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

D-29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그 조각이 사람의 모양이라는 것을 볼 줄 모른다고 합시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앤드루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배리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도 그 일이 중요한 이유는 몰랐다. 중요하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67,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3부를 읽다 에필로그까지 쭉 이어서 읽게 됐습니다. 이번 책은 읽어 갈수록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여러분은 책 전체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인상깊은 대목이 있었나요? 저는 24장에서 마크가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묘사들이 좋았어요. 잔잔하게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고, 그 안에서 마크가 생존하는 모습이 하나의 영화처럼 그려지더라고요. 사람과 문명이 하나도 없는 순수하고 복원된 자연의 광경, 그 안에서 혼자 헤쳐나가고 적응하는 마크는 몰리가 그리던 고독한 그림들과 겹쳐 보였어요. 몰리는 존재의 고독을 묘사했지만 마크는 그 고독과 자연 속에서 만족감과 평안을 느끼는 것이 대비되네요. 한편 3부에서 곳간에 불이 나고, 물줄기가 토사에 묻히고, 목장이 무너지는 일련의 사건을 읽을 때 저는 처음에 앤드루가 마크를 제거하고자 모략을 꾸미는 게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결말을 읽고 나니 '클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더라고요. 마크가 배리에게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보며 마크가 독자인 저도 속일 정도로 거짓말을 잘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방사능으로 오염된 식물들, 동물들이 사라진 세계, 클론들이 떼를 지어다니는 기괴한 골짜기 풍경, 인류가 사라지고 다시 생명을 얻어가는 아름다운 숲 등 배경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론 설정이 다소 애매해서 클론의 특성이 세뇌에 의한 것인지, 유전적 결함인지 헷갈렸는데 둘 다였던 것 같군요. 유전적 결함은 뒤로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것 같구요.
얄궂게도, 골짜기의 사람들을 살아남게 했던 바로 그 기술은 흔들리기 시작한 피라미드의 파멸을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만 목숨을 부지케 할 것이다. 꼭대기는 한쪽으로 미끄려져 내려, 한때는 완벽하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다른 모든 과학기술들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 p. 337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배리는 야만 시대가 오천 년은 더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잰 시간이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한 시간이 아니었다. 마크는 사람들을 시대를 초월한 주기, 돌아오는 계절과 밤낮의 변화와 삶의 탄생과 죽음이 일상을 나누는 때로 이끌었다. 이제 사람들의 즐거움은, 그리고 고통은, 흔적 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개인의 일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이곳에서는 과거의 재창조나 정교한 미래 설계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한때 거의 접혔던 가능성의 부채가 다시 열리고 있었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 하나하나가 그 부채를 더 넓게 펼쳤다.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p. 362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저도 이 문장이 뭉클하고 좋았어요. 다른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고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인생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은 태초의 인간세상으로 회귀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이제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마크의 마지막 마무리도 잔잔하게 감동적이었고요. 자신의 도전과 시도가 성공했다는 기쁨, 마침내 가족을 얻은 행복, 그리고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가진 개체로 돌아온 인간.. 데이비드가 1부에서 말한 "멸종을 피할 길은 스스로 내재되어 있어요. 무언가가 기억하여 스스로를 치유하는거죠."를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길고 길었던 데이비드의 실험이 맞았음을 증명하듯.
책을 읽는 동안, 냉전체제 상황에서 쓰인 많은 책들처럼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깔려 있고 그걸 강조하는 내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엔딩에 이르러서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어요. (결함 있고 금지된 사랑을 꿈꾸었던) 데이비드와 셀리아, (별종이라 도태되고 외로웠던) 몰리와 벤의 유전자와 뜻을 이어받은 (태생부터 시스템의 환영을 받지 못한) 마크의 선택은 단지 문명이니 기술이니 하는 대단한 업적보다는 '개인의 삶'과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해지는 가치'가 훨씬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엔딩 부분이 뭉클하고 좋았어요. 데이비드와 셀리아의 긴긴 사랑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데이비드의 모습을 한 (마크의 유전적 아버지일 수 있는) '배리'의 희생도 눈물겨웠습니다. 골짜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오래 떠오르고 생각하게 될 좋은 책이었어요. 작품 속 배경과 분위기도 쓸쓸하지만 아름다웠구요. 좋은 책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마크는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어린애처럼 득의에 찬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다 그의 것이었다. 이 세상 전부가. 아무도 이곳을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의 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 그가 차지할 것이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85,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마크는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이 숲에서 느낀다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에는 어떤 존재, 악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288,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몰리의 손재주는 사라졌다.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각 세대마다 무언가가 사라졌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도 있었고, 없어진 직후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335,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그들은 미래를 내다볼 상상력이 없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회의 적이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p.337,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1부, 2부, 3부 각각의 결말 그리고 데이비드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1부에서는 데이비드와 셀리아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데다 정작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하고 클론들이 임신하는 아이러니한 결말입니다. 2부에서 벤과 몰리는 마크를 낳지만 그들의 사랑도 이어지지는 못했죠. 반면 마크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사랑을 찾습니다. 1부가 비록 사촌간이기는 해도 '남녀'의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2부는 몰리와 마크의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 핵심이라고 느꼈어요. 3부는 대가족 또는 이웃과 공동체로서의 '가족'으로 사랑의 범위가 확장되는 결말로 읽혔고요. 데이비드나 몰리, 마크라는 개개인들의 삶에는 비극과 고통이 많았지만 큰 틀에서는 3대에 걸쳐 이어지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실험이 조금씩 꽃을 피우는 느낌이랄까요. 재난과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하듯 인간/클론도 자신들의 과오와 한계를 딛고 다시 일어나려는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의 다양한 표지들입니다.
전 모임을 시작하기 전 잠깐씩 다양한 책 겉표지들을 찾아보곤 하는데 4번째 이미지의 풍경이 기억에 제일 남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풍경이 머리에 떠올랐어요. 노을이 지는 골짜기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핏빛처름 붉은 하늘이 언뜻 불길해 보이기도 합니다. 숲도 마찬가지로 멀리까지 초록빛이 뻗어나가 자연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클론들이 무서워 한 검고 짙은 숲의 모습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저 표지의 마을은 과연 아직 데이비드와 인간들이 살아있을 때일지, 클론들만이 남아있는 미래인지 궁금하네요. 2번째와 5번째의 표지도 좋았습니다. 이미 폐허가 된 미국 도시를 탐험하는 아이들을 그린 5번째 표지는 높고 청명한 하늘과 부서진 도시가 대비됩니다. 인간 멸망의 흔적이 그저 하나의 자연 풍경처럼 보여 비극적인 분위기보다는 클론들이 탐험해야 할 하나의 목적지라는 느낌이 담겨있네요. 2번째 이미지는 무어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거울에 비춘 듯 서로 정반대에 서 있는 자연과 마을이 마치 공동체에 인간이 살던 시절과 클론이 지배하는 시대를 대비시키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다음 모임은 <생명창조자의 율법>으로 준비하려고 해요. 기계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생명들이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 책입니다. 한달 동안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미래의 문학 8권. 장편소설 <별의 계승자>로 이름을 알린 작가 제임스 P. 호건의 1983년 작품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의 시대상과 과학적 상상력을 절묘하게 융합시킨 제임스 P. 호건의 초기 명작이다.
덕분에 명작 한 편 제대로 또 읽고 갑니다. 다음 책도 기대됩니다.
와. 다양한 표지들 흥미롭게 잘 봤어요. 은화님 감사합니다!
다양한 표지들 재밌게 잘 봤습니다. 읽은 내용들이 겹쳐지기도 하면서 읽은 책을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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