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이름이 거론 되고 그 사람들이 분류하거나 정의한 개념들이 인용되곤 합니다. 요즘 뇌과학처럼 심리학도 실측적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시대에 병이라고 여겨지는 자폐를 이해하는데 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이 의문스럽게 느껴집니다. 종교인이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자신의 교리가 맞지않는냐 라고 설명할 때 느끼는 격렬한 저항감은 없습니다만, 같은 류의 오류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철학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철학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프로이트를 철학파트에서 찾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책들을 좋아하던 독자라서 문과적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에 걸림돌을 치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디토리얼/ 도서증정]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번역가와 함께 읽기
D-29
책읽을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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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을맛
ㅌㅈ님의 대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요, 예측 오차가 트라우마를 유발한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저는 정신적으로 좀 많이 안좋아지고 있거든요. 실 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제가 예측 오차를 경험한 일이 최근까지도 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미래를 비관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알아가기도 무서워지고요. 예측 오차가 계속 생긴다는 건 긍정적인 분위기였음에도 트라우마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항상 최악을 염두해 두어야한다는 끔찍함을 낳는 느낌입니다...ㅠㅠ
에측오차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혼란스럽고 힘들 수 있는데....
미래까지 상상하지 마세요..ㅠ.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만으로도 힘든데요...
이 책에서는 예측오차가 발생하면 예측을 수정하거나
행동을 하는 방법으로 대처하게 된다고 하는데 .....
지금 여기에 있자고요.....
책읽을맛
책읽을맛님의 대화: 철학자들 이름이 거론 되고 그 사람들이 분류하거나 정의한 개념들이 인용되곤 합니다. 요즘 뇌과학처럼 심리학도 실측적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시대에 병이라고 여겨지는 자폐를 이해하는데 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이 의문스럽게 느껴집니다. 종교인이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자신의 교리가 맞지않는냐 라고 설명할 때 느끼는 격렬한 저항감은 없습니다만, 같은 류의 오류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철학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철학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프로이트를 철학파트에서 찾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책들을 좋아하던 독자라서 문과적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에 걸림돌을 치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82쪽 까지 읽고 이런 생각을 했던 건데...
185쪽에 철학적 논의에 영향을 받은 자페증 이론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군요
아르키
책읽을맛님의 대화: 철학자들 이름이 거론 되고 그 사람들이 분류하거나 정의한 개념들이 인용되곤 합니다. 요즘 뇌과학처럼 심리학도 실측적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시대에 병이라고 여겨 지는 자폐를 이해하는데 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이 의문스럽게 느껴집니다. 종교인이 양자역학을 이용해서 자신의 교리가 맞지않는냐 라고 설명할 때 느끼는 격렬한 저항감은 없습니다만, 같은 류의 오류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철학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철학의 정의 자체를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프로이트를 철학파트에서 찾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책들을 좋아하던 독자라서 문과적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에 걸림돌을 치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아래에서 말씀하신 대로 철학적 논의에 영향을 받은 자폐증 이론이기도 하고, 또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자폐증을 통해서 환자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를 새롭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존의 철학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삼고 정상인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개념이나 논리를 만들어왔는데, 최근 그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폐증을 비롯한 다른 병들도 인간에게 발생하는 사건이니, 이로부터 새로운 개념이나 논리를 발명하여 정상인을 포함한 인간을 다르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나 스스로가 나를 보는 관점도 고정되어 있기 쉽죠. 이 책의 개념으로 나를 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철학에게도 넓은 정의가 있다면,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게 철학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ㅌㅈ
아르키님의 대화: 네, 아래에서 말씀하신 대로 철학적 논의에 영향을 받은 자폐증 이론이기도 하고, 또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자폐증을 통해서 환자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를 새롭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존의 철학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삼고 정상인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개념이나 논리를 만들어왔는데, 최근 그 한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폐증을 비롯한 다른 병들도 인간에게 발생하는 사건이니, 이로부터 새로운 개념이나 논리를 발명하여 정상인을 포함한 인간을 다르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나 스스로가 나를 보는 관점도 고정되어 있기 쉽죠. 이 책의 개념으로 나를 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철학에게도 넓은 정의가 있다면,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게 철학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폐나 조현병 등 정신적인 질병을 가져다 대면서 낙인을 찍는 시람도 종종 있잖아요. 최근에 무성애자 책을 읽는 데 그 책의 저자는 무성애라는 개념을 깐깐한 체크리스트를 통과한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라도 무성애의 이야기에 일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런 것처럼 사회도 뭔가 모난 행동을 하거나 조금 다른 듯 하더라도 쉽게 정신병자로 낙인찍고 선 긋지 말고 어쩌면 남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으니 이해하려 애써보는 문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 이 댓글을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ㅎㅎ
밍묭
“ 가미오카 씨는 '비행 청소년'은 단지 불량한 척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심심하다'라는 말로 지옥과 같은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제받으려고, 이른바 기도의 행위로써 비행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101,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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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묭
“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라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죠. 과거에 의해 규정되어버리니까요. 이 어찌할 수 없는 과거를 앞에 두고 사람은 그것에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의지는 이 보복심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127,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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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묭
“ 타자의 현상학이 상정하는 시선촉발, 즉 타자로부터 발해지는 지향성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해상도가 서로 잘 맞는 경우에는 받아들이기가 쉬워지고, 잘 맞지 않는 경우엔 받아들이기가 곤란해진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173,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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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
ㅌㅈ님의 대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요, 예측 오차가 트라우마를 유발한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저는 정신적으로 좀 많이 안좋아지고 있거든요. 실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제가 예측 오차를 경험한 일이 최근까지도 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미래를 비관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알아가기도 무서워지고요. 예측 오차가 계속 생긴다는 건 긍정적인 분위기였음에도 트라우마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항상 최악을 염두해 두어야한다는 끔찍함을 낳는 느낌입니다...ㅠㅠ
저도 예측오차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하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 제가 생각한 것으로 이런 정리를 해봤는데요. 1) 예측오차(상처)는 인간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2) "예측이 없으면 예측오차는 논리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예측오차가 생기고, 수정하여 예측의 정확도를 갖추어 간다는 건 "세상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103쪽) 저는 이것을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고 이해했습니다. 3) 하지만 한계치를 넘어선 예측오차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만약 이에 관해 당사자연구를 한다면 '한계치를 넘어선'다는 것의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 트라우마에 대한 나의 정의를 설정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정리해봤습니다. 한계치를 넘어선다는 것 나의 예상과 달리 상대방의 반응이 굉장히 격했다는 것이 될 터인데, 그렇다면 상대에게도 최소한 논리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계측할 수 없기에) 나만큼의 예측오차가 발생했을 거로 예상할 수 있겠지요. 이 지점에서 나의 충격(트라우마?)을 절대화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트라우마의 정의를 전문가의 정읙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몇 장에 나오는지 찾을 수가 없는데) 트라우마적 예측오차일 경우 계속 덮개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오픈 다이얼로그' 같은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거듭 외재화하는 방법이 상처의 하에케이타스를 줄여줄 수 있겠다.. 개인적 경험에 지나지 않지만, 트라우마는 아니고 나쁜 경험의 기억이 오래가거나 계속 생각날 때가 있잖아요. '이불킥'을 하기도 하고요. 속내를 털어내는 대화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쁜 감정의 소환을 불안해하지 않고 계속 지켜보는 연습, 즉 그것을 평가하지 않고 그래 그런 일이 있었고, 그게 계속 이런 식으로 떠오르는구나, 라는 식으로 익숙해지는 연습을 합니다. 트라우마 정도가 아니라서 이런 식이 통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야기 나눠드려요.

Edi
그사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한길사, 2019 개정판, 원작은 1959년)을 아주 조금 읽어보았습니다. 고쿠분이 인용한 ‘복수성’이 원작에서 어떤 개념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거기선 purality이 ‘다수성’으로 옮겨져 있더군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인간의 조건>의 핵심주제라는 아렌트의 명시적 서술이 서론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영역 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활동”을 아렌트는 세 가지로 봅니다. 노동, 작업, 행위. 복수성은 이 중 ‘행위’와 관계됩니다. 제 이해로는 아렌트의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고 바꿔 부르면 한결 이해가 쉽다고 보는데요. 오늘날 흑화된 정치와 연관짓지 않는다면, 정치적 삶을 통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 폴리스를 살피는 아렌트의 논증에 위화감을 느끼진 않을 것 같아요. “인간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유일한 활동”으로 정의되기에 ‘행위’는 복수성이라는 인간조건을 함축하게 됩니다. <책임의 생성>에서 “복수성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 응답하는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하며, “일상을 실감하는 건 필시 주위로부터 반응뿐만 아니라 응답을 받고 있을 때”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복수성은, 우리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정치의식을 갖고 행위하느냐와 무관하게 우리의 실존을 조건지우고 있습니다. 너무 거대한 책이라 ^^; 이 정도만 가져와봅니다.

Edi
2장과 3장에서 소소하게 재미있었던 것도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2장에서는 의사결정지원이 아니라 욕망형성지원이 나왔고, 3장에서는 구마가야 선생이 기존 철학 학설 중 과연 그럴까라며 의구심을 드러내는 장면이 몇 곳 있어요. 뭐든 속성으로 키우고 배우고 내놓고 싶은 속도의 시대에 ‘욕망형성지원’과 같은 방식이 모든 분야에 도입된다면(강제로? ^^) 누가 혹은 무엇이 미치고 망가질까 하는 상상을 잠깐 해봤고요. 3장에서는, 타자의 현상학을 자폐증을 안 가진 사람이 밖에서 자폐증의 내적 세계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비유적으로 말한 부분 ㅎㅎ 뭔가 와닿지 않았나요? 또 (좀 용감하게) 타자가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하는 대목도 재미있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Edi
마지막 주차입니다. 4장, 나오는 글, 옮긴이 후기가 남았습니다.
4장의 제목이 “중동태와 책임”입니다.
중동태라는 낯선 개념을 몰라도 수동보다는 중동태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얼마나 드물지는 모르겠지만요.) 책임도 비슷할 것 같아요. 이 책에서 표현하는 ‘타락한 책임’이 아니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책임이 무엇인지 우리는 사회적 본능으로 알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책임'을 재검토해야 할 윤리적 개념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무래도 오늘날 책임은 ‘의지’에 종속되고 그로부터 범인찾기와 상벌이 인과적으로 딸려나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세태(상식, 통념, 관습)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들은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은폐된 지점을 건드릴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열어젖힌 이야기는 <고독, 사고, 말>에서 나오는 ‘메타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당사자로 소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장 수집’으로 내가 꽂힌 대목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차들 내용도 좋겠고요. 다시 읽어볼 기회가 되니까요.
혹은 내가 얼마나 의지적 인간이었는지 간증(?^^)해주실 분은 안 계실까요?(저도 쫌 의지적 인간형이었거든요 ㅎㅎ) “왔다 갔다”의 철학, 우리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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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기한: 4월 26일(토) 자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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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생성 #고쿠분고이치로 #구마가야신이치로 #중동태와당사자연구 #에디토리얼

ㅌㅈ
“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어서 거기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부터도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항상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한 원천인 무에서 창조된 의지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의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P.91,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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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ㅈ
“ 상처를 입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 상처로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와 효과는 보편적인 것이 됩니다. 즉 인간이 상처를 입는 존재인 것에 예외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면 상처가 초래하는 결과나 효과가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을 혼동해버리면 인간에게 나중에 부여되는 성질이 원래 거기에 내재하고 있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자연인과 같은 허구를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생각함과 동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상처 없이 매끈한 휴먼 네이처를 상정하고 나서 거친 상처투성이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 곧 휴먼 페이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P.130-131,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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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ㅈ
이 문장과 더불어... 314쪽에 질의응답 중에 비즈니스 세계는 능동태뿐이지 않냐는 질문과 답변이 있는데, 이 두 사람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즈니스적인 조직은 아니고, 취미 조직에 잠깐 들어간 적 있는데, 거기서 모임장이 저더러 뭐 따로 모임 내에서 해보는거 어떻냐고 제안하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획을 짜갔더니 제 계획에 하나하나 트집잡고, 결국 서두르느라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실수 때문에 2시간 내내 혼이 나야했고, 1:1 통화에서 왜 정신병자들만 오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듣고 나서야 모임을 그만 둘 수 있었어요... 구마가야 선생님이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범인 색출을 하지 않는 문화를 말하는데, 제가 그런 모임 자체가 처음이었고, 그렇게까지 비난을 받았어야했나 억울함도 있고, 그러지 말걸하는 자책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변한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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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ㅈ
또 책을 읽으며 떠오른 것이 있는데, 요즘은 가해자의 서사가 드러나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뜬금없는 제3의 인물이 인터넷 댓글로 관용을 베풀고, 동정론으로 이어질까 싫은거겠죠.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문학을 읽을 때에도 한 번 이런 경향을 느꼈던 적이 있어요.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지정도서로 한 독서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데요, 두 학생 가해자의 가정환경 서사가 드러나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더라고요. 같은 환경이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알아서 뭐하냐라던가, 가해자의 서사 따위...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 책을 읽는다면 가해의 배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환경이 누구나 평균에 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사자 연구의 반대가 평균만 따지기 라는 느낌도 들었고....

ㅌㅈ
저는 당사자 연구라는 말도 좋았는데, 책에서 처음에 가시적 장애와 비가시적 장애를 이야기하며 당사자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잖아요. 저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어요. 날 때부터 왼손만 사용했던 사람입니다. 요즘은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차별하지 않았지만 제가 어릴 때에는 문제요소였고, 근처 초등학교에서는 왼손으로 글씨쓰면 때린다는 괴담이 들리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중학생 이전까지는 왼손으로 글씨 잘 쓰네 라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트라우마가 된 사건은 중학생 때였거든요. 국어선생님이 교통사고 나셔서 자습시간으로 전환되고, 교장선생님이 감독을 하러 들어오셨는데, 제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걸 보고 반 아이들 앞에서 수치심을 안겨주셨어요. "글씨도 못쓰는게 왼손으로 쓰네? 너 왼손으로 쓰면 시어머니한테 미움받어." 그때부터 오른손이 기준인 세상에 화가 조금씩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안그러는데 사춘기때가 제일 심했어요ㅜㅜ) 지하철 개찰구에서 실수로 왼손으로 카드를 찍다가 혼자 화가 나고... 누가 왼손으로 쓰는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억과 수치심이 울컥울컥 올라고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배려가 필요한 사람 카테고리에는 이제는 왼손잡이는 없으니, 이런 이야기 하는 것도 '더 차별받는 사람 많은데...' 싶어져서 홀로 안으로 곪아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비가시적 장애가 가지는 문제들을 짚어주었을 때 조금은 함께 구원받는 느낌이었어요.

ㅌㅈ
“ 그런데 세상에는 정신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같은 발달장애 등 겉으로 보기에 대다수 사람과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그 외에도 많이 있지요. 그러한 분들은 말없이 사회에 뛰어들기만 하면 길이 개척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적 모델이라고 해도 사회 환경의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살기 편해지는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위에서 알아채기 힘든 비가시적 장애의 경우는 본인이 봐도 어디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 P.31,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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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ㅈ
아라이 유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말은 내리쌓이는 성질이 있어서"라는 구절이 아직도 기억나는데요, 생각 없이 사람들이 내뱉는 말은 이미 흩어져서 사라졌지만, 제 안에 퇴적층처럼 내리쌓여있어요. 이미 뱉은 말은 흩어져서 사라졌는데, 제 안에는 여전히 남아있고, 웃긴건 좀 바뀌기를 원 해서 참다참다 한소리 하면, 간혹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더욱 절망적일 때도 있고요. 모두가 국영수가 아닌 이런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업을 배워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으로 현재 안고 있는 저의 정신적인 문제가, 원래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는 한편, 결국 오컴의 면도날처럼 다 쳐내고 '누구'의 탓이 제일 편한 사회에서 얼만큼 많은 사람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갖기는 쉽지 않은게 기분이 참 묘해집니다.
밍묭
“ 꿀을 가득 채운 유리잔 앞에 꿀벌을 놓으면 꿀벌은 꿀을 먹기 시작하지요. 그때 꿀벌의 배를 가르면 배에서 꿀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꿀벌은 그대로 끝없이 계속 꿀을 먹는다는 겁니다. 배에서 꿀이 계속 새어나오므로 영원히 포만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 - 심문과 자책의 언어에서 인책과 책임의 언어로』 249,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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