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의경 소설가와 [청소부 매뉴얼] 함께 읽기

D-29
제가 참 못하는 게 무언가에 '미치는 일'입니다. 한 때 TJ Block이라는 게임과 테트리스에 푹 빠져서 점수 올리기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이 게임에 중독이 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컴퓨터를 끄고 한 달 정도 끊은 적이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열심히 점수깨기를 하다가 별로 재미없어져서 그만뒀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뭔가 신나고 재미난 일을 찾아내 엄청 몰두하다가도 '혹시 중독인가?' 싶으면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딱 끊어보지만 한 번도 금단현상(?)을 겪지 않습니다. 전 무엇에도 어딘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인가 싶습니다. 정수기 물 부은 커다란 머그컵에 초이스커피 큰 스푼 가득 녹인 후 한여름 냉수 마시듯 벌컥 벌컥 마시고 나면 서점에서 고르고 골라 구입한 따끈한 신간을 밤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책만 사면 당일부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집에는 늘 초이스커피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습니다. 카페인에 많이 예민한 까닭에 조용한 밤시간을 혼자 즐기기에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지요. 아, 그건 정말이지 스무 살 무렵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젠 밤을 새우면 피곤함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네요. 차가운 초이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밤새 책을 읽는 청춘이라니 낭만적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책이 거의 끝나가네요. 남편은 감옥에 가고 아기와 홀로 낯선 땅에 남겨진 어린 여자가 아기를 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내 아기>는 간호사와 아기 엄마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아래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나는 대기실로 나가면 뭐랄까, 눈을 모들뜬다. 환자의 이름을 부를 때는 애엄마든 할머니든 위탁가정의 엄마든 그들을 보고 미소를 짓지만, 나는 그들의 눈을 보지 않고 이마를 본다. 마치 그들의 이마 가운데 눈이 하나 더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건 응급실에서 터득한 요령이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일할 수가 없다. 크랙 중독자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에이즈나 암에 걸려 태어난 아기들, 성장하지 못할 아기들을 대하다 보면 특히 더 그렇게 된다. 부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모든 공포와 극도의 피로와 고통을 공유하고 그것을 확인시켜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그들과 가까워지면,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될 희망이나 슬픔을 안고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때가 있다. -507p 질문13. 어제와 오늘 읽은 단편에서 밑줄 그은 부분은 어디인가요?
[내 아기] * 우리 헤수스가 잠들면 난 고향 생각을 한다. * "생각해요. 마놀로 생각. 우리 고향 생각." >>>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고서도 열일곱 살의 아멜리아는 다만 고향과 가족과 애인이 그리운 십대 소녀입니다. * 나는 언제나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팔이 없어 발가락으로 타이프라이터를 치는 사람의 경우를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 건 팔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온종일 무언가를 썼기 때문이다. 그는 쓰는 일에 진지했고 자신이 쓴 것을 좋아했다. * 오늘 하루밖에 못 산다 해도 나중의 모든 고통을 감당할 가치....... 나는 사랑의 수고를 배우는 중이었다. >>>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녀는 사실 절대로 냉소적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그녀가 빙긋 웃었다." 수술이 끝났을 때 아기 엄마가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어요. 모든 게 다 잘됐어요." >>> 그녀가 냉소적인 사람이 아닌 이유를 아멜리아가 알아챈 순간입니다. 냉소적이기 위해 환자 보호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간호사는 아멜리아와 아기를 살피고 있었고 마침내 그녀에게 웃어 주니까요. * 나는 누군가에게 상담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 아무리 좋은 복지 제도가 존재해도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을 통한 작가의 의도와는 좀 다른 방향이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에 정부에 사회에 내가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 를 유치원생 때부터 아니,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나 하는. 집시 가족들의 요란스럽고 정겨운 모습을 표현한 대목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하고 돈 한 푼없이 어쩔줄 몰라하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아멜리아 곁에 가족이 있었다면, 아멜리아가 고향에 돌아갈 기회를 가졌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닥터 루크가 여섯 달된 아기를 생각하고 내(간호사)가 여섯 살 먹은 손자를 생각할 때 저는 이제 막 두 살이 되는 리오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짜로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 냉소적이라고 말할 수 없겠네요..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이 자살하면 사람들은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도움을 요청할 용기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웃음을 보여줘> 친절은 자선과 같은 말이다. 노력을 수반한다. 무작위의 친절한 행동이 어쩌고 하는 내용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처럼. 친절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의미해야지 선택적인 행동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의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게 가장 힘들죠. 일단 알면, 그럼, 그때는 모든 게 분명해질 거예요. 아마도. <내 아기> “가치 있지. 오늘 하루밖에 못 산다 해도 나중의 모든 고통을 감당할 가치가 있는 거야. 카마, 저들의 눈물은 달 거야.” 나는 이 말을 하고 스스로 놀랐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사랑의 수고를 배우는 중이었다.
<웃음을 보여줘> <내 아기> 모두 강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주책맞게도 자꾸 눈물이 고였던 것 같아요^^
저도 눈물 흘리면서 읽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29일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그들이 되어서 잠시라도 살아볼 수 있었습니다. 간접체험이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사실 그런 강렬한 기분 - 소설 속 인물이 되어 제가 직접 경험한 것 같은 - 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작고 후에야 빛을 보게 된 작가의 소설을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새벽서가님 덕분에 오래도록 펼쳐보지 않은 국어사전을 머리맡에 갖다두었습니다. 올 한해는 국어사전을 여러번 펼쳐보게 될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9일 동안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을 함께 읽었습니다. 함께 하는 독서라서 혼자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어요. 마지막 질문은 자유롭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청소부 매뉴얼>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을 언급해주셔도 좋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인물을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사는 동네와 이 소설 속의 배경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도시에 사는 저는 오늘도 골목길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지난봄, 여름에 술에 취해 종종 골목에 대자로 누워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나라, 시대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따듯한 시선이 이 소설을 더욱 읽어나가고 싶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매일 틈틈이 소설을 읽는 저의 공간에 등장인물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기분이었어요. 오늘 만난 B.F.는 특히나 그랬습니다. 헉헉거리고 캑캑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타일을 까는 그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어요. 인물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린다는 건 작가가 주변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단편은 <애도>입니다. 평소 친분이 없던 사이인데 망자의 집을 청소하면서 애도에 관여하게 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B.F.의 일부를 공유하겠습니다. B.F.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고작 세 계단 올라와서는 헉헉거리고 캑캑거리기까지 했다. 그는 키가 크고 굉장히 뚱뚱한 거구에다 나이가 상당히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밖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부터 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 더러운 모직물 냄새, 알코올이 함유된 고약한 땀내. 충혈되었지만 웃음을 머금은 연한 푸른색 눈. 나는 한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568p
[침묵]의 외삼촌이 저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주인공까지 이어진 알콜중독은 외삼촌에게도 예외가 없었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외삼촌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작가에게 수시로 깨우쳐준, 어쩌면 작가의 삶 속에 유일한 '교사'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분명 단편소설집을 읽었습니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많은 소설들은 루시아 벌린의 '사소하지만 깊이가 있는 일기'라는 생각이 짙어졌습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거절 당하고 무시와 멸시를 당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화할 상대도 가르침을 얻을 이웃이나 어른도 없는 환경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관찰하는 것 뿐이었겠지요. 관찰하고 기록하고 관찰하고 이유를 혼자 캐묻고 기록하고.... 그런 쓰는 행위가 거듭될수록 더 깊은 생각과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웃의 사소한 행동에 영향을 끼친 사회적 문제나 가치관 혹은 개인의 결핍같은.... 소설을 쓰는 일은 뻣뻣하기 그지 없는 현실이라는 뼈대에 단단하게 지탱할 수 있는 근육과 망각을 돕는 부드러운 살을 붙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시아 벌린이 스스로에게 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책을 읽으며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누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귀한 경험,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는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네요. 어른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큰 공포를 가져다줄 것 같아요... 저도 이 소설이 소설이라기보다 일기라는 생각에 몰입하면서도 때론 책장을 덮고 싶었습니다. 루시아 벌린은 소설이 있었기에 혹독한 현실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곳곳에 포진해 있는 유머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소설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답글을 보면서 Nina님은 어떤 분일까 상상했습니다. 책을 함께 나누는 것은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상이지만 만나뵈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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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가 나오는 단편 제목은 <B.F.와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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