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도시가 그들을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도시는 부서지고 죽은 곳이야. 하지만 숲은 살아 있고, 네가 필요로 할 때면 속삭여 줄 거란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214,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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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열차
은화님의 대화: 2부는 몰리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동시에 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몰리의 시선과 생각에서 묘사되는 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지 그들의 내면은 모험을 떠났던 초기에 비해 보다 복잡해보였어요.
1) 탐험에 참가한 대원은 모두 분리로 인해 변화를 겪었지만 벤은 겉으로 보기엔 큰 동요 없이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벤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2) 몰리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3) 2부에서는 숲과 강이 건네는 소리가 자주 나옵니다. 숲과 강의 소리는 무엇일까요?
개인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예술, 몰리에게는 그림에 대한 갈망으로 본 것 같습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에서 전체주의적 사회에 살던 주인공이 혼자만 갑자기 색을 보게 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숲과 강과 같은 자연도 그러한 인간성 회복의 상징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눈꽃열차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였네요. 마크가 등장하면서 이제 마크의 이야기와 함께 결말로 향할 것 같군요. 여전히 결말을 예측할 수 없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집니다. 사회와 괴리되어 죽어간 몰리가 마음아프네요. ㅠㅠ(사망한 것이겠죠?) 복제인간이 되어서도 두 사람은 사랑하고, 또 사랑을 이루지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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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은화님의 대화: 2부는 몰리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동시에 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몰리의 시선과 생각에서 묘사되는 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지 그들의 내면은 모험을 떠났던 초기에 비해 보다 복잡해보였어요.
1) 탐험에 참가한 대원은 모두 분리로 인해 변화를 겪었지만 벤은 겉으로 보기엔 큰 동요 없이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벤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2) 몰리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3) 2부에서는 숲과 강이 건네는 소리가 자주 나옵니다. 숲과 강의 소리는 무엇일까요?
1) 전 벤이 변한 시점보다는, 자신의 변화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더 궁금해하며 읽었어요. 벤은 여정 중에도, 돌아와서도 아무 일도 없던 듯 행동합니다. 분리의 경험을 통해 얻은 평온을 포기하지 않으려던 몰리를 생각해보면 벤은 형제와 집단으로부터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일부러 무덤덤한 척, 강한 척을 한 게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몰리를 상담하고 그녀와 교류하면서, 특히 몰리의 그림과 작품을 보면서 벤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있던 자아가 더 자극을 받고 성장하며 변화한 것 같습니다.
2) 2부에서 몰리가 그리는 그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흥미로웠어요. 몰리가 벤과 나누는 대화 중에 그녀가 쓸모가 있을 때까지는 외딴 집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죠. 전 이 부분을 보며 몰리가 마을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려야 하는 것'을 그렸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보와 기능으로서의 목적을 담은 지도, 도시의 풍경을 공동체가 요구했고 거기에 색채와 같은 부가적인 것들은 불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분리로 인한 자아가 생긴 뒤부터 몰리는 말과 글로는 묘사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을 최대한 시각화 하고자 그림에 매달리죠. 벤에게 색을 칠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은 단순히 정보로서의 밑그림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어떻게든 자아와 감정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보여요. 바위에서 솟아나는 나무,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 작게 뭉뚱그러져 잘 보이지 않는 인물들은 모두 그녀가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느끼는 불안과 더불어 개체로서의 외로움을 표현한 거겠죠.
클론으로서의 몰리는 개체로서 의미가 없었고 탐사대원으로서, 본 것을 그대로 기억해 그릴 수 있는 능력자로서만 마을에 의미가 있는 존재였어요. 쓸모와 역할만이 몰리의 인생을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독립된 개체가 된 이후부터 몰리는 물건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자신이 뭘 그리고 싶은건지, 왜 그리는지 스스로도 모르지만 계속 그려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림은 몰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이자 동시에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자신의 자아를 빚어내기 위한 과정 그 자체 같네요. 그림의 주제를 바꾼 건 몰리지만 몰리를 바꾼 것이 또한 그림인 순환 구도가 떠올랐습니다.
3) 이 책에서는 숲이 마치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묘사되는 부분이 많네요. 아마도 숲의 소리는 물리적인 바람 소리를 넘어, 자연을 보며 그것에 마음이 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숲이나 산에 가면 풍경을 보며 무섭게 느낄 때도 있고, 때로는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모든 느낌은 우리 스스로의 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죠. 자연은 그 자체로 어떠한 감정이 없이 무정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거나 담아내려고 합니다.
도시와 달리 자연에서는 위계, 질서, 법과 같이 인간을 구속하거나 구분 짓던 벽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자연과 '나'만이 남죠. 순수한 본연의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클론들이 숲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해요. 공동의식이나 집단사고에 눌려 가려져 있던 사색과 자아가 떠오르는데 클론들에게는 익숙한 경험이 아니었겠죠. 우리도 상상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면 가끔 육성의 목소리를 머리에서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지 않을까요. 늘 어딘가에 몰두해 일을 하고, 공동체의 생각과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클론들이 마주한 적 없던 자아를 대면하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오히려 인간들은 숲과 나무에게서 위안을 얻는데 반해 클론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상반된 묘사가 의미심장했습니다.
은화
눈꽃열차님의 대화: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였네요. 마크가 등장하면서 이제 마크의 이야기와 함께 결말로 향할 것 같군요. 여전히 결말을 예측할 수 없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집니다. 사회와 괴리되어 죽어간 몰리가 마음아프네요. ㅠㅠ(사망한 것이겠죠?) 복제인간이 되어서도 두 사람은 사랑하고, 또 사랑을 이루지 못하네요…
사실 저는 처음에 2부 결말을 읽으면서 몰리가 강을 가로지르거나 헤엄쳐 벤을 찾으러 떠나는 내용인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강 아래로 떠내려간다는 문장을 다시 보면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어둡게 다가오네요. 몰리가 첫 여정에서 강에 두고 왔다고 말한 자신의 자아와 평온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벤과 함께했던 추억과 여정을 생각하면 더 씁쓸해지네요.
은화
씨받이들은 잃어버린 자, 더는 클론들을 이름으로 구별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199,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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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클론들은 너를 작은 방에 가두어 벌을 주겠지. 하지만 너는 그 벌이 두렵지 않아. 작은 방에 있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마음의 눈에는, 앞으로 빚을 점토와 깎아낼 바위의 형상이 보이고 말이야. 마치 이미 속에 들어 있어 자유롭게 놓아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네게 속삭이는 다른 자아, 그 부분은 점토에 어떤 모양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어. 꿈, 너밖에 볼 수 없는 영상, 네 두 손을 통해 말을 걸 거야. (중략) 내가 여기에서 다른 자아를 찾았던 것처럼, 너도 다른 자아를 만나기 위해 이 집에 찾아오겠지. 그리고 마크,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네게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중요하단다.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09,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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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은화님의 문장 수집: "클론들은 너를 작은 방에 가두어 벌을 주겠지. 하지만 너는 그 벌이 두렵지 않아. 작은 방에 있으면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마음의 눈에는, 앞으로 빚을 점토와 깎아낼 바위의 형상이 보이고 말이야. 마치 이미 속에 들어 있어 자유롭게 놓아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네게 속삭이는 다른 자아, 그 부분은 점토에 어떤 모양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어. 꿈, 너밖에 볼 수 없는 영상, 네 두 손을 통해 말을 걸 거야. (중략) 내가 여기에서 다른 자아를 찾았던 것처럼, 너도 다른 자아를 만나기 위해 이 집에 찾아오겠지. 그리고 마크,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네게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중요하단다."
2부에서 전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몰리에게 전해지는 마크의 재능, 그림과 조각을 빚어내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로서의 대화가 모두 담겨있네요. 읽으면서 뭉클했습니다.
엘데의짐승
은화님의 대화: 1부를 다시 한 번 더 쭉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되돌아와서 다시 읽어보니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네요. 작중 인간 세계가 언제부터 기후와 환경 재앙이 닥쳤는지 알지 못하다 휩쓸렸듯, 복제기술의 진행에 따라 기존 인류의 역할이 어느 순간부터 역전되는 순환의 구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래의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데이비드에게 제일 중요한 건 항상 셀리아였습니다. 1부는 인간복제를 향한 여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데이비드와 셀리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일대기이기도 합니다. 둘 사이의 관계와 사랑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2) 클론들은 데이비드를 아끼고 정을 가졌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추방합니다. 여러분은 클론들이 데이비드를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생각하시나요?
3) 클론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1) 데이비드에게 제일 중요한 건 항상 셀리아였습니다. 1부는 인간복제를 향한 여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데이비드와 셀리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일대기이기도 합니다. 둘 사이의 관계와 사랑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 완독하고 난 이후 느낌은 이 둘의 사랑이 인간이 가야할 길? 미래, 방향을 의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결론을 초입에 이야기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금기, 결함을 극복해야 새로운 것, 다양한 것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인류의 역사였고 소설속에 맞이한 남은 인간들의 과제였기 때문이라 생각이 듭니다.
2) 클론들은 데이비드를 아끼고 정을 가졌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추방합니다. 여러분은 클론들이 데이비드를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역시 추방형은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3부 마크에게는 축복이었겠지만 클론들에게 그들의 조직, 연대 밖으로 뺀다는 것은 결국 죽음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강했을 것 같네요. 물론 인간들은 알아서 생존하긴 할 것이다 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최소한의 예의?정도는 갖추었다고 보여지긴 합니다만.. 그런 예의, 존중심이 있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3) 클론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은화님 말씀에 동의 합니다. 완독 후에 생각해 보니 정말 중요한 차이인 것 같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구분점이 고민과 고뇌, 공감, 아름다움 등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일관된 사고와 사상,지식, 언어 등 더 이상 확장을 원하지 않는 사회의 클론들에게 결국 큰 시련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력은 체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고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불행이기도 한 것 같지만요. 클론들은 사는 동안은 행복하게 묘사가 된 부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데의짐승
은화님의 대화: 2부는 몰리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동시에 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몰리의 시선과 생각에서 묘사되는 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지 그들의 내면은 모험을 떠났던 초기에 비해 보다 복잡해보였어요.
1) 탐험에 참가한 대원은 모두 분리로 인해 변화를 겪었지만 벤은 겉으로 보기엔 큰 동요 없이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벤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2) 몰리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3) 2부에서는 숲과 강이 건네는 소리가 자주 나옵니다. 숲과 강의 소리는 무엇 일까요?
1) 탐험에 참가한 대원은 모두 분리로 인해 변화를 겪었지만 벤은 겉으로 보기엔 큰 동요 없이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벤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벤은 몰리에게 양육되는 시점부터, 본인과 무리를 격리시켜 교육할 때 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본능은 어떤 위협처럼 느껴졌을 것 같고 철이들기 시작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사춘기일 것 같아요.
2) 몰리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잃어버린 인류의 모습이자 지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결국 다시 찾아 가야할 곳이라는 이상향의 한 조각들이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고민과 고뇌의 연장선에서 미의 추구, 기술, 소통 등 인간미 내지는 인간성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3) 2부에서는 숲과 강이 건네는 소리가 자주 나옵니다. 숲과 강의 소리는 무엇일까요?
자연은 고정불면하는 존재가 아닌 늘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걸 인지 시켜주는 일종의 경고로 읽혔습니다. 방사능이든 환경이든 인류가 소멸되어가는 상황에서 자연환경마저도 인간은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기 때문에 마크는 그 숲과 강을 탐구하고 체험하며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어느새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네요. 1,2부에서 이전 세대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를 3부에서 마크가 마무리 짓는 전개였습니다. 데이비드와 셀리아, 벤과 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 마크에게 온전히 전해졌고 마크가 혼자서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1) 3부에서는 클론들이 복제와 세대를 거칠수록 퇴화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클론들이 퇴화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마크가 배리에게 공동체의 생존을 이야기하며 말한 피라미드의 비유를 어떤 뜻으로 이해하셨나요?
3) 마크는 배리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반대로 배리는 마크를 사랑한 것 같나요? 왜 배리는 마크를 도왔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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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마크는 인간이 홀로 사는 법에 대한 유일한 단서였다. 마크가 필요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25,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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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들판에서, 문 앞에서, 강이나 바다에서 언제나 혼자 서 있는 사람, 언제나 한 명이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56,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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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그 조각이 사람의 모양이라는 것을 볼 줄 모른다고 합시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앤드루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배리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도 그 일이 중요한 이유는 몰랐다. 중요하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67,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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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ori
3부를 읽다 에필로그까지 쭉 이어서 읽게 됐습니다.
이번 책은 읽어 갈수록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은화
은화님의 대화: 어느새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네요. 1,2부에서 이전 세대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를 3부에서 마크가 마무리 짓는 전개였습니다. 데이비드와 셀리아, 벤과 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 마크에게 온전히 전해졌고 마크가 혼자서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1) 3부에서는 클론들이 복제와 세대를 거칠수록 퇴화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클론들이 퇴화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마크가 배리에게 공동체의 생존을 이야기하며 말한 피라미드의 비유를 어떤 뜻으로 이해하셨나요?
3) 마크는 배리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반대로 배 리는 마크를 사랑한 것 같나요? 왜 배리는 마크를 도왔다고 보시나요?
3부랑 에필로그를 어제랑 오늘 한 번 더 읽었어요. 3부의 결말은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두 번째로 읽으니 더 감동과 소름이 돋았습니다. 결코 같은 부류가 아니었고, 어울릴 수 없는 사이일 것 같던 배리와 마크의 관계. 세대를 거치며 데이비드에서 벤, 마크로 3대에 걸쳐 이어진 종의 생존을 위한 장대한 실험.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를 겪고 오히려 성숙해진 마크의 삶의 궤적이 모두 담겨 있네요.
1) 클론들의 퇴화는 이전의 인간/클론의 본질적인 차이와 비슷한 연장선이라고 봅니다. 클론들을 보면 그들은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나 근원적인 목적의식이 없어 보였어요. 단지 '살아남는 것' 자체에만 모든 역량과 관심을 집중하고 있죠.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하는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공동체의 본질과 원리에 대해서도 그들은 무지합니다.
클론들이 고장 난 것을 고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생각이나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 특정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해결책을 다르게 적용하거나 대입하지 못하는 상황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봤어요.
과학기술적 접근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그리고 이를 위한 경제적/분석적 사고에 기반한 오늘날의 사회의식 기조에서 인문학과 철학은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과학적 사고와 기술에 의한 발전의 시작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고민, 문제해결을 위한 적응력과 탐구력이 중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 로봇, 자동화, AI 등이 계속 화두가 되고 이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이 여러 책과 영상으로 나오고 있는 시대죠. AI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영상들을 몇 개 보다 보면 비슷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AI에 대한 기술적 이해나 사용법을 잘 아는 것 보다, 'AI에게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세지들이죠.
자료수집과 분석의 많은 부분을 절약하기에 이제 사용자는 기술 숙련도보다는 본인이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한 기획력과 고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AI는 사용자가 투입한 수준의 의도만큼만 해결책과 정보를 가져다 주므로,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 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가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클론들의 퇴화는 이런 능력들이 부족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이지 않을까요. 그들에게는 이전 인류들이 썼던 수준의 기술과 과학이 있었고, 그것을 사용할 줄도 알았지만 그 모든 것을 '공동체의 유지와 생존'에만 사용해왔죠. 그들은 바깥 세계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지금의 사회를 바꾸어보려는 고민이나 의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고민과 생각의 부족은 사고력, 추상화, 창조성이 싹 틀 자리를 메워버렸을 겁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생존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잊은 모습입니다. 그저 인간을 복제해서 수를 늘리기만 하느라 임신과 육아를 통해 선천적/후천적으로 갖게 되는 개인의 특질, 인간성, 사회적응력, 친화력, 상호작용을 내다버렸죠. 기능에만 집착하는 클론들의 모습은 앤드루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노동계층만 대량복제하는 지경으로 갑니다. 이쯤되면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단순한 소모품이자 인간의 껍데기로 보였습니다.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저 여러 개의 세포와 장기가 모여있을 뿐인 육체 덩어리처럼요.
몰리가 가졌던 그림 그리는 재능은 공동체 유지에 꼭 필요한 필수적인 능력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디까지가 쓸모있는 능력, 쓸모없는 능력이라는 것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클론들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사라진,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크고 작은 능력들은 처음에는 미미했어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사라지면서 인간성도 같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생존에 집착하느라 인간성을 버리고 기술에 의존할수록, 그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간적 능력이 결여되어 퇴화하는 클론들의 모습은 매우 역설적이었어요. 책에서 몰리나 마크는 여러 번 도시가 그들을 구원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죠. 아마도 그건 작가가 개인이 직업/기능/자본으로만 평가받고, 인간성이 획일화된 도시기반의 현대문명을 지적하려던게 아닐까요.
borori
은화님의 대화: 3부랑 에필로그를 어제랑 오늘 한 번 더 읽었어요. 3부의 결말은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두 번째로 읽으니 더 감동과 소름이 돋았습니다. 결코 같은 부류가 아니었고, 어울릴 수 없는 사이일 것 같던 배리와 마크의 관계. 세대를 거치며 데이비드에서 벤, 마크로 3대에 걸쳐 이어진 종의 생존을 위한 장대한 실험.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를 겪고 오히려 성숙해진 마크의 삶의 궤적이 모두 담겨 있네요.
1) 클론들의 퇴화는 이전의 인간/클론의 본질적인 차이와 비슷한 연장선이라고 봅니다. 클론들을 보면 그들은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나 근원적인 목적의식이 없어 보였어요. 단지 '살아남는 것' 자체에만 모든 역량과 관심을 집중하고 있죠.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하는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공동체의 본질과 원리에 대해서도 그들은 무지합니다.
클론들이 고장 난 것을 고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생각이나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 특정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해결책을 다르게 적용하거나 대입하지 못하는 상황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봤어요.
과학기술적 접근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그리고 이를 위한 경제적/분석적 사고에 기반한 오늘날의 사회의식 기조에서 인문학과 철학은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과학적 사고와 기술에 의한 발전의 시작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고민, 문제해결을 위한 적응력과 탐구력이 중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 로봇, 자동화, AI 등이 계속 화두가 되고 이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이 여러 책과 영상으로 나오고 있는 시대죠. AI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영상들을 몇 개 보다 보면 비슷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AI에 대한 기술적 이해나 사용법을 잘 아는 것 보다, 'AI에게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세지들이죠.
자료수집과 분석의 많은 부분을 절약하기에 이제 사용자는 기술 숙련도보다는 본인이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지에 대한 기획력과 고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AI는 사용자가 투입한 수준의 의도만큼만 해결책과 정보를 가져다 주므로,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 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가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클론들의 퇴화는 이런 능력들이 부족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이지 않을까요. 그들에게는 이전 인류들이 썼던 수준의 기술과 과학이 있었고, 그것을 사용할 줄도 알았지만 그 모든 것을 '공동체의 유지와 생존'에만 사용해왔죠. 그들은 바깥 세계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지금의 사회를 바꾸어보려는 고민이나 의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고민과 생각의 부족은 사고력, 추상화, 창조성이 싹 틀 자리를 메워버렸을 겁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생존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잊은 모습입니다. 그저 인간을 복제해서 수를 늘리기만 하느라 임신과 육아를 통해 선천적/후천적으로 갖게 되는 개인의 특질, 인간성, 사회적응력, 친화력, 상호작용을 내다버렸죠. 기능에만 집착하는 클론들의 모습은 앤드루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노동계층만 대량복제하는 지경으로 갑니다. 이쯤되면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단순한 소모품이자 인간의 껍데기로 보였습니다.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저 여러 개의 세포와 장기가 모여있을 뿐인 육체 덩어리처럼요.
몰리가 가졌던 그림 그리는 재능은 공동체 유지에 꼭 필요한 필수적인 능력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디까지가 쓸모있는 능력, 쓸모없는 능력이라는 것을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클론들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사라진,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크고 작은 능력들은 처음에는 미미했어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사라지면서 인간성도 같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생존에 집착하느라 인간성을 버리고 기술에 의존할수록, 그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간적 능력이 결여되어 퇴화하는 클론들의 모습은 매우 역설적이었어요. 책에서 몰리나 마크는 여러 번 도시가 그들을 구원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죠. 아마도 그건 작가가 개인이 직업/기능/자본으로만 평가받고, 인간성이 획일화된 도시기반의 현대문명을 지적하려던게 아닐까요.
공감합니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하는 무리가 생기고 그 구분에 따라 복제된 클론들의 미래가 계급 사회를 연상시켜 더욱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은화
borori님의 대화: 공감합니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구분하는 무리가 생기고 그 구분에 따라 복제된 클론들의 미래가 계급 사회를 연상시켜 더욱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읽다 보니 <멋진 신세계>가 자주 겹쳐 보였어요. 서로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지만 1부와 2부는 마치 멋진 신세계로 가는 중간 단계가 이런 풍경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생존에 성공한 모습이 <멋진 신세계>라면 실패한 사회가 이 작품이었을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