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혜나 소설가와 [깊은 강] 함께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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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평화로운 하루 보내셨나요? 서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 하루였습니다. 미세먼지와 한파주의보로 어수선한 날씨이지만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부는 추운 날씨 속에 소설 <깊은 강>의 이소베 모습이 겹쳐져 더욱 쓸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오늘 <깊은 강>을 42쪽까지 읽어보았는데요, 1장이 끝나고 2장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핵심은 아무래도 '환생'이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날 테니 나를 꼭 찾아달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네요. 남편 이소베도 마찬가지 마음인지 휴식차 떠난 미국에서 내내 환생에 관한 연구와 관련도서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종교와 무관하게, 여러분은 환생을 믿으시나요? *환생, 데자뷰와 같은 현상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십 년 전 네팔 여행에서 안나푸르나에 있는 '시카'라는 마을에 갔다가 기시감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보름이나 되는 고된 트레킹 이후에 찾아간 산 속 마을이 마치 오래 전에 와보기라도 한 것처럼 낯익고 평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언젠가 이곳에서 살아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익숙하고 따듯한 느낌... 저 또한 전생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에 전생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 내 고향이 아니었을지 잠시 의심해 보았답니다. 여러분의 경험이나 견해가 궁금합니다. 혹은 책 속에 인상 깊은 부분이나 공감하는 내용이 있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환생은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덧 생각지 않은 장소나 상황이 언제 한번 있었던 일인 것처럼 느껴본 적은 있는 것 같아요. 14페이지에서 " 오랜 세월을 일이며 인간관계에서 당혹스럽거나 낭패를 당한 일도 많은 이소베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처한 상황은 그런 일상의 좌절과는 영 딴판에다 차원이 달랐다" 이 표현을 보면서 늘 삶의 고단함을 외치며 살다가 생사가 걸린 문제에 부닺히게 되면 그동안 대부분의 일들이 그저 사소한 일처럼 느껴지고 삶과 죽음앞에 서 있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때 유난히 데쟈뷰을 많이 느끼는 편이였는데.. 어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데쟈뷰는 뇌의 발달과 관련 있다고 하시고, 뇌의 발달 상황에 따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이가 들어서는 뇌가 성숙한 건지.. 퇴화한거지.. 그런 현상이 잘 안 일어나는 거 보면 아예 근거 없는 말씀은 아닌가 봐요.. 참고로 크리스찬인데, 환생이나 구원은 별로 안 믿는 편입니다..
뇌의 발달과 관련이 있군요! 아직도 가끔씩 어, 이거 나 어딘가에서 겪었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무슨 징조인가? 의미심장한 모멘텀인가? 하는데 뭐 바라던 큰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ㅎㅎ
첫질문에 대답하자면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은 설국, 겨울의 풍경을 떠올리면 이탈리아 유학당시 처음 맞았던 겨울밤 친구들과의 연말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택시도 안잡히고, 트램은 끊어지고,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해 남편과 함께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걸어 기숙사로 향하며 봤던 한밤의 두오모 광장이 떠오릅니다. 책에서 와닿았던 장면은 화자의 아내가 200여년쯤 된 나무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것이구요. 두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카톨릭 신자로서 믿으면 안되는 내세, 환생을 저는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거 같아요. 아무래도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의 영향일 수 있겠지만, 데자뷰라던가 예시몽에 유독 강한(!) 편이어서 더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베니스에 처음 도착해서 해는 저물고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고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GPS 가 있지도 않았고, 지도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이상하게 편한 마음으로 마치 집앞 골목길을 가듯 미로같은 베니스의 골목길들을 단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걸어 숙소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느꼈던 기시감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같았거든요.
신기하네요! 예지몽도 꾸시는군요. 저도 꿈은 많이 꾸는데 크리스찬이지만 일어나 찾아보면 이게 이런뜻이구나~ 싶은데 주로 호기심만 채우고 개꿈인 경우가 왕왕^^;; 이태리 숙소를 홀린듯? 찾아가셨다니, 왠지 right place에 당도한듯한 생각이 드셨겠어요.
“이런 것들이 눈에 띈 순간,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환생을 믿지 않지만 환생하거나 무지개 건너에서 기다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어렸을 때 키운 반려견을 다시 만나고 싶거든요.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그 아이가 누웠던 자리만 보아도 가슴이 저렸습니다. 얼음물을 심장으로 쏟아붓는 느낌이었어요.
안녕하세요? 겨울하면 떠오르는 책이 무언지 곰곰이 생각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더군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정도밖에요. 배경이 한겨울이라.. 얼마 전,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덮자마자 <깊은 강>을 읽게 되었습니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일흔의 남녀 이야기 입니다. 혼자인 일흔의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내자는 제안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요, 읽으면서 일흔의 혼자인 밤을 내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뒤로 <깊은 강>에서 '이소베의 경우'를 읽으며 앞의 책 잔상들이 겹쳐지더라고요. 분위기가 같지 않지만 나이 듦과 죽음, 혼자 남겨짐으로 생각이 흘렀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겨울하면 떠오르는 책보다, 올 해(2022년) 겨울을 간직하는 책이 되었기에 남겨봅니다.
@DOBYM 저도 다 못 읽어본 책이라서 궁금해지네요. <깊은 강> 함께 읽기가 끝나면 찾아보겠습니다^^ 아무래도 겨울의 인상은 쓸쓸함인가 봐요. 자연히 혼자 남겨지는 것과 죽음에 대하여 돌아보게 되고요. 올 겨울은 책과 함께 소중하게 간직될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은 오쓰와 미쓰코의 관계를 따라가다가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 70여쪽 분량까지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고 공감 가는 인물인 미쓰코 나루세의 경우가 나와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자신의 진짜 인생을 찾지 못하고,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청춘 미쓰코의 모습 속에서 스무살 시절의 제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공허하고 불온한가, 라고 느끼며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인간 군상의 실체를 보며 묘한 위로와 공감을 얻는 까닭입니다. 비록 자기 내면의 비루하고 불완전한 모습을 타인에게 내보이지는 못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세계 어딘가에는 분명히 나와 같은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미쓰코와 오쓰의 경우 속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미쓰코가 오쓰는 버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에게 대항하고, 신을 짓밟고 싶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신에게 대항하고 팠던 적이라니 또 영화 <토토의 천국>이 떠오르네요. 당돌한 여주인공이 기도한게 이루어지지 않자, 성당에 밤늦게 찾아가 마리아상에 무언가 독한 말을 내뱉으며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결국 돌아가셨을 때 저 위에 계신 분께 삿대질 ㅠ 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은 다시 회개?하고 용납받고 ㅜ 그 자장 안에 잘 머물긴 합니다^^;
@느려터진달팽이 신에게 대항하거나 비난을 하는 것 또한 신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인 것 같아요.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 유무를 믿지 않기에 신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잖아요. 하지만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믿는 자만이 신을 미워할 수 있기에, 결국 그 또한 진정한 신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경우 젊을때 오쓰랑 약간 비슷하게 (?) 살아서 그런지, 왠지 오쓰에게 더 맘이 가서 안 쓰럽고, 미쓰코는 좀 밉네요.. 미쓰코가 오쓰는 버린 이유라.. 어쩌면 미쓰코의 맘 한 구석에는 오쓰의 순수한 영혼을 동경하며, 자기 안에도 그런 순수함이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다 보니 오쓰를 받아드릴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 신에게 대항하고, 신을 짓밟고 싶은 감정은 신에 대해 강하게 믿었던 사람들이 신에게 배신 당했다 생각할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기본적으로 나이롱 신자라서 그런지 그런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네요..
@쓰마상 저는 사실 미쓰코와 오쓰 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어느 정도씩 다 제 모습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아서 신기했어요. 어쩌면 작가인 엔도 슈사쿠가 본인의 모습에서 어느 한 부분씩을 본따서 소설 속 인물들을 창작했기에 나에게서도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오쓰와 미쓰코의 경우도 너무 다른 인물이지만 어쩌면 서로에게는 거울 속 자기 모습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고, 소설 속 인물을 볼 때 저 또한 거울 속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네요. 그러니 둘은 서로를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좋은 책입니다. 몇년 전에 읽고 나의 양파는 무엇인가 생각했던 기억이에요
@그러믄요 나의 양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겠네요. 개인적으로 읽기는 쉽되 깊이가 있는 책들을 좋아하다 보니 엔도의 저서들에 더욱 끌리는 것 같습니다.
@김혜나 미쓰코는 오쓰의 순수한 정신세계를 보면서 자신이 이를 수 없는 곳에 그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에 열등감, 자괴감등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나보다 못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실체는 그렇지 않고, 불완전하고 어줍잖은 나란 인간의 그림자를 더 짙게 보여주는 밝은 존재여서 말이죠. 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지만, 2년 전에 냉담자가 되었어요. 코로나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너무 많이 잃었고, 신의 존재라는 것에 등을 돌리게 되었는데,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대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새벽서가 미쓰코가 오쓰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쩐지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묘한 열등감과 동경이 뒤섞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사랑으로 읽히기도 해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애정이 깃들이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미쓰코가 오쓰를 처음 본 순간을 묘사하는 장면이 읽으면 읽을 수록 그냥 첫눈에 반한 사람 이미지 같았어요. 다만 그 사실을 본인이 인정하지 못하니까 이런 뒤엉킨 감정이 표현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오쓰 역시 처음부터 미쓰코에게 그저 한 눈에 반한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신에 대한 대항에 다하여 말씀해 주신 부분은 본문 속 오쓰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내가 신을 버리려 해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1. 여러분은 미쓰코와 오쓰의 경우 속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 미쓰코는 물론 자신의 공허감을 감추려 허세를 부리는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난 것을 자신이 너무 잘 알아서 그것을 무기삼아 다른이들을 망치게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2. 미쓰코가 오쓰를 버린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 쉽게 자신의 뜻대로 무너지는 오쓰에 대해 미쓰코는 사냥할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항속에서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도전감을 못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쓰는 미쓰코와 정반대의 인물로 "미안합니다" 라고 상투적으로 말하는 일본인다운 면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 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신에게 대항하고, 신을 짓밟고 싶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 감정은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감정일 것 같아요 실은 내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망가뜨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것 같아요 오쓰가 당하는 것을 보고 작은 분노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커피홀릭이 1.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미쓰코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근본적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망치려는 교만함이 어째서 태동하는지 미쓰코를 통해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2. 저는 미쓰코가 근본적으로 싸우고 싶은 대상이 오쓰가 아닌 '신'이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녀가 괴롭히고 싶은 건 오쓰가 아닌 신이었고, 오쓰가 미쓰코의 방에 가기 위해 신을 저버린 이후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져 버린 게 아닐까 추측했어요. 오쓰의 경우 자신의 존재를 붙잡아주고 사랑을 쏟을 어떠한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게 신이든 인간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던 게 아닐까요. 친구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오쓰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신 뿐이었으나, 미쓰코가 나타난 이후로 그 대상이 옮겨간 것만 같아요. 미쓰코에게 버림 받은 오쓰는 이제 진정으로 신만을 섬기게 될 테니, 어쩌면 신과 오쓰의 관계에 미쓰코가 이용 당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3. 이 부분을 읽을 때 저는 정말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었어요. 목회자가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한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순정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교단에 서 있는 목회자의 모습과, 그를 우러러 보며 우상처럼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저 목회자가 과연 나랑 무엇이 다르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거든요. 그가 입은 목사복을 벗겨 보면 그 또한 나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인간일 텐데, 어째서 저렇게 신과 같은 섬김을 받으며 마치 혼자만 다른 존재처럼 사람들 위에 서 있는지 궁금했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마치 죄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 교회에서 제 생각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거든요. 이토록 불온한 사상을 가진 이는 나 하나 뿐인가 싶어 외롭고 불안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미쓰코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하며 안도와 위로와 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커피홀릭이 님이 써주신 답글에서도 '그 감정은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감정일 것 같아요' 라는 부분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고요. 다양한 생각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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