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는 언제쯤 생길까. 슬픈 일이다. 나는 오구치 군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질투인가.
『소년』 10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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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2주차 부분을 다 읽었습니다.
사실 얇은 책이다 보니 진즉에 1번 다 읽은 책인데 마음에 들어서 표시해둔 문장이 가장 많은 부분이기도 해서 재독하며 표시해둔 문장들의 그 맛을 느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무튼 2주차에서 읽은 부분 중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고 할 부분은 역시 유가시마에서 화자가 폭포수 아래 서있는 세이노를 보면서 거룩함에 가까운 미를 느끼는 동시에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었어요.
생생하게 그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면서 작품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모임지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이노의 화자에 대한 사랑과 화자가 세이노에게 끌린그 순수한 아름다움의 근원이 '화자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오모토교의 '진리에 대한 순수한 믿음'에서 파생된 것이고 두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결국 어긋날 것이란 걸 화자가 깨달았기에 결국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는 세이노의 사랑은 신앙으로서의 믿음과 인간적 사랑이 결부된 사랑이었고 '당시'의 화자의 세이노에 대한 사랑은 의지할 이 없는 외로움이라는 추한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발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끌림'으로 세이노의 그것과는 좀 대비되는, 보다 세속적인 동기에 더 가깝다고 보여졌어요. 하지만 저는 양쪽 사랑의 차이는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그런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인물의 사랑의 동기 자체는 조금 다르다하더라도 결국 그 인간에 대한 인간적 끌림이 동반이 된 건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야스나리의 작품들 전반이 서사보다는 서정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고 느끼는 데 초반 몰입이 서사의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에 비해 좀 어렵다 뿐이지 오히려 감상은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 여운도 짙고 좋은 것 같습니다.
북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나'의 사랑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끌림과 더불어 다정한 세이노 소년의 마음을 향한 애정이 섞인 감정으로 느껴졌어요. 반면 세이노의 사랑은 신심이 그러하듯 다소 맹목적이면서도 순진무구하지요. 폭포수 아래에서 수행하는 세이노를 묘사하는 장면은, 초월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경외와 질투처럼 느껴져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나'의 소년다운 모습이 잘 드러나기도 하구요.
하료
나는 세이노가 믿는 신앙이 아니라 세이노가 믿는 마음에 기분 좋게 물들어 갈 것만 같았다.
『소년』 P8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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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 나에게는 이 생활을 버리는 게 진실 추구임을 알면서도 재능이 부족한 나를 믿기 어렵다는 사실과, 생활의 불안에 맞서 싸우는 게 두렵다는 비겁함 때문에 주저하면서 타협하며 살았다. 지금까지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혼자서 나의 길을 간다면 분명 어딘가에 도달하여 조금은 더 제대로 된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아. 나에게 허락된 모든 생명을 다 불태워보고 싶다. 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윳빛 띠가 밤하늘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
『소년』 P9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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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지금 나를 죽음으로 유혹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추한 슬픔이다.
『소년』 P97,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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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밤은 물처럼 흐르는 달빛.
『소년』 P11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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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료
사랑의 시작도 그 흐름도 자연스럽고 안온했다는 게 추억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한다.
『소년』 P127,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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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 순수한 사랑, 여동생을 향한 사랑이라면, 나는 둘도 없는 내 친구의 여동생을 향한 사랑을 기꺼이 인정하겠다. 나는 젊은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어두운 욕망이 동반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너를 믿는다. 성실하게 사랑해 준다면, 나는 너에게 이러쿵저러쿤 말할 만큼 무식하지는 않다. ”
『소년』 108,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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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요부분을 읽는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ㅋ 역시 한때 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여동생 또는 오빠 심지어 동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창 20대 초반, 오빠가 밤에 친구를 데리고 들어 와 하룻 밤 잔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 얼마나 넋살이 좋은지 엄마의 혼을 쏙 빼놓고, 동생 어디 있냐고 좀 보게 해 달라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그 오빠 친구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죠. 솔직히 우린 오누이지간이라고는 하나 소 닭 보듯하는 사이라 소개시키고 말고 할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다 그 친구 가고 제가 오빠를 어떻게 할지는 오빠는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월 지날수록 그 오빠 친구라는 사람이 새삼 웃기면서도 약간 고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결국 그분은 오빠를 가장 친한 벗으로 느꼈을 겁니다. 그러니까 밤에 친구의 집에서 하룻 밤 신세를 지는 모험을 감행했겠죠. 친한 친구와 처남, 매부가 된다는 것 생각만해도 근사하잖아요.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끝내 알지 못했지만 목소리 하나만큼은 크고 우렁찬게 명랑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 집 오빠 보다는 훨 나은 사람일 겁니다. 원래 남의 집 오빠가 우리 집 오빠 보다 나은 법이잖아요. 물론 그 오빠가 우리 집 오빠가 되면 얘기는 또 달라지긴 하겠지만. ㅎㅎ
근데 작가도 참 순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다
소년 시절에 있을 법한 귀여운(?) 일화가 잠시 등장하는데, stella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이미 쉰 살이 된 작가의 시선에서 서술되는데 불구하고, 작품 전반적으로 소년다운 순수함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지요.
만렙토끼
순수함과 솔직함 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열망까지 딱 소년 시절의 느낌 인 것 같습니다.
만렙토끼
우리 집 오빠 보단 나을 거라는 말이 너무 웃겼어요, 전 남자형제가 없는데다 시골 동네 특성상 여학교 남학교 따로 있어서 그런 경험이 없는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흠, 친구의 동생을 친구를 통해 좋아했다기보단 쟤 멋있다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의 동생이었던 적은 있어요. 친구도 제 취향(?)외모라서 좋았던 건데, 소나무 취향이였던 걸까요? 하하 돌이켜보니 그렇네요.
stella15
2주차의 내용은 저자의 일기가 주를 이루고 있네요.
저는 일기하면 떠오르는 게 카프카의 일기입니다. 몇년 전, 어느 출판사에서 카프카의 일기며 평전이 나왔는데, 저는 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었죠. 카프카는 원래 저에겐 넘사벽이라 그래도 일기는 좀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전해 봤는데 역시 일기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벽돌책이었는데 카프카가 일기를 굉장히 많이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일부만 소개된 것일 겁니다.
물론 이 책은 카프카 보단 덜 어렵게 읽히긴 하지만 역시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면 일을수록 작가가 참 감수성이 예민하면서도 풍부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네요.
북다
일기는 누군가의 은밀한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지요. 특히 작가들의 일기는 문학적 세계관의 시작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