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우다영 소설가와 [저지대] 함께 읽기

D-29
물론 밝은 밤과 저지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밝은 밤은 가족과 여성의 삶, 아픔과 회복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쇼코의 미소도 제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기는 했는데 너무 늦기 전에 꼭 읽어봐야겠어요!
독린이시라니, 말씀을 잘하셔서 정말 몰랐어요!
질문 6. 가우리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4번 질문에 가우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사회 운동을 위해 목숨과 가족의 안위를 걸었던 우다얀이라는 남성은 익숙한 인물형이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개인적인 이상과 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여성인 가우리의 모습이 불편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수바시의 배려와 도움에도 크게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 힘들게 지켜낸 벨라를 등한시하는 듯한 모습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은혜를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생각까지도 했어요. 대체 얼마나 더 원할셈이냐고요. 하지만 남은 이야기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찰과 우다얀과 있었던 일 후에 가우리는 우다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벨라와 수바시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거 같습니다. 그녀가 조금씩 이해가 가더군요. 우다얀은 그녀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공범의 고리를 씌웠지만 가우리는 스스로 그걸 끊어냈어요. 또 책에 나온 표현들을 모아보자면 가우리는 ‘무지와 희망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대를 하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결국 발가벗겨진 채 혼자가 됐지만 자신을 구해냈’습니다. 가우리의 욕망을 따라가며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이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수많은 자아의 전환속에서 원하고 또 원해도 채워지지 않는 본인을 가우리가 얼마나 혼란스러워 했을지 상상이 안가요. 책을 덮고 나니 그녀에게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해도 그녀의 모든 선택과 지나온 시간에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문학은 인간과 삶이라는 복잡한 개념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유연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저지대에서 가우리와 우다얀의 내밀한 이야기를 뒷 부분에 둔 것도 모든 이에게는 촘촘히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삶의 복잡성을 보여준 것 같아 정말 좋았어요. 욕망하는 여성에 대해 가졌던 편협함을 반성하게 해준 것, 가우리에 대한 생각이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고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에게 가우리는 문학적인 인물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이에게는 촘촘히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삶의 복잡성'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것이 문학을 읽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가우리는 정말 소설을 읽는 나에 대해서도, 세계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도 돌이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힘이 강한 인물입니다. 소설의 틀을 훌쩍 벗어나 어느새 현실에서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첫 번째 작용은 솔리비아님처럼 가우리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한 것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와 마음이 이토록 변하는 경험은 인생에서도 흔치 않잖아요. 제가 진정한 의미의 '경험'을 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에게 가우리는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인물입니다.
’가우리’에 대한 생각 1. 가우리의 세상과 자아에 대한 고민이 넓어지고 집요해지는걸 보는 건 작은 전율이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진리나 당위를 질문하고 재정립해나가는 모습들이 가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인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 ‘가우리는 그의 독립적인 생활이 고마웠다. 동시에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 ‘학교 신문은 때때로 특집 기사를 실었는데, 미국에서 흑인 또는 여자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착취의 형태, 개인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긴 글이 실리곤 했다. 그녀는 우다얀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지 궁금했다.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 향상하는 데는 열심이면서 타인의 삶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덜하다고 깔보지 않을까 궁금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여자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해내는 것을 그녀는 하지 못했다. 고통스럽게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을 자신은 하지 못했다. 그녀를 오래 곁에 두고 키우지 않은 자신의 엄마조차도 자신을 사랑했다.’ 2. 수바시와의 관계에서 감정과 몸의 욕구는 별개라고 알게 된 점, 학교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갑작스러운 성욕을 느끼고 남성을 따라간 장면, 교수 시절 논문을 도와달라고 온 대학원생과의 밀회 등 가우리의 성적 욕구를 묘사한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별,인종,국적,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의 욕망과 실존의 증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가우리를 수바시,우다얀,벨라등 그녀를 둘러싼 인물이나 아이의 엄마, 이민자 여성, 청강생등 사회적 위치와 엮지 않고 한 개별적인 인간으로도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우리는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었어요. 저지대를 이야기하면서 가우리의 존재감을 빼기가 힘들어요.
만약 저였다면 이토록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또 거침없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인식의 확장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우리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모든 선택들에 저도 상처를 받았어요. 벨라와 수바시가 느꼈을 감정들과 지나온 시간들을 상상하고 이입한 것인데요. 그래서 가우리가 훗날 벨라를 찾아왔을 때 벨라처럼 화가 났고, 끝내 가우리를 집 밖으로 내쫓았을 때 미움과 연민과 미련과 후련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가우리가 겪은 일들을 따라갈 땐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고통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어요. 그 고통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가우리가 잊히지 않더라고요. 진짜 나에게 사랑과 미움을 알게 해준 사람 같아서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우다영입니다. 오늘로 한 달 동안 진행했던 독서모임이 종료됩니다. 함께해주신 책이고파님, 오후님, 리브님, 새벽서가님, 반달님, 솔리비아님, 환환님, 금붕어님, 애플망고님 모두 고생 많으셨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 찬찬히 함께 읽고 조목조목 이야기 나눈 시간이 저도 아주 즐거웠어요. 조금 더 많은 질문을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여러 사람들과 나눈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새해의 시작을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시작한 것만으로도 저는 기쁨 가득입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질문 8. 마지막으로 앞으로 독서를 하며 한 번씩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은 작은 질문을 남기고 저는 떠나겠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그 책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싶으신가요?
작가님과 만나 좋아하는 책 <저지대>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제 주변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이 공간에서 나누어주셨던 여러분들의 소감 하나하나도 크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한달 간 저지대에 푸욱 잠겨서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그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네요. 모두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질문 8. 지금은 <축복 받은 집>을 다시 읽고 있는데요, 첫번째 단편 '일시적인 문제'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또다른 형태의 가우리와 수바시를 볼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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