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저도 많은 분들이 짚어주신 것처럼 크게 세 가지 장면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한 편의 시트콤 같다는 인상평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페리윙클 님의 말씀처럼 "마술적 사실주의"와 같은 장면들이 있었죠.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풍경. @금정연 선생님께서 '코즈믹 호러'라고 정리를 해주셨는데요. 저도 그 부분에서 어떤 압도적인 경이감과 공포, 두려움과 나아가 무력감? 같은 것을 전달 받을 수 있어서 놀라웠어요.
그것과 대비되는 것이, 역시 몇몇 분들이 말씀해주신 머리커와 남작의 서사, 더 정확히는 머리커(마리에타)의 내면의 풍경 묘사 같은 것이었는데... 저도 이 소설 전반부의 진짜 주인공은 머리 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금정연 선생님 말씀처럼 그의 1인칭으로 시작되는 초반부의 영향력도 큰 것 같고요. 머리커가 3인칭으로 묘사될 때도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감각적으로 너무 잘 와닿아서 몰입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료 님이 머리커의 기대감이 남작의 도착과 함께 보상 받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할 것에 대한 우려를 전해주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머리커가 자신의 '늙음'과 시간의 변화를 계속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이 행운, 운명, 젊음 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그것이 배반될 미래와 함께 읽히면서 더 애틋해지는 것도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혹은 도대체 영문을 좀 알기 위해서 방구석에서 모두 뛰쳐 나온 날. 그 수많은 인파의 기대감, 실망감, 냉소 등이 뒤범벅된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역장이 그것을 한껏 의식하고, 기차의 도착을 알리지/알리지 않는 모습. 역장의 미묘한 뉘앙스에 반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거국적인 손흔들기"에 동참하게 되는 모습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저도 그 군중들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400쪽이 남았네요...많은 일이 더 일어나고도 남겠죠?
곧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가은

Rae
서사의 주인공이 교수일 때와, 벵크하임 남작일 때의 톤이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벵크하임 남작에 대한 묘사가 무척이나 기이해서 만화 캐릭터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읽다보니 점점 쉼표가 마침표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금정연
만화 캐릭터 같다는 말씀이 딱인 것 같아요. 교수는 블랙 코미디 혹은 스릴러 영화의 등장인물 같았는데요. 저도 방금 읽으면서 쉼표가 마침표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건 눈이 가물가물해서 그런 거지만요...
miamia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내게 말했으므로]
기관사의 묘사로 시작되는 도착역의 거대한 실패는 마치 영화 같아요. 꽃으로 장식한 사두마차에, 군모를 쓰고 가죽옷을 입은 오토바이족에, 나부끼는 깃발 아래의 여성 합창단까지.
다시 보니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생각났어요. 각 인물들은 나름 심각하고 무거운 감정을 갖고 있지만 영화에선 아름답고 코믹하게 그려지듯이, 이 엉망진창인 도착 장면은 소리를 싹 제거하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깔면 좋을 것 같아요. 오토바이의 경적이 들리지 않아도 그들이 서로 눈치를깔릴 것 같단 말이죠.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은 여기저기 뿌려둔 떡밥을 끝내 회수하지 않아요. 이 세상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거나, 속시원한 결말 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작가의 신념을 내포한 구성일까요.
miamia
오토바이의 경적이 들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선율을 배경으로 경적을 누를까말까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본 것처럼 눈에 그려집니다
라는 글이 어떻게 저렇게 올라갔을까요😅

최가은
남작의 엉망진창인 도착 장면이 웨스 앤더슨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말씀해주시니 정말 정말 그렇게 느껴지고! 더욱 재밌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금정연
읽으면서 웨스 앤더슨 영화를 떠올리진 않았는데, 말씀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런 느낌도 나네요!

산머루
"오직 나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이니 자네 악사들은 내 조율에 맞춰 연주해야 하며 단언컨대 경험상 말하노니 내게 저항해봐야 아무 소용도, 어떤 의미도 없으며"
<경고> 장에서 악장이 한 말을 읽고 이 소설이 전체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난민이 유입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현실로 인한 과거에 대한 향수-'카다르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와 빵을 줬습니다만, 그 시절이 다시 와야한다는 뭐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그때는 없는 게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바'라고 뱅크하임의 귀향 열차의 승무원 헝가리인 차장은 생각합니다. 찾아보니 카다르 아노시는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사회노동당 서기장 겸 장관회의 주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총리직을 역임한 인물이네요- 이런 상황에서 전체주의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기 충분하겠죠. 마침 <잘난 당신을 쓰러뜨리고 말겠어> 장에서 교수가 '작은별'을 죽인 다음 머릿속에서 맴돈 문장이 '나치 돼지들, 너희는 결코 나를 못 이겨, 너희는 결코 나를 못 이겨'라는 문장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작은별'이 속한 오토바이족, 자칭 타칭 '향토방위군'으로 불리는 이들은 '질서'를 중요시하고 '정직과 이상'이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경찰서장과 결탁한 자경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신뢰하고 기다리는 분이 바로 뱅크하임 남작입니다. 이는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장에서 헝가리인 차장이 카다르 아노시를 그리워하는 것과 겹칩니다. 뱅크하임 남작은 네오나치들이 표면에 내세우는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인물인 셈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틀을 만들고 소설을 읽으니 사실 좀 맥이 풀립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뱅크하임 남작이 아르헨티나에서 귀향을 하고 귀향을 하면서 46년 전 사랑했던 마리에타를 생각하고 마리에타에게 편지를 쓰고 그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에 굉장히 몰입했고 뱅크하임의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기까지 했는데 제가 만든 틀에 갖히는 순간 시시해져 버렸거든요. 다시 틀을 거두고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머릿속이 어지럽네요.
sunflower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니 저는 더 재미있네요. 역시 함께 읽으니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읽었다면 이런 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을듯요. 처음에는 심하게 지루해던 책이 조금씩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금정연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그렇게 본다면 남작이 '아르헨티나'에서 귀향했다는 것도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전범(나치)들이 남미라 도주했고, 그중 아르헨티나에 가장 많은 나치들이 숨어 지냈다고 하죠(아이히만 포함).
그런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어느 한 틀에 가둬지기를 거부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을 때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데요. 화이팅입니다!

고양이라니
마리에타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약간 우스꽝스러운데, 그건 그거대로 잘 어울리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마리에타의 행동은 제외하고 벵크하임 남작의 행동은 이해가 가요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었는데도 돌아가고 싶은, 그 때의 향수가 부활하다니 끔찍한거죠...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헝가리가 저질렀던, 독일보다 더 잔인한, 만행이 생각나네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유럽 소설은 더 흥미진진한거 같습니다

금정연
확실히 문화나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생각하면서 보면 소설이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소설은 다르게 읽을 여지가 훨씬 더 많은 것 같고요.

이룬
“ 400. 그의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 의자를 좀 더 가까이 당겼으며 추위에 몸을 떨었으나 움직이지는 않고서 빈 의자 옆에 앉은 채 쾨뢰시강 강둑에서 잎을 모조리 떨군 버드나무들을 테라스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얼마 지나자 그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람이 버드나무의 길고 촘촘하고 헐벗은 가지를 흔들리게, 앞뒤로 흔들리게, 강의 얼음장 같은 물 위로 차갑게 하늘거리게 하는 광경뿐이었다.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이룬
누구라도 기차에서 선뜻 내리지 못했을, 정신없던 환영식이었습니다. 요란하고 소란한 중에 주인공은 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남작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빈 의자를 곁에 두고 앉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저도 한숨 돌립니다.
한 번에 읽어지는 페이지가 늘어나네요. 이쯤되니 마침표 없이도 전혀 숨이 차지 않고요🤣. <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챕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금정연
확실히 읽어나가면서 속도가 붙는 소설 같습니다. 저도 점점 더 읽는 속도가 빨라지네요.

호디에
“ 이 시대는 자유가 아니라 치욕의 연대기에 불과하며 다시 한번 무신론자들이 득세했고 이는 개탄할 만한 일이니 그들이 실제로는 조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용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요, 한 발 더 내디디는 용기, 신이 없다는 관념에서 그들이 실제로 '제시한' 조치를 취하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언제나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었으니 그들은 비난받았으며 어쩌면 오늘날에도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바,(...)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용기였으니 그들은 비겁했고 이날까지도 여전히 비겁하며 참된 무신론자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쨌든 저 측은한 거렁뱅이들, 어제와 오늘의 무신론자들, 그들은 거창한 문장을 내뱉었고 자신들의 말 때문 에 즉시 바지를 적시고 말았으나 그들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그 중요성을, 자신들이 방금 발견한 것의 놀라운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기 때문이며ㅡ(후락)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p481,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문장모음 보기

조용한목조건물
유럽권 독자들에게 별점이 높다는 것이나 정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 혼자 읽었다면 몰랐을텐데 뜻밖이에요. 오해로 비롯되는 한바탕의 상 황들이 재밌어요.


금정연
소설이 쓰여진 헝가리어는 물론이고, 다른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해요. 과연 우리가 같은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요. 모든 번역에는 그런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하네요.

조용한목조건물
390.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를 들여보내주는 것으로, 그 건물의 이름은 카지노였고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문장모음 보기
지니00
[펌/그는 도착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남작이 숙소로 간 후 피곤해서 완성되지 않은 침대에 눕는 모습이 정말 잘 묘사되어있어서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오랜 비행 후 여행지에 밤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시장이 만찬에 데려가려고 할때 저도 피곤함이 같이 몰려왔어요 ㅋㅋ 스위트룸을 마련해준 걸 보고 편안..
남작은 마리에타를 만나는데 알아보지 못해요. 남작이 좀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남이 닿는 거를 끔찍이 싫어하고, 자신의 또래였던 마리에타가 늙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사기꾼인 단테를 믿고, '카지노'에 머무르기 위해 도박을 해 모든 돈을 날려버렸다는게.. 정상적인 사람 같지는 않네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