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의경 소설가와 [청소부 매뉴얼] 함께 읽기

D-29
* 에인절 빨래방 p12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미티지 할머니는 아마도 그녀 뿐 아니라 월, 화, 수, 금, 토, 일요일에 규칙적으로 만나는 이웃들에게 집 열쇠를 쥐어주며 부탁하였을까요?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한 건물 관리인은 월요일 아침에 만나는 이웃이었을 것 같습니다. p20 '인디언 노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언제 깨달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존재를 기억할 때는 그때가 언제였는지 보다 그에 대한 기억 자체가 중요하지 싶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일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같은 부탁을 한걸까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는 못했는데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코끝이 찡하네요.
<에인절 빨래방>을 읽으면서 사람의 관계라는 게 만남과 죽음의 꼬리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구요.
내가 어렸을 때는 성냥을 보지 못하고 엄마 엄지손가락에서 불꽃이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줄 알았다. >> 정말 어린 아이의 눈높이로 표현한 이 문장이 너무 사랑스럽다. 어쩜 저런 상상으로 글을 썼을까?
사실은 나무 책상에 머리를 갖다 대기도 하는데, 그건 나무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정말 소리가 난다. 아직 살아 있는 나무인 것처럼,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듯이. >> 바닷가 조개나 소라를 주워다 귀를 기울여 본 적 있지만 나무의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나무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마리아상이 한없는 동정과 긍휼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긍휼하다 : 가엽게 여겨서 돕다. 전에 몰랐던 새로운 단어를 발견했어요~
잠깐. 내가 해명할게요……. 나는 평생 이런 말을 하는 상황에 처했다. >> 첫 문장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매력적이다.
틀니들은 무대 가면처럼 환하게 웃거나 거꾸로 뒤집혀 언짢은 표정들이었다. >> 틀니를 보고 저런 표현을! 요즘 남편이랑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 를 보고 있다. 주인공을 감시하기 위해 마법을 부리는 부모가 손을 보냈는데 이름은 씽thing이다. 손이 하나의 인격체인데 기묘하다. 틀니가 그런 살아있는 생명체로 잠깐 상상이 되었다.
천장에는 ‘도대체 위는 뭐 하러 쳐다보시오?’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 오래전 집 앞 카페를 갔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다. 유리천창을 보는데 정말 글이 있었다. '안 생길것 같죠? 생겨요 좋은일' 흰색 고딕체의 레터링이 유리에 붙어있었다. 마음이 힘든 시기였는데 그 한 문장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어느 한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 위 문장이 절대 관음증이 아님을 잘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누굴 관찰한 적이 없는것 같다. 시선이 실례가 될까봐 눈을 피하게 된다
의자 높이를 낮추려고 페달을 밟으려다 잘못해서 다른 페달을 밟은 통에 의자가 빙글 돌았고, 할아버지 입에서 흐르는 피가 주위에 둥글게 흩어졌다. >> 와우 동작 하나하나 상상이 간다. 영화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할아버지의 셔츠가 살갗에 붙어 있다 떨어지며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 어렴풋이 그 소리가 들렸다. 들렸다는 상상이었다. 종이를 직접 찢어보았다. 마침내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엄마, 아직도 할아버지 미워하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 당연히 미워하지.” 엄마가 말했다. >> 요기서 할아버지를 아빠로 바꾸면 우리 엄마 이야기네!
2일차 책읽기를 하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늘 책장을 넘기기 바빠서 연필로 줄만 긋고 지나쳤었죠. 이제는 곱씹어 문장을 다시보고, 짧게 메모도 해보니 집중이 되고 좋습니다. 그 전의 책읽기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일 또 뵙겠습니다~
저도 틀니가 생명체처럼 느껴졌어요. H.A 모이니핸 치과는 전체적으로 기괴한 분위기가 흐르네요. 그런데도 따듯하게 느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매일 조금씩 천천히 읽으니 저도 이전의 독서와는 느낌이 다르네요.
* 에인절 빨래방 1인칭 시점의 이 소설에서 아파치 인디언 토니가 주인공에게 굳이 '빨간피부 인디언'이라고 부른 정황으로 보아 그녀는 백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영토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경제력도 문화도 잃은 채 가난하고 더러운 그들만의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젊은 백인 여자가 그 지역에 들어가 산다는 건, 실패하고 의지할 곳 없고 추락하고 더러워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토니는 실제적 삶의 파편들에 무심한 그녀의 눈길을 보며 인디언인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요. 그 땅에 뿌리가 있는 토니는 삶에 대한 의욕은 커녕 죽음에 대한 미련 조차 없고 죽음조차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을 부리는 푸에르토 리코 이주민인 아미티지 할머니의 모습이 비교가 됩니다.
* H.A. 모이니핸 치과 할아버지의 자잘한 행동(수표에 잉크를 뿌린다던지 천정에 우스운 말을 적어둔다던지)들로 추측해 보면 그는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흑인을 차별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 행복해지는 일상에 적응해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늘상 괴롭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아내가 죽음을 확인한 아침, 유명한 치과의사로서의 마지막 시술(?)을 끝내고 잠자리에 드는 그의 모습이 처연합니다. 바닥에서 제법 떨어져 멈추는 할아버지의 엘리베이터는 이제 주인공 나로 인해 조금 더 바닥에 가까이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 당연히 미워하지" 라는 엄마의 말은 어쩌면 마지막까지도 고집스레 혼자 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등지는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 섞인 미움일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못말리는 위인이지만 이상하게 밉지가 않네요. 그의 방에 있는 기이한 사고 스크랩북처럼 그라는 인물과 삶 자체가 엉뚱하고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유머와 위트가 있는 인물 같아요.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줬지만 매력직인 인물이기에 가족들은 그에 대한 복잡한 애증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부러진 쇄골은 아프고, 엄마는 보고 싶고, 뼈가 부러지든 말든 내일 경기에는 나가야 하고, 등을 쓸어주는 누군가의 손길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나의 기수>를 읽은 후 든 단상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단편인데 웃기기도 하고 짠하네요. 강한 사나이들이 응급실에서 보이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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