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영
자신은 아내에서 과부로, 제수에서 아내로, 엄마에서 자식 없는 여자로 바뀌어 갔다. 우다얀을 잃은 것은 예외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은 능동적으로 이런 길을 선택해왔다. 자신은 수바시와 결혼했고, 벨라를 포기했다. 자신은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전환을 관철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신의 삶을 켜켜이 쌓아왔지만 결과적으로 삶은 발가벗겨졌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
P.381~382
가우리는 '우다얀을 잃은 것은 예외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은 능동적으로 이런 길을 선택해왔다.'라고 말하는데... 우다얀을 잃으면서 삶의 의미가 모두 사라진듯 해보입니다. 우다얀을 잃은 곳을 떠나기 위해 수바시를 따라 미국에 갔고 자신의 외적인 모습도 바꾸지만 딸과 수바시는 끊임없이 우다얀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고 결국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 처연한 삶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인생책> 우다영 소설가와 [저지대] 함께 읽기
D-29
리브
우다영
네 맞아요. 이 모든 선택을 한 가 우리 앞에는 우다얀의 죽음이 선행되어 있어요. 그 일을 겪은 가우리, 그런 시절의 참극을 겪은 세대의 이야기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인생을 하나의 소설처럼 길게 조망하면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우다영
질문 7.
문득 궁금해져서 질문해 봅니다!
저는 저지대를 읽고 한동안 이 긴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들의 서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요. 내가 알던 인물이 소설 속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그 인물의 영향권 안에서 또 다른 인물이 형성되는 촘촘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이렇게 세대를 연결하며 인물 하나하나에 밀착되어 흘러가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알고 있다면 그 책을 추천해 주세요 :)
새벽서가
재작년과 작년에 제가 읽은 책들을 쭉 돌아봤는데, 이렇게 누군가의 일대기(?)에 가까운 시간을 다룬 소설은 거의 없었더라구요. 특히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요. 하지만, 유독 기억나는 책이라면 제가 중학생일때 빠져 들어 읽었던 이야기는 펄 벅의 <대지>,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오르한 파묵의 책들중 <하얀 성>입니다. 하얀 성의 경우에는 메인 캐릭터가 두명이에요. 화자가 터키의 노예가 된 젊은 시절부터 노인이 될때까지의 삶을 다루니 아마 긴 시간을 다루는 인물의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겠네요. 요즘 읽을만한 소설을 찾고 있어서, 다른 분들의 답변이 기대됩니다.
우다영
<하얀 성>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순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급히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주인인 호자가 도망간 자리에 남겨진 내가 호자가 된다는 줄거리를 읽고 그 결말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다시 떠올랐는데요. 내가 ‘나’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을 오래 곱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강렬한 기억이 어떻게 까맣게 잊혀지고, 또다시 떠오르게 되는 걸까요?
리브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가 떠오릅니다.
<그레이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캐나다에서 악명이 높았던 살인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그레이스는 16세의 나이에 살인에 가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30년간 옥살이를 하다 사면된 인물입니다.
그레이스의 삶을 통해서 1800년대 유럽에서 캐나다로 건너온 사람들의 애환도 엿볼 수 있는데요. 그레이스 가족은 바닥의 삶을 벗어나고자 망망대해를 목숨걸고 건너 캐나다로 왔으나 새로운 삶의 터전은 희망이 되지 못했습니다. 도중에 배에서 엄마가 사망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때문에 남의 집 하녀로 전락해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을때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에 그레이스가 아무리 무죄를 주장한들 누가 하녀의 이야기를 들어줬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레이스>는 주인공 그레이스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을 파헤칩니다.
제가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있는데요 그레이스의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자기가 각본을 미리 준비해 놓고 상대방의 입안으로 쑤셔 넣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박람회나 품평회에서 복화술을 보여 주는 마술사와 같고, 그들 앞에서 나는 그저 나무 인형일 뿐이다. 재판정에서도 마찬가지리라. 나는 피고석에 앉아 있었지만 사기로 된 머리를 달고 안에 솜을 넣은 천 인형과 다름없었다. 나는 나라는 그 인형 속에 갇혀서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 p.433~434
우다영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 설명해주신 <그레이스>의 내용과 결이 같아 재미있네요! <눈먼 암살자>는 여러 이야기의 층위로 겹겹이 진행되지만,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그런 방식의 언어로 발화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 또한 여성의 이야기이며, 자매의 이야기이며, 억압된 약자가 처절하게 맞서 반응한 이야기입니다. 한 집안의 긴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저지대>와도 볼륨이 비슷하고요. 다음엔 <그레이스>를 재밌게 읽어볼게요 :)
애플망고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긴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들이 나오는 책이라면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 떠오릅니다. 두 작품 모두 일제강점기 전후부터 3-4세대까지 이어지는 가족들의 삶을 다룬 책입니다. 역사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주인공들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저같아도 같은 행동을 할 것 같기도, 다른 행동을 할 것 같기도, 아무것도 안할 것 같기도 합니다. 다양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다른 좋은 책들이 많이 있겠지만 아직 제가 이제 독서에 입문한 '독린이'이니 다른 분들이 더 좋은 책들 소개해주세요^^
위에서 소개해주신 책들은 고이 '읽을 책' 카테고리에 넣어두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언젠가는!
반달
'밝은 밤'이 그런 내용이었군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무척 감명깊게 읽었는데 이 책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애플망고
물론 밝은 밤과 저지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밝은 밤은 가족과 여성의 삶, 아픔과 회복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쇼코의 미소도 제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기는 했는데 너무 늦기 전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우다영
독린이시라니, 말씀을 잘하셔서 정말 몰랐어요!
솔리비아
질문 6.
가우리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4번 질문에 가우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사회 운동을 위해 목숨과 가족의 안위를 걸었던 우다얀이라는 남성은 익숙한 인물형이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개인적인 이상과 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여성인 가우리의 모습이 불편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수바시의 배려와 도움에도 크게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 힘들게 지켜낸 벨라를 등한시하는 듯한 모습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은혜를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생각까지도 했어요. 대체 얼마나 더 원할셈이냐고요.
하지만 남은 이야기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찰과 우다얀과 있었던 일 후에 가우리는 우다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벨라와 수바시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거 같습니다. 그녀가 조금씩 이해가 가더군요. 우다얀은 그녀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공범의 고리를 씌웠지만 가우리는 스스로 그걸 끊어냈어요.
또 책에 나온 표현들을 모아보자면 가우리는 ‘무지와 희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대를 하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결국 발가벗겨진 채 혼자가 됐지만 자신을 구해냈’습니다. 가우리의 욕망을 따라가며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이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수많은 자아의 전환속에서 원하고 또 원해도 채워지지 않는 본인을 가우리가 얼마나 혼란스러워 했을지 상상이 안가요.
책을 덮고 나니 그녀에게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해도 그녀의 모든 선택과 지나온 시간에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문학은 인간과 삶이라는 복잡한 개념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유연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저지대에서 가우리와 우다얀의 내밀한 이야기를 뒷 부분에 둔 것도 모든 이에게는 촘촘히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삶의 복잡성을 보여준 것 같아 정말 좋았어요. 욕망하는 여성에 대해 가졌던 편협함을 반성하게 해준 것, 가우리에 대한 생각이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고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에게 가우리는 문학적인 인물 그 자체였습니다.
반달
'모든 이에게는 촘촘히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삶의 복잡성'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것이 문학을 읽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다영
맞습니다! 가우리는 정말 소설을 읽는 나에 대해서도, 세계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도 돌이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힘이 강한 인물입니다. 소설의 틀을 훌쩍 벗어나 어느새 현실에서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첫 번째 작용은 솔리비아님처럼 가우리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한 것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와 마음이 이토록 변하는 경험은 인생에서도 흔치 않잖아요. 제가 진정한 의미의 '경험'을 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에게 가우리는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인물입니다.
솔리비아
’가우리’에 대한 생각
1. 가우리의 세상과 자아에 대한 고민이 넓어지고 집요해지는걸 보는 건 작은 전율이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진리나 당위를 질문하고 재정립해나가는 모습들이 가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인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
‘가우리는 그의 독립적인 생활이 고마웠다. 동시에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
‘학교 신문은 때때로 특집 기사를 실었는데, 미국에서 흑인 또는 여자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착취의 형태, 개인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긴 글이 실리곤 했다. 그녀는 우다얀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지 궁금했다.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 향상하는 데는 열심이면서 타인의 삶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덜하다고 깔보지 않을까 궁금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여자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해내는 것을 그녀는 하지 못했다. 고통스럽게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을 자신은 하지 못했다. 그녀를 오래 곁에 두고 키우지 않은 자신의 엄마조차도 자신을 사랑했다.’
2. 수바시와의 관계에서 감정과 몸의 욕구는 별개라고 알게 된 점, 학교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갑작스러운 성욕을 느끼고 남성을 따라간 장면, 교수 시절 논문을 도와달라고 온 대학원생과의 밀회 등 가우리의 성적 욕구를 묘사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별,인종,국적,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의 욕망과 실존의 증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가우리를 수바시,우다얀,벨라등 그녀를 둘러싼 인물이나 아이의 엄마, 이민자 여성, 청강생등 사회적 위치와 엮지 않고 한 개별적인 인간으로도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우리는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었어요. 저지대를 이야기하면서 가우리의 존재감을 빼기가 힘들어요.
우다영
만약 저였다면 이토록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또 거침없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인식의 확장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 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다영
가우리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모든 선택들에 저도 상처를 받았어 요. 벨라와 수바시가 느꼈을 감정들과 지나온 시간들을 상상하고 이입한 것인데요. 그래서 가우리가 훗날 벨라를 찾아왔을 때 벨라처럼 화가 났고, 끝내 가우리를 집 밖으로 내쫓았을 때 미움과 연민과 미련과 후련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가우리가 겪은 일들을 따라갈 땐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고통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어요. 그 고통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가우리가 잊히지 않더라고요. 진짜 나에게 사랑과 미움을 알게 해준 사람 같아서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우다영
안녕하세요, 우다영입니다. 오늘로 한 달 동안 진행했던 독서모임이 종료됩니다. 함께해주신 책이고파님, 오후님, 리브님, 새벽서가님, 반달님, 솔리비아님, 환환님, 금붕어님, 애플 망고님 모두 고생 많으셨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 찬찬히 함께 읽고 조목조목 이야기 나눈 시간이 저도 아주 즐거웠어요. 조금 더 많은 질문을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사람들과 나눈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새해의 시작을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시작한 것만으로도 저는 기쁨 가득입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질문 8.
마지막으로 앞으로 독서를 하며 한 번씩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은 작은 질문을 남기고 저는 떠나겠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그 책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싶으신가요?
반달
작가님과 만나 좋아하는 책 <저지대>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어서 무척 즐거웠습 니다. 제 주변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이 공간에서 나누어주셨던 여러분들의 소감 하나하나도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한달 간 저지대에 푸욱 잠겨서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그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네요. 모두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질문 8. 지금은 <축복 받은 집>을 다시 읽고 있는데요, 첫번째 단편 '일시적인 문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또다른 형태의 가우리와 수바시를 볼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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