이 느껴집니다.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라 읽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논쟁 연구를 하면서 과학 내부로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라투르와 비슷하지만, 과학의 내면을 알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다르군요.
중력의 키스 - 중력파의 직접 검출중력파로 확증된 ‘그 신호’ GW150914가 검출된 2015년 9월 14일부터 시작해, 2016년 2월 논문이 발표되기까지 라이고 협력단 내부에서 발견이 참으로 확정되는 과정, 또 논문이 세상에 공표되고 중력파의 실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현장 연구한 영국의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의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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