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Munro 의 Runaway 가 떠올랐어요. 사실 저는 단편 모음집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인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루시아 벌린과 비슷한 느낌을 줘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요? 그냥 제삼자로서 조용히 한켠에서 지켜보기만해도 되는 편안함이라고 해야할까요? 크게 나의 감정이 결부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어느 정도로 이야기에깊이 빠져들지는 내가 결정해도 될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이야기들이어서 비슷한 느낌을 갖는것 같아요. 딱히 주제보다는 전체적인 글의 느낌이 비슷하다고 봐야겠죠?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번역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소설가의 인생책> 김의경 소설가와 [청소부 매뉴얼] 함께 읽기
D-29

새벽서가

김의경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런어웨이. 최근에 개정판도 출간되었어요.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새벽서가
요즘 한국에는 개정판, 리커버 에디션.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출간된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건가요?

김의경
출간된 지 수년 된 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개정판을 낸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이미 갖고 있는 책을 표지가 맘에 들어 또 구입하기도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오늘은 <들개: 길 잃은 영혼> 까지 읽었는데요 자신이 사랑한 개를 죽이는 장면에서 잠시 책장을 덮었습니다. <섹스 어필>도 흥미로웠지만 알코올중독자들이 웰터급 타이틀 매치를 보면서 배니테스에게 그냥 다운만 되지 말라고 감정이입을 하는 <단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요즘 날씨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단편들입니다.
<단계>의 마지막 부분을 공유합니다.
3회전, 레너드가 재빠르게 훅을 날려 베니테스를 다운시켰다. 베니테스는 곧바로 일어나 멋쩍게 웃었다. 당황한 것이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순간 갱의 모든 남자들이 베니테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중간에 광고를 할 때도 그랬다. 샘은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담배를 말아 사람들에게 돌렸다. 밀턴은 6회전이 진행 중일 때 와서 갱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베니테스가 이마를 맞은 순간이었다. 이 매치에서 그의 유일한 상처였다. 밀턴은 베니테스의 피가 그들 모두의 눈에, 그들의 땀에 반영되는 것을 보았다.
“생각한 대로군...... 여러분은 모두 질 사람을 응원하고 있어요.”
“조용! 8회전 시작.”
“자, 자, 베니테스, 다운되지 마.”
그들은 이기라고 베니테스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운만 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싸웠다. 다운되지 않았다. 그는 9회전에서 잽을 막고 레프트 훅을 맞으면서 로프에 밀렸고, 라이트 훅이 그의 마우스피스를 날렸다.
10회전, 11회전, 12회전, 13회전, 14회전. 그는 케이오되지 않고 싸웠다. 갱 안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샘은 잠이 들었다.
마지막 라운드 공이 울렸다. 경기장이 얼마나 조용했는지 슈거 레이가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세상에. 아직도 서 있네.”
하지만 베니테스가 바닥에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카톨릭 신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그러듯 아주 잠깐. 싸움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아주 작은 경의의 표시랄까. 그는 졌다. 칼로타는 작게 말했다.
“하나님, 제발 절 도와주세요.” -258~259p
질문7.
그럼 오늘의 질문입니다. 어제, 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되는(혹은 인상적인) 문장은 무엇인가요? 있다면 문장을 공유해주세요.

새벽서가
<블루보닛> 에선 이 장면이 떠올라요.
그녀가 머물 방은 집 뒤편 포치를 방충망으로 막은 일광욕실이었다. 방충망 너머로 분홍색과 초록색 꽃, 나무에 돋은 새순, 홍관조의 선명한 색이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모네의 수련 그림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을 수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실 같았다.
마리아가 머무는 장소가 눈에 그려지는듯 했어요. 처음 모네의 수련들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도 떠올랐구요.
<슬픔> 에선 기억나는 문장이 있어요.
있잖아, 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배운 게 뭔지 알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잘 알아채지 못한다는 거야, 설령 안다 해도 신경도 안 써.

김의경
<블루보닛>은 연애소설이라서 두근두근했어요. 짧게 끝나는 사랑이지만 여운이 길게 남네요.
정말 사람들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몇몇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살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소설을 통해서 타인을 좀더 깊이 경험하고 관찰하게 됩니다. 현실속에서 좀 더 깊게 사람을 만나고 싶고요.ㅜ

Nina
[친구]
* 안 하면 뒤가 켕기고, 하면 나약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
* 로레타는 ...... 언제까지고 계속 이럴 수는 없다고 혼잣말을 했다. 아니, 그들에게 가긴 가되 분명한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정말 집에 있고 싶었지만, 전화로 약속을 취소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 불편을 감수하거나 희생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제 경우도 그런 편입니다. 웬만하면 내가 귀찮고 번거로운 게 낫다 싶어 그저 견디곤 합니다. 지나고 나서, 내게는 작지 않은 희생이었지만 정작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했거나 그닥 아쉬운 일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벽서가
저도 이 책의 단편들중 하나를 꼽으라면 친구를 꼽을것 같고, 니나님이 느끼셨던 부분을 자주 경험한 탓이 아닌가 싶어요. 가장 공감가는 글이었거든요.
내년 목표중 하나가 이기적으로 살아보기에요. 나를 먼저 챙기고 돌아보는 한해를 삼으려고요. 누군가에게 베푸는 호의도 번복되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더라고요.

김의경
공감이 가는 글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우정 역시 넓은 범위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니 거리두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오는 고민이 따릅니다. 친구와 관계를 끊은 뒤 연인과 헤어졌을 때보다 더 힘들었던 경험이 저는 있습니다. <친구>라는 단편은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게 되네요.

김의경
누군가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거나 희생했는데 상대가 그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전혀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운한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사람과 교류할 때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타인에게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 하지만 두가지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관계맺기인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주고받음이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관계가 완전한 관계일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Nina
타인에게 도움을 주거나 티나지 않게 배려하는 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제 맘을 편하게 하려는 이유가 커서 그 대상의 행동으로 인해 속상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보낸 제 마음과 노력(?)등을 다른 곳에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내지는 반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이 남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오늘은 <매캐덤>까지 읽었고 내일 목표 분량은 339p, 27일인 모레 목표 분량은 359p입니다. 저보다 빠른속도로 읽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죠?)
엊그제 알코올중독자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연애 소설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암에 걸린 여동생과 죽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슬픔>도 좋았지만 철학자와의 사랑 이야기 <블루 보닛>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살짝 설레었어요. 물론 짧게, 좀 황당하다 싶게 끝나버린 연애지만 어느 계절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꽃향기로 마약처럼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블루보닛처럼 덧없는 연애의 속성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아래 문단) 아름다운 장면을 뇌리에 심어주었으니 후회는 없지 않을까요.
그들은 곧 마을을 벗어나 좁은 흙길에 들어섰다. 차 발판에 놓은 상자 속에서 병아리들이 삐약댔다.
“이 계절, 우리 집에 가는 길.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픽업트럭은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달렸다. 아무도 없는 그 길은 꽃이 무성하고 공기가 향기로웠다. 분홍, 파랑, 자홍, 빨강. 그 가운데 노란색과 연보라색 꽃들이 흐드러졌다. 향기롭고 더운 바람이 차안에 가득했다. 엄청난 뇌운이 형성되면서 천지가 노란빛에 휩싸였다. 이 빛을 받은 꽃들이 아득히 이어지며 무지개빛 광휘를 발했다. 종달새, 들종달새, 붉은깃찌르레기가 길 옆 수로 위로 쏜살같이 날아다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트럭 엔진 소리보다 높았다. 마리아는 창턱에 팔뚝을 대고 습한 머리를 내밀어 얼굴을 괴었다. 이제 아직 4월인데 텍사스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온몸에 번졌다. 꽃향기는 마약처럼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246p
질문8.
<청소부 매뉴얼>을 읽으면서 웃음도, 눈물도 났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장면도 드문드문 발견했습니다. 연말에 책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만큼이나 독서모임에 참여하신 분들에 대한 궁금증도 커가네요.
책과 관계없는 질문을 드리려 해요. 어느새 한해를 며칠 남겨놓지 않고 있는데요, 2022년의 남은 며칠을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저는 쓰고 있는 단편이 있는데 마무리를 지을 계획이고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과 <웰컴 홈>을 마저 읽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웨이브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고 있는데 마저 볼 생각이에요. 요리를 못하는데 간단하게 팬케이크라도 만들어볼 생각이고요... 적고 보니 할 일이 많네요 ㅎㅎ 연말을 어떻게 보내실 건지 궁금해요! (질문과 관계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새벽서가
저는 <울면 바보>까지 읽었어요. 상황에 따라 휴대폰이나 태블릿중 하나로 읽다보니 페이지수를 가늠하긴 힘들고, 시간되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몇꼭지씩 읽고 있습니다.
올려주신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일단 네가지 정도를 하려고요. 첫째로 집청소, 특히 제 서재를 정리하려고 해요. 재독을 할것 같지 않은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중고책방에 가져갈 생각이구요. 두번째는 우체국 방문이에요. 유럽에 사는 친구들과 지인에게 미리 성탄절 카드를 보내지 못했어요. 신년인사를 겸한 카드와 선물을 보내려고 합니다. 세번째는 내년에 사용할 다이어리 셋팅이구요. 네번째는 병렬독서하고 있는 책들 마무리하는 겁니다. 아! 일주일 후면 겨울방학이 끝이어서 아무래도 2학기 레슨 플랜도 최소한 2-3주치는 짜놓아야 개학후에도 좀 편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김의경
알찬 계획을 세우고 계시네요. 연말을 느긋하게 보내긴 힘든 것 같아요. 손카드를 보내신다니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저도 손편지 손카드를 친구들에게 건넸었는데요. ㅎㅎ 요즘은 저도 병렬독서가 더 효과적으로 느껴집니다. 즐겁고 편안한 연말 보내시길요!

Nina
저는 [콘지에게]까지 읽었습니다.
제 연말 휴가는 일월 육일까지입니다. 둘째의 소울푸드, 김치만두를 빚고 찌고 얼리는 일 외에는 뭐든 대충 먹고 대충 치우고 마룻바닥을 기는 굼벵이처럼 동면하는 그리즐리베어처럼 지낼 생각입니다. 구매한 책들도 좀 뒤적거리고 날이 풀리면 낮에는 짧은 산책도 하고요. 아, 저는 온라인 수업 듣는 게 있어서... 잠깐 정신 차리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
정진호 번역의 [청소부 매뉴얼]을 읽고 있는데 다들 같은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읽다 보면 어딘지 어색하거나 표현이 명확하지 않는 느낌이 제법 들어서요. @새벽서가 님, 한국에 출간되는 외국 소설은 어쩔 수 없이 번역본이라 올바른 어휘 선택이나 문장 해석의 전문성 혹은 이전 번역본의 오류 수정등의 목적으로 개정판이나 에디션이 꾸준히 출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책도 오타가 제법 많네요. ^^ 그동안 제가 읽어본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고종석 번역본(2021)이 가장 매끄럽더군요.

새벽서가
저는 리* 에서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다가 집에 영문판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영문판으로 읽고 있는데, 지금 한국어판 전자책을 보니까 공진호가 옮긴이로 되어 있네요.

Nina
아, 맞아요. 제가 읽는 것도 공진호 번역입니다. ^^

김의경
김치만두라니... 침이 고입니다 ㅎㅎ 초판이어서인지 오타가 보이네요. 쇄를 거듭할수록 사라지는 게 오타인데 말이죠. 그리즐리베어처럼 느긋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의경
오늘은 <울면 바보>까지 읽었습니다. 바실이 너무 답답해서 <울면 바보>를 읽으면서 하마터면 저도 울 뻔네요.... 9번째 질문입니다.
질문9.
“바실, 어떻게 바다를 따분하다고 할 수 있어?”
“너는 따분한 게 없어?”
“없어. 정말로. 난 따분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따분하지 않은 대신 고생이 많았잖아.”
바실은 약간 먹다 만 샌드위치를 옆으로 밀어놓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칼로타, 이 친구야....... 그러다 지난날을 어떻게 주워담으려고 그래?”
“난 지난날은 필요 없어. 그냥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냥 가던 길을 갈 뿐이야.”
“말해봐, 너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뭘 성취한 거 같아?” -353p
<울면 바보>의 한 장면입니다. 한때 바실은 칼로타를 좋아했다지만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실, 어떻게 00를 따분하다고 할 수 있어?”
여러분에겐 칼로타의 ‘바다’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남들은 따분하다고 하지만 자신에겐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책 제목이어도 좋고 다른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00를 알고 싶어요!
(저부터 말하자면... 저는 고등학교 때 ‘삼국유사 읽기반’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동아리가 아니었고 빈자리가 있는 모임에 얼결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어요. 그렇게 그 책을 1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입시에 치여서 그랬는지 그 책이 너무나 재미있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그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읽느냐고 했지만 저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그 책이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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