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함께 읽어요!

D-29
나에게는 이 생활을 버리는 게 진실 추구임을 알면서도 재능이 부족한 나를 믿기 어렵다는 사실과, 생활의 불안에 맞서 싸우는 게 두렵다는 비겁함 때문에 주저하면서 타협하며 살았다. 지금까지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혼자서 나의 길을 간다면 분명 어딘가에 도달하여 조금은 더 제대로 된 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아. 나에게 허락된 모든 생명을 다 불태워보고 싶다. 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윳빛 띠가 밤하늘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소년 P9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지금 나를 죽음으로 유혹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추한 슬픔이다.
소년 P97,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밤은 물처럼 흐르는 달빛.
소년 P11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사랑의 시작도 그 흐름도 자연스럽고 안온했다는 게 추억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한다.
소년 P127,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순수한 사랑, 여동생을 향한 사랑이라면, 나는 둘도 없는 내 친구의 여동생을 향한 사랑을 기꺼이 인정하겠다. 나는 젊은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어두운 욕망이 동반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너를 믿는다. 성실하게 사랑해 준다면, 나는 너에게 이러쿵저러쿤 말할 만큼 무식하지는 않다.
소년 108,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요부분을 읽는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ㅋ 역시 한때 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의 여동생 또는 오빠 심지어 동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한창 20대 초반, 오빠가 밤에 친구를 데리고 들어 와 하룻 밤 잔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 얼마나 넋살이 좋은지 엄마의 혼을 쏙 빼놓고, 동생 어디 있냐고 좀 보게 해 달라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그 오빠 친구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죠. 솔직히 우린 오누이지간이라고는 하나 소 닭 보듯하는 사이라 소개시키고 말고 할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러다 그 친구 가고 제가 오빠를 어떻게 할지는 오빠는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월 지날수록 그 오빠 친구라는 사람이 새삼 웃기면서도 약간 고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결국 그분은 오빠를 가장 친한 벗으로 느꼈을 겁니다. 그러니까 밤에 친구의 집에서 하룻 밤 신세를 지는 모험을 감행했겠죠. 친한 친구와 처남, 매부가 된다는 것 생각만해도 근사하잖아요.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끝내 알지 못했지만 목소리 하나만큼은 크고 우렁찬게 명랑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 집 오빠 보다는 훨 나은 사람일 겁니다. 원래 남의 집 오빠가 우리 집 오빠 보다 나은 법이잖아요. 물론 그 오빠가 우리 집 오빠가 되면 얘기는 또 달라지긴 하겠지만. ㅎㅎ 근데 작가도 참 순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 시절에 있을 법한 귀여운(?) 일화가 잠시 등장하는데, stella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이미 쉰 살이 된 작가의 시선에서 서술되는데 불구하고, 작품 전반적으로 소년다운 순수함과 솔직함이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지요.
순수함과 솔직함 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열망까지 딱 소년 시절의 느낌 인 것 같습니다.
우리 집 오빠 보단 나을 거라는 말이 너무 웃겼어요, 전 남자형제가 없는데다 시골 동네 특성상 여학교 남학교 따로 있어서 그런 경험이 없는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흠, 친구의 동생을 친구를 통해 좋아했다기보단 쟤 멋있다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의 동생이었던 적은 있어요. 친구도 제 취향(?)외모라서 좋았던 건데, 소나무 취향이였던 걸까요? 하하 돌이켜보니 그렇네요.
2주차의 내용은 저자의 일기가 주를 이루고 있네요. 저는 일기하면 떠오르는 게 카프카의 일기입니다. 몇년 전, 어느 출판사에서 카프카의 일기며 평전이 나왔는데, 저는 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었죠. 카프카는 원래 저에겐 넘사벽이라 그래도 일기는 좀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전해 봤는데 역시 일기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벽돌책이었는데 카프카가 일기를 굉장히 많이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일부만 소개된 것일 겁니다. 물론 이 책은 카프카 보단 덜 어렵게 읽히긴 하지만 역시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으면 일을수록 작가가 참 감수성이 예민하면서도 풍부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되네요.
일기는 누군가의 은밀한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지요. 특히 작가들의 일기는 문학적 세계관의 시작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구요.
네.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읽다 보면, 애초부터 글에 대한 재능과 끼가 있어, 남다른 글솜씨를 뽐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일기와 편지 형식을 빌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눌러 쓴 흔적이 느껴져, 갑자기 제 머릿속에 안네의 일기가 오버랩되는 느낌마저 들었네요. 두 사람에게 처해진 환경이나 시대가 완전히 달라도, 그 날 그날의 있었던 하루 일과를 글로 옯겨 놓았던, 그래서 기록의 중요성을 한 번 더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난 날을 추억하며,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 수 밖에 없을 때의 신선함, 놀라움, 재미 등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네요.
소설 중에 미야모토(화자)가 자신의 창작적 재능이 충분한가에 대해 의심하는 구절이 짧게 서술 되기도 하는데, 읽어 나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미야모토가 이미 훌륭한 작가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dulce님의 말씀처럼,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3주차] (14장~ 17장, 해설) 📅 4/2~4/8 드디어 세이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편지가 등장했습니다! 일기는 함께한 기록이고 편지는 부재의 기록이라, 아무래도 ‘나’가 쓴 글들보다 더 절절한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나’의 일기와 편지를 읽으며 상상하던 세이노와 다른 느낌이 드시나요, 아니면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세이노’의 캐릭터에 대해 사실 ‘나’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다른 지점이 있어 보인다면 어떤 것일지 이야기해보아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 문장수집 기능을 이용하여 인상 깊었던 문장을 남겨 주세요!
저는 선배가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선배는 분명 우리의 길로 들어설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길'이라는 게 괴상하다 생각하시겠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소년 140,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밖에서 들어온 것은 도로 밖으로 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안에서 깨달은 것은 끝까지 안에 머뭅니다.
소년 14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오구치가 밤에 온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세이노는,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런 자각도 없었던 것일까
소년 154,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가엾고 불행한 저를 용서하세요. 그러나 저의 벗으로서, 단 한 사람의 벗으로서, 미야모토 선배를 들이겠습니다. -중략- 아무튼 저는 한 사람의 벗과 함께, 그 벗을 지팡이로도 기둥으로도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저의 불행을 가여워해 주십시오.
소년 162,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정수윤 옮김
오늘로 이 책의 독서도 마지막이네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좋은 책을 읽을 땐 이 책의 독서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책도 그렇네요.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 많고 한번 읽은 책을 재독하는 일이란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에... 아무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감상을 써보겠습니다. 3주차 부분에선 세이노의 편지들이 나오는 데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지난 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나의 세이노에 대한 감정과 세이노의 나에 대한 감정은 계기는 좀 다르다고 할 지라도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거울처럼 대했고 어쩌면 상대에게서 스스로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이노와 '나'의 감정은 그렇게도 닮았는데도 왜 세이노와 '나'는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저는 세이노는 '나'에 대한 그 헌신을 종교로 돌렸고 '나'는 세이노에 대한 그것을 문학에 돌렸기 때문에, 서로의 지향점이 달라서 결국 갈라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가 30년이 흐른 뒤 다시 그것을 읽어보고 기록을 태우면서 세이노에 대한 마음을 추억하는 걸 보면 지금의 '나'는 세이노의 그 종교에 대한 귀의와 신앙심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뭔가 더욱 마음 한 편이 더욱 아리고 절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네요. 모임지기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편지를 읽었을 때 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는 부분 정말 공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했던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낄 때 더욱 그 사람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니까요.. 저는 3주차를 읽으면서 세이노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진 부분은 세이노가 의외로 체격이 좋고 건강한 청년이라는 거였어요. 뭔가 아름다운 미소년의 느낌을 상상했었는데 연약하고 여리여리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게 잠깐 이미지가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세이노의 편지에서 심장이 말썽이라는 부분과 검술대회에서 성적이 좋았다는 게 뭔가 서브컬쳐에서 많이 사용되는 병약한 천재 검사 이미지가 떠올라서 처음 이미지랑 크게 괴리는 없었던 것 같네요. ㅋㅋ 그 외의 부분은 세이노에 대해 지금껏 상상했던 이미지와 비슷했습니다. 순수한 신앙심을 가진 맑은 소년의 이미지가 말이죠. 중간에 세이노가 보낸 편지에 떨어지면 1년 더 공부하면 되죠라고 말하는 부분은 진짜 악의 없이 순수하게 남한테 재수 없는 소리하는 그런 느낌이 나서 웃기기도 했네요. ㅋㅋㅋ 끝으로 해설을 읽으니 맨 처음 이 작품은 소설인가 수필인가 싶었던 의문에 대해 어느 정도 해소를 해주는 부분이 있었네요. 수필인 듯 소설인 듯 아리송하게 만드는 그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이었던 '사소설' 이라는 장르. 지금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혁신적인 느낌이라고는 하기 힘들겠지만 여전히 여타 소설들과는 차별화되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자전적 소설은 소설에 가까울까 수필에 가까울까 ,소설과 수필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야스나리의 '소년'의 감상을 마칩니다. 너무 좋은 소설을 알게 해주고 좀 더 깊은 감상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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