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지연 소설가와 [올리브 키터리지] 함께 읽기

D-29
이 책을 읽다가 저는 어린 시절 제가 무척 싫어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렸어요. 올리브 키터리지의 말투나 행동에는 그와 닮은 데가 있었거든요. 그 사람은 제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잘 알았고(저는 감정을 감출 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만날 때마다 저에게 말 거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어릴 땐 나 같은 사람을 싫어했어. 그런데 살다 보니 싫어했던 걸 닮아가더라. 너도 나를 계속 싫어하려면거든 조심해." 그 말은 그를 향한 제 감정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라 저는 더 열렬히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다 그 동네를 떠나게 되며 그 가족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져 더는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게 되었지요.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이 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을 왜 그렇게 싫어했었던 것인지 이제는 잘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책은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은 별다른 사건이 없어 보이는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 한 인간의 내력을 누구도 손쉽게 간파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매일을 살아가며 쉽게 지쳐버리고 마는 분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나날임에도 다시 또 한번 더 새로운 날을 살아보는 모습들 때문이었으니까요.
안녕하세요! 함께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기로 한 모임지기 김지연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또 시작하며 함께 시간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모두 13편의 이야기가 있는 연작 소설 형태의 소설집입니다. 워낙 유명해 다들 아실 것 같지만 미국 hbo사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고(천재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올리브를 연기했지요!) <다시, 올리브>라는 후속작이 나올 만큼 인기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한 편씩 천천히 읽어나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30일 남짓이니 이틀에 한 편꼴로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밑줄 그은 문장들과 그 이유도 함께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단편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를 주인공으로 한 <약국>입니다. 약국에서 일하는 헨리가 새 직원으로 데니즈를 들이고 펼쳐지는 감정의 파도가 주된 줄거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편인 헨리가 늘 데니즈를 보살피려 하는 것과 달리(여기에는 물론 복잡한 내심이 있긴 합니다...) 올리브는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라고 말하죠. 사사건건 다른 것만 같은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살며 쌓은 역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고 좋았던 문장,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남겨주세요. 저는 내일 다시 돌아올게요!
그믐을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김지연님이 모임 제일 처음에 써 놓으신 글이 인상이 깊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 보이는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 한 인간의 내력을 누구도 손쉽게 간파할 수는 없다는 것, 저에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드라마로도 있나보네요. 그런데 김지연님이 싫어했던 누군가와 닮은데가 있다니 그것 또한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매일을 살아가며 쉽게 지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나같은 사람이 책속에 한명은 있을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몰랐던 책을 하나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연님.
네 반갑습니다. 읽고 다시 올게여
반갑습니다~
<약국> 잘 읽고 계신가요? 저는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요. 많은 일들이 은근하게 진행된 소설이라는 기억과 달리 모든 것이 눈에 잘 띄게 겉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사이 저도 많이 변했겠지요...) <약국>은 약국에서 일하는 헨리 키터리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헨리가 약국으로 출근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생활한 공간과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인물을 등장시키고 소개하는 데 꽤 멋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순간에 그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의 삶의 리듬을 지켜보는 듯했습니다. 그의 공간에 새로 침투한 데니즈는 그의 리듬을 삐걱거리게 하지 않고 다채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헨리는 처음부터 데니즈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뒤로는 점점 불순한 감정이 감지되지만 그속에서 헨리는 행복해 보여요. 이웃을 향한 오지랖 같기도 하고 아이를 돌보려는 보호자의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그 역시 사랑의 한 형태겠지요.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게 하고 붙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어요.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이미 많은 풍파를 겪었기 때문일까요. 첫번째 이야기인 <약국>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에게도 많은 드라마가 있었다는 점은 동료교사 짐 오케이시가 떠난 후 한동안 밤마다 울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지요. 두 사람은 서로를 어떤 존재라고 여기며 함께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함께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드리고 싶네요. 인간은 참 외로운 존재이고 곁에는 꼭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그게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이 책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주제인 것도 같습니다.
김지연 작가님의 추천을 통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첫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알쓸인잡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말하는데 김영하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신뢰할 수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매력, 연애 시절에 느끼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지나가더라도 두 사람을 물리적으로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뢰’라는 뜻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약국」에서 헨리가 데니즈에게 느꼈던 감정, 올리브가 짐에게 느꼈던 감정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믿을 때문이지않을까요. 그들이 각자 느꼈던 감정은 부부가 오랜 기간을 쌓아오며 만들었던 것으로 시간으로 밖에는 만들 수 없는 신뢰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이란 것은 가깝게 다가오는만큼 쉽게 멀어지고 사라질 수 있는 반면에 신뢰라는 것은 쉽게 다가오지도 않고 쉽게 멀어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신뢰보다는 매력을 찾아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사람을 향해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간의 믿음, 신뢰라는 것이 더 얻기 힘들고, 다시 말해 관계의 희소성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서로 남아 있는 걸 선택한 게 아닐까요. 저는 데니즈가 약국에서 처음 일한 날 데니즈를 일컬어 올리브가 “생긴 게 꼭 생쥐야”(12쪽)라고 했던 말이 생각 납니다. 이어서 헨리가 “귀여운 생쥐”라고 대꾸하는데 저에겐 그것이 마치 올리브의 말이 ’귀여운 질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트레일러와 두 젊은 부부가 다 큰 강아지들처럼 서로 장난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녹인 황금이 마음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 광경이 왜 그렇게 흐뭇하게 그려지는지 헨리는 알지 못했다.(17~18쪽) 이 장면에서는 헨리는 어쩌면 올리브와의 지난 날을 추억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보다도 더 젊었던 자신들의 시절을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하고요. 헨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젊은 헨리에 자신을 대입했던 것은 아닐까요. 떄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떠오르는 건 데니즈가 아니라 묘하게도 그녀의 젊고 건강한 남편—동물적인 소유욕에 무너지는 젊은 사내의 격정—이었다.(24쪽) 주인공 헨리는 작품 초반에는 데니즈보다는 젊은 헨리에 대해서 더 관심이 가는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통해서 헨리 키터리지는 헨리 시보도에게 더욱 더 자신과 시보도를 동일시 여기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니즈를 사랑해야 할 헨리 시보도가 사망한 이후에서부터는 헨리 키터리지 자신이 헨리 시보도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걱정했을 것입니다. 가족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난과 시련,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표해주지만 그것으로 다입니다. 그러나 주인공 헨리는 나아가 데니즈에게 차를 운전하는 법, 수표를 쓰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 줍니다. 저는 처음에 이 장면이 헨리가 데니즈에게 단순히 가까운 직장 동료 이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리가 데니즈와 결혼하기 전보다도 먼저 헨리는 데니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정말 데니즈에게 꾸준히 남아있길 원했다면 헨리는 모든 일들을 직접 그때 그때 해주지 않았을까요. 마치 헨리 시보도가 있었을 때 데니즈는 어떠한 것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요. 작가님께서는 「약국」의 도입부가 좋다고 하셨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저는 조금 다른 이유로 좋아합니다. 작품의 도입부를 통해 헨리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지 알수도 있지만 저는 동시에 이 장면이 데니즈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세상이 혼자만의 비밀인 듯이, 발밑에서 타이어가 부드럽게 구르고 햇살이 이른 아침 안개를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만이, 그다음엔 키 크고 늘씬한 소나무들이 잠시 보였다. 코끝을 간질이던 솔숲 향기와 소금기 짙은 공기, 그리고 겨울이면 찬 공기에서 묻어나는 냄새를 그는 얼마나 좋아했던가.(9쪽) 그러나 데니즈에게 차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때 묘사는 사뭇 대조적이어서 좋았습니다. 부드럽게 타이어가 구른다고 했던 도입부와는 다르게 “차가 야생마처럼 꿈틀대자 헨리는 손으로 계기판을 짚었다.”(39쪽) 라는 표현과 데니즈는 안경을 벗었고, 그녀가 눈물을 훔치는 동안 헨리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눈 때문에 길가의 숲이 흑백사진 같았다. 검은 줄기 위로 굵은 가지를 뻗은 상록수마저 어두워 보였다.(40쪽) 데니즈를 알기 전 올리브와 있을 때는 일상의 단조로움이 헨리에게 있어서는 “그런 아침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떠올렸다”(9쪽)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데니즈와 같이 있을 때는 주변이 흑백사진 같이 보일 정도며 상록수마저 어두워 보일 정도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둘의 앞으로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데니즈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에게 비극이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많이 들이닥치고 그리고 그 비극이라는 것의 성격마저도 너무 도가 지나친 데가 있다고요. 하지만 이 지나침이 이 소설을 더 실제 삶과 닮아 보이게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드리고 싶었던 질문은 사실... 올리브 키터리지와 헨리 키터리지의 MBTI는 어떻게 될까요?였는데요... 사실 MBTI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은 종종 캐릭터를 짤 때 이 인물의 MBTI는 뭘까? 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MBTI의 인기에 힘입어 각 유형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소설집도 나오더라고요.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참여하셔서 기대중입니다.) 저는 당연히 올리브는 외향형인 E타입, 헨리는 내향형인 I타입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올리브가 언제나 E 같지는 않고 헨리도 늘 I 같지는 않은 것 같긴 해요. 늘 I일 것만 같던 사람이 돌연 E처럼 굴 수 있게 용기가 샘솟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도 무엇을 소중히 하는 사람인지를 강하게 말하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문장서부터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될거란 예감이 들었어요. 스토너를 참 좋아하는데 어쩐지 헨리 키터리지는 스토너를 연상케하는 구석이 많았거든요 (자기 인생에 충실하려 하고 비교적 낙천적이고 온건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분명 mbti는 isfj 수호자라고 생각합니다. 헨리가 데니즈에게 느낀 감정은 새끼고양이를 기를때 느끼는 애정에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그런 비유도 나왔었고 실제로 고양이가 등장하기도 했어선지... 여러모로 묵지근하니 슬프고 단맛이 도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승호님의 독법도 재미있네요
<스토너>도 무척 좋지요. 자기 인생에 충실하려고 하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점에 저도 공감이요. 헨리의 mbti는 istj일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알고 있는 istj 인간과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헨리는 데니즈에 대해 보호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도 같지요. 뭔가 잘 돌보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고 떠나보내게 되는 순간까지요. 하지만 또 그것만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만일 때에도 다른 복잡한 감정이 끼어드는 것이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애매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연인과의 사랑에서도 보호자의 사랑과 같은 순간이 있고 보호자의 사랑에도 연인과의 사랑 같을 때가 있다..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묵지근하니 슬프고 단맛이 도는 이야기가 다음 단편에서도 이어질 예정.. 계속 함께 읽어보아요!
저는 「약국」에서 데니즈가 작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 카드를 매년 보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랑을 담아”라는 글귀와 함께 카드를 보낸 부분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겐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혹은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때도요. 데니즈는 아마 충분히 헨리의 사랑을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의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랑을 담아” 카드를 보낸 건 아닐까요. 가끔 사랑의 표현은 역설적이게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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