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우연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만들어내는 장면들의 분위기랄지 파급효과가 상당한 충격과도 같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을까 싶은 문장들도 참 많지요. 올리브가 계속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읽어나가면서 한 캐릭터의 인상이 점점 어떻게 바뀌어나가는지를 따라가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인생책> 김지연 소설가와 [올리브 키터리지] 함께 읽기
D-29
김지연
김지연
<밀물>까지 다들 읽으셨나요?
이어지는 작품 <피아노 연주자>는 어릴 적 작은 재능이 있었지만 그대로 고향에 머물려 피아노 연주자로 살아가는 앤절라의 이야기입니다. 여러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어머니의 의견에 가로막혀 실현되지 못하고 고향에 남게 되죠. 저는 시골에서 살던 소년소녀가 재능을 발굴당해 더 넓은 세계를 향해 출향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면서도 조금쯤은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요. 아마 제가 시골 출신이고 늘 시골에서 터를 잡고 싶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앤절라가 하루빨리 고향을 떠나 어머니와 분리되는 삶을 살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앤절라다운 삶을 살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장 신뢰할만한 인간이어야 할 어머니라는 존재가 앤절라의 삶에서는 그다지 좋은 가족이지 못했습니다. 성숙한 어른조차 아니었지요..
그다음으로 오는 작품은 드디어 올리브 키터리지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작은 기쁨>인데요. 불평불만이 가득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며느리의 물건을 훔치고 훼손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뜨악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아무리 못난 인물이라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되는 것 같아요.
두 편을 연달아 읽고 나면 다시 앤절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앤절라의 삶에서 '작은 기쁨'이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앤절라의 삶에서의 기쁨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승호
저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유형은 그 상처를 입기 전, 과거 속에 머무르는 사람이고, 다른 한 유형은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두 가지 유형을 시간대별로 겪을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과거 속에 머무르는 시기가 짧고 길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요.
앤지의 삶에서 작은 기쁨이라는 것은 상처를 받기 전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표면적으로 앤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 피아노를 치는 일뿐이었다. 첫 곡의 두 소절을 연주하고 나면 앤지는 언제나 행복해졌다.(91쪽)
그러나 이어서 피아노 연주는 앤지에게 과거의 회상을 불러주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하나요, 앤지. 맬컴 무디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하나가 됩시다, 앤지······어떻소?(91쪽)
앤지는 어쩐지 피아노 연주를 하는 동안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해보입니다. 자신이 상처 받기 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작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같이요.
그리고 앤지가 연주하는 노래들의 가사는 어쩐지 앤지가 겪었던 상황이나 현재의 상황과 일치해보입니다.
<Good Night, Irene>은 원작자가 미상이지만 리드벨리가 가장 먼저 녹음했고 그 이후 많은 뮤지션들이 녹음하고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해서 여러 면으로 해석이 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버젼에서 통용되는 해석은 가사의 화자는 아이린이라는 여자를 좋아했지만 어떤 외부적인 이유로 아이린과 결혼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에서는 헨리 키터리지가 좋아하는 곡으로 나오지만 앤지가 두 번이나 연주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맬컴 무디와 오랜 기간 연애를 했지만 결국 둘은 헤어지고 현재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맬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인데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사이먼이 신청한 곡입니다.
이미 가정을 이룬 사이먼이 찾아와서 이 곡을 신청한 이유가 뭔지 작품 내에서는 그의 구체적인 의도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저는 그가 이 노래로 그 목적을 은연중에 비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래 가사에서는 힘든 순간을 겪는 당신에게 화자가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들이 담겨있습니다. 처음에 사이먼은 아마 과거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앤지는 처음에 이 곡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맬컴이 “나는 항상 당신 생각뿐이야”라는 말을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되었는지 결코 돌이켜보지 않았던 것처럼.(96쪽)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저 말은 앤지가 맬콤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 없이 돌이켜보고 회상을 했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고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다음 앤지의 행동으로도 증명됩니다.
그녀는 공중전화로 가서 맬컴의 번호를 돌렸다. 번호는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십이 년 동안 단 한번도 그의 집에 전화를 건 적은 없었다. 이십이 년이면, 그녀는 신호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할걸. 그러나 앤지에게 시간은 하늘만큼이나 크고 둥글었고, 시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바로 음악과 신을, 왜 바다가 깊은지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았다. (97쪽)
이십이 년동안 앤지의 마음 속에 맬컴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앤지는 맬컴에게 전화를 걸지만 앤지의 기억 속에 있던 맬컴과는 다르게 당연히 현재는 가정을 이룬 맬컴에게 앤지는 불편한 존재입니다.
한 때는 앤지에게 “나는 언제나 당신 생각뿐이야.”, “사랑해”,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쩌지, 앤지?” (94쪽) 라고 말했던 맬컴은 작품의 후반부에는 앤지를 “개 같은 년.”(107쪽)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현재 맬컴에게 앤지는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맬컴도 진정으로 앤지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앤지에게 선물을 사주는 법이 없었고, 앤지 역시 선물을 바란 적이 없었으니깐요. 앤지는 그렇게 과거에서 다시 현실로 서서히 빠져 나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98쪽에 나오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런 앤지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당연하게도 그 크리스마스트리를 버립니다. 그러나 앤지에게는 이미 지나간 크리스마스트리(과거)도 소중합니다. 그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빙그레 웃었으니까요.
눈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대던져지고 쓰러진 채, 잘려진 줄기가 어색한 각도로 공중을 찌른 모양새일 나무가 얼마나 안쓰러울지 상상할 수 있었다.(98쪽)
그리고 이어서 <We Shall Overcome>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극복하고 괜찮아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가사의 곡을요.
작품 내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앤지가 과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목도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의 감정이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감정이 찾아오면서 그 감정은 결국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그맣게 찌그러들어 크리스마스트리의 은색 술 장식처럼 마음 한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102쪽)
사이먼은 앤지를 보러 왔지만 별 다른 대화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앤지에게 사이먼은 과거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슬픈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사이먼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슬펐을 앤지에게 사이먼은 비열한 말까지 던집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만나러 직접 보스턴에 찾아와 옷까지 벗었다는 말을요.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과거를 회상합니다. 과거에는 행복했던 과거가 있었고 슬픈 과거도 있을 겁니다. 행복한 과거만이 현재의 그녀를 살게끔 지탱해주지만 회상이란 것은 항상 그런 식으로 작동하진 않습니다. 그녀는 불편하고 슬픈 과거도 함께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행복했던 회상으로 상징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렇게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밝고 멀게 보였다. (105쪽)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에 앤지는 무언가를 깨달은듯 보입니다. 저에게는 이 장면이 이제 앤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려는, 남들에게 한심하게 보이지 않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으로 보입니다.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 (108쪽)
앤절라의 작은 기쁨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이 끝나고 그 이후에는 그 작은 기쁨을 조금 더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요.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요.
승환
피아노 연주자를 읽었습니다. 왜 우리나라 이야기 같은지 ... 세상 어는 인종 문화에도 다 비슷한 사람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저희가 생각하듯 희생하고 헌신하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어머니상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거라 아직은 믿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많이 보게되지여. 청년들은 깨어서 나가야 할 듯 합니다. 결국 인생은 자기가 감내하고 헤쳐나가야 할 길이까요. 앤절라의 어머니처럼 대놓고 자식을 이용하는 부모도 있지만 부모의 허영심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 자식들에게 강요하고 희생하길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전에 고향을 지키던 장남보다 무작정이든 자신의 꿈을 찾아 도회지로 나가서 성공하는 둘째와 막내들이 많았던 경우가 생각납니다. 시시 비비를 가리기 전에 독립심이나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을 기르는게 중요 할 듯 합니다. 물론 지금의 20대 청년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지요 심적인 것을 떠나 경제적이든 직업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시대이니까요 작금은 수많은 앤젤라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게 아닐까 우울한 마음입니다.
길리
저도 피아노연주자까지 읽었습니다. 오미라 라는 성이 우리나라 이름같기도 하고, 엄마와의 분리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걸 봐서 과연 우리나라의 병폐와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네요. 오미라 씨처럼 왜 저렇게 살아갈까 싶은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겁니다. 작가는 그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쓰는 데 탁월한 것 같아요. 말씀처럼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저 정물처럼 바라보게 되는... 그래도 비어져나오는 한숨은 어쩔수가 없네요. 사실주의 소설이란 게 아직 남아있다면 현대(라기에는 한 세대 전쯤이 되겠지만)의 사실주의는 이 분이 구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오미라 씨를 응원합니다.
엘리스
피아노 연주를 읽고, 이런 바가 마을에 있어서 함께 모여서 음악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앤젤라는 오는 고객(마을사람)들을 잘 알고 이해하는데 .. 고객들은 앤젤라를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외로움이 느껴 집니다 ~
엘리스
작은기쁨- 사실 큰 기쁨과 작은기쁨은 씨실과 날실과 같이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
올리브가 약간 심술보 두둑있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아들이 결혼한다면 그렇게 될까요? ㅎ
고구마호박
<피아노 연주자>를 읽었어요. 소설 속의 계절도 겨울, 특히 연말이어서 연말 분위기를 소설 속에서 흠뻑 누렸네요.
'앤지'라는 캐릭터에 놀라운 점은, 인생이 절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으며 자신의 인생도 그 누구의 인생보다 더 한심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성숙함이었어요.
사이먼과 맬컴, 엄마가 앤지를 대했던 태도나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앤지가 살아오면서 받았을 크고 자잘한 상처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앤지는 착했어요. 너무나 착한 인물 같아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도 않았고, 맬컴의 잘못된 요구도 승낙했죠.
하지만 앤지는 '깨달은 사람', 그래서 '내면의 강인함'이 생긴 인물인 것 같아요. 착한 사람만이 깨닫을 수 있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고 자신도 지켜낼 수 있는 강함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된 사이먼은 자신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우쭐할 것이고... 맬컴은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해 자신을 찾죠. 그럼 과연 누가 누구를 한심해할 수 있을 것인가... 앤지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구나 조금씩 인생은 한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우리는 '친절한 사람'에 기대어 살아간다....
앤지는 인생을 깨달은 사람 같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인생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 작가와 가장 닮은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앤지의 <작은 기쁨>이라면 친절한 사람들이 건네는 작은 친절함이었을 것 같아요.(앤지 역시 헨리를 위해서 늘 goodbye, irene을 연주했어요)
쭈ㅈ
<피아노 연주자>의 마지막 단락에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는 문장에 공감이 가면서도 서글프네요. 최대한 덜 늦게 깨닫는 부분이 많은 삶이 되고 싶습니다.
김지연
<피아노 연주자>에 이어 <굶주림> <다른 길>까지 읽으니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뜻밖의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마는 인생의 면면을 가차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비극을 안기는 방식을 지켜보다보면 아주 가차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요...
"그들은 그 밤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길>) 같은 문장에도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서로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은 말들"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무척 무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만약 키터리지 부부가 모든 걸 극복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뭔가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꼭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고 대개는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그걸 껴안고 살고 있는 것처럼만 보입니다. 아무래도 그런 인물들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이승호
작가님의 질문처럼, 그런 인물들에게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은 결국 우리 대다수가 그런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가 살면서 무언가를 극복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그걸 어느 순간부터 잊게 되는데 그것이 극복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왜냐면 가끔씩은 또 불현듯 저를 찾아 오거든요. 또 어떤 상처는 지속적으로 저의 한 부분이 되어서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요.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을 극복이라고 해야 할지, 정말로 그런 것을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쭈ㅈ
세 번째 단편쯤부터, 이 책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가고 있어요.^^ <겨울음악회>까지 읽었습니다.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 차분히 읽고 싶은 책입니다.
쭈ㅈ
<다른 길> 에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에, 그런 언쟁을 하는 올리브 커플, 특히 올리브에게 놀랐습니다. 서로에게 쏟아냈던 비난들을 시간이 더 흘러 올리브와 헨리는 후회할 수도, 그 때라도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의 마지막 책은 무엇이었는지, 또 2023년의 첫 책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올리브 키터리지가 둘 모두를 장식하신 분도 계시겠지요.
저는 <튤립>을 읽으면서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어보았습니다.
내가 저 여자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올리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잘 아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는(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는) 복잡하게 생각한다고들 흔히 말하죠. 그건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를 피하기 위해 쉽게 선택하는 길 같기도 합니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좋았던 점 중 또 하나는 올리브를 중심으로 여러 주변 인물들의 속사정을 경유해가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또 이런 문장에도 밑줄을 그었습니다.
헨리의 다른 사진은 키가 크고 마른 해군 시절의 모습이었다.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청년이었다. 당신은 짐승 같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올리브는 생각했다. 아들이 하나 생길 거고, 그애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얀 가운을 입고 키만 훌쩍한 당신은 약을 사러 온 동네 사람들한테 끝도 없이 친절할 거야. 당신은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에서 생을 마감할 거야. 그게 당신 인생이 될 거야.
올리브는 헨리의 인생을 이런 식으로 거칠게 요약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두사람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을까요. 소설 속에서는 가까운 관계이지만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지요. 애초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관계를 만들어갈 때 얼마만큼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해서 앞선 행복들이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닐텐데 하는 생각도요.
엘리스
튤립을 읽으면서 휠체어에 앉아있는 쓸쓸한 헨리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승환
좀 아파서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독감으로 골골 대느라 책을 펴지 못하고 있네여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어여 따라 붙겠습니다.
길리
한동안 쉬다가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까지 읽었습니다. 유쾌한 내용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빨리 읽어치우고픈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길은, 진정한 재난은 물리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 자꾸 변주되곤 하는 오래된 부부간의 ,가족간의 잡음은 작가의 평생 화두였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문득 나의 고모들을 떠올렸습니다. 여섯이나 되는 고모들은 제각기 남자들을 만나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했는데, 가장 행복한 부부가 누군지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가장 불행한 부부가 누군지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오래 묵은 사랑은 매우 기이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부디 슬픔은 이제 충분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게 되네요...
이승호
앤지는 이제 머리를 복도 벽에 기대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검정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
p.108 「피아노 연주자」
김지연
<여행 바구니>에는 병을 앓던 남편 에드를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르는 말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사람 다 교사였던 올리브가 가르쳤던 학생들이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죠. 하지만 에드가 죽고 장례를 치르던 날 말린은 에드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중, 삼중으로 불행해지는 사건이었죠.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보면 '여행 바구니' 같은 것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헛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요. 당시로선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다양한 종류의 바구니 같은 것이 있는 것도 같고요.
젊은 연인의 끝을 바라보며 위로하는 올리브의 모습은 애잔한 데가 있습니다. 올리브 역시 여러 종류의 끝을 맞이하고 있고 새로 장만할 '여행 바구니' 같은 것이 무엇일 수 있을지 잘 감이 잡히지도 않으니까요. 노년의 삶에 닥칠 낭패감이 (특히나 젊은 커플이 겪는 상실과는 완전히 다른, 오랫동안 함께한 동반자와의 이별이) 잘 그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삶은 계속되겠지만요.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 올리브는 생각한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올리브는 깊은 숨을 내쉬며 나무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도 하니까.
연말연초부터 조금 어두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책을 추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생의 그늘진 면면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올리브는 말린의 머리에 한 손을 살며시 갖다 대고 싶지만 그런 것은 올리브가 별로 잘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서서, 말린이 앉은 의자 옆에 서서 옆 창문으로 이제 물살이 거의 빠져나가 넓어진 해안선을 바라본다. 저 아래에서 물수제비 뜨기에 여념이 없던 에디 주니어를 생각한다. 그 느낌을 올리브는 다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돌멩이를 집어서 힘을 조절하여 바다에 던질 여력이 있는 젊음을. 아직 그 짓을 할 만한, 망할 돌멩이를 던질 힘이 있는 젊음을.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말에는 어떤 것까지 포함되어 있을까를 오래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떤 것까지를 제공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요. 혼자 남게 될 올리브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걱정스럽기만 하거든요. 그는 아주 호감인 성격은 아닌 듯하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남의 기분을 맞춰줄 성격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에게도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한 사람 같아요. 어떤 여력도 남지 않게 된 올리브가 반려자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남은 생을 그럭저럭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것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할까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저요건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소설은 좀더 인간관계 등 정서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는 것으로 읽히긴 하지만요.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길리
튤립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 절반쯤 온 셈이네요. 흐름상 배치가 다른 길보다 튤립이 먼저 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심술궃은 올리브는 제대로 무너지고 있는데 드디어 호적수를 만나기까지 했네요. 루이즈한테 탈탈 털릴때 호쾌하면서도, 루이즈라는 인간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자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뭐가 그 여자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아직 다 읽기 전이라)
'내가 저 여자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올리브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가?)'
저도 이 문장에서 밑줄을 그었습니다. 전자책 하이라이트긴 하지만... 처음으로,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올리브가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것 같네요. 처음에 올리브가 적 게 등장할 때는 이 노파가 헨리처럼 다정할 거라 짐작했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다는걸 깨닫고 기가 막혔지만, 이런 식으로 깨지는 걸 보니 마음이 역시 좋지 않네요. 아마도 끝까지 읽기까지는 시간이 촉박한 성 싶지만, 어쩄거나 몇주내로는 다 읽을 것 같은 이 소설집이 제게 남긴 교훈은 아마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을 할 거면 잘하자... 인생은 길고 결혼도 길다... 그리고 사과를 잘하자... 심술 그만 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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