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김지연 소설가와 [올리브 키터리지] 함께 읽기

D-29
<피아노 연주자>에 이어 <굶주림> <다른 길>까지 읽으니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뜻밖의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마는 인생의 면면을 가차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비극을 안기는 방식을 지켜보다보면 아주 가차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요... "그들은 그 밤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길>) 같은 문장에도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서로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은 말들"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무척 무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만약 키터리지 부부가 모든 걸 극복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뭔가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꼭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고 대개는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그걸 껴안고 살고 있는 것처럼만 보입니다. 아무래도 그런 인물들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질문처럼, 그런 인물들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은 결국 우리 대다수가 그런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가 살면서 무언가를 극복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그걸 어느 순간부터 잊게 되는데 그것이 극복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왜냐면 가끔씩은 또 불현듯 저를 찾아 오거든요. 또 어떤 상처는 지속적으로 저의 한 부분이 되어서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요.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을 극복이라고 해야 할지, 정말로 그런 것을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세 번째 단편쯤부터, 이 책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가고 있어요.^^ <겨울음악회>까지 읽었습니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 차분히 읽고 싶은 책입니다.
<다른 길> 에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 그런 언쟁을 하는 올리브 커플, 특히 올리브에게 놀랐습니다. 서로에게 쏟아냈던 비난들을 시간이 더 흘러 올리브와 헨리는 후회할 수도, 그 때라도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의 마지막 책은 무엇이었는지, 또 2023년의 첫 책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올리브 키터리지가 둘 모두를 장식하신 분도 계시겠지요. 저는 <튤립>을 읽으면서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어보았습니다. 내가 저 여자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올리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잘 아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는) 복잡하게 생각한다고들 흔히 말하죠. 그건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를 피하기 위해 쉽게 선택하는 길 같기도 합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좋았던 점 중 또 하나는 올리브를 중심으로 여러 주변 인물들의 속사정을 경유해가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또 이런 문장에도 밑줄을 그었습니다. 헨리의 다른 사진은 키가 크고 마른 해군 시절의 모습이었다.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청년이었다. 당신은 짐승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아들이 하나 생길 거고, 그애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얀 가운을 입고 키만 훌쩍한 당신은 약을 사러 온 동네 사람들한테 끝도 없이 친절할 거야. 당신은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그게 당신 인생이 될 거야. 올리브는 헨리의 인생을 이런 식으로 거칠게 요약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두사람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요. 소설 속에서는 가까운 관계이지만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지요. 애초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관계를 만들어갈 때 얼마만큼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해서 앞선 행복들이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닐텐데 하는 생각도요.
튤립을 읽으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쓸쓸한 헨리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좀 아파서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독감으로 골골 대느라 책을 펴지 못하고 있네여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어여 따라 붙겠습니다.
한동안 쉬다가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까지 읽었습니다. 유쾌한 내용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빨리 읽어치우고픈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길은, 진정한 재난은 물리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 자꾸 변주되곤 하는 오래된 부부간의 ,가족간의 잡음은 작가의 평생 화두였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문득 나의 고모들을 떠올렸습니다. 여섯이나 되는 고모들은 제각기 남자들을 만나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했는데, 가장 행복한 부부가 누군지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가장 불행한 부부가 누군지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오래 묵은 사랑은 매우 기이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부디 슬픔은 이제 충분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게 되네요...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 p.108 「피아노 연주자」
<여행 바구니>에는 병을 앓던 남편 에드를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르는 말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사람 다 교사였던 올리브가 가르쳤던 학생들이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죠. 하지만 에드가 죽고 장례를 치르던 날 말린은 에드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중, 삼중으로 불행해지는 사건이었죠.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보면 '여행 바구니' 같은 것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헛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요. 당시로선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다양한 종류의 바구니 같은 것이 있는 것도 같고요. 젊은 연인의 끝을 바라보며 위로하는 올리브의 모습은 애잔한 데가 있습니다. 올리브 역시 여러 종류의 끝을 맞이하고 있고 새로 장만할 '여행 바구니' 같은 것이 무엇일 수 있을지 잘 감이 잡히지도 않으니까요. 노년의 삶에 닥칠 낭패감이 (특히나 젊은 커플이 겪는 상실과는 완전히 다른, 오랫동안 함께한 동반자와의 이별이) 잘 그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삶은 계속되겠지만요.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 올리브는 생각한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올리브는 깊은 숨을 내쉬며 나무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도 하니까. 연말연초부터 조금 어두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책을 추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생의 그늘진 면면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올리브는 말린의 머리에 한 손을 살며시 갖다 대고 싶지만 그런 것은 올리브가 별로 잘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서서, 말린이 앉은 의자 옆에 서서 옆 창문으로 이제 물살이 거의 빠져나가 넓어진 해안선을 바라본다. 저 아래에서 물수제비 뜨기에 여념이 없던 에디 주니어를 생각한다. 그 느낌을 올리브는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돌멩이를 집어서 힘을 조절하여 바다에 던질 여력이 있는 젊음을. 아직 그 짓을 할 만한, 망할 돌멩이를 던질 힘이 있는 젊음을.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말에는 어떤 것까지 포함되어 있을까를 오래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떤 것까지를 제공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요. 혼자 남게 될 올리브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걱정스럽기만 하거든요. 그는 아주 호감인 성격은 아닌 듯하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남의 기분을 맞춰줄 성격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에게도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한 사람 같아요. 어떤 여력도 남지 않게 된 올리브가 반려자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남은 생을 그럭저럭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것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할까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저요건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소설은 좀더 인간관계 등 정서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는 것으로 읽히긴 하지만요.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튤립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 절반쯤 온 셈이네요. 흐름상 배치가 다른 길보다 튤립이 먼저 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심술궃은 올리브는 제대로 무너지고 있는데 드디어 호적수를 만나기까지 했네요. 루이즈한테 탈탈 털릴때 호쾌하면서도, 루이즈라는 인간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자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뭐가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아직 다 읽기 전이라) '내가 저 여자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올리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저도 이 문장에서 밑줄을 그었습니다. 전자책 하이라이트긴 하지만... 처음으로,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올리브가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것 같네요. 처음에 올리브가 적게 등장할 때는 이 노파가 헨리처럼 다정할 거라 짐작했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다는걸 깨닫고 기가 막혔지만, 이런 식으로 깨지는 걸 보니 마음이 역시 좋지 않네요. 아마도 끝까지 읽기까지는 시간이 촉박한 성 싶지만, 어쩄거나 몇주내로는 다 읽을 것 같은 이 소설집이 제게 남긴 교훈은 아마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을 할 거면 잘하자... 인생은 길고 결혼도 길다... 그리고 사과를 잘하자... 심술 그만 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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