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①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브뤼노 라투르 외)

D-29
저의 모든 아이디어는 윈치/비트겐슈타인식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저는 지식이 정보 전달이 아닌 사회화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인공 지능에 관한 책을 몇 권 썼습니다. (중략) 전문성의 정의는 '기술적 공동체의 암묵지 소유'이고, 암묵지는 사회하를 통해 습득되기 때문에, 전문가가 된다는 건 삶의 형식을 공유하는 일원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삶의 형식이라는 개념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57%,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몇십 년 동안 라투르는 놀라울 정도로 이 분야를 장악했는데, (중략)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라투르가 과학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사회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는 인문학의 장난감이 될 수 있는 일종의 반-과학 주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61%,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과학기술과 사회 운동을 결합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이론적 무기는 '기술종속이론'이었습니다. 주로 남미 쪽, 혹은 이들에 동조하던 구미의 사회과학자들이 발전시킨 이론인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제삼 세계의 종속이 기술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지며, 제삼 세계의 기술이 정체되면서 이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삼 세계는 선진국 기술이 아닌 적정 기술, 토착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과제라는 이론이었지요.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식민주의나 제국주의론을 기술에 적용한 것과 비슷한데, 한국은 1980년대 중후반 정도가 되면, 비록 폭압적인 독재 정권하였지만, 과학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독자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기술 혁신도 일어나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공계 전문직 종사자들의 노조 설립이나 노동 운동도 태동하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운동을 하던 우리 그룹은, 스스로 과학기술자 노동 운동을 한다고 설정하고, 종속이론에서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기술이 아닌 다른 이론적 틀을 찾기 시작했지요.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과학이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 인간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고, 사회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이데올로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의 과학'이 말이 안 되듯이, '사회주의 과학'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과학기술이 문화에 의해서 촉진되거나 저해될 수 있고, 왜곡될 수도 있지만, 그런 사회적 요소가 과학기술의 내용에 각인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과학사회학이 정말 과학에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과학사회학은 과학자의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말이 오래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STS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과학자들에게 과학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자본주의의 힘에 영향받은, 역사적 과정의 결과로서 과학을 "더 큰 그림"으로 보도록 가르치려고 들면, 그들의 눈이 바로 게슴츠레해질 것입니다. 반면 "실험 과정에서 측정값을 구할 때 여러분은 그 측정 장치에 대해 어떤 가정들을 세웠나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스티브 울가의 대담자 코이치 미카미가 연구한 '희귀 질환'을 만드는 환자와 환자단체의 역할, 그리고 고도로 전문화된 과학 및 정책 결정 영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조사한 연구가 관심이 가네요. 안그래도 대부분 치료 비용의 부담에 제약받아서 희귀질환 센터장인 친구가 가장 고민하고 관심 있어하는 분야입니다.
라투르는 이전에는 프랑스 인류학 훈련을 받았었는데, 환상적이게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거리를 두는 훌륭한 본능이 있었죠. 저는 그가 측정 기구인 피펫 하나를 집어 들고 "그들은 이것으로 액체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고 말하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마법이야.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회의적이고 분석적인 거리 두기야말로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던 거야."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라투르와 울가 공저 "실험실 생활"을 보면.. 인류학자가 새로운 문명의 민족지적 연구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 왜 Nathan Pyle의 Strange Planet (낯선 행성) 만화가 생각날까요? ㅎㅎㅎ 하긴 외계인들이 지구에 오면 우리가 고대 문명의 유물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겠죠. 솔직히 전 예전에 실험실에서 처음 피펫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이거 잘하면 아마존 원주민들이 부는 blowgun처럼 써서 물총처럼 내뿜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정보전달에 관한 제 관념은 윈치와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개별 정보 조각들이 전달되기보다는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쿤도 염두에 두고 있었죠.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아니면 현상학자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way of being in the world)"을 학습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전문성의 정의는 '기술적 공동체의 암묵지 소유'이고, 암묵지는 사회화를 통해 습득되기 때문에, 전문가가 된다는 건 삶의 형식을 공유하는 일원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삶의 형식이라는 개염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제가 논쟁 연구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은, 논쟁을 살피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실험자의 회귀(experimenter's regress)'라고 생각합니다. 요지는, 모두가 실험을 하고 실험을 반복함으로써 진실을 볼 수 있을 텐데, 왜 논쟁이 계속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실험자의 회귀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서로의 실험을 반복해도 논쟁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그들에 의하면 분석해야 할 대상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 즉 서로 다른 "담론의 레퍼토리(repertoires of discourse)"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히 어리석은 일로 보였는데, 이 방향으로 밀고 나가면 다음에는 무엇이 담론인지,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아는지를 물어야 하고, 결국 끝없는 회귀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 세상은 의미에 기반하고 있으며, 단어는 그저 설명적입니다. 세상은 단어가 아니라 의미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가 논문과 책에서 사용하는 인용문들은 데이터가 아닌 의미의 예시일 뿐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몇십 년 동안 라투르는 놀라울 정도로 이 분야를 장악했는데 저는 아직도 이 점이 의아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라투르가 과학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사회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는 인문학의 장난감이 될 수 있는 일종의 반-과학(anti-science)주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인문학자들은 과학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도 과학을 비판할 방법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투르가 한 일은 STS를 더 이상 난해하지 않은 분야로 만들어 STS 분야를 엄청나게 확장했다는 것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브라이언 윈이나 쉴라 재서노프처럼 과학을 민주화하고 과학자들에 대항하는 대중의 편에 서고자 하는 매우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STS 학계의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 이런 새로운 경향은 과학의 층위를 낮춘 SSK의 통찰을 가져 가서, 과학은 그저 다른 수단을 사용한 정치일 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죠. 만약 과학이 정치라면 정치가 과학이고, 그게 바로 디스토피아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 학자들이 좁은 자기 참조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앞날이 내다보이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영향력 증대가 아니라, 그저 "분야가 건강하지 않게 자화자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들을 예의주시하라"는 의미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Ouch! ㅎㅎㅎ 핀치와 콜린스의 '골렘'이 과학계에서도 악명이 높다던데.. STS 내부에서도 그리고 라투르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소 정치적인 전환에도 꽤나 날카로운 지적을 막 날리는 군요.
학문적 논쟁의 핵심은 반대하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가능한 한 최선의 설명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의 관점 내부로부터 밖으로 뻗어나감으로써 그것이 왜 틀렸는지 보여야 합니다. 다른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최대한 어려운 일이 되어야지, 쉬워서는 안 됩니다. 반면에 정치적 논쟁의 핵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빠르고 효울적으로 상대방을 물리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관점을 공정하게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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